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구나 병원을 개원한 지 채 두 달이 못된 지금은 더욱 틈을 내기 어려웠다. 항차 보름씩 왔다 갔다 하는 요즘에로서야…
영화 인디애나 존스의 주인공 수준으로 즉흥적인 여행은 또 그렇게 시작이 되었다.
원래 월요일인 10월23일 출발할 예정이었으나 빡빡한 일정만이 기다릴 뿐이었고, 그 다음날인 24일도 오전 11시까지 약속이 되어 있었다. 약속이 취소된 것을 다행이라고 말할 순 없지만, 그래도 이 약속이 취소됨으로써 어제밤 애벌로 싸둔 짐을 들쳐 매고 쉬자다오 룬뚜(薛家島輪渡, 부두)로 나섰다. 평소 타지 않는 택시를 급히 몰아 룬뚜에 도착하니 가을은 파도를 타고 이미 계절을 넘어설 준비를 하고 있었다.
평소라면 10위안을 주고 큰 배를 탔건만 오늘은 콰이팅(快艇, 쾌속선)에 몸을 실었다. 마음은 이미 여행에 들떠 있었으나, 몸은 아직 일상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였다.
칭다오(靑島)의 룬뚜에 도착해서야 열차표가 없으면 어떡할까 하는 걱정이 비로소 떠올랐다. 다행히 주중이라서 열차표는 쉬 구할 수 있었다.
2. 중국의 열차
열차는 K344로 산뚱성(山東省) 칭다오에서 장시성(江西省) 난창(南昌)까지 운행하는 콰이수(快速) 열차였다.
중국에서는 치처(汽車)는 버스이고, 열차는 훠처(火車)라고 부른다. 훠처는 속도별로 4등급이 있고 좌석별로 역시 4등급이 있다.
먼저 속도별로는 터콰이(特快, 특별쾌속, T자로 시작됨)가 제일 빠르고 콰이수(快速, 쾌속 K로 시작됨), 푸콰이(普快, 보통쾌속, N으로 시작됨), 푸퉁(普通, 완행, 영문 이니셜이 없음)이 있다.
좌석별로는 방처럼 꾸며져서 문을 닫으면 외부와 격리될 수 있는 종류를 일단 롼(軟, 연식)이라고 구분하고, 우리나라 처럼 문 없이 툭 터진 곳을 잉(硬, 경식)으로 양분할 수 있다. 그리고, 침대칸은 워(臥)라고 하고 좌석은 주오(座)라고 부른다. 이것을 섞으면 4종류가 된다. 란워, 잉워 이 두가지가 침대칸이며 란주오, 잉주오가 좌석이다.
란워는 영화에서나 보는 것처럼 4인용 방으로 꾸며져 있고, 마주 보고 2층 침대가 있다. 위의 침대를 샹푸(上補), 아래 침대를 샤푸(下補)라고 부른다. 란워는 중국선 가장 호화로운 열차로 대개 열차 안내원들이 양쪽을 막아 서서 다른 열차 승객들이 얼씬도 못하게 한다. 더러는 2인용 란워도 있다고 하는데 필자는 타 본 적이 없어서 소개할 수 없는 것이 유감이다. 터콰이의 란워는 내부에 텔레비전이 기본이고, 올림픽 준비로 이미 외국인들의 왕래가 빈번한 베이징(北京)과 칭다오를 오가는 터콰이는 액정이나 가스플라즈마 방식(PDP)까지 쓰고 있다.
잉워는 3단 침대인데 샹푸, 중푸, 샤푸로 나뉜다. 가격은 샹푸가 가장 싸고, 샤푸가 제일 비싸다. 장거리 여행객들이 흔히 사용하기 맞춤이다. 샹푸는 높아서 오르내리기가 불편한 점은 있으나 가격도 싸고 혼자 여행할 때 소중한 보따리 혹은 지갑을 잃어버릴 염려가 없어서 필자는 아주 선호한다. 그러나, 한참 잠을 자는 중 갑자기 화장실을 가고 싶을 땐 내려 오는 일이 만만치 않다.
란주오는 모양새는 란워와 같으나 란워는 4개의 침대를 4명에게 배분하여 1인 1침대인데 반해 란주오는 4개의 침대에 6명이 탄다. 그러다 보니 2단침대 중 샤푸에 3명씩 마주앉아가는데 샹푸는 피곤한 사람이 돌아가면서 잘 수 있는 곳이다. 비록 순번을 기다린다는 인내가 필요하지만 잘 수 있는 공간이 있고, 아늑한 실내가 보장된다는 의미에서 비슷한 가격의 잉워에 비해서 인기가 높다. 대개의 경우 란주오는 매진이다.
잉주오는 우리나라의 열차를 생각하면 된다. 좌석에 앉아 가는 것인데, 우리나라처럼 좌석을 돌릴 수 없다. 터콰이 잉주오는 쿠션이 아주 좋으나 아래 등급이 될수록 조악해져서 마침내 푸퉁 잉주오는 그저 나무판 등받이도 감수해야 할 때가 많다.
에어컨의 유무도 열차 운임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인데, 대체로 푸콰이 이상은 냉난방 장치가 있다. 가끔 특별기차인 관광열차(Y자로 시작됨)는 에어컨이 없는 수가 있다. 언젠가 한여름 여행에 냉방 없음을 항의했으나, ‘대신 가격이 싸지 않느냐’는 승무원의 대꾸 한마디에 주눅이 들 수 밖에 없었다.
3. 10월을 싣고 출발하다.
칭다오 훠처잔(火車站, 열차역)은 독일 조계 시절 지어진 건물로 고딕 양식이 뚜렷하다. 가까이엔 청말의 북양대신 리훙장(李鴻章)을 맞기 위해 지었다는 유서 깊은 항구인 짠치아오(棧橋)가 위치해 있어 내륙진출의 교두보로 손색이 없는 없는 역이다. 열차는 2006년 10월 24일 13시 40분 출발하는 K344로 칭다오발 난창(南昌)착 콰이수 잉워이고, 난 15호차 7호 중푸였다.
출발 30분 전에 개표를 시작하여 출발 20분 전쯤엔 이미 모든 승객들이 플랫폼으로 나섰다. 난창 가는 열차에 빨리 오르라는 안내 방송을 들으면서 필자는 급히 공중전화를 찾고 있었다. 왠일인지 모든 공중전화에서 국제전화는 걸 수 없었다. 몹시 걱정할 아내 생각에 안내원에게 물어 봤으나, 산뚱 지방말이 심한 이 안내원의 말은 한마디로 알아 들을 수 없었다. 열차 승무원들의 핀잔을 몇 마디 들으면서 겨우 열차에 몸을 실었다.
하늘은 높고 바람은 맑았다.
4. 열차 여행
한참 짐을 정리하고 있는데, 당차 보이는 어떤 중국인이 말을 걸어온다. 내용인즉 자리 좀 바꿔줄 수 없냐는 것이었다. 자리를 바꾸고 나서 병원의 한방과 송박사님께 전화를 드렸다. 한 일주일 어디 다녀온다는 전갈이었는데 왠지 전화가 안 된다. 마음은 이미 경덕진에 가 있고, 일상은 잊혀진 지 오래이다.
필자는 특별히 기차여행을 좋아한다. 언젠가 베이징에서 윈난성(雲南省) 쿤밍(昆明)까지 가는 터콰이 란워를 산 적이 있다. 필자는 열심히 말을 하는데, 역무원이 말을 못 알아듣는다. ‘아, 중국인이 중국말을 못 알아듣다니…’투덜거리면서 수첩에 적었다. “今天開到昆明 特快 1票”를 꼼꼼히 적어서 창구로 내밀었더니 이 역무원이 앙천대소를 하였다. 한참 웃고 나더니 ‘너 쿤밍이 얼마나 먼지 아느냐?’고 물었다. ‘한 이틀 기차 타고 가면 되는 줄 안다.’고 응수를 했더니, 기가 찬다는 표정이었다. 비행기를 타면 같은 가격으로 3시간이면 가는데 왜 일부러 며칠씩 걸리는 기차를 타는 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할 게 뻔했다
중국에서의 열차 여행만큼 삶을 성숙시키는 것은 없다. 혼자 여행할 땐 더욱 그렇다. 막막한 대지 위로 한 점 기차 위에 몸을 싣고 나면 깊은 명상서도 얻기 어려운 무념무상에 빠진다. 혹은, 태고처럼 까마득한 유년(幼年)이 연속극처럼 떠오르는가 하면 여생의 푸른 꿈이 저절로 영근다.
이런 저런 생각에 무료해지면 맞은편 침대에서 눈을 멀뚱히 뜬 채 허공을 주시하는 중국인이나 복도에서 하릴없이 서성이는 길손들에게 시비를 건다. 주로 ‘어디서 왔냐’ 뭤땜에 거길 가냐는 등 상호 심문을 하는 거지만 시간을 떼우는 덴 주효하다. 기존의 인물들의 신상파악을 나름대로 하고 나서 더 이상의 난이도의 심문이 어려워져 심심해질 무렵이면 새로운 얼굴들이 승차한다.
아침은 주로 도시락을 사 먹는다. 너무 배가 고프지 않은 경우 도시락 판매원이 네 번 째 오갈 무렵에 산다. 왜냐면, 3번 까진 도시락 가격이 15위안인데, 더 이상 안 팔리는 경우 5위안까지 가격이 급락하기 때문이다.
중식은 컵라면으로 준비한다. 중국 공장에서 생산되는 한국라면들을 이용하기도 하고,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은 경우 캉스부(康師父)를 이용한다. 컵라면은 한국 것이 슈퍼마켓에서 약 3위안 전후이고, 열차 안이나 기타 매점에선 5-6위안이다. 중국산은 거의 절반 전후이다. 어디서 사느냐에 따라서 가격이 심히 다르므로 미리 준비할찌어다.
저녁은 작은 빵 한 조각과 과일로 떼운다. 열차 안에서는 움직임이 적으므로 고열량은 금물이다. 그러나, 적게 먹으면 자칫 변비가 되기 쉬우므로 과일이나 토마토, 오이 같은 야채를 즐기는 것이 좋다.
음료수를 비싼 생수에 의지하는 것은 아주 어리석다. 중국의 모든 공공장소엔 조금만 주의하면 뜨거운 물을 찾을 수 있다. 찻물을 우리는 작은 통(약 30위안 미안)을 준비해서 차를 우려내어 먹으면 좋다. 물맛이 달라지면 설사하는 과민한 분들에겐 더욱 좋다. 필자의 경우 변비를 예방하기 위해 보이차를 조금 넣어 간다.
머리를 감지 못하는 것도 장시간 여행 땐 곤욕이다. 신새벽 세면대가 조용한 시간을 이용하는 것이 요령이다. 쫄쫄쫄 나오는 물로 머리를 감기 어렵기 때문에, 생수통 같은 작은 PET병을 갖고 가서 여기에 물을 받아 머리 헹굴 대 쓰는 것도 요령이다.
식사 전후엔 화장실 쟁탈전도 만만치 않으므로 이 역시 선제공격이 주효하다.
5. 쥬장(九江)
더 이상 잠도 오지 않고 차창도 희끄무레 밝아온다. 안휘성(安徽省)이 끝나고 장시성(江西省)이 시작되고 있다. 아침 도시락 후에, 찻물을 받고 커튼을 열어젖혔다. 남방의 아침이 문득 다가선다. 승무원이 표를 바꾸러 온다. 중국의 경우 잉주오 외의 모든 열차는 승무원이 승차 직후 표를 거둬가고 대신 번호만 적혀있는 티켓을 준다. 내리기 전 약 30분 전에 다시 이 티켓과 표를 교환해 준다. 승무원이 표를 바꾸러 온다는 것은 다음 역에서 내린다는 걸 의미한다. 뻔히 알면서도 경상도식 중국어로 묻는다. “쮸장 따오러마?” 뻔한 걸 왜 묻냐는 식으로 승무원이 짤막하게 퉁명스런 대답을 내 뱉는다. “마상”
7시40분에 내렸으니 약 18시간이 걸린 셈이다. 기차 여행치곤 너무 짤막해서 아쉬움도 남았다.
쥬장은 장시성에서도 손가락 안에 드는 도시이다. 부근에 루(廬山)과 황산(黃山)이 버티고 있고 아름다운 물굽이가 아홉 개다. 송나라 때부터 변하지 않은 기와지붕이 도시의 고색창연함을 오연히 말해준다.
역을 나서면 금새 여행사의 호객꾼들이 앞을 다툰다. 하루짜리부터 4-5박 여행 상품을 팔고 있다. 혀가 짧은 듯한 푸퉁화(普通話)는 영락 없는 남방투다. 구강역은 외관이 드물게 수려하다. 큰 고장임을 은근히 자랑한다.
그러나, 역사 내에 화장실은 없다. 역에서 나서면서 왼쪽 편에 무려 1위안씩 받는 화장실이 있다. ‘팅꾸이(너무 비싸다)’란 말을 하면서 눈살을 찌푸리지 않으려면 열차를 내리기 전에 볼일을 마치는 게 좋다.
징더전(景德鎭)을 가기 위해서는 시외버스 터미널을 가야 한다. 열차역서 호객꾼들에게 넘어가면 바가지 쓰기 일쑤이다. 택시 요금 5위안의 거리를 20위안에 흥정하는 수도 많다. 그야말로 개떼처럼 몰려드는 팬들(호객꾼)의 인기를 등 뒤로 하고 냉정히 버스에 올랐다. 쥬장 훠처전을 지나는 대부분의 버스는 창투치처잔(長途汽車站)으로 간다. 역에서 나와서 길을 건너지 말고 오른쪽으로 약간 돌면 시내버스 승강장이 있다.
갑자기 서녁 하늘이 어둑해지더니 일진 광풍과 함께 소나기다. 징더전 가는 차는 오전 9시 30분에 출발하는 고속버스이다. DVD타이틀을 바꾸지 않았는지, 지난 여름에 보던 영화를 다시 한 번 보게 되었다. 고속버스는 한국보다 좀 더 세련된 자태이다. 80년대 한국처럼 예쁘장한 안내양이 다소 거만한 말투와 자세로 안내를 한다.
건너편 젊은 아가씨가 어디서 왔냐고 묻는다. 사천에서 왔다고 할까 하다가 정직하게 한국에서 왔다고 했다.
한참을 “따창진(대장금)”에 대해서 논했다. 사실, 대장금 연속극을 보지 못한 필자로서는 곤욕이었으나, 어눌한 중국어를 무기로 용케도 위기를 모면했다. 한류는 역시 중국 전역을 강타하고 있었다. 한 때 시청률 58%였다고 귀뜸을 한다. 대단한 일이다.
적벽대전 직전 오나라 수군이 훈련을 했다는 파양호가 곧장 눈에 들어온다. 제갈량에 속아 분해하던 20대의 명장 주유가 떠오른다. 정녕 소년등과망신(少年登科亡身)인가? 여러 번 지나던 곳이라 금새 잠이 들었다.
왠일로 1시간 30분만에 징더전 톨게이트를 들어선다. 도자기로 된 각종 조형물이 징더전임을 금새 알아챌 수 있게 만든다.
6. 징더전(景德鎭)
천하의 중악(中岳) 황산은 빼어난 경치 외에도 많은 풍요를 낳는다. 천혜의 요새로서의 피난처를 제공한다. 안록산, 사사명의 난을 피해 달아났던 이백이 한 때 머물던 선청(宣城)은 ‘선성진달래’란 시로 이름이 있다. 황산 남록에 명당은 우웬(武原)이란 아름다운 전원을 낳는다. 우웬은 직전 중국 주석인 장쩌민(江澤民)의 고향일 뿐더러 멀리는 우리나라에 막강한 사상적 영향을 끼친 주시(朱熹)의 고향이기도 하다. 하늘의 별 따기란 전시(殿試)에 역대 합격자만 500이상을 배출한 쉐샹(學鄕)이기도 하다. 이 우웬의 낙방거사들은 남쪽으로 징더전에 옮겨 도자기에 열을 쏟았다. 징더전 도자기의 배경이 바로 황산인 것이다.
도공들의 멋진 솜씨도 중요하지만, 아무래도 명품은 사상적인 깊이에 의해 빚어진다. 백자에 휘날리는 청화에는 문채(文彩) 드높은 우웬의 문사들이 웅크리고 있다. 현실에의 도피를 그린 은일도(隱逸圖)가 낙방거사들의 심정을 대변하고 있다. 일종의 신포도(sour grape)인 셈이다.
터미널 부근에 엄청난 상가들이 밀집해있다. 새로이 엄청난 상가가 분양중이다. 중국 내에서 짝퉁까지 횡행하는 징더전 도자기가 바로 여기에 모여있다. 약 400년 동안 진화하지 못한 채로, 세련대신 소박한 모습으로 다소곳하다. 일단의 서구인들이 소형 버스에서 내리더니 우루루 상가로 몰려간다. 모두들 와이트(white) 칼라차림이라 사업차 온 모양이다. 골똘하게 윈도우 쇼핑을 하는 나를 신기하게 보고 사진도 몇 장 찍는다. ‘이건 초상권 침해인데’ 하며 항의할까 했으나 풍경의 하나가 되는 쪽을 택했다.
7. 청화백자
해맑은 도자기에 무언가 문양을 넣는다는 것은 인류의 미적 감각으로 미루어볼 때 당연한 발로이다. 석기시대에도 빗살무늬의 토기가 구워지지 않았던가. 솜씨 좋은 장인들은 보다 손쉬운 장식을 찾았음에 틀림없다. 더러는 상감도 하고 채색도 하였으나, 청화만큼 터치가 고스란하고 깨끗한 안료는 드물성 싶다. 코발트에 열을 가하면 청화가 되는 원리는 투르크(突厥,돌궐)인들의 발견이다. 그러나, 이것이 유려한 도안으로 재탄생 된 곳은 바로 징더전이다.
물론 이전에도 탕산차이(唐三彩)로 이름이 높았지만, 청화백자만은 못했다. 이 걸작들은 서세동점의 시대조류를 타고 온 서양 선박들의 주요 교역물이 되었다. 중국이란 뜻의 China의 ‘C’를 소문자로 바꾸면 즉 china는 도자기란 뜻이다. 유럽에선 황금이나 다를 바 없이 거래된 이 도자기는 명나라를 살찌우는 원동력이 되었다. 서양의 유명 가문의 문장은 항주 상인들에게 주문되어 이 징더전에서 구워졌다. 얼마나 많은 징더전을 갖고 있냐가 부의 척도가 된 적도 있고, 징더전 도자를 배달 받은 날은 의례 융성한 파티가 열리곤 했다. 재료가 뭔지 모르는 일부 영국 도예가들이 혹시 소뼈로 만든게 아닐까 해서 시도되고 성공한 것이 본차이나이다 본차이나는 징더전의 짝퉁인 셈이다..
명말, 정화(鄭和)가 실각한 후부터 실시된 통상금지 조치인 해금(海禁)정책은 도자기 산업의 핵을 징더전에서 큐슈로 옮기게 했다. 일본 아리따의 시대가 도래하게 된 이유이다. 때마침 임진왜란은 유능한 도공들을 일본에 공급하는 계기가 되고, 서양의 유력한 영주들의 주문을 받은 선박들은 닝보에서 아리따로 뱃머리를 돌렸다.
그러나, 아직도 아리따가 징더전을 흉내낼 수 없는 것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흙이다. 징더전은 장석이 풍부한 좋은 태토(胎土)로 종잇장 같은 잔을 빗는다. 그러나, 아리따는 둔중할 수 밖에 없다. 흙이 차지지 않은 것은 도공들에게 불가항력을 만든다.
8. 찻잔
찻잔 하나에 수백 만원을 하면 호사라고 할 진 모르겠으나, 그림 가격이 수 백 억 원을 넘는 것이 있다는 사실로 이해의 틈을 만들고 싶다. 차맛은 역시 잔의 멋에서 우러나온다. 차를 가르치다 보면 의례 입문에 필요한 찻잔을 찾게 된다. 그러나 너무 비싸서는 질검의 풍을 해치기 쉽다. 수강생의 수준에 따라 찻잔의 가격도 차별되는 것은 아니지만, 현재 주부들에게 강의하는 처지라 가격 또한 고려 대상이다.
전에 스님들에게 강의할 땐 여주의 한 도요에서 24만원 정도의 찻잔을 소개했었는데, 이 가격은 주부들에게 무리가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수공으로 만들면 이 정도 가격도 싼 편인데 현실은 따라오지 못한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징더전 도자기이다. 도안은 필자가 하고 굽기는 징더전에서 하면 좋은 도자기가 나올 듯 해서 무려 1년이나 별렀던 것이 바로 도자기 주문이다.
문양은 일체 넣지 않기로 하고 그저 백자로만 굽기로 했다. 푸른빛 도는 경덕진의 백자는 우윳빛 도는 한국의 백자와는 사뭇 다른 감을 자아낸다. 처음 주문하는 것이라서 400개만 맞췄다. 한 세트에 35위안. 운임까지 포함하면 청도까진 50위안 미만일 것이다.
수공으로 만든 찻잔 한 세트가 그 정도면 획기적인 가격이다. 제작 기간을 1개월로 정하고 전액 지불을 했다. 아마도 12월 초가 되어야 한국의 제자분들께 선을 보일 수 있을 것 같다.
마땅한 잔이 없어서 다례를 연습하지 못했는데 이제야 원을 풀게 되었다.
얼마 전 징더전 도자기에 대해서 가격이 얼마쯤 되냐고 물어오던 분이 계셨다. 잘은 몰라도 보통 도자기의 3-4배 가격은 아니까 황다오에선 최소한 200위안은 줘야 될거라고 말했다. 그랬더니, 그 분이 이싱(宜興)의 자사호(紫沙壺)가 팔구 십원을 하는데 그렇게까지 비싸냐고 의아해 하길래, 곧장 도자기 점포로 갔다.
징더전 도자기를 물으니, 주인장 왈
“징더전은 최소한 몇 백 위안씩 하는데 황다오에서 누가 살 형편이 되겠나. 징더전 짝퉁이 있는데 그거라도 써 볼려냐?”
징더전 짝퉁도 자사 도자기의 2배 가격이나 되었다.
징더전 도자기가 얼마나 좋은지 설명할 더 이상의 말을 찾기 어렵다.
한국인들이 엄청 좋아하는 자사호보다 대략 3-4배 정도 비싸다고 생각하면 그 질을 짐작이나 할 수 있을지…
9. 망향수(亡鄕愁)
징더전의 음식 맛은 바로 한국의 음식맛이다. 어떤 음식도 잘 먹는다는 필자도 여기 오면 한국에 온 느낌이다. 축축하던 공기도 말갛게 씻어지고, 징더전의 밤은 고향의 밤 바로 그것이다. 여기 오면 소고기국을 시킨다. 여기 말로는 루뽀뉴로탕인데 우리 소고기국이랑 역락 없다. 여장은 꿍루빈관(公路賓館)에 풀었다. 원래 요금은 120위안인데 혼자이고 평일이란 점을 부각시켜서 80위안으로 깎았다. 트윈 룸인 셈인데, 넓지만 세련되지 못한 점이 있다. 퀴퀴한 니코틴 냄새가 불쾌감을 자아내지만, 전체적으로는 B학점 이상이다. 터미널이 가까워서 택시를 안 타는 것만으로도 가산점이 있다.
침대에 누워도 기차를 탄 것처럼 울렁거렸다. 잠이 엄습해 온다.
10. 흥정
중국인만큼 흥정을 즐기는 국민은 드물 것이다. 응당 깎아 줄 것이면서도 엄큼하게 고가를 부른다. 약삭빠르진 않지만 그런 가격에 넘어갈 만큼 어리숙한 내가 아니기에, 흥정에 목이 쉰다. 이번엔 생활도자기와 그림 도자기 몇몇을 살 생각이다. 어제 봐 둔 물건을 오전내내 흥정하러 다녔다. 단골 집이 있어서, 찻잔을 주문하는 것은 비교적 일찍 마쳤다. 비교적 일찍이라고 하지만 약 3시간 걸렸다. 이리 저리 도자기를 흥정하고 사고 나니 시간이 벌써 오후 4시다.
설상가상으로 어떤 여고생 하나가 와서 영어로 시비를 건다. 아직 설익은 영어라서 시간이 아깝다. 한국서 왔다니깐 반가와서 그러는데, 단골도자기 집 바로 건너편 음식점 주인 딸이다. 민생고 해결 때문에 이따가 집에 가서 얘기하자고 말하고 이 꼬마 숙녀와의 인터뷰를 가까스로 뿌리쳤다. 명함을 주고, 서신내왕으로 대신하자고 했다.
문제는 택배 회사들이다. 정확한 화물 운임 규정도 없이, 일단 흥정부터 시작이다. 도자기라서 물론 포장비가 비싸게 들고 운송에 어려움이 많겠지만, 물건 값과 동일한 운임을 제시했을 땐 화가 머리 끝까지 치밀었다. 택배 회사 2군데를 불러서 흥정을 해도, 저녁 6시가 넘어서야 겨우 물건값의 약 30% 정도의 가격에 화물 운임을 합의 봤다. 억울하지만 어쩔 수 없다. 화물이 파손되면 배상키로 하고 약관을 썼다.
시간이 지체되어 열 받는 이유는 다른 곳에 있었다.
이 부근이 중국 홍차의 양대산맥인 치먼(祁門, 기문, 이 기문할 때 기자는 ‘나무목에 우부방인 ‘기’자이다. 아무리 그 글자를 찾아도 없어서 대신 이 한자로 대신한다.)홍차의 산지인 치먼이다. 매번 지나다니면서 이곳을 들르지 못한 것이 안타까왔는데 이번 역시 가기 어렵게 되었다.
저녁 8시에 출발하는 항주행 버스표를 샀다. 차표 값을 치르는데 50위안짜리 하나가 위조화폐였다. 중국선 돈을 받으면 만져보거나 햇볕에 이리 저리 비춰보는데 위폐가 많은 까닭이다. 자세히 생각해 보니 화물 운임을 주고 거슬러 받은 돈이 분명했다. 늦지만 전화했다. 운송회사 직원이 터미널까지 와서 미안하다고 말하곤 바꾸어주고 갔다.
11. 시후(西湖)
밤새 흔들린 탓인지 몸이 개운치 않다. 항주 베이잔(北站, 북부터미널)에 내린 것이 새벽4시. 벌써 10월27일이다. 7시간 남짓 침대버스로 달려온 셈이다. 험준한 산들을 넘어다니느라 차도 사람도 후즐근했다. 별로 한 것도 없이 차만 타고 시간을 소모했구나 하는 마음에 서둔다. 쓰지춘(四季春)여관에서 새벽잠을 흥정했다. 몇 시간만 자고 세수를 하면 되는 터였다. 잠시 자고 가도 80위안이라는 주인장에게 사정하다시피 해서 30위안에 낙찰을 봤다.
잠시 자고 나서 씻고 샤워를 하고 나니 새로이 기분이 났다. 짐을 맡기고 서호 관광단에 잠시 몸을 맡겼다. 오늘 칭다오로 떠나야 되기 때문에, 하루 투어 가격 175위안을 깎아서 백위안으로 오후 2시까지만 투어하기로 했다. 나중에 슬그머니 2시간을 더 했다.
별렀던 서호 관람인데 비가 온다. 필자가 가장 좋아하는 차가 나는 바로 서호인데, 이런 식으로 첫 대면하는 것이 석연찮았지만 중국인 관광인들을 따라나섰다.
나는 공식적인 명칭으로 산뚱이웨이(山東一位), 즉 산동서 온 1인이란 말로 붙여졌다. 약삭빠르게 생긴 항주 청년 하나가 말을 걸어온다. 뭔 소리인가 했더니 너 산동 사람 맞냐는 것이다. 발음을 보아하니 쓰촨(四川) 사람 같은데, 산뚱이라하니 이해가 안 된다는 것이다. 중국선 중국 말을 잘 못하는 사람을 보면 외국인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아주 먼 지역 중국 사람이라서 말이 안 통한다고 여긴다. 나도 곧장 응수했다.
“그래 맞다. 난 스촨 사람인데 현재 산뚱 칭다오에 산다”
서호 관광은 후푸첸(虎跑泉)으로 시작한다. 호랑이가 다친 발을 담갔다가 금새 나아서 뛰어갔다는 샘이다. 산림이 울창해서 영험함을 입증하는 듯 하다. 우리는 跑를 절룩거린다는 말로 쓰는데, 중국선 뛰어갔다는 말로 쓰는 것 같다. 어쨌거나 천하 3대 샘물의 하나이다. 물론 이 천하 3대 샘물은 지극히 주관적인 중국인들 생각이고 또한 여기서 천하 3대 샘은 모두 서호에 있어서 더욱 주관적이다. 제1은 위첸(玉泉)이고, 제2는 룽징(龍井)이며 제 3이 후푸첸(虎跑泉)이란 것이다. 물맛을 못 보니 믿거나 말거나이지만 유명세는 대단하다.
곧이어 서호로 나섰다. 소동파가 수축했다는 수띠(蘇堤, 약 8Km)를 따라서 걷다가 배를 탔다. 중국은 큰 호수가 많아서 바다처럼 넓은 호수라고 해서 넓은 느낌이 전해질 수 없다. 다만 호수 중간에 몇몇 섬이 있고, 파도로 다소 멀리가 있을 정도라고 적는다.
산탄인위에(三潭印月)는 작은 호수를 4개 갖고 있는 서호의 작은 섬이다. 휘늘어진 버들이 남방을 가리키고 있다. 밤 늦도록 달을 즐기면서 술잔을 기울이던 옛 멋을 떠올려 본다.
팔 백 년이 지난 지금도 그런 아취가 있을 것인가? 한 수 시를 곁들여서 도세(渡世)할 벗이 가까이 없음을 한탄한다.
12. 항조우 쓰초우(비단)
그 다음은 투어 코스의 사족인 쇼핑! 항주 비단을 전시한 커다란 가게에 들어가니 누에고치서부터 비단까지 전시되어 있다. 명주솜 이불을 한 채에 약 600위엔(약 7만5천원)에 판다. 명주솜이야 말로만 듣던 것 아닌가? 얇은 명주 이불 하나가 솜이불 열 채를 능가한다는 얘기만 들었는데 뜻하지 않게 서호에서 명주이불을 보게 되었다. 일행들 중에 특히 북방에서 온 분들은 앞을 다투어 샀다. 멀리 깐쑤성(甘肅省)에서 온 어떤 아낙은 무려 5채나 샀다. 필자는 이런 곳에 흔히 있을 법한 바가지가 쓰기가 무서워 항주 시내에서 사리라 다짐하면서 쇼핑 열의를 식혔다. 아내에게 줄 선물로 비단 스카프 한 장을 샀다. 감촉도 매끄러웠지만 빛깔도 고왔다.
곧 항주의 대명사인 룽징(龍井)차 쇼핑 순서였다. 평소에 룽징차를 즐기던 터라 관심이 많았으나 필자가 애호하는 수준의 차는 팔지 않았다. 이 역시 다들 앞을 다투어 샀는데 중국인들의 쇼핑 열기에 다시 한 번 놀랐다. 중질 정도의 룽징차를 100그램에 1백위안에 팔고 있었다. 다른 지역에 비하면 확실히 쌌다. 말레이지아에서 온 가족들은 무려 12통이나 사가서 또 한 번 놀랐다. 하긴 이 정도 질의 차는 칭다오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항차 말레이지아에서랴.
몇몇 곳을 더 다녔으니 기억에 남을 만한 곳은 없었다. 관광 버스 운전 기사의 양해를 구해서 중도에 내렸다. 택시를 잡아타고 즉시 시내를 향했다.
시첸캉루(西健康路) 부근은 항조우 비단의 메카이다. 빽빽한 거리엔 갖가지 비단 제품이 선을 보였다. 이불을 사기 위해서 왔으므로 이불가게만 몇 군데 들렀다. 서호 부근의 관광상품 가게보단 질이 더 좋은 제품들이었으나 가격은 만만치 않았다. 별의별 미사려구(美辭麗句)를 사용해도 이불 한 채에 500위안 이하로 깎기 어려웠다. 하도 안 깎아 줘서 다음으로 미룰까 하다가 언제 다시 이 곳에 오랴 하는 심정에서 눈물을 머금고 한 채를 샀다. 혹 속아 살까 봐 속 통을 열고 솜을 꺼내 라이터 불로 태워보았다. 단백질 타는 냄새가 코를 찔렀다. 주인장이 혀를 내두른다. 속으로 ‘사천 사람들이 지독하다’고 욕했을 게 분명하다.
굳이 이불을 살려는 뜻은 내년이면 멀리 프랑스로 유학을 떠나는 딸 때문이다. 눈에 담아도 시원찮은 딸을 갈리아 척박한 땅에 보내는 애비의 심정을 명주 솜에 담았다. 돈키호테형 아빠 탓에 남들처럼 따뜻하게 보내지 딸의 유년에 대한 자책도 거기 실었다. 얇디 얇은 두께요 깃털보다 가벼운 무게이지만, 대서양에서 불어오는 겨울쯤은 넉넉히 막아낼 것이다. 더욱이 애절한 애비의 뜨거운 사랑이 함께 함이니…
이불을 사서 그 가게에 맡겨 놓고 비단 구경에 나섰다. 시간이 별로 없었으나 놓치기 어려운 광경이었다. 너무 상가가 많아서 다시 한 번 놀랐다. 비단제품 외에 인조견도 짝퉁으로 자리하고 있었다. 몇몇 예쁜 제품이 있었으나 안목이 부족한 나로선 속을까 감히 살 수가 없었다.
13. 룽징차(龍井茶)
룽징차는 동부터미널 부근의 단골집에서 샀다. 손으로 딴 작설로 100그램에 200위안(약25,000원)이다. 중국선 끔찍한 고가이다. 그러나, 한국서 이 정도의 작설을 구할려면 최소한 80만원 이상이다. 이곳까지 온 보람이 있다. 부탁 받은 차까지 500그램을 샀다. 차 100그램은 주로 차 한 통 정도이다. 차 5통에 천 위안(약12만5천원)이니 오늘은 허리가 휜다. 아직 다력(茶歷)이 일천(日淺)한 다우들에게 혹 부담을 주는 게 아닌가 하면서도 과감하게 샀다. 너무 비싸다고 마다하면 내가 다 마셔야지 하는 차 욕심이 앞선다.
항조우 하면 룽징, 룽징하면 항조우를 떠올린다. 강남의 부호들이 가장 좋아하는 차가 룽징이다. 아니 하나가 더 있는데 삐뤄춘(碧螺春)이다. 이건 항조우의 라이벌 쑤조우의 차다. 한국의 영호남만큼이나 항, 쑤의 반목도 뿌리깊다. 항조우는 월나라고 쑤조우는 오나라였다. 오월동주(吳越同舟)란 고사도 있지 않은가? 오월의 각축에서 월나라가 최후 승리를 했듯이 차도 룽징이 삐뤄춘에 판정승을 거둔 형국이다. 필자에게도 룽징이 맞다.
항소가 풍년이면 천하가 족하단 말이 있을 만큼 이곳은 곡창 중의 곡창이다. 인심은 넉넉하고 부자는 즐비하다. 하늘에 천당이 있다면 땅에는 항소가 있단 소리가 단적인 표현이다. 이렇게 아름다운 경치 속에서 부드러운 비단 옷을 입고 향기로운 롱징차를 마시면서…. 상상만 해도 강남의 정취가 살아온다.
14. 마치는 글
칭다오로 돌아오는 버스는 저녁 7시 40분이다. 동부터미널 부근의 작은 시장에서 귤은 한 봉지 샀다. 한 근(500그램)에 2원40전이었는데 칭다오 가격이나 진배 없었다. 남방치곤 비싼 가격이었는데, 시장을 뒷길로 돌아 나오다가 1근에 1원짜리 귤을 보고 배가 좀 아팠다. 약국에서 쓸 비닐 봉투를 좀 사서 버스에 올랐다. 칭다오엔 아직 이렇게 질 좋은 비닐 봉투가 없다.
버스는 역시 2층 침대 버스로 아주 호화로왔다. 운전기사도 차장도 신사적이었고 승객들도 아주 깨끗했다. 눕자 말자 잤는데 일어나니 벌써 리자오(日照)다. 잠시 정신을 가다듬자 하마 조난(㬵南)이다. 운전기사에게 황다오(黃島)에 내려달라고 부탁했다. 고속도로로 오기 때문에 불가능하단 소리다. 몇 번 항의를 했으나 규칙이 그러니 어쩔 수 없단다.
칭다오 쓰팡(四方) 창투잔(長途站)에 도착한 시간은 아침 7시 30분이었다. 10시간 걸린 셈이다. 야간이라 그런지 예정보다 2시간은 당겼다. 오늘은 황다오 언어문화센터에서 다도 강좌가 있는 날이다. 아무리 힘들더라도 약속은 약속!
첫댓글 복도 많으십니다.인술에다 문재까지... 직접 다녀온것 같은 착각이...완급조절 굿입니다요.군더더기 없읍니다요. 한마디로 롱징차 맛입니다요.서호용정^^
감사합니다. 언제 여유 되시면 같이 떠나시죠. ^^
ㅎㅎ 즐겁게 읽었습니다. 특히 기차 탔던 내용을 보니 예전에 우루무치에서 시안까지 오는 기차를 타고 왔었던 일이 생각나서 즐거웠습니다. 저도 그땐 33시간을 타고 왔었는데 많은 중국인들과 외국 여행객들과 즐거운 대화는 비행기와는 또다른 매력을 가지게 하지요.
아...우루무치. 실크로드의 색다른 정취와 벽안의 미녀들.... 언제 시간 되시면 여행이나 ....
잘 읽었습니다. 경덕진 가실때 한 번 데려가 주실 수 있는지요? 부탁해요.
이번 4월 중순에 경덕진, 의흥을 다녀올 예정입니다. 가능하시다면 같이 가시죠.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혼자서도 누빌 수 있는 여행, 부럽습니다. 사진만 곁들였다면 한권의 여행기를 읽었을텐데요^^ 참 재미있었습니다.
졸필을 그렇게 봐주시니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언제 좋은 차 마시면서 세월 이야기를 한번 하고 싶네요.
새파람님,감사합니다. 제가 14일까지 끝내야 하는 일이 있는데 그 안에 예정대로 끝이 나면 바로 청도로 가겠습니다. 계속 연락드리겠습니다. 내내건강하시길 빕니다.
아웅~~~ 바쁨 속에 떠날 수 있는 그 마음의 여유~ 배우고픈 부분입니다......즐감&감사
사진이 있었다면 더 좋았을텐데............
5월 21일에서 26일 사이 차구를 사러 한 차례 다닐 예정입니다. 의흥(자사호), 항주(차구),안계(차구) 그리고 단계(단계석 차판) 등지를 다닐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