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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 자살, 노조 결성 이후 폭언·차별 시달려
김백겸 기자 kbg@vop.co.kr 입력 2013-11-01 06:15:44l수정 2013-11-01 07:10:12
삼성전자서비스 충남 천안센터에서 A/S 기사로 일하던 최모(32)씨가 31일 오후 5시 30분께 천안시 직산읍 군서리의 도로에 주차된 카니발 승합차에서 번개탄을 피운 채 숨져 있는 것을 지나가던 주민이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김백겸 기자
사장에게 욕설 듣고, 본사로부터 ‘표적 감사’ 받아...돌 한달 앞둔 딸을 두고
삼성전자서비스센터에서 일하던 노동자가 “너무 힘들고 배고팠다”는 말을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삼성전자서비스 충남 천안센터에서 A/S 기사로 일하던 최모(32)씨가 31일 오후 5시 30분께 천안시 직산읍 군서리의 도로에 주차된 카니발 승합차에서 번개탄을 피운 채 숨져 있는 것을 지나가던 주민이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최씨는 전날인 30일 출근하지 않고 오후 5시께 동료 조합원과 술자리를 가지고 오후 9시께 헤어졌다. 그리고 자정께 사촌형을 찾아가 “어머니를 부탁한다”고 말한 뒤 자리를 떠나 연락이 두절됐다.
최씨는 같은 날 오후 10시 19분께 “저 최00이, 그동안 삼성서비스 다니며 너무 힘들었어요. 배고파 못 살았고 다들 너무 힘들어서 옆에서 보는 것도 힘들었어요. 그래서 전 전태일님처럼 그렇진 못해도 전 선택했어요. 부디 도움이 되길 바라겠습니다”고 조합원 단체 메신저 방에 글을 남겼다.
최근 사장에게 폭언 들어...노조 결성 이후 압박에 시달려
앞서 최씨는 9월 23일 자신이 소속된 협력업체 삼성티에스티 사장으로부터 고객의 항의를 받았다는 이유로 폭언을 들으며 수모를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씨가 사장과의 대화를 녹음한 녹취록에 따르면, 사장은 “칼로 찔러서라도 말이 안 나오게 해야지 왜 말이 나오게 하느냐”고 최씨를 윽박질렀다.
이 뿐만이 아니다. 최씨가 일하는 삼성전자서비스 충남 천안센터는 노조가 생긴 이후 수리 건수가 많던 지역을 따로 나눠서 본사 직원이 담당하게 했다. 건수별로 임금을 책정하는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에게 일감을 줄여 압박한 것이다.
이와 더불어 삼성전자서비스 본사는 지난달 감사를 실시해 최씨에게 3년전의 자료까지 들이대며 월급을 차압하겠다고 협박했다고 노조는 주장했다. 본사는 최씨를 포함한 조합원 8명에 대해 집중적으로 감사해 최씨가 부담을 느꼈다는 것이다.
지난 2010년 5월 입사한 최씨는 작년에 결혼한 아내와 오는 12월 돌을 맞는 어린 딸이 있으며 형과 누나가 둘씩 있다.
31일 자신의 차에서 숨진 채 발견된 최모씨가 전날인 30일 오후 10시 19분께 유서를 남겼다.ⓒ삼성전자서비스노조 제공
“삼성에 다닌다고 해서 자랑스러워했는데 이렇게 힘들어 한 줄 몰랐다”
최씨가 안치된 충남 천안 서북구 성거읍 천안장례식장에서 빈소를 지키고 있는 최씨의 부인은 넋을 잃은 듯 한참 동안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최씨의 형제들 또한 지친 모습으로 말없이 빈소 앞을 지키고 있었다.
최씨를 추모하기 위해 이곳에 노조 조합원들은 장례식장 밖에서 담배 연기와 함께 한숨을 뱉으며 최씨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면서도 “삼성의 노조 탄압이 죽인 것”이라며 울분을 토했다.
최씨를 비롯한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은 지난 7월 14일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를 결성했다. 이들은 형식상 협력업체 소속이지만 삼성전자서비스가 실제 사용자라고 주장하며 근로조건 개선 등을 요구해왔다.
최씨와 함께 일하던 동료들은 최씨가 노조 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자기 어려움은 쉽게 말하지 않는 속 깊은 사람이었다고 말했다.
천안센터에서 내근으로 일하는 이모(39)씨는 “아침마다 돌아가면서 하는 1인 시위를 할 때는 차 위에 올라가 피켓을 들고 있을 정도로 열정적이고 적극적인 사람이었다”며 “적은 임금에 도시락을 싸서 점심을 해결하면서도 어려운 내색 한 번 없었다”고 발했다.
또 최씨는 노조가 생긴 것에 대해 기대를 많이 했다고 전했다. 천안센터는 이곳에서 일하는 협력사 노동자 90여명 중 절반 정도인 42명이 조합원이다.
삼성전자서비스지회 김기수 천안센터분회장은 “노조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고 아침마다 돌아가면서 하는 1인 시위에서는 차 위에 올라가 피켓을 들고 있을 정도로 열정적이고 적극적으로 활동했다”며 “노조가 생겨서 이제 희망이 생겼다고 좋아했는데 사측과의 싸움이 길어지고 감사 대상이 되면서 힘들어 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곳을 찾은 위영일 삼성전자서비스지회장은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살 수 없어 전태일처럼 죽음으로 투쟁한 것”이라며 “고인의 유지를 잊지 않고 싸울 것”이라고 다짐했다.
최씨는 동네에서도 쾌활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어 더욱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최씨와 한동네에 살며 형제처럼 지냈다는 강모(40)씨는 “성격 좋고 쾌활하고, 삼성에 다닌다고 해서 잘 나가는구나 인정했던 동생”이라며 “그런 친구가 노조에 가입하고 위에서 힘들게 한다는 이야기는 했지만 이렇게 힘들어했을 줄은 몰랐다”고 안타까워했다. 이어 “동생의 목숨이 안 아깝게 쓰였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금속노조와 삼성전자서비스지회는 31일 심야까지 대책을 논의한데 이어 1일 오전 다시 회의를 연 뒤 대책위원회 구성 및 이후 장례 문제 등에 대한 입장을 밝힐 예정이다. 우선 노조는 전국의 사업장마다 분향소를 설치할 계획이다. 최씨의 유족은 장례 문제 전반에 대한 권한을 노조 측에 위임했다.
삼성전자서비스 충남 천안센터에서 A/S 기사로 일하던 최모(32)씨가 31일 오후 5시 30분께 천안시 직산읍 군서리의 도로에 주차된 카니발 승합차에서 번개탄을 피운 채 숨져 있는 것을 지나가던 주민이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최씨에게는 결혼한지 1년된 아내와 오는 12월 돌을 맞는 어린 딸이 있다.ⓒ김백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