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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사)창작수필문인회 원문보기 글쓴이: 봄비(권예자)
축하합니다
이찬웅 첫 수필집
『나는 학생이다』
출간을 축하드립니다.
문학평론가 김종완 선생님께서는 이 수필집에 대하여
[레토릭의 부정, 사실성의 출발]이라는 작가론에서
많은 칭찬의 말씀을 해주셨는데, 그 일부를 소개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그의 원고를 다시 읽으면서 참 좋다, 를 연발했다. 난 가끔 말을 격하게 하는 버릇이 있어서 최상급의 표현 같은 건 피하려고 노력하지만, 이 책이 한국문예수필이 지금까지 성취한 모든걸 다 가췄다는 생각을 떨칠수가 없다. 내 눈엔 그 어떤 수필집보다 더 좋거나 그 어떤 수필집만큼 좋았다. 그의 원고를 읽으며 특히 신영복 수필을 읽는 것 같다는 느낌이 여러 번 들었다."
이찬웅 작가는
수필 「송편을 빚으며」로 2005년 창작수필에서 등단한 후
많은 창작활동을 하여온 실력 있는 작가임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좋은 평을 듣는 것은 아무에게나 있는 일이 아니므로
저는 그의 수필집을 받자 단숨에 읽고,
수필집 『나는 학생이다』의 소개와 저의 느낌을 올립니다.
먼저 달콤한 카푸치노 한 잔 드시지요.
표제 『나는 학생이다』에서 보듯이 그는 계속 움직이고 느끼며 배운다. 요즘은 '아름다운 서당'에서 가르치는 일도 한다고 들었다. 그래서 늘 바쁘다. 월정사로 서해안으로 제주도 올레에서 지리산, 백두산까지 못 가는 곳이 없고 안 하는 일도 없다. 그러다 보니 수필도 일기형이거나 기행수필이 반을 차지하는 편이다.
나는 원래 기행수필은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그의 글은 골라가며 읽는다. 대체로 기행수필이 딱딱하고 인터넷에서 발췌한 것으로 메꾸어지는 경우가 많은데, 그의 글은 그가 지나는 자연과 사람 사이의 소통에서 나온다. 말랑말랑하기가 금방 만든 인절미 같다. 보드랍고 쫄깃한데다 충분한 영양을 주기 때문이다. 게다가 깨알같은 웃음까지 양념으로 곁들여 주니 어찌 안 그렇겠는가.
집에 돌아가면 월정사가 많이 생각날 것이다.<...> 장맛비에 흠뻑 젖은 산사를 조용히 흔들어 깨우던 소리들이 그리워질 것이다. 이른 새벽, 도량석을 도는 목탁 소리. 은은한 여운이 일품인 대종 소리. 날렵한 여인의 뒤태를 연상시키는 스님이 치던 휘몰이 장단의 법고 소리. 판소리 창법으로 멋지게 음률을 넣던 노스님의 원각경 독경 소리. “쾌활, 쾌활이로다”하는 무상계無常戒가 정말 쾌활하게 들리던 스님의 독경 소리. 법륜전 마루에서 듣던 낙수소리. 그것들이 한동안 나를 붙잡고 놔주지 않을 것 같다. 「마음여행 -23일간의 출가일기」
23일간의 월정사 단기 출가 중 졸업을 3일 남긴 날의 일기다. 소리 이야기를 한 것인데, 이상하게 음률이 붙어서 노래로 흥얼거리고 싶어진다.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첫날엔
"삼보일배를 마치고 대법당 앞에서 정렬해 있는데 삭발한 행자들의 머리 위로 빗방울이 튄다. 빗방울이 마당가 절구통에서 튀어 오르듯 행자들의 머리통에서 튄다. 여자 행자들의 하얀 머리통에서 튀는 빗방울이 갑자기 서럽다"며 슬쩍 웃음을 던졌던 그가 하루하루 지나면서 생각이 깊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렇게 단아한 일기가 세상 어디에 있을까?
다른 민족과의 국경은 이리도 평온한데, 어찌하여 우리끼리는 국경에서 서로 총구를 겨누고 있는가? 비무장 지대라는 공간을 만들어 놓고, 그것도 모자라서 철조망을 치고 지뢰까지 깔아 놓는 우리는 진정으로 같은 민족인가? <...>
봉우리 하나를 넘어서자, 여태까지 수줍은 듯 드문드문 보이던 들꽃들이 무리를 지어 지천으로 널려있다. 오른쪽에는 백두산 天池가 내려다보이고 왼쪽에는 온 天地가 들꽃인 그런 곳이 여기 말고 또 어디 있으랴. 형형색색의 온갖 꽃들이 질펀하게 깔렸으니, 어디에 눈길을 주어야 할지 모를 지경이었다. 백두산 天池의 신비로움이 시들해질 정도로 들꽃 초원은 황홀하였다.「백두산 들곷」
백두산 들꽃을 보면서도 중국과 북한의 국경이 평온 한 것과 남북의 관계를 비교해보는 마음이 아프다. 그의 글을 따라 꽃구경을 하면서 나도 같이 아팠다. 그가 글의 손을 잡으라고 내미는 것도 아닌데, 독자를 이리저리 끌고 다닌다.
원래는 정수지(淨水池)였던 녹색 기둥의 정원은, 상판 구조물을 철거하여 천정을 받치고 있던 30개의 기둥들이 마치 이집트의 오벨리스크처럼 광장에 우뚝우뚝 솟아 있다. 바닥에는 조약돌이 깔려 있고, 콘크리트 기둥에는 담쟁이가 감아 올라가고 있다. 헤르메스1)의 황금 지팡이를 휘감고 있는 두 마리의 뱀처럼. 그는 나그네의 수호신이었으니, 저 기둥들은 이 정원이 나그네를 위한 사색과 휴식의 공간이라는 것을 암시하는 것일까. 「선유도」
이 글을 처음 읽고 나서 지방에 사는 나는 선유도가 궁금해서 일부러 서울에 가서 선유도를 찾아갔었다. 그때 이 수필을 출력해서 들고 가서는 저 녹색 기둥으로 내려가는 계단에 앉아서 읽었다. 선유교 위로 올라온 미루나무도 보았다. 그리고 생각했었다. 대전에서 서울까지 사람을 끌어올리다니 수필의 힘도 참 대단하다고.
불빛 한 점 없는 대자연 속에서, 달빛이 교교한데 바람조차 숨을 죽이고 별들은 흐드러지게 총총하였습니다. 인기척에 놀란 산짐승들이 내는 풀잎 스치는 소리가 선녀들의 옷자락 스치는 소리처럼 감미롭게 들렸습니다. 얼마나 그러고 있었을까, 어슴푸레 먼동이 트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또 한 번 기막히게 황홀한 광경을 보게 되었습니다. 발아래 저만치에 구름이 평원처럼 끝없이 펼쳐져 있는데, 그 끝 경계선에서 용암이 흐르듯 시뻘건 띠가 옆으로 길게 뻗어 나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더니 예상치 못한 방향에서 한줄기 강렬한 빛이 쏟아지면서 태양이 머리를 내밀었습니다. 지리산 제1경으로 천왕봉 해돋이天王日出를 꼽는데, 그날의 장엄한 치밭목 해돋이는 분명 그에 못지않았을 것입니다. 「지리산 종주」
나는 아직 저런 일출을 본 적이 없다. 그런데 꼭 내가 눈으로 보는 듯 흥분된다.
이 비슷한 표현을 소설 '태백산맥'에서 본 적이 있다. 아마도 작중 인물 중 하나가 노고단에서 본 느낌을 표현한 부분이었던 것 같은데, 그때도 내가 그 곁에 있는 듯 흥분되었었는데 이 글에서도 그런 것을 느꼈다.
길을 걷다 쉬고 싶을 때는 길가에 있는 산소가 제일 좋다. 그래서 산소만 보면 쉬었다 가고 싶어진다. 양지 바른 곳인데다 대개 그 옆에는 나무 그늘이 있고 땅에는 잘 손질된 잔디가 깔려있다. 배낭을 내려놓고 양말까지 벗고 봉분에 허리를 기대면 스르르 눈꺼풀이 내려앉는다.< ...>
휘적휘적. 성큼성큼. 느릿느릿. 어그적어그적. 혼자이니 내 맘대로 걷는다. 왼편에 끼고 걷는 서해가 바닥까지 들여다보인다. 서해가 이리 맑을 수도 있구나. 서해는 항상 개펄에 적신 탁한 바다라는 선입관을 여기서 버려야했다.<...>
동해가 맑은 소주라면 서해는 탁한 막걸리다. 탁한 것과 더러운 것은 다르다. 차디찬 이성의 맑은 물보다는 시시비비를 넘어서 따뜻한 정으로 모두를 품에 안은 순한 막걸리가 서해라는 생각을 문득 했다. 「서해안을 따라서」
매력적인 문장이 여러 곳 보인다. 여행기로선 정말 재미있어 길어도 긴 줄을 모르고 읽었다. 그런데 일기 중에 더러 보이는 아내의 모습이 아름답다.
저 사진은 목포 출생지에서 출발하여 강화도 동막해변까지 한 달여의 서해안 도보여행을 마치고, 피켓을 들고 마중 나온 아내와 찍은 기념사진이다. 수필집을 읽으며 종종 느끼지만 참으로 바람직한 부부란 생각을 한다. 특별히 아내를 자랑한다거나 하는 말은 없지만, 남편이 하는 일마다 적극 이해하고 지원하는 보일 듯 보이지 않는 그녀의 모습이 아름답다. 서해안 종주 때도 남편이 걱정된 그녀는 여러 번 내려가 그에게 힘을 주었던 것으로 안다.
그럼, 나는 뭐지? 결국 아무것도 아니라는 말인가. 딴에는 열심히 산다고 살아왔는데 그 삶이 아무것도 아니었단 말인가. 그저 하루하루를 연명해온 것에 지나지 않았단 말인가. 60년을 살아왔건만 나는 아무것도 되지 못했다. <...>
‘현고학생부군신위顯考學生府君神位’<...> 조상님들께선 수백 년 전에 삶의 궁극을 배움에 뒀던 것이다. 죽음조차도 삶의 완성으로 보지 않고 배움의 과정이라 생각한 것이다. 세상일을 크게 도모하지도 않고 출세하지도 않은 채 생을 마감하는 자에게 마지막으로 바친 존칭이 학생이었다니 이 얼마나 아름답고 지혜로운 사상인가. 「나는 학생이다」
MBC 주말 프로그램 '나는 가수다'를 보면서 생각한다. 나는 은행원인가? 나는 작가인가? 나는 백수인가? 자유인은 어떨까? 이런 물음 끝에 그는 '나는 학생이다'는 단정에 이른다. 가장 가까이 있으면서 알 수 없는 나 자신의 정체. 나도 궁금하다. 내가 무엇인지. 그런데 그는 참 멋진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그 결론이 첫 수필집의 표제가 되기에 이른다. 세상을 살면서 그런 마음가짐으로 산다면 두려울 것이 무엇인가? 배우고 또 배우고 배운 것을 나누면서 사는 것보다 더 좋은 삶은 없을 것이다.
지금처럼 비가 내리는 날에는, 언뜻 떠오르는 그림이 하나 있다. 조선 말기쯤 될까. 남산골 어느 마을에 단아한 초가집 한 채. 허리 높이께 탱자나무 울타리 위로 마루가 보이고, 활짝 열린 창문으로 글을 읽는 한 선비의 모습이 보인다. 정갈한 마당 한쪽에 있는 장독대와 꽃밭 위로 보슬비가 내린다. 선비는 가끔 고개를 들어 사립문을 쳐다보며 생각에 잠기다가 가볍게 한숨을 짓는다. 「비 오는 날에」
비가 내리는 밤, 빗소리에 잠에서 깨어 쓴 글이다. "가만히 오는 비가 낙수 져서 소리하니/ ...//한 우리가 잘 아는 육당 최남선 시조의 시적 배경을 상상하는 대목이다. 상상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태곳적 인간이 처음으로 사랑을 나누었던 그날도 장대 같은 비가 내려, 먹을 것을 구하러 가지 못하고 동굴에 있다가 순수한 본능의 욕구로 사랑을 나누었으리라 한다. 듣고보니 꼭 그랬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따지고 보면 새로운 문화는 상상력에 의해 창조되어 이루어지는 것이다. 작가가 쓴 이 글은 과거를 상상하지만 다른 글에선 사물을 재해석한 상상도 웃음과 긍정을 자아낸다.
향나무를 싼 종이에서는 향내가 나고 생선을 싼 종이에서는 비린내가 나듯, 신발에도 그 주인이 살아온 냄새가 진하게 배어 있기 마련이다. 우리가 가진 물건 중에서 신발만큼 그 사람에 대하여 많은 것을 설명해주는 것은 없지 싶다. 남자인지 여자인지, 아이인지 어른인지,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어떤 환경에서 살고 있는지. 신발을 보면 그 사람의 삶이 보인다.
신발은 발을 보호하는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존재의 영혼을 담는 그릇이다. 고흐의 <구두>라는 그림에는, 어두운 노란색 바탕에 군화처럼 생긴 낡은 구두 한 켤레가 그려져 있다. <...>
박목월 시인은 현관에 벗어놓은 식구들의 신발을 보고, ‘굴욕과 굶주림과 추운 길을 걸어/ 내가 왔다./ 아버지가 왔다/ 아니 十九文半의 신발이 왔다.’고 노래했다. 그는 신발에서 자화상을 발견했다. 「신발」
그는 일반적인 신발 이야기를 하다가 자기는 어떤 신발을 신는 것이 좋을까를 생각한다. 그러다 '까만 고무에 밤색 털을 두르고 목이 짧은 털신. 안쪽 바닥에는 색 바랜 두툼한 진노랑 천이 깔려있는 신발'을 점찍는다. 지나가던 나그네가 섬돌 위에 놓인 털신을 보고 잠시 쉬어 가기를 청하면, 시원한 막걸리를 한 주전자를 내오고 싶어서란다.
그는 참 여러 가지 모습을 보여준다. 행사에서 사회를 볼 때는 깔끔한 미남이고, 의식을 쫓아 여행할 때는 영락없는 떠돌이 노숙자고, 이런 때는 현세를 초월한 노스님 같다. 그런가 하면 자신이 읽고 감동 받은 책을 사서, 가까운 문우에게 보낼 때 보면 정 깊은 벗이기도 하다.
밤사이 자배기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설마 금붕어 네 마리가 은붕어 한 마리를 집단 폭행하지는 않았을 텐데. 외로움은 물고기에게도 견디기 힘든 지독한 고통이었을까? 물고기에게 무슨 감수성이 있다고, 설마 외로워서 죽었을라고. 하지만, 하루 전에라도 은붕어를 더 사다 넣어 주었더라면 녀석이 죽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죄책감도 들었다. <...>
결국 금붕어 다섯 마리가 우리 집에 들어온 지 20여 일 만에 다 죽고 말았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정성을 꽤 들였던 터라 아쉽고 허전했다. 「금붕어의 죽음」
금붕어의 죽음에 대하여, 가게주인은 애매한 표정으로 얼버무렸고, 부레옥잠에게 의혹의 눈초리를 보내 보았지만, 부레옥잠과 금붕어는 궁합이 잘 맞는다고 가게주인이 변호했다. 술좌석에 옆자리에 있던 친구는 자배기가 의심쩍다고 했다. 함께 글공부하는 문우는 바이러스에 감염된 결과일 것이라고 했다. 암튼 그는 부레옥잠이 담긴 그릇에 넣은 금붕어가 죽은 원인을 결국 알아내지 못했다. 원인을 알기 위해 다시 금붕어를 사오려다 마음을 접는다.
"나의 욕심이 저들을 또 죽이게 될 것이다. 금붕어가 제 앞날을 안다면, 저를 선택한 나를 얼마나 원망할 것인가." 하며.
이렇게 그는 늘 어느 선에서 멈추고 자제할 줄 안다. 글에서도 추가할 말과 접어야 할 것을 잘 조율함으로 어색한 흥분을 삽입하지 않아 독자가 편안하다.
그것은 풍란이었다. 문외한이 보기에도 한 눈에 반할만큼 맵시 있고 싱그러웠다. 잎에는 윤기가 자르르 흐르고, 밖으로 노출된 뿌리는 튼실하였다. 세 동의 꽃대가 올라와 있었는데, 그중 하나에는 나리꽃 꽃술처럼 날렵하고 가녀린 하얀 꽃이 네 송이 피어있고, 나머지 두 꽃대에는 각기 여섯 개의 꽃망울이 녹두처럼 맺혀있었다. 코끝에 감도는 향기는 맑고 달콤하였다.<...>
술에 취하고 난향에 취한다. 모습은 청초하고 고아(高雅)한데, 어찌하여 향기는 이렇게 부드럽고 뇌쇄적인가. 진하되 천하지 아니하다. 마법의 램프에서 거인의 모습이 연기처럼 솟아 나오듯, 난향에서 여인의 고운 자태가 사르르 피어오른다. 어슴푸레한 달빛 아래서, 사내는 눈으로 묻고 여인은 향으로 답한다. <...> 「난향에 취하다」
늦은 밤 아파트 이웃이 향을 즐겨보라면서 소엽풍란을 가져왔다. 위에 사진이 그것이다. 그는 난의 향기에 취해 소통하다가 신라 금관의 모습을 연상한다. 뜻밖의 연상이라 좀 놀랐다. 어떻게 저기서 금관을 떠올렸는지 현실에 안주한 마음에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다른 글도 그렇지만 이 수필의 표현이 정말 아름답다. 말미에 그는 "난향(蘭香)의 선물에 문향(文香)으로 답하는 것이 어울릴 것 같아서 이 글을 썼다.' 고 하다가 '문향이라니, 그게 어디 가당키나 한 일인가' 하면서 슬쩍 발을 뺀다. 하지만 나는 말하고 싶다. 이것이 바로 수필의 향기라고 ….
그러고 보니 이 수필집에서 향기가 난다.
글의 향기, 사람의 향기, 배움의 향기, 표현의 향기 등등. 이 많은 향기를 잘 받아들일 마음의 공간이 내게 있기나 한지 모르지만, 담을 수 있는 한 받아 간직하고 싶다.
이 꽃은 작가가 백두산에서 찍은 들꽃입니다.
들꽃의 향기와 선비의 향기, 집시의 향기가 어우러진 수필집
『나는 학생이다』의 출간을 다시 축하합니다.
짧은 소개 글을 쓴다는 것이 좀 길어졌네요.
누이인 저보다 수필을 월등하게 잘 쓰는 작가를
좋아 해야 할지,
좋아하는 척하면서 속으로 질투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여러 독자께서 읽어 보시고 조언을 주십시오.
작가도 독자도 이 책으로 많이 행복하시길 바라면서.
2013.3월
봄비, 권예자.
첫댓글 봄비 누님, 과분한 말씀에 고맙고 황송하고 몸둘바를 모르겠지만, 기쁜 마음으로 넙죽 엎드려 덥석 받습니다. 사진을 고르고 글을 쓰시느라 얼마나 힘드셨어요. 고맙습니다. 우리집 카페로 담아가겠습니다.
어머! 찬웅님 첫수필집 출간 축하합니다. 아직 안잤나 보네요.
혹시 누가 소엽풍란 들고 초인종 누를까봐?
아니면 밤에 내리는 봄비 소리 들으려구? ㅎㅎㅎ~
그런데 요즘 제 사진 고르는 능력이 좀 달려서 아쉬워요.
더 좋은 사진도 많았던 기억이 나는데...
<나는 학생이다>를 받고 얼마를 읽다가 가만히 가슴에 안아보았습니다. 글보다 작가의 고행길을 쓰다듬어주고 픈 마음으로 말입니다. 철저하게 현실에 몸으로 마음을 적셔가는 작가의 아름다운 삶이 내 가슴까지 촉촉히 적셔주고 있습니다. 삶의 고통보다 차가움보다 더 견디기 힘든, 나이들수록 더해가는 슬픔으로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내 어디에도 담고 싶지 않은 어떤 사람과는 퍽 대조적인 글 속에 두 발을 담그고 오래오래 서 있어봅니다. 오래 서있자니 무릎도 허리도 저리지만 그대로 버텨봅니다. 앉으면 무너질 것 같아서... . 가슴 적시는 멋진 수필집 출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제가 너무 수행자로 보이는 것이 조금 부담이 되는군요. 실제 삶은 그러지를 못해서요.
남루한 발자국이라 했습니까? 그 찬란한 남루 앞에 부끄러운 나도 용기를 내야하겠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찬란한 남루 !!! 그런 멋진 표현도 있군요. 감사합니다.
《나는 학생이다》 출간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책을 잡는 순간부터 놓는 순간까지 간접 경험이 힐링되어 많이 행복했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권 선생님도요.
부족하지만 읽으시는 동안 잠시나마 편안해지셨으면 좋겠습니다.
한별님이 찬웅님 글에 감격했다는 말이 대전까지 전해져서 저도 기뻤습니다.
수고란 말은 즐거움으로 바꿔주소서. ㅎㅎ~
오래 전부터 멋있고 정다운줄 알았지만 갈수록 깊어지는 글과 모습에 옛금요반으로 더욱 축하드립니다. 출간을 축하드립니다. 가까이서 차한잔 해야겠습니다.^^
남 선생님, 감사합니다.
첫 수필집 탄생을 축하드립니다. 두툼한 책, 고생 많으셨습니다. 친정집에는 언제 들르시나요?!
마야님이 부르시면 언제라도 가지요. ㅎ
책과 함께 찬웅님의 마음도 받았습니다. 읽느라 댓글도 늦었네요. 여하튼 축하합니다.
언젠가는 나도 책을 한권쯤 내려고 하는데 점점 자신을 잃어갑니다.
기축보 권 2의2, 626쪽에 제가 나옵니다.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