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에서 갈기니 붉은 피는 강물을 흐렸고
무계(茂溪)에서 다시 싸우니 뻗은 송장은 들판에 가득하였도다
의병대장의 호를 내리는 교서(除金沔義兵大將敎書) (임진 11월 일)
『松菴先生壬亂倡義』(72~79)
왕은 이렇게 말씀하노라 의는 환란 때 서둘러서 오랑캐를 쫓는 것보다 더 중할 수 없고 충성은 몸을 잊고서 나라에 목숨을 바치는 것보다 더 클 수 없다 명령을 받고 책임을 다 하는 것은 이것이 신하된 자의 항상 지킬 일이며 벼슬에 처하여 정성을 바치는 것 또한 직분의 떳떳한 도리요 이(利)를 보고서 움직임은 취할 것이 무엇이며 은혜에 느껴서 행하는 것은 귀할 것이 없도다 오직 동독(董督)하지 않아도 그 근로를 바치고 재촉하지 않아도 어려움에 내닫는 것이야말로 가치 충신열사로서 그 공이 풍성하고 홍렬(鴻烈)됨
에 이에 더함이 없으리라 누가 이것을 능히 할꼬 오직 나의 신하인 면(沔)이로다 생각건대 저 염치(染齒)의 족류(族類)는 침략의 흉계를 품고 배들이 만리에 이어 왔으니 먼저 해를 입은 곳은 경상도의 六십주군이다 반년을 전쟁에 시달렸으니 억조창생은 남음이 있을까 보다 삼경(三京)은 이미 잡초에 파묻혔고 칠묘(七廟)는 홀언(忽焉) 먼지가 쌓였도다 끝내 지키지 못하고 재차 옮기기에 이르면서 능히 성벽을 뒤로하여 한번 싸워보지도 못했구나 이때를 당하니 대소 신민 할 것 없이 모두 성명(性命)을 보전할 것만 생각하여 굳센 졸개 날랜 병정들은 영(營)과 진(鎭)의 대열에서 손을 묶은 듯하고 ①금장자수(金章紫綬)는 숲과 늪 사이에 몸을 숨겼는데 너는 능히 혼자 조두(俎豆)에서 발신하여 분연히 부업(父業)을 계승하였도다 단심(丹心)에서 가진 바는 밝기가 태양인 냥 맨손으로 일어섬에 따르는 이가 구름과 같았구나.
때에 즈음하여 벼슬을 던지고 몇 해 동안 초야에 깃들더니 이 난리를 만나자 칼을 휘둘러 하루아침에 난관에 부딪치도다 의사는 뒤를 따라 추종하고 무부는 아연히 분기(奮氣)하도다 그것이 어찌 공리(功利)라 할 것이며 또한 직수(職守)에 빙자한 것도 아니로다 오직 그 빛나는 충의의 마음이 조금도 생사에 즈음하여 망설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의사는 그 힘을 다하고 공로는 여기에서 이룩된 것이다 헤어진 갑옷에 쇠잔한 군병 수백 명이 비록 다 버리고 왔다 할망정 七십섬의 모진 도적의 남은 무리는 가히 큰 몽둥이를 마련해서 칠 수 있었도다 한번 정진에서 갈기니 붉은 피는 강물을 흐렸고 무계(茂溪)에서 다시 싸우니 뻗은 송장은 들판에 가득하였도다 큰 공로는 ③기린각(麒麟閣)에 초상을 걸만하고 후한 상으로는 어찌 ④모토(茅土)의 봉작을 아끼겠는가 비록 너에게 ⑤은비(銀緋)의 벼슬을 주었지만 실로 나로 하여금 낯을 붉히게 한다.
요즈음 남이 흔히 말하는 경우로 인해서 듣건대 병(兵)은 많아도 통솔이 없다고 한다 사람마다 각자가 되니 비록 일러서 의병이라 이름하나 장수가 적격자가 아니면 도리어 군의 통섭이 없을까 두려워진다 마땅히 한 사람의 사령(司令)을 가려서 온 도내의 의병(義兵)을 통솔케 해야 하므로 이에 너를 경상도의병대장(慶尙道義兵大將)으로 내려(庸拜)서 원근(遠近)의 제군(諸軍)을 모두 관할하고 통섭하여 오직 명령과 약속만을 들어서 이목과 심력을 하나로 되게 하도록 하노라 너는 그들을 벌주고 그들을 꾸짖어 주고 그들을 쓰다듬어 주되 오직 어질게 할지어다 척후는 멀게하고 간첩을 많이 놓고 봉화 올리는 것은 조심스럽게 하되 책략을 통지하여 응함에 되도록 명백히 할지어다 호령은 여러 곳에서가 아니라야 일의 성취의 길이 있나니라.
슬프다 한 조각 ⑥접역(蝶域)은 산하(山河)가 비리고 누런 냄새에 오염되고 천리 용만(龍彎)은 그 세월이 한 모퉁이를 지키는데서 흐르고 있도다 몇 자국 밝은 내 땅 아니거니 ⑦천승(千乘)의 무게는 장차 어디에 의탁할꼬 다행한 바는 영남의 군대는 자못 의기를 가지고 산서의 촉망은 오직 충량에 있음이로다 十三대 깊은 수치를 씻을 이는 네가 아니고 누구랴.
二백년 옛 기업을 회복함은 오직 그대가 능히 하라 오늘의 천기는 바야흐로 엄동이라 얼음과 눈이 길게 깔리었도다 도적은 다 붉은 종아리에 벗은 몸뚱이로서 굴에 묵고 불에 쬐도다 목을 움츠리고 거북처럼 파묻히니 돼지처럼 충돌할 뜻은 없도다 진실로 한번 그 소혈(巢穴)을 벗어나면 반드시 모두 풍상에 쓰러지리라 평원광야에 몰아세우면 저들이 어찌 능히 무력을 쓸 것인가 화포시석(火砲矢石)으로 내리 덮치면 우리는 그 기회를 탈 수 있다 이 때를 놓치고 후회하지 말지어다 그러므로 이렇게 교시하거니와 잘 알 것이라고 생각한다.
**************************
註 ①금장자수(金章紫綬): 지방관이 조정으로부터 받는 금제인장과 그것을 꿰는 자색의
수실끈.
②七십섬의 모진 도적: 70개의 섬으로 이루어진도적 즉 일본.
③기린각(麒麟閣): 한나라의 宣帝가 공신 11사람의 초상을 그려 기린각에 봉안하였다함.
④모토(茅土): 고대 중국에서 제후를 처음 봉할 때 국토를 상징하는 토단을 쌓고 그 위에
잔디를 꽂고 임명식을 거행했다.
⑤은비(銀緋): 허리띠와 옷의 색깔 당나라 대부의 복장.
⑥접역(蝶域): 우리나라를 일컬음. 일설에는 지형이 가자미같아 붙였다고 함.
⑦천승(千乘): 제후국.
첫댓글 2015년 9월 9일 경남 거창 우척현에 김면장군공원이란 이름으로 전적비를 건립하고 그 해 고령에도 김면장군 전적비를 건립하기 위해
이태근 군수와 고령 무계마을 이장을 만나 주민들에게도 설명을 하고 그 마을 초입에 김면잔군 전적비를 세우려 했었는데, 느닺없이 某
고문이 이군수에게 전화를 걸어 "고령 무계전투는 정인홍 전적지이지 우리 김면 선생의 전적지가 아니다"라고 전화를 걸었다.
이태근 군수 曰 "고령김씨 대종회 유명인사가 김면선생 전적지가 아니라는데... 어떻게 김면선생 전적비를 세우겠냐" 해서
전적비 세우기를 포기하게 되어 다 준비된 전적비를 취소하느라 금전적 시간적 큰 손실을 본 적 있다.
최근에 또 다시 상기되는 일이 있어 시간내어 [송암선생실기]에서 발췌하여 정리해서 올린다.
무계 전투에서 승리하여 합천군수로 제수 받았음이 왕조실록에도 기록이 있는데...
10여년 전 일을 상기하면 머리에 피가 솣는 것 같은 기분이다.
자료를 검색 가능하게 타이핑 쳐서 올린다. 원본 사본과 같이...
의병선봉장 義齋 김홍한 장군께서 전사하신 곳이 무계전투이다.
의병 선봉장 의재 김홍한 장군이 의병도대장 김면장군의 선봉장이지
정인홍의 선봉장이란 말인가? 이 문제는 어떻게 설명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