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타산(彌陀山 )은 아미타 부처의 기운이 서린 산으로, 미타(彌陀)란 서방 정토의 극락세계에 머물면서 불법을 설한다는 대승 불교의 부처를 말한다.
거기다 통일신라때 창건된, 1300년이 넘은 고찰 유학사를 끼고 있다.
또 고려시대 무인정권기에 최충헌이 이 산에 머무르던 이의민을 척살한, 격랑의 역사 현장이기도 하다.
의령을 대표하는 산은 자굴산과 한우산이지만 의령 자랑은 땅 전체를 펼쳐놓으면서 시작되어야 한다.
남쪽으론 물을 두고 북쪽으로 산을 등졌으니 전형적인 '배산임수(背山臨水)'로 명당이라는 것이다.
나라에서 손꼽히는 부자들이 의령에서 태어난 게 의령땅에 서린 기운 덕(德)이란다.
호암 이병철(1910~1987)은 삼성그룹 창립자로 '돈병철'로 불렸다.
1938년 삼성상회를 세워 무역업을 했으며, 삼성물산과 제일제당, 제일모직을 설립했다.
동양라디오와 동양방송, 그리고 중앙일보도 창간했다.
이 나라 현대사에서 권력과 재벌 관계는 늘 짜고 치는 고스톱으로, 1966년 '사카린 밀수 사건'에서부터 50년이 지난 지금까지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요원하였다.
오늘 뉴스에 권력과 결탁한 죗가로 이재용 회장이 양손에 수갑을 차고 영어의 몸이 됐다.
반면 백산 안희제(1885~1943)는 같은 부지였지만 사뭇 다르다.
부림면에서 태어난 안희제는 어릴 때 한학과 함께 일찍이 신학문도 접한다.
독립운동단체 '대동청년단'을 조직한 뒤 1911년 블라디보스토크로 건너가 모스크바·만주 등에서 활동하다 독립운동 자금을 조달하고자 귀국한다.
부산에서 '백산상회'를 설립한 안희제는 1919년 자본금 100만 원을 들여 '백산무역주식회사'로 회사를 키워 독립운동 자금공급원과 연락처로 삼아
교육·언론 등을 통해 끊임없이 항일투쟁을 이어갔다.
조선어학회사건과 만주 대종교단사건으로 구금돼 옥고를 치르다 1943년 죽음을 맞았다.
군북 IC에서 빠져 나와 의령으로 향하면 남강과 마주친다.
이 남강이 의령과 함안을 가르는 경계로 정암교 끄트머리 의령 쪽에 서 있는 문이 '의령관문'이다.
의령관문 옆 우뚝 솟은 기단 위에는 백마탄 붉은 옷의 '홍의장군(紅衣 將軍)' 곽재우의 늠름한 모습이 보인다.
의령은 '의병의 고장'이였다.
의령에서 가장 풍경이 빼어난 곳은 궁유면 일대이지만 이곳엔 기억하기 싫은 참상이 남아 있다.
1982년 궁류지서 우범곤 순경이 사사로운 일로 마을 사람들께 무차별 총질을 했다.
56명이 사망한 궁류면은 통째로 초상집이 됐다.
지난 날 부산일보 가이드 <유학사-칠공마을-불관사-산성-미타산-상사덤-묵방마을-유학사>를 따라 올랐기에 <☞ http://blog.daum.net/bok-hyun/369 >
이번에는 능선을 따르기로 하였다.
약 9km로 4시간이 걸렸다.
고도표
부산일보 가이드
국제신문 참고 개념도 <바람재→유학사 코스>
대형버스 주차도 가능한 유학사 주차장에 닿았다.
2~30m 전방에...
우측엔 다리 건너 유학사가 있고, 진입로는 직진이다. 앞에 보이는 작은 봉우리는 날머리 때 만나는 시루봉으로 바로 내려서는 길은 없다.
유학사 위의 주차장을 따라...
임도급 산길을 조금 따르면 좌측으로 시그널 몇 개가 나풀거리는 본격 산길로 갈아 탄다.
얼마간 된비알을 타다 만나는 묵은 임도에선 우측으로 산길을 잡는다.
그러다 만나는 좌측 오름길에서 이제 묵은 임도를 버리고...
대숲을 만나...
대숲을 관통.
밭둑 언덕배기에선 우측 으로 살짝 비켜 오르면...
밭을 지나 잘 가꿔진 묘지 위로 백화사를 보고 오른다.
묘지와 백화사를 보고 오르면...
예전 옻칠로 유명했던 칠공마을이 나온다. 우측으로 백화사가 있고, 우리는 좌측으로 향한다.
예전 부산일보 가이드를 따라 간 적이 있어 이번에는 칠공재에서 능선을 따르기로 하였는데, 일행들이 동행하는 바람에 거의 전원이 능선을 타게 된 셈이다.
좌측 포장도로를 따르면 정면에 나즈막한 능선이 마중하며 내려 앉는 게 보이는데, 바로 칠공재다.
포장 임도를 따라 칠공재 고개에 닿아...
반대편 좌측 산자락을 먼저 기웃거렸더니 길은 반듯하다. 이는 주차장 아랫쪽에서 능선으로 바로 붙는 길이 있으려나 이리저리 궁리해 봤기 때문.
능선으로 바로 붙을 수만 있다면 완벽한 코스가 되겠다.
칠공재에서 임도급 산길을 오른다.
콘테이너 부스를 지나고...
초계정씨 무덤을 지나고...
초계 정씨 비석.
완만한 경사를 높이면...
다시 초계 정ㅆ 무덤을 만난다. 이 지역은 초계 정씨의 세거지인가?
초계 정씨와 담양 전씨의 무덤.
다시 무덤을 만나...
무덤 위로 올라서서...
비석을 살펴보니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선조인 '광주 노씨와 창녕 조씨' 무덤이다.
명당자리 무덤 위에서 한동안 산하를 굽어보다...
갈 길을 재촉한다. 이 길은 면계(面界)로 봉수면과 부림면의 경계.
완만한 경사의 솔숲길을 따라...
일행들도 모두 뒤따라 올라왔다.
어느새 우측으로 부산일보 가이드가 안내한 코스의 토굴이 보인다.
좌측으로 국사봉 갈림길을 만나면 이 길은 천황산 경유 철쭉능선으로 소문이 나 있다.
우측으로 미타산성으로 가본다.
의령군은 부림면 미타산 일대 미타산성(기념물 제231호)을 복원하였다.
미타산성은 미타산(표고 662m) 정상부를 성내로 삼고 그 주변 9부 능선상에 체성을 배치한 테뫼식 석축성으로 성내에서 북쪽으로 초계분지가 내려 보이고
남동쪽에는 신반, 동쪽으로는 멀리 창녕, 서쪽으로는 천황산(표고 656m)과 국사봉(표고 688m), 남쪽으로 봉산(표고 563m)으로 둘러싸여 있다.
성은 지세에 맞추어 축조하였으므로 평면이 곡선적이다.
성내는 북쪽과 서쪽은 급경사지이며 동쪽과 남쪽은 비교적 평탄하다.
성바깥 역시 남쪽과 동쪽은 평탄하나 북쪽과 서쪽은 급경사를 이루고 있다.
성내에는 봉수대와 사지가 있으며 사지에는 현재 건물은 없고 초석과 샘물터만이 남아 있다.
그 외에 남동쪽 암문앞과 성내에 민가가 있다.
성내 곳곳에서 수습되는 기와편과 토기, 자기편을 참조한다면 상당 기간동안 사용된 성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현재 성내에는 정상부 넓은 평탄부 곳곳에서 기와편이 수습되고 있으며, 정북방향에 이번 조사에서 확인된 건물터가 있다.
조선시대 관방사 연구에 귀중한 유적이다. <자료>
성곽으로 올라...
안내판.
토굴지점을 헤아려 보다...
성곽을 따라 진행하면 좌측이 우리가 올라온 능선에서 올라 오는 길이고...
우측으로 정자를 지나 미타산을 직등하는 길.
우리는 좌측 성곽을 따라 '미타산 0.3km' 이정표를 따른다.
뻥 뚫린 조망이 우리를 기다린다. 마주 보이는 능선은 천왕산을 지나 국사봉으로 향하는 길. (자꾸만 기웃거려 보는 산길)
그 약간 좌측엔 두루뭉실 봉산의 모습이 드러난다. 그 뒤로 산성 한우 자굴산인가?
천황산과 국사봉 능선이 헌걸차다.
우에서 좌로 휘어지며 천황산과 국사봉 그리고 봉산까지...
또다른 전망바위에 오른다.
발 아래론 상홍사가 있고, 천황산 능선 우측으로 뻗어내린 능선은 대양면과 적중면의 면계
우리는 이 전망바위에서 쉽게 걸음을 뗄 수가 없었다.
천황산 국사봉의 헌걸찬 능선.
다시 또 전망바위에 섰다.
산하가 모두 발아래에 머물고 있으니...
지난번 다녀갔던 국사봉<☞ http://blog.daum.net/bok-hyun/438>과 잇고 싶은 간절한 욕구를 느낀다.
오래 전의 국제신문 국사봉과 미타산 잇기.
흠모하는 천황산 국사봉 능선.
미타산성을 좌로 에둘러 거꾸로 정상에 올랐더니 다시 트인 조망이 우리를 기다린다.
거대한 모습의 미타산 정상석.
.
정상 따스한 양지에서 정상주를 곁들인 식사를 하고 다시 등로를 이어간다.
임도급 산길을 조금 내려서면...
중요지점이 나온다. 좌측 언덕배기를 올라서면 상사바위가 있는 곳으로 국제신문의 가이드인 바람재 방향으로 내려서는 길.
빨간 화살표 방향으로 조금 내려서다...
좌측 언덕배기를 올라선다.
작은 능선을 따르다 전망바위에 올라선다. 맞은 편 철탑이 있는 곳에 상사덤(상사바위)이 보인다.
살짝 당겨본 상사바위.
전망바위에서 산하를 굽어본다. 눈아래 펼쳐지는 곳은 모두 어드메뇨?
발 아래엔 정동소류지.
두꺼비를 닮았나?
다시 전망대에 서고...
잇단 전망바위에 서면서 시간이 지체된다.
앞에 보이는 능선은 421.5봉이고, 우리가 진행할 능선은 우측 작은 봉우리(시루봉 412.1m)
쌍묘를 지나고...
우측 우리가 올라온 능선을 잡목 사이로 더듬어 본다.
창녕 조씨 합장묘를 지나고...
비석(창녕 조씨와 김해 김씨 합장묘)
시루봉(412m)을 앞에 두고 안부에 내려섰다.
바로 오르면 시루봉을 경유 묵방마을로 좌틀하여 내려서겠지만 우리는 이 안부에서 국제신문 근교산 가이드를 따라 좌측 계곡으로 내려서기로 했다..
좌측으로 90도 이상을 꺾으면 제법 반듯한 등로가 이어지지만 3~40m지점에서 우측 계곡으로 희미한 흔적을 따랐다.
이 길은 국제신문의 <바람재-유학사>코스가 내려 선 길.
물없는 건곡(乾谷)을 따르자니 철조망이 앞을 가로 막는다.
개구멍을 이용 통과하니 묵은 전답들의 모습이 나타난다.
아마도 먹고 살기 힘든 우리네 선조들의 힘든 삶의 여정이 아니었을까? 반듯한 수평을 이룬 전답과 두렁이 아마도 쌀을 생산하기 위한 논인 듯하다.
어라~ 다시 철조망을 통과한다. 그렇다면 아까의 철조망은 들어오는 것이었고, 지금은 나가는 철조망인기? 入出이 분명하다면 이 지역은 사유지인 듯.
농사를 짓기위한 소류지 역할을 했던 곳으로 보인다.
농사를 짓는 농지가 있었다면 농지로 통하는 길은 분명 있었을 터. 농지로 통하는 제법 반듯한 길은 찾는 이 없어 잡목 덩쿨이 엉켜 있어 애를 먹는다.
농로에 내려선 김해 김씨묘에서 묵방마을이 평화로이 또아리를 틀고 앉았다.
김해 김씨 비석
일행들이 내려섰을 포장 임도급 산길을 내려서니...
육각정자가 나오고...
개울을 건너면서 산길을 벗어난다.
묵방마을을 내려서면서 돌아보는 내려온 길. 정면의 두루뭉실 작은 봉우리는 시루봉이고, 세멘트 포장 산길은 무덤 갈림길에서 사면을 타고 내려 오는 길.
우리는 정화조 탱크 우측에서 벗어난 듯. 이쯤에서 결론은 시루봉을 올라선 뒤 무덤 갈림길에서 사면을 타고 내려서야 하는 게 정답인듯. 물론 철조망이 있는 그 길도 영 불가한 길은 아니지만...
철조망 안부(해발 약 340m)와 시루봉(410m)의 표고차가 불과 70m이다.
승용차만 다닐 수 있는 포장도로를 타고 내려서면 우측으로 사방공사가 이루어진 계곡들을 만난다.
그러다 만나는 유학사를 뒷쪽에서 접근을 한다.
새로 단장된 유학사의 가람들은 모두가 비까번쩍.
종각의 주련을 살핀다. 갑신중추(甲申仲秋) 율관거사(栗觀居士) 書.
율관 변창헌 선생은 일본에서 태어나 2010년 향년 80세로 타계한 부산의 대표적인 서예가.
1960년대 경남대학교 전신인 해인대학에서 근무하면서 설립자였던 효당 최범술 선생을 만나 서예와 인연을 맺었다.
탈속을 하지는 않았지만 불교와 깊은 인연을 맺어 최범술 선생의 수제자로 불리기도 했다.
원차종성변법계(願此鍾聲遍法界) 원컨대 이 종소리가 법계에 두루 퍼져서
철위유암실개명(鐵圍幽暗悉皆明) 철위산의 어두움이 모두 다 밝아지고,
삼도이고파도산(三途離苦破刀山) 삼악도의 고통을 여의고, 도산지옥이 부서지면
일체중생성정각(一切衆生成正覺) 일체 중생이 정각을 이루지어다.
“불자들은 종소리를 들을 때마다 모든 번뇌를 없애고 항상 밝은 부처님 지혜를 내도록 발원하고 정진해 맑은 사회를 이루는데 앞장서야 한다”
극락전을 올려다 보고...
당우들을 살피다...
유학사 편액을...
살작 당겨보니 낙관엔 2960 계유춘이다.
우리나라는 불교를 최초로 수입한 고구려 시대로부터 1962년까지 약 1300년 동안 석가부처의 탄생을 1027BCE, 입멸을 949BCE로 하는 북방불기를 사용했다.
이에 따르면 2015년이 불탄 3038년, 불멸(불기) 2960년이 되는 것이가?
북방불기의 기원에 대해서는 이래저래 자세히 알 길이 없다.
유학사 앞 다리를 건너며...
계곡 아래를 쳐다본다.
널따란 주차장에 덩그란 우리 보스. 우리 버스는 새로 계약을 하였다.
여름 피서철 다리 밑엔 피서지로 손색이 없어 뵌다.
다리 밑 고목 옆에 우리네 토속신앙의 흔적인 듯 돌탑이 보인다.
뜨끈한 떡꾹 한 그릇은 산행 후의 허기를 채우는 데 부족함이 없을 것.
새주소 도로명 '여배로5길'은 유학사~묵방마을인 듯.
‘본래 땅 위에는 길이 없었다.
한 사람이 먼저 가고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것이 곧 길이 되는 것이다.’
루쉰(魯迅, 중국 작가)의 소설 <고향>에서...
-봄-
기다리지 않아도 오고
기다림마저 잃었을 때에도 너는 온다
어디 뻘밭 구석이거나
썩은 물 웅덩이 같은 데를 기웃거리다가
한 눈 좀 팔고 싸움도 한 판 하고
지쳐 나자빠져 있다가
다급한 사연 듣고 달려간 바람이
흔들어 깨우면
눈 부비며 너는 더디게 온다
더디게 더디게 마침내 올 것이 온다
너를 보면 눈부셔
일어나 맞이할 수가 없다
입을 열어 외치지만 소리는 굳어
나는 아무 것도 미리 알릴 수가 없다
가까스로 두 팔을 벌려 껴안아 보는
너, 먼 데서 이기고 돌아온 사람아
<이 성 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