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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천 신답리 고분(경기 기념물 210호) written by 한국의 능원묘 |
▲ 연천 신답리 고분 전경 |
신답리고분1은 아우라지의 북안인 신답리의 남동단부에 위치하며, 임진강 단구상의 비교적 넓은 평지에 입지하고 있다. 현재 밭으로 이용(최근 주변 정비 완료)되고 있으며, 완만한 경사면에 봉토분(封土墳) 2기가 나란히 자리하고 있다. |
▲ 신답리 고분 주변은 최근에 정비되었으며, 답사 당일(2012.08.12)도 벌초가 진행 중이었습니다. |
북동쪽에 있는 것을 신답리 고분1, 남서쪽에 있는 것을 신답리고분2라 한다. 신답리고분1은 봉토에 여러 종류의 잡목이 우거져 있었으며, 도굴·경작 등으로 교란이 심한 상태였다. 봉토는 평면형태가 원형이고, 저경이 약 19m이다. |
▲ 봉분은 좌우로 2기가 있습니다. |
현재 봉토의 높이는 2.4m이나 본래 약 4m 안팎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현실은 지상식으로 주축방향이 북서-남동이고 우벽이 연장되어 현문부(80×80×100㎝)와 연도(310×100×90~130㎝)·묘도(550×50×100㎝)로 이어진다. 크기는 205×170㎝이고, 최대 높이는 200㎝이다. |
▲ 신답리 고분2는 약 9m 정도 서쪽으로 떨어진 지점에 위치하고 있으나 봉토는 남아있지 않다고... |
▲ 신답리 고분 입구에서 좌측으로 한 바퀴 돌아 본 모습입니다. ▼ | |
석실은 판상석재의 바닥시설 위에 현무암재 판상석과 할석을 5~7단 정도 쌓아 네벽을 쌓았는데, 2단부터 조금씩 내어 쌓았다. 현실 천장은 남아 있는 천장석으로 보아 매角藻井式으로 생각된다. |
▲ 2003년 신답리 고분 발굴 전경 - 문화재청 사진 |
유물은 정위치에서 확인된 것은 한 점도 없으나, 교란층 여기저기에서 인골과 병형토기·회청색 경질토기편 등이 출토되었다. 신답리고분1은 구조와 축조방법으로 보아 고구려 석실분과 궤를 같이 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출토된 유물이 소량이어서 석실분의 축조시기와 성격을 파악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따르는 것으로 판단된다. - 선사문화관리사업소 홈페이지 내용 발췌 - |
신답리 고분 출토 토기 ▶ |
연천서 "국적"불명 돌방무덤 발굴
연합뉴스 입력 2001.12.10 10:52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한탄강변 현무암 구릉지대에 나란히 조성된 경기 연천군 전곡읍 신답리 소재 고대 무덤 2기는 발굴 결과 돌로 쌓은 무덤방(현실.玄室)을 흙으로 덮은 돌방흙무덤(석실봉토분.石室封土墳)임이 밝혀졌다. 이들 무덤은 1991년 국립문화재연구소가 실시한 군사보호구역안 문화재 지표조사 때 "말각(抹角) 조정 천장구조를 한 고구려 석실분"으로 그 존재가 알려졌으나무덤 구조가 어떤지 자세히 알 수는 없었다. 이에 한국토지박물관(관장 김영웅)은 속칭 아우라지마을에 자리한 이들 고분을정비복원할 목적으로 지난 9월 17일부터 발굴조사한 결과 모두 돌방흙무덤이며 봉토모양은 원형임을 확인했다고 10일 말했다. 하지만 두 고분은 극심한 도굴 피해를 본 데다, 얼마 전까지 군대 참호로 사용되는 바람에 축조 주체 및 그 시기를 판별할 수 있는 출토유물은 거의 없었다. 다만 이런 구조는 대동강 유역 고구려 무덤과 닮아 있어 발굴단은 일단 "고구려계 무덤"이라는 어정쩡한 견해를 제시하는데 그쳤다. 출토 유물로는 인골 조각 몇 점과 함께 회흑색 연질 토기 몸통 조각과 회색 경질 토기 몇 조각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이들 토기 또한 워낙 출토량이 빈약한 데다 비슷한 유물을 찾을 수 없어발굴단뿐 아니라 현장을 둘러본 전문가들도 명확한 답을 제시하지 못했다. 고구려 및 백제 고고학 전공인 최종택 고려대 교수는 "일부 유물은 고구려적인요소가 느껴지지만 뭐라 확정적으로 말할 근거가 없다"고 말했다. 조사 결과 봉토 지름 21-22m에 달하는 1호분에서는 바닥과 벽면 및 천장을 돌로쌓아 올린 무덤방과 이곳으로 통하는 무덤길이 확인됐다. 봉토 추정 높이는 8m. 무덤방(길이 205㎝, 너비 170㎝, 높이 183㎝)은 바닥에 편평한 판석 1장을 중심으로 작은 돌을 깔았고, 각 벽면 역시 돌로 쌓아 올라갔으며, 천장은 넙적한 돌 4장을 덮은 것으로 밝혀졌다. 벽면 틈은 석회를 발랐고 천장 꼭대기 네 모서리는 직각이 아니라 이른바 말각형(抹角形)이라 해서 각도를 죽이고 있었다. 여기서 서쪽으로 약 8m 떨어진 곳에 있는 2호분 또한 벽면 틈에 석회가 확인되지 않은 것을 제외하고는 1호분과 대체로 비슷한 구조다. 이로 보아 이들 무덤은 무령왕릉이 자리한 공주 송산리 1-4호분과 비슷한 측면도 있어 이에 대한 비교검토가 필요하다. [민족의 혼,고구려는 지금 ⑶] 연천 신답리 고분…고분 석재가 축대・정원석 둔갑국민일보 입력 2005.01.18 05:33
고구려가 한강 이남을 지배했던 5〜6 세기 무렵 고분이 경기 연천과 강원 춘천 지역에서 확인되고 있다. 한강 유역 장악후 교통로를 중심으로 형성된 성곽을 방위하던 지휘관 등 고구려 지배층의 무덤으로 추정된다. 고구려 고분은 초기 기단 없는 돌무지 무덤에서 점차 기단이 있는 무덤으로 바뀌고 나중에는 계단식으로 발전한다.
◇ 고분 석재가 담장 축대로=연천의 영평천이 한탄강으로 합류하는 지점에 위치한 신답리 고분군은 2001년 발굴조사에서 고구려 고분으로 확인됐지만 안내표지 하나 없었다. 고분에 가기 위해 한 매운탕집 앞을 지나던중 담장의 석재가 눈길을 끌었다. 현무암으로 된 석재는 첫눈에도 다른 돌과 달리 네모 반듯하게 치석된 흔적이 확인됐다.
고분 둘레에는 구겨진 막걸리병과 소주병,농약병 따위가 마구 굴러다녔다. 발굴 당시 복원을 위해 쌓아뒀던 석재는 허물어진지 오래됐는지 잡초더미에 덮혀 있었다. 1호분 앞에는 동네 주민이 쓴 묘가 있고 고분 석재 10여개가 묘지 축대로 사용되고 있었다. ‘관계자외 출입금지’라는 발굴 당시 표지판이 안내판 대신 고분 한 구석에 널부러져 있었다. |
연천 신답리 고분 위치도 |
지도 중앙 A 부분의 큰봉분과 좌측의 작은 봉분이 연천 신답리 고분입니다. 소재지 : 경기 연천군 전곡읍 신답리 17-42 |
지도 우측 상단의 A 지점에 연천 신답리 고분이 위치하고 있습니다. 지도 좌측의 전곡역을 기준으로 위치를 가늠하시기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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