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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2차화성타운에는 대구의 다른 여느 아파트 단지와 다른 독특함이 있다. 주민들의 자발적인 강좌가 바로 그것. 그래서 성서2차화성타운 주민들은 배움의 공동체라 할 수 있다. 수강료를 내고 듣는 전문 학원과는 비교할 수 없겠지만, 강좌를 통해 주민들은 자연스레 이웃 간의 정을 두둑히 쌓고 있다. 지난 23일 오후 8시 입주자 대표 회의실. 김태달(79) 할아버지가 칠판에 일본어를 술술 써내려간다. 검버섯이 핀 지긋한 연세에도 준비한 과제를 꼼꼼히 읽어나가는 모습이 무척 의욕에 넘친다. 참석자들 또한 진지한 표정이다. 모두들 김 할아버지를 뚫어지게 쳐다보자 과묵하던 김 할아버지가 우스갯소리를 한다. “젊은 처자들이 쳐다보니 겁나네. 얼굴이 붉어지겠어.” 회의실에선 웃음보가 터져나온다. 일본어 강좌는 시종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진행됐다. 김 할아버지가 일본어 전문 교육을 받은 것은 아니다. 70년 전 일제시대 때 보통학교에서 8년 동안 일본어를 배운게 고작이다. 그래도 김 할아버지는 일본인을 만나면 어렵지 않게 의사 소통을 할 만큼 일본어에 자신있다. 김 할아버지의 수업은 간단하다. 평소 생활 속에 꼭 필요한 시나 문장 등을 미리 챙겨 복사한 뒤 그걸 읽고 해석하는 정도. 그렇다고 수준을 얕잡아 보면 안된다. 김 할아버지는 “보통 전문학원에 가면 중급 정도는 될 것”이라고 했다. 김 할아버지가 아파트 주민들을 상대로 일본어 강좌를 시작한지도 벌써 5년째. 일주일에 세 차례 꼬박꼬박 수업을 하기란 그리 녹록치 않은 일이다. 김 할아버지는 “그저 심심하기도 하고 뭔가 이웃들을 위해 소일이라도 해보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김덕재(58) 입주자 대표 회장은 “어느날 문득 할아버지가 찾아왔더라구요. 김 할아버지는 무척 열성적이죠. 얼마 전까지는 아파트 앞에서 교통정리도 몇 년째 해왔어요”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지금껏 꾸준히 김 할아버지의 수업을 들었다는 김용규(43)씨도 한마디 거든다. “할아버지가 여태껏 우리들을 위해 수업을 한다는게 무척 고맙죠. 실력을 키우는 것은 둘째 치더라도 정겨운 이웃 할아버지와 더불어 무언가 한다는 것이 보기 좋지 않나요.” 정준모(57)씨는 “학원을 다니면 시간 맞추기도 어렵잖아요. 김 할아버지 수업은 분위기도 훨 부드럽고 편해서 좋아요”라고 맞장구를 친다. 정씨는 직장 업무상 필요해서 배웠는데 은근히 도움이 많이 되고 있다고 했다. 2년 전부터 일본 여행을 하려고 수강한다는 정숙희(46`여)씨는 “할아버지의 구수한 인생 이야기도 듣고 수업이 끝난 뒤 아줌마들과 차 한잔 마시고 이런저런 얘기 나누는 재미로 거의 빼먹지 않으려고 해요”라고 말했다. 정씨는 틈틈이 복습도 할 만큼 수업에 애착을 갖고 있단다. 하지만 김 할아버지는 요즘 들어 걱정이 생겼다. 초창기만 해도 30명은 족히 넘었던 수강생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기 때문. 이날은 수강생이 고작 9명에 불과했다. 김 할아버지는 “별 실력도 없는데 내 수업을 들어주는 것만이라도 고맙지”라고 겸손한 한마디를 하지만 표정은 씁쓸함을 감추지 못한다. 5년 동안 오롯이 이어온 것도 수강생들의 적극적인 호응이 있었던 덕분인데 이제는 조금씩 김이 빠지기도 한다고. “차츰차츰 수업의 난이도를 높여 나가다보니 새 입주자들이 못 따라오는 것도 이유 중에 하나지. 그렇다고 계속 초급을 가르칠 수도 없고 말야.” 김 할아버지는 좀 더 많은 주민들의 참여를 바랐다. 이 아파트에는 일본어 강좌 말고 또 다른 강좌가 있다. 다도 강좌다. 일본어 강좌처럼 정기적인 교육은 아니지만 부녀회 아줌마들에겐 인기가 높다. 다도 전문 교육을 2년6개월간 받은 김순애(50`여)씨가 7년 전부터 부녀회 모임이 있을 때마다 짬짬히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원래 아파트가 어찌보면 삭막하잖아요. 모두 다 마음은 있지만 서로 살기가 바빠 다함께 모이기도 쉽지 않고요. 한달에 한차례라도 부녀회 모임이 있는 날이면 다도를 이것저것 알려주면서 친분을 키우죠.” 김씨는 모두 빙 둘러앉아 차를 마시면서 다도를 배우면 모임 분위기도 숙연해진다고 했다. 서춘선(53`여)씨가 김씨를 추켜세웠다. “여자들 모이면 무척 시끄럽잖아요. 하지만 다도를 배우고 나면 모두들 차분해지고 마음도 여유로와져요.” 심재영(43`여)씨도 다도 강좌가 무척 유익하다고 거든다. “김씨가 가르치는 예절은 모두가 일상 생활에 꼭 필요한 것 같아요. 관혼상제처럼 요즘 사람들이 어려워하는 갖가지 절차도 배울 수 있고요. 남편하고 같이 차를 마시면서 아는 체도 좀 합니다.” 요즘은 병암서원에서 무료로 다도나 생활예절 등을 가르치고 있다는 김씨는 “별 것은 아니지만 이웃 주민들이 원하면 언제든지 봉사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
이웃이란 말은 2차화성타운 입주민들 사이에만 통하는 것이 아니다. 이곳 주민들은 저 멀리 경남 함양군 병곡면 연서리 40가구 주민들과도 끈끈한 정을 나누고 있다. 4년 전 함양 연서리에 이곳 아파트 주민의 사돈댁이 살고 있는 것이 인연이 되어 그곳 주민들과 자매결연을 맺고 꾸준히 교류해 오고 있다. 농산물 직거래가 자매결연의 가장 큰 목적이지만 그것만으로는 이웃이라는 말에 손색이 있을 수 있겠다. 아파트 주민과 연서리 주민들은 매년 정기적으로 만남을 갖고 있다. 올해 어버이날에는 아파트 주민 40여 명이 함양 연서리를 찾아가 현장 체험도 하고 그곳 주민들에게 위로금도 건넸다. 매년 5월 고사리축제나 9월 약초축제 등 행사가 있을 때 아파트 주민들은 버스를 빌려 연서리를 방문한다. 그 뿐 아니다. 해마다 한 차례 정도 연서리 주민들을 대구로 초대해 팔공산이나 관광지를 구경시켜 준다. 최준영(41`여)씨는 “확실히 농촌 주민들이 순박하고 정이 많다. 한번씩 농촌 체험에 따라가면 이 세상이 더불어 산다는 걸 새삼 느낀다”라며 흐뭇해했다. 이렇듯 오랫동안 친분을 쌓다보니 농산물 만큼은 아무 걱정 없이 구입할 수 있다고 했다. 이영미(50`여)씨는 “우리는 시중처럼 품질이나 가격을 의심할 필요가 없다. 절대 믿고 구입하고 있다”라고 말한다. 실제로 함양 연서리에서 수시로 열리는 직거래장에서는 개장 직후 보통 1시간이면 농산물이 동이 날 정도다. 아파트 주민들도 품질이 좋다는 것을 몸소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아파트 주민 김은희(48`여)씨는 “가격도 일반 대형소매점보다 싸고 품질도 확실하니까 자꾸 찾는다”라고 말했다. 일부는 직거래장이 열릴 때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개인적으로 연락을 해 농산물을 택배로 받기도 한다. 김덕재(58) 입주자 대표 회장은 “올 3월에는 농협의 중재로 마늘로 유명한 의성군 사곡면 신리 주민들과도 자매 결연을 맺었다. 요즘 농촌이 어렵다 하지 않나. 이렇게 하면 농촌도 좋고 우리도 좋은 거다. 앞으로 다른 농촌과도 자매 결연을 늘려나갈 생각”이라고 말했다. ◇ 박수경 부녀회 부회장 “시골 동네 같이 오붓한 분위기의 아파트.” 박수경(46`여) 성서2차화성타운 부녀회 부회장은 자기 아파트단지를 그렇게 표현했다. 565세대. 대단위 아파트 단지와 비교하면 작은 단지이지만 오히려 그 점이 가족같은 분위기를 연출하게 한다는 것. 자연스레 ‘이웃 사촌’이란 말이 나올 정도란다. 아파트 생활이란 것이 옆집에 누가 사는지 모를 정도로 삭막해질 수도 있지만 이곳에서는 그런 이야기가 발 붙이지 못한다. “우리는 옆집에 사소한 것까지 알아요. 가끔씩 사생활을 보호해달라고 너스레를 떠는 주민들도 있다니까요.” 하루가 멀다 하고 주민들 20여 명이 뭉쳐 인근 와룡산을 오르락내리락 한다고 박 부회장은 말했다. 박 부회장은 “먼저 이사를 가면 10만 원 벌금을 내고 가야 한다는 계약도 맺었다”라며 웃었다. 단합은 두 말할 필요가 없단다. 박 부회장은 ”부녀회 회장이 모이라고 한마디만 뻥긋하면 모두 빈말 않고 우르르 모인다”라고 했다. 올 5월에 자매 결연을 맺은 함양 연서리에 갈 때도 바쁜 와중에 40명은 훌쩍 넘는 주민들이 참여했다. 부녀회 이외에도 각 동 라인별로 한 달에 한 번 정도 정기모임을 갖거나 회식도 한다. 1997년 지어진 뒤로 새로 입주하는 주민이 전체의 0.5% 정도밖에 안되는 것도 자랑거리다. “이웃간의 정분도 이유가 되겠지만 입지 여건이 환상적이죠. 걸어서 5분 거리에 학교, 대형소매점, 스포츠센터, 지하철역 등 없는게 없어요. 풍수지리학적으로 터가 좋다는 얘기를 종종 들었어요.” 주민들은 관리사무소 직원들과도 터없이 지낸다. 보통 용역을 주는 다른 아파트와 달리 직영으로 하다 보니 직원들이 가족 같다고 했다. 매년 한차례 우수 직원을 뽑아 봉사상을 주기도 한다. “아무리 아파트가 시설이 좋고 크면 뭐해요. 우리같이 서로 챙겨주고 정을 나누어야 살 맛이 나지 않겠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