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6학년인 딸아이와 나는 탁구 레슨을 받으러 다닌다. 처음에는 많이 헤맸지만 어느덧 우리는 10번 이상 랠리가 될 만큼 실력이 늘었다. 그런데 딸아이는 20분 정도 치면 발이 아프다고 자꾸만 집에 가자고 한다. 어제는 우리 모녀와 비슷한 시기에 탁구를 시작한 가족들 구경을 하다 보니 속이 상했다. 그 집은 아빠, 엄마, 딸, 아들 네 식구가 모두 탁구 레슨을 받는데 다들 실력이 엄청 늘었다. 랠리가 계속 이어지고 폼도 제법 그럴듯했다. 아... 저 팀은 연습을 많이 하니까 늘잖아. 우리도 연습 더 하자. 이런 생각은 나 혼자서 한다. 아이는 10분 치더니 집에 가자고 하고, 내가 좀만 더 치자고 했더니 공을 아주 신경질적으로 쳐댄다. 어휴.... 서브 넣을 때도 짜증이 가득.... 그 꼴을 보자니. 속이 부글부글... 탁구 치다 득도할지도 모르겠다.
수영은 초-중-고급-교정-연수-마스터. 대략 이 정도로 레벨이 나뉘고 진도가 비슷한 사람들끼리 옹기종기 모여서 자기 운동만 하면 된다. 다른 사람들이 뭘 하는지 알 수도 없다. 그런데 탁구장은 어떤가? 나 같은 초보와 10년 이상의 고수가 섞여 있다. 가끔 맘 좋은 고수들이 다가와서 이런저런 조언을 건네는데 그럴 때마다 그들의 코칭대로 못해내는 자신이 답답하다. 탁구 고수들은 ‘저 초보인데 같이 좀 쳐주세요’ 이렇게 공손하게 말을 먼저 건네라고 조언한다. 그런 설움을 겪어야 실력이 는다고 강조한다. 나는 누구에게 언제 말을 걸지를 살피는데 기회가 쉽게 오지 않는다. 말 걸기도 부끄럽고 탁구를 같이 치는 것도 부끄럽고, 만만한 게 딸인데 아이는 집에 가고 싶어하니 총체적 난국이다.
왜 여기서 이렇게 아쉬운 소리 해가면서 탁구를 치고 있지? 탁구가 아니라 공놀이를 하는 나를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몇 달 째 저 모양이라고 운동신경 참 없다고 그러면서 연습도 안 한다고 생각하겠지. 그러면 탁구를 그만둘까 하는 생각에 이른다. 그런데 지난달에 20만원 이나 주고 라켓을 샀다. 그래서 못 그만둔다. 아이도 딸랑 20분 치지만 탁구가 좋다고 자기는 80살에도 탁구 치는 할머니가 돼서 구력이 70년이라고 말할 거라고, 그거 너무 폼 나지 않냐고 그런다. 나만 속이 탄다.
내가 다니는 피아노 학원에 바이엘을 치는 성인 남성 두 분이 있다. 학원에서 남자 신발을 보고 놀랐는데 바이엘 정도 치는 거 같아서 더 놀랐다. 어릴 때 배우지 않은 피아노를 어른이 되어 배우기란 쉽지 않다. 들은 건 많으니 조금만 연습하면 나도 저런 곡 칠 줄 알고 시작하지만 이상과 현실은 자전거로 부산에서 서울 가기 정도로 많이 멀다. 차라리 안 하고 말지 그런 서투름과 대면하는 건 쪽팔린다. 그것을 극복하는 게 힘들다는 걸 알기에 기회 되면 그분들에게 커피라도 한잔 사드리고 싶다. 지난번에 탁구 같이 쳐주신 김 선생님이란 분도 딸아이에게 기특하다며 자주 쳐줄테니 탁구장 열심히 오라고 하셨다. 진심일 거다. 우리에게는 상대의 성장을 격려하는 따뜻한 마음도 있다.
아무래도 내 안에는 나를 비난하는 누군가가 살고 있는 모양이다. 평소에는 잘 나타나지 않다가 예상대로 일이 되지 않을 때, 어려움이 닥쳤을 때 그놈은 존재감을 드러낸다. ‘그만둬. 지금 네 모습이 얼마나 웃긴지 알아. 그냥 그만둬. 그거 안 해도 살 수 있어.’라며 더 나아가려는 나를 막아서고 지금 이 자리에 주저 앉히려고 옷자락을 잡아당긴다. 남의 시선이 문제가 아니라 스스로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이 문제다. 잘하고 싶은 마음 뒤에는 그따위로 할 거면 때려치우라는 마음이 동전의 양면처럼 바짝 붙어 있다. 작은 좌절에도 쉽게 비참해진다. 내 마음을 호시탐탐 노리는 그놈이 주인 행세 못하도록 나를 잘 지켜야 한다. 나쁜 마음에 지지말자.
첫댓글 탁구~~배워보고 싶다^♡^
나쁜 마음에 지지 않도록 나를 잘 지키는 법을 배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