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라망카
살라망카는 토르메스 강 북쪽 기슭의 해발 778m 지대에 자리잡고 있으며 스페인에서 가장
유서 깊고 예술적인
도시이다. 8~11세기에 그리스도교도들과 무어인들 사이의 전쟁터가 되었으며,
1087~1102년 그리스도교도들이 다시 이주해왔다. 1178년
레온의 페르난도 2세가 이곳에서
의회를 소집했으며, 왕국에서 2번째로 이곳에 푸에로(특권)를
칙허했다.
로마네스크 양식의 구(舊)대성당(1140경 착공)과 신(新)대성당(1513 착공, 18세기
완공)을 비롯해
유서 깊고 훌륭한 유적들이 많이 있다. 회랑이
있는 아름다운 마요르 광장은 지금도 이 도시의
중심지이다. 농업 중심지(곡물)이며 공장이 몇 개 있으나, 관광업이
경제에서 가장 큰 몫을 차지한다.
살라망카 대성당
살라망카인들이 가장 자부심을가지고있는 살라망카 아니야 광장에 위치한 신,구 대성당은
12세기 초에 착공하여 13세기에 완공한 구 대성당과 1513년부터1560년에 걸쳐 구 대성당을 덮어씌우듯 증축한 신 대성당이다. 스페인 르네상스시대의 유명한 그림과 조각
건축양식이 높은 평가를 받고있다
▲ 비에하 구 성당
옛 대성당은 초기 고딕 양식으로 이행하는 시기의 건물이며, 12세기
초에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짓기 시작했는데, 13세기에 완성되었을 때에는 일부분이 고딕 양식으로 바뀌었다.
에스파냐인은 물론 프랑스인과 이탈리아인까지 건설에 관여한 이 대성당은 삼랑식 구조이다.
레온 지방 남부에 현존하는 같은 시기의 성당 가운데서 가장 대규모이다. 호화로운 장식이
새겨진 익랑의 탑, 비잔틴 양식의 ‘수탉의 탑’, 라베가의 처녀상’ 따위가 유명하다. ‘
라베가의 처녀상’은 눈에
진주가 박혀있는 등 예술적인 세공이 돋보인다. 50매가 넘는
그림으로 구성된 제단 장식화와 후진 윗부분의
둥근 지붕에 그려진 이탈리아풍의
프레스코화는 모두 니콜라스 플로렌티노 작품이다.
53개로 된 제단 양식으로 이 제단에는 스페인의 영웅인 엘시드가 이슬람과의 전쟁중
가지고 다녔다는 싸우는 그리스도의 그림이 이
거대한 제단에 숨겨 그려져 있다 한다.
추리게라 양식으로 일컬어진 제단 장식은 그 양식답게 구석
구석까지 촘촘하고
화려하게 장식되 있으며 바로크 양식과 로코코양식의 한갈래다. 추리게라
집안의 3형제는 모두 당대 유명한 건축가로 활동하고 있었으며 꽃장식,
박공벽, 물결치는 처마와 난간,
회반죽 피막들이 그 대표적 예다.
▲ 유럽에서 제일
오래된 오르간 중 하나인 이 오르간은 16세기 무데하르 양식 작품이다.
무데하르 양식이란 레콩키스타 이후에도 돌아가지 않고 스페인에 남은 무슬림에 의해
기존 로마네스크, 고딕에 이슬람의 예술을 믹스해 복잡함과
정교함이 특징이다
▲ 이탈리아 화가 폴로렌티노가 그린 신대성당의 천정 프레스코화
천정에는 외부의 태양빛이 고스란히 들어와 빛을 받을 수 있도록 설계 되있는 다른 부분과
달리 유독
환하게 보인다. 최후의 심판 모습을 프레스코화로 나타내고 있으며 살라망카의 수호성인인 12세기의 베가성모상이 그려져 있다.
▲16세기부터 건축된 신 대성당 산에스테반
수도원
신 대성당
1513년 아라곤의 페르난도 2세에 의해 건축되기 시작한 성당은 이후 200년에 걸쳐 완공된다.
페르난도 2세는 이사벨라 여왕의 부군이자 콜럼버스에게 자금을
대 신세계를 개척하게 한 왕이다.
이곳의 이름이 신-구 대성당이 된 것은 12세기에 우선 건축되었던 대성당을 구 대성당이라 부르며 후에 16세기
새로운 대성당을 기존의 대성당 옆에 다시 건축해 이를 신 대성당이라 한다.
살라망카에는 대성당이 2개가 있다. 사실 두 성당이 맞닿아 있기 때문에 구분하기가 어렵지만
그 두 성당은 ‘오래된 성당(Catedral Vieja)’과 ‘새 성당(Catedral Nueva)’이다. 12세기에 짓기
시작에서 14세기경에 완성된 로마네스크와 고딕양식이
합쳐진 성당이 ‘오래된 성당’이고,
16세기에서 18세기에
지어진 성당이 ‘새 성당’이다.
▲ 산 에스테반 수도원(Iglesia de San Esteban)
이곳은 살라망까에서 가장 중요한 곳의 하나로 보존상태가 매우 좋으며,
대부분의
이곳 출신의 신학자들은 살라망까 대학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다.
1524년 건축되기
시작하였으며 1610년에 완공되었다.
이 수도원은 예배당과 사이드 도어, 수도원, 세개의 안뜰로 구성되어 있다. 고딕양식에서
플라테스크 양식까지 다양한
건축양식이 혼합된 곳으로 곳곳에서 특유의 건축 양식을 찿을 수 있다.
▲ 마요르 광장(Plaza de major) 조개의
집
살라망카의 중앙광장이며 스페인에서 가장 아름다운 광장으로 여겨 지고 있다.
넓은 뜰을 가운데로 하여 주변으로 장방형의 바로크 4층 건물들이
들어서 있고
사방으로 길이 나있어 18세기 이후부터 시민들의 모든 활동의 중심지요 번화가이다.
노란 사암(沙岩: sand
stone) 위에 복잡한 부조를 그린 벽면과 전면 옥상에는
역대 왕들의 입상이 세워져 있고 아래층 음식점들은 밤낮으로 붐빈다.
▲ 조개의 집
벽면에 조개들이 붙어 있어 조개의
집(Case de las Conchas)으로 불리는 건물로
예전 순례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산티아고 기사단의 집이며 순례자들이
이 곳에서 쉬어갔다고 한다. 15세기에 지어진 이곳은 현재 도서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 살라망카 대학 해골 머리 위에 붙은
개구리
1218년 알폰소 9세
때 설립되었지만 실제적으로는 그의 손자인 알폰소 10세에 의해
1254년의 교회법강좌 3개와 각기 부설된 문법·인문·물리학 강좌로 출발했다.
16세기말까지 살라망카대학교는 파리·볼로냐·옥스퍼드 대학교와 함께
유럽에서 배움의 중심지였다. 프란시스코 데 비토리아는 1526~46년 국제법의 기본원리에 관한 강의를 했다. 학자이자 시인인 루이스 데 레온이 이단으로 몰려 종교재판소에 서게 되었던 1572~76년의 4년간을 제외하고 1561년부터 그가 죽은 해인 1591년까지 강의했다.
19세기초 나폴레옹의 패배로 에스파냐 점령이 끝날 무렵 프랑스군에
의해 살라망카대학교 건물의 1/4가량이 파괴되었다. 1835년까지
교회에서 관리했다가 나중에 종교에서 분리되었다.
현재 철학·문학·법학·과학·의학·약학 등의 학과가 개설되어 있다.신대성당 맞은편에 있는 대학교의
본관(1415~33)은 플래터레스크 양식의 아름다운 서쪽 정면(1494)으로
유명하다.
▲ 해골 머리 위에 붙은 개구리
살라망카 대학 정문에는 개구리 조각이 있는데, 이를 찾으면
이 대학에 합격한다는 설이 있다고... 파샤드
우측 일단 기둥 상측에 해골 3개가 조각되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
중에서도 한 해골 머리 위에 툭 튀어나온 조각 하나를 볼 수 있는데 이것이 그 유명한 살라망카
대학의 개구리다.
한때 이 개구리를 찾아야 살라망카 대학에 입학
할 수 있다는 설(성경 속에 나오는 7가지 죄악 중 음욕(淫慾:
lust)에 해당하는 것임으로, 학문 탐구 중 음욕은 금기라는 교훈에서 입학한 신입생들이
반드시 찾아 내야 입학등록이 허락 된다는 속설)도 있었는데...
이는 단지 재밌는 우스개 소리일뿐이다. 이 개구리는 상징하는
것이 있다.
개구리는 뒷걸음질을 못한다. 그런 특성을 학문과 연결한
것으로 항상 열심이 학문을 갈고
닦아 앞으로
전진하라는 의미를 이 해골 위에 새겨놓은 것이다.
아침 일찍 마드리드에서 살라망카로 갑니다. 하늘이 정말 멋있네요
스페인에서 가장 아름다운 광장이라는 살라망카 마요르 광장
행사 준비 때문에 광장 안으는 들어 가지 못하고...
관광객이많군요
마요르 광장 밖으로 나가 봅니다
다른 도시와 별반 다른게 없네요
콜럼버스는 여기서도 유명 한가 봅니다
마요르 광장 다른 족으로 나가 봅니다
대성당이 너무 커서.....
조개의 집입니다
대성당이 엄청 크죠
아름다운 대성당 입구
대성당 부조의 우주인 과 고양이(?) 성당을 수선 하면서 살라망카 대학생이 재미로 만들었다는 이야기
살라망카대학교의 어느 단과대학 이겠죠
1000년이 넘었다는 옛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