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협중앙회는 최근 ‘국내 고추 유통 현황 및 대책’을 주제로 (사)한국고추연구회에 의뢰한 중간보고서 발표회를 개최했다. 농협은 이 단체를 통해 11월 말까지 최종보고서를 도출해 산지 지도의 기초자료로 삼는 한편 정부 정책의 밑그림으로 활용토록 한다는 계획이다. 발표회에서는 외국산 수입량 증대로 설 자리를 잃고 있는 국산 건고추의 현주소와 함께, 이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어떤 대책을 세워야 하는지가 논의됐다.
◆국민 식생활·농가 경제에 없어서는 안될 제일의 양념채소=건고추의 국내 시장 규모는 연간 1조원대로 추산된다. 10α당 농가 소득도 2011년 기준 322만여원으로 쌀(57만여원)보다 5.7배 높다. 국민 식생활은 물론 농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높은 국내 제일의 양념채소 중 하나로 평가받는 이유다.
하지만 국내 고추 생산량은 이제 전체 수요량의 절반도 장담하지 못할 정도로 매년 큰폭으로 줄고 있다. 2001년 18만t을 넘던 건고추 생산량은 2011년 7만7000t으로 58%가 감소했다. 우리나라 기후가 아열대성으로 변하는 추세인 데다 재배농가의 노령화에 따른 심각한 노동력 부족 현상이 맞물린 결과로 풀이된다. 실제 국내 건고추 재배면적은 2001년 7만736㏊에서 2011년 4만2574㏊로 10년새 40%가 줄었다.
이런 가운데 외국산(대부분 중국산) 건고추 수입량은 지속적으로 늘면서 국산 건고추 시장을 빠르게 잠식하고 있다. 중국산 건고추는 2011년에만 10만4000t이 수입돼 국내 자급률(44.2%)이 처음으로 50%대 밑으로 떨어졌다. 시중 유통되는 건고추 중 외국산이 국산보다 더 많아진 상황이 된 것이다. 특히 중국산 냉동고추는 건고추와 고춧가루에 매겨지는 관세(270%)의 10분의 1에 불과한 저율관세(27%) 체계의 틈을 파고들면서 국내 건고추 시장을 교란하고 있다.
◆낮은 가격경쟁력 극복하고 소비지 변화 따라가야=우리나라 국민 한사람이 1년에 먹는 건고추 소비량은 6㎏. 한국인들의 매운맛 사랑은 세계 최고 수준으로 정평이 나 있다. 하지만 최근엔 이런 소비자 기호에 미묘한 변화가 일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건고추와 고춧가루 상태의 유통 비중은 현재 7대 3 정도로 추정되는데 고춧가루 제품 쪽으로 소비자의 선호도가 빠르게 바뀌고 있다는 게 고추 관련 유통인들의 얘기다. 따라서 더욱 위생적이고 규격화된 고춧가루 제조공정이 한층 요구된다. 고추종합처리장(RPPC)은 지난해 현재 경북 영양·안동·봉화·의성, 충북 괴산, 전북 임실 등지에 7곳이 설치·운영 중인데 2017년까지 모두 17곳으로 확대될 예정이어서 이런 요구에 부응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산지 일손 부족에 대응하고 ‘중노동’으로 불리는 고추 농사를 손쉽게 짓도록 하기 위해 벼(83%)에 비해 크게 낮은 고추 생력화비율(33%)을 끌어올릴 수 있는 재배수확 분야의 기계화 연구도 시급히 추진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물론 국산 건고추산업의 미래가 암울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국산 건고추는 세계 각국의 건고추 중에서도 색상과 유리당·신맛성분이 가장 잘 조화돼 있고 특히 단맛을 내는 유리당 함량은 평균 20%로 중국산(12%)과 미국·유럽산(8%)보다 월등히 높아 조미료 원료로서 최적이라는 게 고추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문제는 외국산에 비해 크게 떨어지는 가격 경쟁력. 국산 건고추를 소비하고 싶어도 값이 비싸 꺼리는 점을 해결하기 위해 건고추 사용량을 조금 줄이더라도 음식의 맛과 색상이 떨어지지 않게 하는 관련 요리법을 개발·보급하는 것이 과제로 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