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고 싶은 게 많았다. 전주 국제 영화제 홍보대사는 재미있었는지, 영화 <마음이2>는 어떤 영화인지, 드라마 <난닝구>는 어찌 되어 가는지, 베스트셀러가 된 뷰티북 <피부 미남 프로젝트>도 있고, 꽤 신나 보이는 뮤직뱅크의 MC 자리. 거기다 화제작 <성균관스캔들>의 캐스팅 소식은 또 어떻고! 송중기는 한 명인데 이슈는 너무 많았다. 확실한 건 바빠서 연애도 못하는 말만큼은 의심에 여지가 없다는 것. "제일 아쉬운 거죠. 성격이라서….”
뭐든지 해도 되고, 뭐든지 잘할 필요도 없는 20대. 열정만으로 모든 것을 이기는 찬란한 생의 한가운데에 송중기가 있다. "계산하지 말고, 따지지 않고 다 해보고 싶어요. 겁이 없는 성격은 아니지만, 그걸 없애려고 많이 노력해요. 그러다 보니 A형인 성격도 조금씩 바뀌는 것 같아요.” 다양한 활동을 하다 보니 또 다양한 상황을 마주치게 된다. 4부작 드라마 <난닝구>는 절반을 촬영했지만 방송 파업으로 나머지 촬영이 언제 재개될지 모르는 상황“. 이윤정 감독님 작품을 정말 좋아해요. <태릉선수촌>을 수없이 봤어요. <난닝구>는 감독님 작품이기도 하고, 감히 말해자면 지금까지 받은 것 중에서 대본이 가장 좋아서 설렜던 작품이에요.” 쌍둥이 마라토너로, 1인 2역을 연기한 이 작품은 ‘난닝구’ 바람으로 달릴 송중기의 산뜻한 매력과 좋은 연출진으로 기대를 모았지만 지금은 공중에 뜬 상태다. 애석하고 실망스러운 순간 <성균관 스캔들>이 왔다. 동방신기 믹키유천과 함께 연기할‘ 잘금 4인방’ 중에서 그는 음주가무의 달인이자 여자보다 여자를 더 잘 아는 ‘여림(女林) 구용하’ 역을 맡았다. "다들 조선시대 F4라고 하더라고요?” 원작 <성균관 유생들의 나날>에서도 특히 인기가 많았던 인물인 여림. 지금까지 착하고 순한 역할만 맡은 송중기에게는 새로운 역할이지만 그간 귀여움에 가려졌던 ‘마성’을 드러낼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 "걱정도 돼요. 그나마 음주는 좀 하지만, 춤 노래는 정말 못하거든요.” 어쩌면 영화 <마음이2>가 먼저 찾아올 수도 있다. 전편에 등장한 견공 마음이와 ‘투톱’ 이다. "<마음이>를 봤을 때 이 영화는 꼭 2편이 나올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 영화에 출연하게 되다니, 신기하죠. 밝고 따뜻한 영화예요.”
영화 <쌍화점>의 호위무사 건륭위 중 한 명으로 데뷔 후 이제 2년. 많은 것이 달라졌다. 발레에 비유하자면 군무를 추는 수많은 백조 중에서 주연이 된 셈. 모든 것이 너무 빨리 이루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진 않을까“. <피부 미남 프로젝트> 제안을 받고 , 나 그렇게 인지도 있는 배우가 아니다, 망할 것 같다고 했어요. 그런데 재미있을 것 같았고‘ 에라 모르겠다’라는 마음으로 시작했죠. 그런 기회들을 기쁘고 재미있게 생각해요. 사실은 더 많이 해보고 싶어요. 라디오 진행도 해보고 싶고, <1박 2일> 같은 예능도 해보고 싶고.” 빠르게 돌아가는 상황들 속에서도 그는 냉정하게 자신의 과제를 챙긴다. "연기 잘한다는 말을 듣고 싶고, 내가 내 연기에 언제쯤 만족할 수 있을까 생각해요. 예전에 했던 작품들을 돌려보며 고민을 계속하죠.” 배우로서 그는 철저한 노력파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타고난 재능이 많은 것 같진 않아요. 운도 따라줬겠지만, 그 뒤에서 엄청난 노력을 하고 있다는 건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어요. 오디션에서 느낄 수 있는 그 긴장감이 너무 좋아요. <쌍화점> 오디션을 봤을 땐 유하 감독님이 너무 무서웠어요. "그래, 같이하자”라는 말을 들었을 때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죠.” 그 순간을 기억하면 못할 것이 없을 것 같다. 그렇게 송중기는 앞에 놓인 많은 것을 두려움 없이 하려 한다. 송중기를 위한 바람이 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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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지한 배우의 진화론 - 이상윤 -
어쩌면 제주도에서 만나야 할지도 모른단 생각을 했다. 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는 제주도에서 대부분의 촬영이 이루어지고 있고, 그래서 이상윤은 서울보다 제주에 있는 시간이 더 많았다. 하지만 그가 서울로 와준 덕분에 ‘제주 프로젝트’ 는 무산되었다. 아쉽게도.
만나 보면 TV보다 더 잘생긴 배우도 많고, 이래도 되나 싶게 착한 배우도 많고, 카리스마 넘치는 배우도 많다. 그러나 한 가지를 대단하게 잘하는 것보다 아홉가지를 적절하게 잘하는 게 어렵듯, 이상윤은 앞에 나열한 것 외에도 눈에 보이지 않는 장점을 열 개는 더 갖추고 있는 배우다“. 연기하는 데 대학 졸업장이 뭐가 중요하겠어요?”라는 그의 말처럼 그의 뛰어난 학력 때문에 다른 자질이 가려지곤 한다는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예를 들면 그의 호기심이나 탐구심도 그렇다. 인터뷰어는 묻고, 인터뷰이는 답하는 게 인터뷰의 암묵적인 원칙이겠지만 이상윤은 답을 하면서도 잊지 않고 질문을 던졌다. 다른 사람의 생각은 어떤지, 언젠가 기자 역할을 맡기라도 하듯이, 아주 진지하게 말이다. "드라마 세트장에 놓을 옛날 사진이 필요해서 찾아봤는데, 골뱅이 안경을 낀 모범생 사진만 잔뜩 있더라고요.” 결국 모범생이었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며 큭큭 웃는다. 그러나 지금 그의 모습은 학창 시절과는 조금 다르게 보인다. 적당히 그을린 얼굴, 귓볼에 있는 까만 귀고리, 한결 넓어진 어깨. “나이 서른에 귀를 뚫게 될 줄은 몰랐어요. 이상하진 않죠?” 극중 ‘호섭’ 이는 마음 가는 대로 밝고 건강하게 살아온 인물. 직업은 스쿠버다이빙 강사로 머리보다 몸을 쓰는 직업이다. 지금껏 지적인 역할을 도맡아온 그에게는 완전히 다른 캐릭터다. 그런 낯선 역할이 정말 재미있다고 했다“. 캐릭터를 살리기 위해 몸을 많이 키웠어요. 옷 입기 좋은 마른 몸이 어떠냐는 조언도 있었지만 큰 몸이 더 어울리는 인물이라고 생각했죠. 아무튼 살은 빼는 거나 찌우는 거나 모두 어렵다는 걸 깨달았어요.”
까다롭기로 소문난 김수현 드라마에 발탁되었을 땐 기대만큼이나 긴장도 컸다. 드라마가 시작된 지금은 놀라움의 연속이다. 놀라운 대본, 놀라운 팀워크, 완벽을 위한 노력들. 그에게는 매 순간이 감동이다. "가장 놀라운 건, 모든 캐릭터가 ‘캐릭터’ 를 갖고 있다는 거예요. 정말 많은 사람이 등장하지만 모두에게 골고루 애정이 가는 건 그 때문인 것 같아요.” 모범생으로 살아온 그의 몸에는 ‘공부와 노력’ 이 이미 새겨 있다. 역할을 위해 12월의 바다에서 스쿠버다이빙을 배우고, 대본을 치밀하게 분석하는 것도 그렇다. 그는 자신이 가진 강점으로 이성적으로 대본을 파악하는 능력을 말하고, 단점으로는 감성적으로 대본을 전달하는 능력을 말한다“. 결국은 같은 이야기예요. 그래서 호섭이가 더 재미있어요. 머리를 쓰지 말아야 하는 인물이니까, 그러기 위해 애쓰고 있어요.” 하지만 단순하기만 한 캐릭터도 아니라는 말“. 비밀을 감춘 형과 제 주변의 여자. 그때가 되면 호섭이도‘ 깊이’를 갖게 될 거예요. 그때를 기대하고 있어요.” 그는 ‘깊이 있는 눈’ 을 가진 배우를 꿈꾼다. 언젠가 사극에 서고 싶다는 그에게는,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것과 달리 문인보다 무인이 더 어울릴 것 같았다. 이상윤이 변하고 있다는 증거다. 남자로 거듭나는 과정은 일단 성공적이다. 제주의 바람과 바다는 사람을 강하게 한다. "살아 숨쉬는 캐릭터의 감정을 완벽하게 전달하는 그때의 희열이 배우에게는 마약인 것 같아요. 마약이 어떤 건지는 모르지만, 그런 걸 거라는 확신이 들어요. 함께 일하는 스태프들은 냉정한 눈을 가지고 있죠. 그들을 감동시키는 연기를 하고 싶어요. 그때가 되면 아마 제 자신이 가장 잘 알 거예요.”
“<우리 결혼했어요>에 출연한 건 잘한 일 같아요?”라고 묻자, 매니저는 질문에 뼈가 있는 것 같다며 킥킥댔고, 이선호는 멋쩍은 얼굴로 웃었다. " 전 그냥 모든 게 운명이었다고 생각해요. 아무래도 리얼리티쇼는 과장되기 마련이잖아요. 제가 좀 들이대긴 했지만, 서로 개그 코드가 달랐을뿐이라고 생각해요. 하하.” 역시 잘 맞는 사람을 만나야 된다는 오래된 교훈과, 또 잘 맞는 사람을 만나는 건 쉽지 않다는 현실을 모두 떠올리게 했던 에피소드는‘ 파혼’으로 끝났다. 모든 건 운명이었다면, 이제 그로 인해 바뀐 방향을 더 재미있어 한다. 그전에는 과묵하고 남자다운 역할이 많이 들어왔지만, 지금은 밝고 재미있는 역할이 많이 온다. "저의 이미지를 바꾼 계기가 된 것 같아요. 고마워요.”
영화연출을 전공하던 시절에는 영화감독이 될 줄 알았고, <얼루어>와 같은 건물에 있는 광고대행사에서 인턴을 할 때는 광고 크레이티브 디렉터가 될 줄 알았고, 열심히 언론 고시를 준비하던 시절에는 방송국 PD가 될 줄 알았다. 배우가 될 줄은 정말 몰랐다. "누구나 배우에 대한 동경은 있지 않나요?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서, 내가 저 배우였으면 어땠을까 하잖아요. 저도 딱 그만큼이었어요.” 알려진 것처럼 그는 모델로 데뷔했다. 거리 캐스팅을 늘 거절했었지만 그때 어떤 느낌이 왔다. 휴학을 하고 모델을 했고 자연스럽게 배우로 이어졌다. "모델은 한번쯤 해볼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죠. 배우 일은 달라요.평생 질리지 않는 일을 찾았다고 생각해요. 어떤 일이든 반복하다 보면 패턴이 생기고 익숙해지는데 연기는 늘 새로울 수밖에 없잖아요.”
이선호의 인상이 흐릿하다면 연극 무대에 선 그를 보면 생각이 달라진다. 연극 <옥탑방 고양이>의 이선호는 우리가 알던 이선호와는 다르다. 유난히 선명하고 충만하다. 뭘 원하는지 몰랐던‘ 파혼남’은 사라지고 평생 함께하고 싶은 ‘동거남’ 이 있다. 보통의 남자가 되어 보통이 아닌 매력을 뿜어낸다. 거의 매일 촬영해오던 시트콤 <볼수록 매력 만점>이 방송 파업으로 잠깐 쉬는 동안 연극 무대는 승승장구 중이다. 잘되는 연극을 찾아보기 힘든 대학로 무대에서, 거의 매회 매진되고 있는 것“. 작년에 했던 <나쁜 자석>은 좀 무거운 주제였는데 지금은 발랄한 로맨틱 코미디예요. 말랑말랑하고 간질간질한 연극이죠.” 비슷한 것 같아도 연극영화과와 영화연출과는 완전히 다르다. 연기에 대한 기본기를 갖추지 못했다면서 연극에 더열심이다“. 연극 무대에 서는 배우들을 두고 연기력이 상승되었다고 하곤 하잖아요. 전 그런 거 바라지 않아요. 연극 한두 편으로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는 걸 아니까요. 중요한 건 마음가짐이고, 계속하다 보면 언젠가 되겠죠. 연극은 계속할 생각이에요. 특히 <클로저>를 꼭 해보고 싶어요.” 처음에는 관객을 전혀 보지 못했다. 연기하기 바빠서, 긴장이 되어서 그럴 여유가 없었다. 요즘에야 관객들 반응을 살필 여유가 생겼다고. "배우로서 제 캐릭터에 소임을 다했다면 그로써 저의 할 일은 다 했다고 생각해요. 지금은 그럴 때니까요. 작품의 중심에 서게 된다면 또 달라지겠죠.”
밖으로 다니면서 에너지가 축적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밖에서 소모하고 안에서 충전하는 사람이다. 혼자 있는 시간을 좋아하고, 일본 만화를 ‘오타쿠’ 처럼 봤다. 친해지는 데 오래 걸리며, 친해지려는 노력도 억지로 못하는 편이다. 그래서 이선호는 지금도 억지로 하는 건 아무것도 없다. 지금 보여줄 수 있는 만큼만, 지금 보여주고 싶은 만큼만, 지금 자신이 좋아하는 만큼만이다. 나머지는 앞으로의 일이다. 시간과 운명에 맡겨버린다. 이선호의 여유는 그런 마음가짐에서 나온다. 시간을 두고 지켜봐야 진면목을 알 수 있는 그는 담백하게 덧붙였다. "연극, 6월 말까지 해요. 보면 연애하고 싶어질 거예요.”
얼이 빠진 듯했던 5월의 날씨가 제정신을 차린 날. 바람과 옷 벗기기 내기라도 하듯 뜨거운 햇살을 쏟아냈지만 정작 안용준은 라쿤 털까지 두른 ‘파카’를 입고, 털모자까지 쓴 채로 나타났다. 의아함은 곧 웃음으로 바뀌었는데, 가까이 다가온 그의 얼굴은 온통 검댕투성이. 이번 역할이 굴뚝 청소부였나, 잠시 헷갈리는 사이 그는 인사만 꾸벅 하고 도망치듯 화장실로 향했다. 말끔한 얼굴로 다시 나타난 그의 눈, 코, 입이 또렷하게 다시 살아나 있었다. 이제야 안용준이다.
“촬영이 너무 늦게 끝나서 씻을 새도 없이 달려왔어요. 기절한 것처럼 잠들었나봐요. 눈뜨니 올림픽대로였어요.” 6월 방송 예정으로 경남 합천에서 촬영이 한창인 드라마 <전우> 이야기다. 9명의 분대원이 겪는 한국전쟁을 그리는 이 드라마는 1970~80년대에 시청률이 50%에 달했던 인기 드라마의 리메이크판으로 무려 80억원의 제작비가 들어간 대작. 최고참은 최수종. 그 뒤로 김뢰하, 정태우, 홍경인 등이 계급별로 줄을 서고 안용준은 막내대원 역을 맡았다. "김일병, 박 일병 이렇게 부르는데 저는 그냥‘ 범우’예요. 굳이 따지면 이등병이지만 막내라서 다들 이름을 불러요. 고아로 태어나 구두를 닦다가, 전쟁에서 공을 세우면 집도 생기고 차도 생긴다는 말에 자원 입대하죠.” 죽을 수도 있는 전쟁. 겁도 없이 다른 사람의 말만 듣고 장군을 꿈꾸며 입대한 범우와 그가 묘하게 겹친다. 데뷔 전 그가 쇼트트랙 국가대표였다는 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쇼트트랙 강국인 우리나라에서는 국가대표만 해도 사실상 국제대회 메달권. 안현수 선수와 함께 태릉선수촌에서 훈련하던 그는 세계 7위를 찍고는 경기복을 벗었다. 부상이 있었던 것도,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정말 하고 싶은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뿐이다. 단순하지만 충분한 이유로 그는 정말 배우가 되었다“. 운동하다가 할 것 없으니까 배우 한다고 생각하는 건 싫어요. 처음 하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즐겨 하는 이야기도 아니에요.”
전쟁 드라마는 촬영 현장도 전쟁 같다. 9명의 분대원과 150명에 달하는 엑스트라는 물론, 단 3명을 빼고 모두 남자인 스태프들이 흙먼지와 진흙탕 속에서 구르고 달린다. '전우애’ 가 나날이 진해진다. "군복이라는 게 참 이상해요. 평상시에는 포스가 넘치는 배우도, 군복을 입으면 그냥 군인이에요. 서울 가면 먹고 싶은 것 세 가지, 아이돌 그룹 인기순위를 이야기하면서 같이 웃고 뒹굴죠. 촬영은 정말 고되지만 분위기는 최고예요!” 그가 겨울 점퍼에 모자까지 쓰고 나타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언제나 춥고 배고픈 군인이기 때문이죠.” 군대 근처에도 못 가본 어린 배우는, 군대 체험이 한창이다“. 군인이 겪는다는 모든 걸 겪고 있어요. 본능적이라는 식탐도요. 배우들끼리 청포도 사탕 한 알을 놓고 싸우기도 하고, 현장에서는 간식도 초코파이만 주거든요.”
한국판 <밴드 오브 브라더스>를 꿈꾸는 드라마 <전우>는 시즌제로 방송될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이등병 범우가 일병이 되고, 상병이 되는 드라마가 펼쳐질지도 모른다. 너무 동안이라서, 스무 살에 데뷔하고도 아역 탤런트가 아니냐는 오해를 듣는 안용준도 그때가 되면 다른 매력을 퐁퐁 뿜어낼 것이다. 연기력과 의지력을 두루 갖춘 그에게 이제 필요한 건, 처음 스포트라이트를 비춰준 <주몽>의 유리왕처럼, 다시 한번 그를 환하게 비춰줄 캐릭터뿐이다. 그것이 <전우>의 범우가 될지 아직 알 수 없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포화 속에서도 살아남아야 한다. 그걸 제일 잘 아는 안용준은 아이스크림 한 통을 싹싹 비운 후, 다시 군용 내의를 입고 네 시간을 달려 합천으로 내려갔다. 내일의 태양이 떠오르면, 또다시 전쟁이 시작되니까.
크로노그래프 시계는 빅토리녹스워치 바이 갤러리어클락(Victorynox Watch by Gallery O’clock). (Hair | 김윤석(Y.S. Kim, 라륀느) Makeup | 김유정(Y.J. Kim, 라륀느) Location | 그랜드 하얏트 서울
천하태평이현진 - 이현진 -
말도 없고, 숫기도 없을 것 같았던 이현진은 너무 솔직해서 사람을 웃게 한다. 이런 식이다. "몸무게가 108kg까지 나간 적도 있어요. 초등학교 때부터 워낙 뚱뚱했어요. 짝이 된 여자애가 짝하기 싫다고 울었을 정도예요.” 그때에 대한 상처로 독하게 마음먹고 살을 뺐다는 말이 이어질 법한데, 이현진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전 괜찮았어요. 스트레스? 안 받았는데요?” 그때 이현진이 싫다고 기어이 짝을 바꿨다는 그 여자아이는 <바람 불어 좋은 날>로 ‘국민 연하남’ 이 된 그를 보며 무슨 생각을 할까. 역시 사람의 앞날은 지켜볼 일이다.
지난 인터뷰를 읽어봐도 그는 유난히 씩씩하고 솔직하다. 조금씩 필터링을 거치기 마련인 연예인들의 말 틈에서 거침없이 느껴질 정도다. "내가 숨겨야 될 부분이 있나? 거짓말을 해야 할 부분이 있나? 생각해본 적이 있었어요. 없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솔직하게 다 이야기하고 있어요. 정말 저는 별로 숨길 게 없어요. 학생 때도 모범생이었어요. 여자들이 뚱뚱한 저를 좋아했을 리도 없잖아요.” 아무것도 숨길 게 없다는 그 말을 증명하듯, 별것도 아니라는 듯 그가 줄줄이 털어놓는 이야기들은 다음과 같다. 고등학교 때 집이 망했고 “(그게 평생 갈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어요. 대학교 때 다시 좋아졌죠”) 버스비조차 없어서 일년 내내 걸어 다녔다 (덕분에 살이 쭉쭉 빠졌죠”)." 중학교 때는 전교에서 놀았지만 고등학교 때는 반에서 45명 중 44등을 했고“(비평준화 지역에서 학교를 다녀서 제일 공부 잘하는 고등학교였다고요!”), 그 충격으로“ 피 터지게” 공부했지만 20등 안에 들 수 없었고“(그래서 공부를 놨죠”), 그래서 공부를 포기하기로 했다가 “(그래도 서울에 있는 학교는 가야겠다고 싶었어요. 수학은 포기하고 나머지 과목을 팠죠”), 결국은 ‘인서울’ 에 성공했다. 이야기를 마친 그는 흡족한 듯 웃으며 말했다“.어떻게 들어간 학교인데요. 꼭 졸업은 할 거예요.”
배우가 된 이현진의 경우도 소년 이현진과 별반 다르지 않다. 사랑보다 일이 먼저라고 말하는 여느 배우들과 달리, 이현진은 사랑이 먼저라고 강력하게 주장한다. 연애에 너무 몰두해 일이 뒷전으로 밀려나기 일쑤다. 새벽 7시에 촬영이 있는데 여자 친구와 새벽 5시까지 논 적도 있다. 좋은데 어떡하냐는 이유다. 대신 타고난 낙천성으로 모든 것이 잘될 거라고 생각한다“. 지금 이 나이 때 누려야 할 사랑이나 감정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매니저들이 잔소리를 많이 해요. 대기실에 선배 연기자도 많은데 졸면 어떡하냐고요. 그런데 다들 졸기도 하잖아요. 다들 너무 걱정이 많아요.” 매니저는 속이 타도 정작 본인은 천하태평이다. "‘어떻게든 되겠지~’ 라고 생각해요.” 어떻게든 될 거라는 게 그의 좌우명이라면 좌우명. 작품을 놓치면, '다음에 또 좋은 게 오겠지~’ 라고 생각하면 그만이다. "저희 사무실 식구들은 제 걱정을 너무 많이 해요. 연기 걱정, 발음 걱정. 저는 그냥 그렇게 말해요. 쟁쟁한 배우도 나처럼 시옷 발음 새지 않냐고. 맞아요 전 시옷 발음이 좀 새요. 중요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반드시 고쳐야 할 것도 아닌 것 같아요.” 대신 자기가 보고 사는 세상이 연기 공부라고 그는 믿는다. 좋아하는 여자에게 최선을 다하는 것도 공부고, 그래서 매사에 진지하게 임한다. 지금까지 사귄 세 명의 여자 친구와 그는 결혼까지 생각했다고, 어서 좋은 아빠가 되고 싶다고 주장한다. 그렇게 그는 충분히 최선을 다하고 있다. 지극히 유쾌한 방식으로 말이다.
“매니저가 저한테 ‘아메리칸 마인드’래요. 저는 쫓기는 게 싫어요. 뒤에서 미는 느낌이 싫어요. 여유롭게 쉬는 걸 좋아하고, 가끔은 축 늘어져 있는 시간도 필요해요. 전 여유로운 배우가 되고 싶어요. 거기다 멋지기까지 한 배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