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세와 섬김 (마르 10, 35-45; 루카 22, 25-27)
20 그때에 제베대오의 두 아들의 어머니가 그 아들들과 함께
예수님께 다가와 엎드려 절하고 무엇인가 청하였다.
21 예수님께서 그 부인에게 “무엇을 원하느냐?” 하고 물으시자,
그 부인이 “스승님의 나라에서 저의 이 두 아들이
하나는 스승님의 오른쪽에, 하나는 왼쪽에 앉을 것이라고 말씀해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22 예수님께서 “너희는 너희가 무엇을 청하는지 알지도 못한다.
내가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 하고 물으셨다.
그들이 “할 수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23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내 잔을 마실 것이다.
그러나 내 오른쪽과 왼 쪽에 앉는 것은 내가 허락할 일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정하신 이들에게 돌아가는 것 이다.”
24 다른 열 제자가 이 말을 듣고 그 두 형제를 불쾌하게 여겼다.
25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가까이 불러 이르셨다.
“너희도 알다시피 다른 민족들의 통치자들은 백성 위에 군림하고,
고관들은 백성에게 세도를 부린다.
26 그러나 너희는 그래서는 안 된다.
너희 가운데에서 높은 사람이 되려는 이는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27 또한 너희 가운데에서 첫째가 되려는 이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한다.
28 사람의 아들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
성찰
삶의 모든 것을 감내하다
예수가 친구들인 제베대오오 두 아들, 야고보와 요한에게
내가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 하고 물을 때
그분은 나의 사제직과 인간으로서 내 삶의 핵심을 건드리는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수년 전 내가 손에 아름다운 황금 성작을 들었을 때
그 질문은 대답하기가 어렵지 않은 것 같았다.
온각 생각과 이상으로 가득 찬 새로 된 신부인 나에게 삶은 온갖 약속으로 풍요롭게 보였다
나는 잔을 너무나 마시고 싶어 했다!
오늘, 정신장애를 지닌 남녀들과 그들의 협조자들이 둘러앉은 낮은 식탁 앞에 앉아서
그들에게 포도주가 담긴 유리잔들을 돌리면서 그 똑같은 질문은 영적인 도전으로 다가온다.
나는, 우리들은 예수가 마셨던 잔을 마실 수 있는가?
나는 수년 전 어느 날 예수의 이 질문을 성찬례 때 읽었던 때를 아직도 기억한다.
그날 아침 8시 30분경, 새벽공동체의 약 20명 공동체 구성원들은 지하경당에 모여 있었다.
갑자기 ‘너는 이 잔을 마실 수 있느냐?’
라는 말들이 사냥꾼의 날카로운 창처럼 내 마음을 꿰뚫었다.
나는 그 순간-영감의 섬광으로- 이 질문을 진지하게 받아들인다는 것은
우리의 삶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것임을 깨달았다.
그것은 굳어진 마음을 부수고 열며
영적인 삶의 여린 부분을 드러내는 힘을 갖고 있는 질문이다.
“당신은 잔을 마실 수 있는가?
그 잔을 남김없이 마시며 비울 수 있는가?
당신은 모든 슬픔과 기쁨을 다 맛볼 수 있는가?
삶이 무엇을 가져오든지 간에 다 받아들이며 살 수 있는가?”
나는 이것이 우리가 직면해야 할 질문들임을 깨닫는다.
그러나 우리는 왜 이 잔을 마셔야 하는가?
그러기엔 너무나 많은 고통,
너무나 많은 불안과 고뇌,
너무나 많은 폭력이 있는데,
왜 이 잔을 마셔야 하는가?
최소한의 고통과 최대한의 즐거움으로 정상적인 삶을 사는 것이 훨씬 더 수월하지 않을까?
그 날 복음구절을 읽은 후,
나는 내 앞의 식탁 위에 놓여 있는 큰 유리잔들 중의 하나를 무의식적으로 움켜쥐고서
주위의 사람들을 보라보았다.
어떤 사람은 거의 걷지도, 말하지도, 듣거나 보지도 못하는 사람들이다
-나는 말했다:
“우리는 우리 손에 삶의 잔을 들 수 있는가?
그 잔을 다른 이들이 볼 수 있도록 들어올리고,
마지막 남은 것까지 다 마실 수 있을까?”
잔을 마신다는 것은 빵을 굽는 것이 빵조각을 떼는 것 보다 훨씬 어렵듯이,
그냥 잔 안에 있는 것을 꿀꺽꿀꺽 마셔버리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것이다.
삶의 잔을 마신다는 것은 잔을 잡고,
들어 올리며 마시는 것 모두를 포함한다.
그것은 인간으로 존재한다는 것 전체를 다 기념하는 것과 같다.
예수가 했던 것처럼 우리는 우리의 삶을 잡고, 들어 올리며 마실 수 있겠는가?
내 주변에 앉아 있는 몇몇 사람들은 동의한다는 표시를 한다.
그러나 내 안에는 진실에 대한 깊은 깨우침이 일어났다.
예수의 질문은
나의 삶과 내 주변 사람들의 삶에 관하여 말할 수 있는 새로운 언어를 주었다.
그 아침의 간결하고도 단순한 성찬례 이후 오랫 동안,
나는 예수의 다음 질문을 계속 듣고 있다:
“내가 마시려고 하는 잔을 너도 마실 수 있느냐?”
그 질문이 내 안에 침몰하도록 그냥 놔두는 것은 나를 편안치 않게 만든다.
오히려 나는 그 질문과 함께
살기 시작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다 (‘이 잔을 마실 수 있는가?’ 에서).
마태 20, 23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내 잔을 마실 것이다.
그러나 내 오른쪽과 왼쪽에 앉는 것은 내가 허락할 일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정하신 이들에게 돌아가는 것이다.”
새김
이제 질문은 이렇다:
우리는 어떻게 구원의 잔을 마실 수 있는가?
우리는 잔을 천천히 마셔야 한다
- 마지막 바닥까지 매 번 맛보면서 모두 마셔야 한다.
완전한 삶을 사는 것은
잔이 비워질 때까지 마시는 것이며,
하느님이 그 잔을 영원한 생명으로 가득 채울 것이라고 믿는 것이다
(‘이 잔을 마실 수 있는가?’ 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