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은 언제인가
할머니가 어린 손자에게 옛날 얘기를 들려 줄 때면, 으레 첫마디는 ‘옛날 옛적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에’로 시작된다. 일상 대화에서, 현재로서는 있을 수 없는 상황을 가리킬 때도 이 말을 쓴다. 어떻든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은 아주 먼 옛날을 가리킨다.
그러면 먼 옛적을 가리키는 데 왜 이 말이 쓰이게 되었을까?
담배는 임란 직후인 17세기 초에 일본으로부터 들어왔다. 담배란 이름도 일본어의 타바코(tabako, タバコ)에서 왔다. 이 말이 담바고, 담바귀로 쓰이다가 후대로 내려오면서 담>담배로 변했다.
남쪽에서 들어왔다 하여 남초(南草)라고도 하고, 신령스러운 풀이라 하여 남령초(南靈草)라고도 불렀다. 그래서 담배가 처음 들어왔을 때는 영험한 약초로 인식되기도 하였다.
정조는 일성록(日省錄)에서, 담배가 사람에게 유익한 점은 더위는 씻어주고 추위는 막아 주며, 음식의 소화를 돕고 잠을 잘 오게 하며, 글을 지을 때나 대화를 나눌 때 그리고 명상할 때도 모두 유익하다고 하였다. 성호 이익도 그의 성호사설(星湖僿說)에서, 담배는 가래가 목구멍에 붙어서 뱉어도 나오지 않을 때, 비위가 거슬려 구역질이 날 때, 먹은 음식이 소화가 안 돼 누울 수 없을 때, 한겨울에 찬 기운을 막는데 담배를 피우면 좋다고 하였다.
그래서 담배가 처음 들어왔을 때는 기이한 약초로 인식되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뭇사람들의 기호품으로 널리 퍼졌다. 신분이나 나이에 따른 제약도 전혀 없었다. 오늘날처럼 담배에 대한 예절이나 법도도 없었다. 신하들이 임금 앞에서도 담배를 피웠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그런데 조선 후기로 내려오면서 양반들은 점차 담배에 대한 규제를 가하기 시작하였다. 이것은 수요가 많아지면서 담배가 귀해졌기 때문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담배 한 근이 은 한 냥에 거래되기도 했다는 기록도 있다. 18세기 말 유득공이 쓴 경도잡지(京都雜誌)에는, 비천한 자는 높은 분 앞에서 담배를 피우지 못하며, 지체 높은 관리가 지나갈 때 담배를 피우는 자는 벌을 준다고 적혀 있다.
이와 같이 담배가 양반들의 전유물로 바뀐 연유로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이란 말이 생겨났다는 설이 있다. 즉 연소자와 부녀자 그리고 하층민들이 점차 담배를 피울 수 없게 되자, 처음 들어왔을 때는 마음대로 피울 수 있었던 담배를 피울 수 없게 되어, 그 옛날을 그리워해서 그런 말을 쓰게 되었다는 것이다. 옛날에는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아무나, 심지어 호랑이까지도 피울 수 있던 담배였는데, 지금은 피울 수 없으니 그 옛날이 그리워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그때를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이라 표현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필자가 생각하기로 이 말은 민간 신앙과 관련해서 생겨난 것이 아닌가 한다. 호랑이는 예로부터 산신령으로 받들어 온 동물이다. 전국에 흩어져 있는 산신당이나 사찰의 산신각에 호랑이가 모셔져 있는 것은 그 때문이다. 호랑이는 단군신화에 등장하리만큼 우리 민족의 첫째가는 토템이다. 그렇게 숭앙되는 신령에게 귀한 담배를 바치는 것은 당연하다. 민화에 담뱃대를 물고 있는 호랑이가 많은 것이 그러한 증좌다. 담배의 원산지인 아메리카 인디언들도 그들의 토템에게 담배를 바친다고 한다. 이와 같이 담배는 영초(靈草)로, 약초로 인식되었을 뿐만 아니라 귀하게 취급되는 물품이었으니 이것을 산신령에게 바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연유에서 생긴 이 말이 시대를 내려오면서 그 연원이 잊히게 되자, 사람들은 민간 습속이나 민화를 보고 옛날에는 호랑이도 담배를 피우던 시절이 있었나 보다고 생각하기에 이르게 되고, 이에 따라 아득한 옛날이란 의미를 띠게 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후대로 더 내려오면서 이 말의 유래가 묻히자, 사람들은 거꾸로 그 말에 붙일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내게 되었다. 실제로 호랑이가 담배를 피우게 된 배경의 이야기를 만들어 낸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의 배경 설화는 두 가지가 전한다.
그 하나는 술에 취한 사람과 관련된 이야기다.
“어떤 사람이 술에 잔뜩 취하여 길가에 자빠져 자고 있었다. 그때 호랑이가 와서 잡아먹으려고 하니, 술 냄새가 너무 지독하여 잠시 머뭇거리고 있었다. 그때 이 사람이 잠깐 눈을 떠 보니 호랑이가 자기를 내려다보고 있으므로, 엉겁결에 자기가 가지고 있던 담뱃대를 호랑이 목구멍에 세게 찔러 넣었다. 그 아픔에 놀란 호랑이는 담뱃대를 입에 꽂은 채로 달아나, 그 후 늘 담뱃대를 물고 다녔다.”
또 다른 이야기는 정생(鄭生)과 추생(秋生)이라는 두 선비와 관련된 이야기다.
“정생과 추생은 동학지간(同學之間)인데 모두 노모를 모시고 살았다. 정생의 어머니가 병이 들어 오래 낫지 않았는데, 도사가 와서 이르기를 개 100마리를 100일 동안 복용시키면 낫겠다고 하였다. 정생은 도사로부터 개를 잘 잡기 위하여 호랑이로 변신할 수 있는 부적을 함께 받았다.
그런데 호랑이로 변신할 때는 많은 고통을 받았는데, 이를 지켜보던 아내가 보다 못해 그 부적을 불살라 버려, 정생은 다시 인간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영영 호랑이가 되어 사람을 잡아먹기 시작하였고, 어느 날 험한 산 고개에서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마침 한 선비가 지나가므로 잡아먹으려고 보니, 이는 다름 아닌 옛 친구 추생이었다. 두 사람은 서로 부둥켜안고 울다가, 정생은 추생으로부터 담배 한 대를 얻어 피우며, 그대는 청운에 올라 떠나고 나는 청산을 바라보며 떠난다는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다.”
사람들은 원래 이야기 만들기를 좋아한다. 본래의 유래담이 잊히자 호랑이가 담배를 피우게 된 유래담을, 위와 같은 이야기들로 만들어 붙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