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天主敎搖籃地 퇴강성당
*.2013.6.4 화 *.상주터미널-경천대-상주박물관-퇴강성당-상풍교-삼강주막-풍양(성당)-풍천초등-내고향풍덕-산선 중동면 금암2동(다래)-1동(길마을)-낙동-상주 *.시나피스 & 시나브로
그동안 정들었던 애마 Trek-6500D을 울산으로 분양시키고 친구녀석 BLACKCAT 임팩트익스퍼트를 잠시빌렸다. 2011년 9월경에 구입했으니 약20개월 동안 신나게 싸돌아 다녔던 트랙. 이 잔차로 mtb가 무엇인지 조금은 알아가고 있는 중에 어느 날 지름신이 나에게 강림하사 나의 이성을 마비시키고 급기야는 혼돈에 휩싸이매 도저히 나의 두뇌까지 통제능력을 상실시키는 지경에 이르렀으니 "까이꺼~~~"하며 두 눈 질끔 감고 분양시켜 버렸던 것이다. 새로 들어올 나의 애마를 대충 마음 속으로 찜 해 둔 상태에 친구녀석 블랙캣으로 원정 잔차질을 나섰다.
조암산 자락 아래 낙동강의 옛 퇴강나루터 인근에 위치한 퇴강성당! 일제 강점기부터 오랫동안 내 고향 풍덕공소 본당이었던 퇴강성당을 내 친구 시나피스와 함께 잔차로 순례를 떠난 것이다. 경상도 북부지역 최초의 성당이며 1924년에 신축되어 1957년에 현재의 건물로 개축한 고딕양식의 십자형건물로서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성당이다.
특이한건 외부의 선교사에 의해서 성당이 생겨난 것이 아니라 퇴강마을(물미마을) 사람들이 자진해서 천주교를 받아들였다는 사실인데 1903년 공소의 모습으로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기록에 의하면(예천천주교회 50년사) 내 고향 풍덕공소가 1909년에 공소가 생겨났으니 아마 경상도 북부지역에 1900년대 초에 비슷하게 천주교를 받아들였던 것으로 보인다. (물론 집안 어르신들 말씀에 의하면 1800년 후반부터 윗대에서 천주교를 믿었다고 한다.) 1922년 공소가 퇴강성당으로 승격되었다가 1967년 산업화와 더불어 공소로 되었다. 그후 공소설정 100년이 된 시점에 다시 퇴강물미성당으로 승격되어 오늘까지 이르러고 있다. 퇴강마을은 김해김씨 집성촌이기도 하다.
당시의 교우들은 근동지역 같은 교우끼리 혼사를 오고갔던 사실에 비추어 보면 나의 고모님이 이곳 퇴강으로 시집 갔던 것도 어찌보면 지극히 당연한 일이리라. (고모님 자녀가 사제가 되셨는데 어떤 연유로 환속을 하여 미국으로 이민을 가셨는데 그곳에서 쌍둥이 형제를 두고 돌아가셨으며 두 형제는 미국에서 의사로 활동 중임)
상주에서 경천대. 상주박물관을 거쳐 국토종주 새재자전거길(상풍교-충주 탄금대)을 따라 퇴강성당으로 힘찬 패달짓을 한다. 날씨 또한 그만이다. 좀 무덥다 싶으면 어김없이 낙동강 시원한 강바람이 불어주니 그 또한 은총의 바람이어라.
Ave Verum(모차르트 성가곡) - Annie Haslam
상주시내 계림동성당에 잠시 들러 성체로배로 오늘 순례를 보고(?)드린다.
2011년도 가을에 이곳에 들렀다. 역시 시나피스와 함께... 경천대. 상주보.자전거박물관을 구경하고 내 누이동생이 있는 상주가르멜수녀원을 방문했었다.
교우이신 할어버지와 함께
이 작은 고을에서 이렇게나 많은 성직자와 수도자가 배출되었다. 신앙의 요람지라 불리기에 전혀 손색이 없구나.
퇴강성당을 나설려는데 성당입구에서 할머니를 만났다. 성당마당 물미정에 앉아서 옛날 이야기를 한참이나 들었다. 현재 이마을에 1가구만 빼고 전체가 교우집안이란다. 6.25동란때 강 건너 인민군이 총을 쏘아서 이전 한옥성당이 총알에 구멍이 숭숭 나서 전쟁후 현재 성당을 신축하였는데 당시 할머니께서 벽돌을 나르고 부인회(당시 부인회 회장이셨다함)에서 성당신축 기금도 마련하시고 온 교우가 합심하여 아름다운 고딕양식 성전을 봉헌하셨다네. 고모님 이야기를 하니 잘 모르신다고. 아들처럼 살갑게 대해주시는 할머니께서 집으로 가셔서 약수도 두 통 주시면서 조심해서 가라 이르신다. (본명을 잊어버렸다. 할머니 죄송합니다.)
상주와 풍양을 잇는 상풍교 옛날에는 이곳이 나루터 였으며 "원시뱃가"라고 불리었다. 아주 어릴때 외할머니와 이곳 원시뱃가에서 나룻배를 타고 건너 점촌 외가댁까지 하염없이 걸어갔던 기억이 희미하게 떠오른다. 나룻터에 주막이 있어 외할머니께서 아주 달게 막걸리 한 대접 드셨다. 이젠 "낙동강 강바람에 ...."하며 노 젖는 뱃사공의 노래도 잊혀져 버린지 오래 되었으니 속절없이 세월만 타박하며 나무랜다.
이제 이 다리만 건너면 내고향 풍양이 나올터...그리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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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어릴적 신앙이없든시절 그래도 물미에서 신부님이 오시면 그때 서양신부님입어셨든 수단 냄새가좋아서 졸졸졸 따라다니고 사냥터엘 따라가본 기억이 나내요 당시 다래는 구호물자신자가많았지요 구교신자분들도 몇있었지만 우리 김가내 집안만 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