난 참 게으른 사람입니다.
집안에 일이 쌓이고 나면,,,난 은근히 커피한잔을 마시며 먼저 여유를 떨어봅니다.
그순간은 "한잔 마시고 시작해야지"... 라는 생각입니다.
커피에 비스킷을 찍어서 맛있게 먹고나면,,,
이렇게 글이 쓰고 싶어집니다.
며칠동안 아니 3일을 꼬밖 앓았습니다.
요즘 한 두달 거의 카톨릭성모병원을 내집보다 더 열심히 드나들면서 어머니를 간호 했습니다.
올해 87세이신 울 시어머님은,,,
노환이라고 해야 겟지만, 이런저런 병으로 응급실, 짧은 수술, 중환자실, 1인실, 2인실, 5인실을 전전하며, 입퇴원을 반복하며 지내셨습니다.
큰 별다른 약속이 없으면, 아침에 남편 출근길에 날 병원에 내려 달라고 하고,
남편이 퇴근해서 올때까지 어머니와 놀며 지냈습니다.
차 2대로 왔다 갔다 하기엔 주차료 또한 만만치 않고,,,차 핑계데고 일찍 나오기도 싫고해서
물론 간병인 아주머니도 계시지만 우리어머닌 절 이뻐라 하시고,
나 역시 별일없이 집에서 있기가 맘이 편치 않고, 가서 노는것이 좋다고 느껴졌습니다.
속 내로는 약간의 욕심이 있기는 합니다.
처음 시집갔을때 , 난 이미 52살에 내 친정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에 시집을 가서
내 친정아버지의 병환중에 첫번째 시어머니께서 늘 그러셨습니다.
"너 그렇게 너희 아버지 보내면,,,평생 후회한다"고...
그땐 제가 신앙이 별로 없을 때였었고,
그 말의 깊은 뜻을 이해 못한때였습니다.
그저 하루 하루 생활에 쫒겨 살다보니...
내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우리 신앙으로는 천국을 가지못한거란 사실을
뒤듯게 깨닫고는 너무 큰 후회와, 그때의 그 시어머니 이야기 처럼 평생 후회 하며 삽니다.
그러고보니, 지금의 우리 시어머님은 명예권사님이시긴 하지만, 그리 신앙이 깊지 못하셔서
구원의 확신도 없으신걸 제가 아니까...
어머니의 영혼의 구원을 놓고 늘 노심초사 쫒아 다니면서,,,잘해드리고 둘이만 있게 되는 시간이
되면 무조건 적으로 습관적으로 기도를 합니다.
어머니도 아프시니 마음이 약해 지셔서 내 기도를 의지하고
계속 아멘! 아멘! 하십니다.
이글을 쓰자니 갑자기 어머니가 보고싶어져서 전화 통화를 하고 왔습니다.
"감기가 다 나아서 내일이면 다시 놀러 가겠다고,",,
어머니께 감기 옮길까봐 4일째 못가봤습니다.
며칠 아프면서,,,
시집 오길 잘했다 라고 생각 했습니다.
전 무조건 감기만 걸리면 엄살이 심해서 가까운 통증 크리닉에 가서
물리치료기에 몸을 맡기면서 링거를 양팔에 멀티 비타민이니, 해서 2가지를 거푸 맞고는 거뜬해져서 살아나는 이상한 생활 습관을 가지고 있는데, 아마 혼자 산 세월이 너무 오래 되어서 자기방어력이 발달 해서 그런가 봅니다.
그런데.... 그 병원이 폐업한다고 몇달전부터
문자가 왔었습니다.
그 뒤로 새로 개발한 데는 없고,,,
2일을 끙끙 앓타가
제가 시집오기전에 살던 상도동에 같은 교회다니는 간호사에게 전화 했더니 와주겠다고 해서 영양제를,링거를 놓아 주고 갔습니다.
그런데 그집사가 우리집을 모르니, 남편이 한남동서 상도동을 왕복해서 그 간호사를 데려오고 데려다 주었습니다.
너무 고마웠습니다.
그런데 다음날,,,,훨씬 좋아진 나의 컨디션을 보고는
속으로 그런생각이 들었습니다.
"남편의 2시간의 수고로 내가 그 아픔에서 이렇게 좋아질거라면 그정도는 해주는 것이 당연하다" 라고 ㅎㅎ
참 인간 간사 합니다.
요즘 저희 어머니는 다시 건강해 져서 2째 아들이 하시는 노인요양병원에 특실에 간병인
아주머니와 지내십니다.
너무 상태가 더 좋아져서 그사이 저하고 간병인 아주머니하고 목욕도 다녀오시고, 담주면 간병인 아주머니랑 같이 집으로 도 퇴원하신답니다.
참 다행입니다.
석류너무 좋아하시는데, 내가 아프다니까...남편이 석류를 한상자를 사왔습니다.
몇개 나눠서 주일날 교회 끝나고 가서 놀다 와야 겠습니다.
집에서 플라스틱 양동이를 가져가서 뜨거운 물을 받아서 족욕을 시켜드리고, 공기압맛사지
기계도 끼워드리면 피곤해서 금방 코를 고시며 주무십니다.
남들이 그럽니다 " 힘들지 않냐고?"
그럼 제가 그럽니다.
"남들은 이런 상황에 병원비도 내야지 병원서 24시간 잠도 자야지 할텐데,
저는 겨우 간병인 아주머니 집에가시는날에 2번 병원서 피서처럼 자봤습니다.
그때 정말 5인실 환자분들이 유난히 강원도 분들이 많아서
아침에 눈을 떴는데. 정선 사투리 영월 사투리들을 쓰시면서 분주히 움직이시는데,
설잠깬 상태라 정말로 내가 피서를 왔구나 했습니다. ㅎㅎ
다행히 우린 그런 힘든 상황은
없습니다." 그런 내가 힘들다면? 그건 내가 나쁜 사람이지요,
경제적으로 여유있는 것도 감사하고
좋은 간병인 아주머니 만난것도 감사하고,
어머니께서 다시 건강해 지신것에 정말 감사하고
저번에 편찬으셨을때...속으로 겁먹고
수의를 멋지게 맞췄습니다.
저는 평생 혼자 살게되다면 앞구정동이나 청담동쯤에 한복과 이불을 섞어서 멋진
주단집을 내어 볼까 했습니다.
이불은 평생을 이불회사를 다녔으니 자신이 조금 있었고, 한복에 무지한터라...
그래서 성균관대학원서 2년동안 궁중복식을 배웠습니다.
인간문화재분들께 비법도 전수받고, 이론과 실기를 다 하는
대신 실기수업은 운현궁에서 했던...
운치 있는 시간과 시절이였습니다.
누비시간에는 합천해인사서 평생 승복을 누비시던 누비장이 바랑을 메고 첫기차를 타고 오셔서 수업을 진행하십니다.
그분의 눈은 마주 보기도 어려울 정도로 광채가 나시고, 도인의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수업도 거의 명상처럼 이루워지고,
참선과 철학 같았던 시간이였습니다.
그 장소가 운현궁이라고 생각해 보십시요,,,너무 좋았던 시절이였습니다.
바느질 시간은 침선장이신 인간문화재께서 단아하게 한복에 두루마기에 쪽을 찌시고 수행비서같은 조교수님과 같이 나타나십니다.
그러다 점심시간이 되면 운현궁옆에 인사동서 식사와 맛있던 차향~~~~~~~
세상에 너무 좋은 것이 많습니다.
그때 배운 지식으로,,,
예로부터 궁중에서는 수의도 명주로 했다는걸 알았으니, ,,,
어느날 어머니 편찬으실때...
어머니몰래 어머니 장롱속 한복을 몰래 훔쳐서 싸이즈를 재고는 다시 가져다 놓고는
수의를 멋지게 맞춰 놓았습니다.
이불과, 요,와 베게 오낭주머니 발싸게 손싸게 두루마기까지 일습으로,,,
명주의 오리지날 색이 소색으로 멋지게 해놓구선,,,
찾아오지않고, 그냥 그 한복집에 두고 지내고 있습니다.
저희 어머니는 그게 집에 있다는 자체가 꺼름직해 하셔서 일부러 장만을 안해놓으셨다길래
그냥 저 혼자 몰래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러니 아직도 저희 어머니는 그런것이 있다는 것도 모르십니다.
수의 하시면, 을씨년 스러운 삼베만 기억하실텐데,,,
자랑이라도 하고싶어서 입이 근질근질합니다
혹여, 반대로 여전히 돌아가시길 기다리시는 것 같이 느껴질지도 몰라 그냥 비밀로 가야겠습니다.
어쨌든...올해 87세 가 되셨습니다.
우리는 어머니와 저, 둘다 호랑이 띠 입니다.
서로 의가 좋지만, 서로 궁짝도 잘 맞는 고부간임에 분명합니다.
오늘도 넘 춥지만.
행복하게 보내겠습니다.
남산서,,,,
첫댓글 시어머님을 사랑하시는 마음 대단하십니다. 고부간은 영월한 고부간이라던데... 글쓰는 솜씨 한수 배우고 싶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