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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족함을 채우시는 은혜
요2장 1절 ~ 11절
사람은 누구나 풍성한 삶을 원합니다. 모자라게 사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문제는 풍성한 삶을 기대하는데 그렇게 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기왕이면 남보다 돈도 더 많았으면 좋겠고, 하는 일마다 보란 듯이 잘 되었으면 좋겠는데 내 맘대로 되지 않습니다. 평생을 노력해서 쌓아 놓은 사업이 하루아침에 무너집니다. 내 실수나 잘못이면 그래도 인정하겠는데 모기업이 부도가 나는 바람에 열심히 부품을 만들어 납품하던 하청회사가 그만 문을 닫습니다. 젊음을 바쳐 열심히 일한 죄 밖에 없는데 갑자기 회사가 문을 닫는 바람에 실직을 합니다. 구조조정에 휘말려 원치 않는 순간에 황당하게 퇴사를 합니다.
세계적인 경제 불황으로 우리나라는 지금 심각한 상황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이럴 때 정치하는 사람들이라도 정신을 차리고 백성들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주었으면 좋겠는데 신통치 않습니다. 매일 당리당략에 매여 싸움질만 합니다. 세상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 별로 웃을 일이 없습니다. 들려오는 소식마다 우울합니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기쁨을 잃어버리고, 웃음을 잃어 버렸습니다.
그런데 오늘 월드컵 경기에서 우리나라 선수들이 최선을 다해 1:1로 비겼습니다. 온 국민들이 환호하고 기뻐하고 있습니다.
성경본문에도 기쁨과 웃음을 잃어버린 혼인잔치 집의 모습을 봅니다. 예나 지금이나 잔치 집에는 풍악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모입니다. 먹거리가 풍성합니다. 그런데 혼인잔치 집에 예기치 못한 문제가 발생합니다. 포도주가 떨어진 것입니다. 요즘 같으면 빨리 대형 마트에 주문을 하든지 사오면 됩니다.
그러나 당시에는 그럴 형편이 아닙니다. 팔레스틴 지역에서는 혼인잔치가 벌어지면 보통 일주일은 잔치가 계속됩니다. 그리고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거의 2주 동안 잔치를 벌입니다. 그리고 그 잔치에서 가장 중요한 음식은 바로 포도주입니다. 왜냐하면 포도주는 기쁨의 상징이기 때문입니다.
유대교의 랍비들은 “포도주가 없으면 기쁨도 없다”고 가르칠 정도입니다. 그러므로 혼인잔치 집에서 이런 기쁨의 포도주가 떨어진다는 것은 매우 심각한 문제입니다. 주인의 입장에서 볼 때 이것은 엄청난 망신입니다. 이 사실을 눈치 챈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가 이 위기를 알립니다. 마침 그 혼인잔치에 참여하신 예수님께서는 맹물이 포도주로 변하는 첫 번째 이적을 통하여 모자람을 해결해 주십니다.
오늘 우리의 삶 속에서도 예기치 않은 순간에 모자람을 경험합니다. 돈이 모자랄 때도 있고, 지혜가 모자랄 때도 있습니다. 힘이 모자랄 때도 있고, 관계의 끈이 모자랄 때도 있습니다. 영적으로는 말씀의 능력, 기도의 능력이 모자랄 때가 있습니다. 오늘 우리의 모자람을 풍성하게 채우시는 은혜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말씀을 통해 그 비밀을 함께 배워서 모자람을 풍성함으로 채우시는 은혜를 누리시기를 축복합니다.
1,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해야 합니다.
혼인잔치를 벌인 주인은 많은 준비를 합니다. 음식도 준비하고, 무엇보다 중요한 포도주도 넉넉히 준비합니다. 드디어 잔치가 시작되고 초대받은 하객들이 몰려옵니다. 모든 사람들이 결혼을 축하하며 기쁨과 흥겨움이 넘칩니다. 그런데 갑자기 포도주가 떨어집니다. 그 이유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손님이 예상보다 많이 왔든지 아니면 포도주가 너무 맛이 있어서 필요 이상으로 많이 먹었든지 둘 중의 하나일 것입니다.
기쁨의 상징인 포도주가 떨어졌다는 것은 잔치의 파장을 의미합니다. 지금까지 극진하게 손님을 대접한 모든 노력이 헛수고가 됩니다. 오히려 사람 불러 놓고 포도주를 주지 않는다고 원성을 듣고 망신당할 상황입니다. 참으로 낭패스런 모습입니다.
우리들이 아무리 준비하고, 대처를 해도 예기치 않은 문제는 언제나 발생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자신의 힘과 능력을 믿고 의지하는 자에게는 진정한 기쁨이 지속될 수 없습니다. 우리들이 건강할 때는 무엇이라도 다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원치 않는 순간에 몸이 병들면 손가락조차 움직일 수 없는 것이 우리의 모습입니다.
우리가 돈이 있으면 뭐든지 다할 것 같지만 돈 역시 한 순간에 물거품처럼 사라질 수 있습니다. 세상의 힘만 있으면 다 될 것 같지만 그것 역시 신기루와 같습니다. 정권만 바뀌면 굴비 엮이듯 줄줄이 감옥으로 갑니다. 그래서 10년 전에도, 작년에도, 오늘도 끌려가는 정치인은 여전히 발생합니다. 그 일은 내일도 앞으로도 계속 나타날 것입니다.
그런 우리들이 내 힘과 능력으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얼마나 무지한 일일까요? 아직도 내 힘을 믿고, 주먹을 믿는 분이 있다면 겸허하게 주님 앞에 내려놓으시기를 바랍니다. 세상에서는 자기를 PR하고 자기 능력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사람들이 인정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는 최대한으로 자신을 낮추어야 합니다. 그것이 지혜입니다. 하나님 앞에서조차 자기 주먹을 휘두르고, 자기 힘을 자랑하면 그것이야말로 포크레인 앞에서 삽질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모자람은 결코 부끄러운 것이 아닙니다. 그것 때문에 열등감, 수치심의 노예로 살 필요가 없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오히려 기뻐하십니다. 내가 연약할수록 더욱 귀히 여기십니다.
사도바울은 자신의 육체의 가시를 빼달라고 간절히 기도합니다. 우리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사도바울처럼 충성된 일군이 어디 있습니까? 바울이 요청하지 않아도 하나님이 먼저 육체의 질고를 없애주는 것이 마땅해 보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바울의 기도에 응답하지 않습니다. 응답하시지 않았다기 보다는 더 좋은 길을 보여줍니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 짐이라.”(고후12:9)
바울은 주님의 음성을 듣고 오히려 크게 기뻐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여러 약함을 자랑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자신의 약함 속에 주님의 능력이 머문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사도 바울의 위대함입니다. 자신이 가장 약할 때 그 안에 계신 주님이 가장 강하게 역사하심을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깨닫는 것이 바로 우리의 모자람을 풍성하게 채우는 비결입니다. 세상은 강한 자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는 약육강식의 진화론적 사고에 매여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내가 연약할수록 더욱 귀하게 여기십니다. 우리의 약함 속에 주님은 더 큰 능력으로 역사하십니다. 약한 나를 통해 강한 자를 부끄럽게 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법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아직 내 힘으로 내 능력으로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고 믿는다면 이 시간 주님 앞에 모두 내려놓으십시오. 그리고 전능하신 주님 앞에 나의 약함과 모자람을 인정하시고, 맡기십시오. 내 힘과 결심으로는 그것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내 자신의 능력이 끝나는 그 순간이 바로 주님의 능력이 임하시는 때입니다. 내 힘과 능력으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한 주님은 기다리십니다.
주님은 약한 나를 강하게 하십니다. 가난한 날 얼마든지 부요하게 하십니다. 세상 욕심의 백태가 끼어 보지 못하는 우리의 영안을 열어 주의 영광을 보게 하십니다. 주님이 함께 하시면 위기의 순간이 기회가 됩니다. 물이 포도주로 바뀌는 역사가 나타납니다. 내 능력의 한계를 인정하고 주님 앞에 내려놓는 순간이 바로 하나님의 능력이 내 안에 임하시는 출발점입니다. 우리의 약함을 인정하고 주님 앞에 나의 모든 주권을 양도하는 순간 우리의 약함은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는 축복의 통로가 될 줄로 믿습니다.
2, 예수님의 능력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의 모자람을 풍성하게 채우는 두 번째 비결은 주님의 능력을 신뢰하는 믿음입니다. 기쁨의 잔치가 무르익어 가는데 가장 중요한 포도주가 떨어진 상황에서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만약 초대받은 사람들이 그 사실을 알았다면 그 찬치는 엉망이 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단 한 사람은 그 문제를 해결 할 수 있는 분이 있다는 것을 압니다. 그곳에 모인 사람들 가운데 예수님이 어떤 능력을 가지신 분인지 아는 사람은 없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그곳에 있었지만 사역의 초창기이기 때문에 자기들이 믿고 따르는 예수님이 그럴만한 능력이 있다는 것을 감히 상상조차 못한 상황입니다. 그러나 그 중에 한 사람만은 주님의 능력을 바르게 알고 믿고 있습니다. 주님의 어머니인 마리아입니다.
마리아는 주님께서 남자를 알지 못하던 처녀인 자신의 몸속에서 성령님의 능력으로 잉태되었기에 그 분이 하나님이 아들이심을 이미 알고 믿었습니다. 예수님은 비록 자신의 몸에서 나왔지만 하늘의 능력을 가지신 전능하신 하나님의 아들임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포도주가 모자란 상황에서 담대하게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요청한 것이죠. 잔치집의 모자람을 더 풍성하게 채운 비결은 바로 예수님의 능력을 신뢰한 마리아의 믿음에서 출발합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 우리 삶의 결핍과 부족을 풍성함으로 채울 수 있는 비결입니다.
우리는 종종 주님의 능력을 신뢰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내가 하지 못하면 내 안에 계신 주님도 할 수 없는 것처럼 여깁니다. 주님은 맹물을 가지고도 포도주를 만드실 수 있는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인간의 과학법칙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오늘 우리의 모자람을 채우는 비결은 예수님을 내 삶의 중심에 모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의 능력을 온전히 믿고 따르는데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불가능한 상황에서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굳게 믿었습니다. 로마서 4장 17-22절 말씀, 아브라함은 죽은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었습니다. 그는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랐습니다. 아내 사라의 몸이 백세가 되어 아이을 낳을 능력이 전혀 없다는 것을 알았지만 믿음이 약해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믿음이 견고하여 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약속하신 것을 능히 이루실 것을 확신했습니다. 하나님은 이것을 그의 의로 여기시고 약속하신 모든 것을 이루게 하셨습니다.
오늘 우리의 문제는 세상적인 모자람이 아니라 영적인 믿음의 결핍이 더 큰 문제입니다. 내 안에 계신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십니다.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무에서 유를 만드십니다. 풍랑이는 바다를 잠잠케 하십니다. 죽은 자를 살리십니다. 병든 자를 치유하십니다. 가난한 자를 부유하게 하십니다. 연약한 자에게 새 힘을 주십니다. 이 놀라운신 능력의 주님을 신뢰하십시오. 그리고 내 안에 있는 모든 모자람을 주님의 능력의 손에 올려드리십시오. 주님이 임하시는 순간 맹물이 포도주가 되는 역사가 나타날 줄 믿습니다.
3,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이런 놀라운 표적이 어떻게 이루어집니까? 주님은 하인들에게 항아리의 물을 떠서 연회장에게 가져다 줄 것을 지시합니다. 연회장은 잔칫집에서 제일 먼저 음식이나 포도주를 시식하거나 시음하는 자입니다. 여기서 연회장에게 필요한 것은 물이 아니라 포도주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포도주가 아닌 맹물을 떠다 주라고 합니다. 하인들은 연회장에게 가면 호통당할 일이 뻔합니다. 그러나 하인들은 두말없이 순종합니다. 논리적으로는 이해할 수 없지만, 합리적으로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그러나 믿음으로 순종합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순종하는 순간 물이 포도주가 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처음 것보다 더 좋은 포도주가 됩니다.
오늘 우리의 삶의 모자람을 채우는 비결은 바로 말씀에 대한 순종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능력을 믿는다면 우리의 믿음은 말씀에 대한 순종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말씀에 대한 순종이 결여된 믿음은 자기 신념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씀 앞에 정직해야 합니다. 좀 더디 가고 손해를 보더라도 말씀에 대한 신앙양심을 팔아서는 안됩니다. 그 때에 천치를 창조하신 주님의 능력이 우리의 삶을 통해 역사합니다. 말씀에 대한 순종이 없는 삶은 결국 자신의 뜻을 따르게 되고, 자기의 이기심을 채우는 도구로 예수님을 이용합니다. 결국 우리의 삶은 모자람이 채워지는 것이 아니라 더 큰 결핍으로 가는 발판이 되고 맙니다.
주님은 오늘 우리의 모자람의 현장으로 찾아오셔서 우리를 초청하십니다. 삶의 갈증 속에 시달리는 우리를 향하여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요7:37-38) 아멘!
아직도 먹어도 배부르지 못하고, 마셔도 갈증을 해결할 수 없는 세상의 기쁨을 추구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이 세상의 어떤 것도 진정한 기쁨을 줄 수 없습니다. 삶의 목마름을 해결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가진 세상의 포도주는 언젠가 모자랄 때가옵니다. 세상이 주는 기쁨과 쾌락은 반드시 안개처럼 사라집니다.
그러나 길이요 진리요 생명 되시는 예수님이 부어주시는 십자가의 생수는 영원히 떨어지지 않습니다. 그 생수는 온 인류를 먹이고도 남을 만큼 풍성합니다.
주님은 우리의 모든 부족과 모자람을 아십니다. 그것을 채우는 비결은 바로 자신의 약함을 주님 앞에 내려놓고 주님의 능력이 머무는 자리로 만드는 것입니다. 주님의 능력을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말씀에 대해서 온전한 순종의 태도를 보이는 것입니다.
생수의 강이 흘러나와 죽어가는 것을 살리고, 모자라는 것을 채워주시는 풍성한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나의 모든 부족함과 연약함과 모자람을 채울 수 있는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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