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관저 이전 둘러싸고 벌어진 이상한 일들
간디 묘비명에 적혀 있는 7가지 죄악 중 첫 번째는 ‘철학이 없는 정치’다. 철학과 신념이 확고한 사람은 귀가 얇다는 평을 듣지 않는다. 위대한 정신은 녹슬지 않는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 자신의 핵심가치를 지킨다. 막스 베버는 정치가의 가장 중요한 자질을 ‘소명’과 ‘책임’이라고 했다. 소명도 없이 입신양명만 추종하는 야심가는 권력을 잡은 첫날부터 원칙과 일관성을 내버린다. 철학의 공백으로 인한 나약한 정신상태는 온갖 사이비 과학과 초자연적인 힘에 의존하려는 성향도 드러낸다. 공론의 용광로에서 낱낱이 분석되고 검증된 지식을 구하는 대신 즉흥적이고 비논리적인 감언이설에 속아 넘어가기 딱 좋은 상태에 놓여진다. 녹이 슨 정신은 그 주변에 비공식 실세 라인이 암약을 하거나 주술과 은밀하게 야합한다.
대통령 선거가 끝난 작년 3월부터 용산 국방부와 한남동 일대에서는 이상한 일들이 벌어졌다. 윤석열 당선자는 “청와대에 한 번 들어가면 나오기 어렵다”며 “청와대에는 단 하루라도 들어가지 않겠다”고 했다. 선거 중에 방송에 공개된 김건희 여사의 녹취록에서 김 여사가 “청와대는 들어가지 않을 것”이라고 예언한 그대로였다. 이런 윤 당선자의 옹고집 때문에 대통령 집무실과 관저 이전은 인수위 구성도 채 마무리되지 않은 3월 중순부터 실행에 들어갔다. 당시 인수위의 <집무실 이전 TF> 부단장을 맡은 김용현 예비역 중장이 국방부를 찾아와 “3월 말까지 국방부 청사를 비우라”고 통보했다.
다른 부처라면 몰라도 군의 지휘통제 통신망이 설치된 국방부는 같은 규모의 부처가 이사하는 것보다 비용은 5배 이상, 시간은 2배 이상 소요된다. 국방 시스템이 설치된 방위사업청이 서울의 후암동에서 과천으로 이사할 때도 같은 규모의 공공기관 이전에 비해 8배 이상 비용이 투입됐고, 준비에만 1년 이상 소요됐다. 하물며 유사시를 대비한 전자파 방호시설과 동맹국과 연결되는 최첨단 정보 수신 및 통신망이 설치된 국방부가 이전한다는 건 국가 안보에서 가장 신중하고 면밀하게 검토돼야 할 일이다. 이런 사정을 잘 아는 김용현이 불과 보름 정도 시간을 주고 “청사를 비우라”고 통보했다는 것 자체가 민주적인 정부에서라면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일이다.
육군 총장 발(發) 무속인들의 한남동 출몰 의혹
4월이 되자 용산 안팎에서 더 이상한 소문들이 퍼졌다. 용산 국방부와 한남동 군 고위 지휘부의 관저에 풍수가나 역술인이 다녀갔다는 이야기였다. 그 중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몇 사람의 이름까지 거론되었다. 인수위 초기부터 용산과 한남동은 각종 소문과 괴담의 온상지였고, 인수위의 무모한 폭주와 은밀한 일처리는 온갖 의혹을 증폭시켰다. 4월에 필자는 부승찬 국방부 대변인으로부터 육군 참모총장으로부터 직접 들었다는, 역술인 천공이 대통령 관저 후보지로 거론되던 한남동 육군 참모총장 공관에 다녀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작년 12월에 필자는 한 유튜브 방송에서 이 증언을 공개했고, 2월 초에 부승찬 박사는 자신의 저서 <권력과 안보>에서 더 상세하게 공개했다.
부 박사의 책이 출판된 2월 3일에 대통령실 대변인실은 “‘역술인이 의사 결정에 참여했다’는 식의 터무니없는 가짜 의혹을 제기한 것은 공무원들과 국민에 대한 모독이자 악의적 프레임”이라며 천공의 육군 총장 관저 방문 의혹을 제기한 부승찬 박사와 이를 보도한 기자들을 무더기로 고발했다. 당시 대통령실과 관저를 다녀간 인물이 천공인지 여부를 떠나 역술인 자체가 관저 결정에 관여한 바 없다는 주장이었다. 경찰이 대통령실의 고발로 이 문제를 수사하던 지난 7월 중순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풍수와 관상을 보는 백재권 사이버외국어대 겸임교수가 작년 인수위 시절에 김용현 현 경호처장과 윤한홍 국민의힘 의원과 함께 육군 총장 관저에 다녀간 사실이 경찰 수사 결과로 확인된 것. 이에 대해 대통령실과 국민의힘은 “풍수지리는 문화”라며 풍수와 관상을 옹호하는 해괴한 전략으로 돌아섰다. 이런 식이라면 국가의 중요 의사결정에 풍수 자문위원회, 관상 자문위원회를 만들 법도 하다.
참으로 가소로운 변명 아닌가. 용산 집무실 이전과 관저 이전 결정 당시 국민 공청회나 토론회 한 번 개최하지 않으면서 뒤로는 풍수지리가, 관상가에게만 귀를 열었다는 이야기다. 이들에게는 국민 여론보다 풍수나 관상이 더 중요했다. 역술과 풍수는 다르다는 주장도 해괴하다. 역술은 태어난 시간을 중시하고 풍수는 장소를 중시하며 관상은 생김새를 중시한다. 저마다 중시하는 관점이 다를 뿐이지 전부 초자연적인 힘을 믿는 속설이며 주술이다. 역술인이 아니라 풍수가가 왔다는 주장은 음주운전을 했는데 “막걸리는 아니고 양주를 마셨다”는 식의 변명이나 마찬가지다.
경호처장의 보복 의지 번뜩이는 표적 수사
게다가 천공은 무더기 고발이 있고 7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관저 방문 사실을 부인하지 못하고 있다. 숱하게 많은 언론이 입장을 요구해도 관저에 갔는지, 안 갔는지 “입장이 없는 게 입장”이라고 했다. 심지어 작년 내내 한 언론이 천공 측근을 끈질기게 취재하자 “이의제기 하지 않을 테니 취재된 대로 보도하시라”고 했는데 이는 관저 방문 보도를 용인하겠다는 입장으로 해석됐다. 이런 천공에 대해 경찰은 단 한 차례도 조사하지 않았다. 게다가 당시 인수위 핵심 인물인 김용현 경호처장과 윤한홍 국민의힘 의원도 경찰 조사를 받지 않았다. 반면 필자가 2번, 부승찬 전 대변인이 3번 조사 받은데 이어 경찰로부터 추가 출석도 요구받고 있다. 고발당한 기자들 전원이 조사받았음은 물론이고 부 박사 자택과 책을 출판한 출판사가 압수수색을 받았으며, 과거 국방부 대변인실의 공보장교 등 현역 장교들에게도 피해가 확산되고 있다. 부 박사의 책 내용에 불만을 품은 김용현 경호처장의 사적인 보복 의지는 군 검찰을 동원하여 부 박사에 대한 군사기밀 누설과 공무상 기밀누설이라는 두 건의 사건을 새로 만들어 냈다. 국정을 농단한 주술 세력들은 아무런 조사도 하지 않고 오직 한쪽만 조사하는 선택적 조사다.
김용현 경호처장은 과거 사단장 재직 시절 임무 수행 중에 사망한 병사를 가짜 영웅으로 조작했다는 의혹으로 인해 4성 장군에 실패해 국민의힘으로 말을 갈아 탄 인물이다. 진급에 실패하는 상황이 되자 자신에게 불리한 진정서를 국민권익위원회에 제출한 사단장 시절의 부하였던 연대장을 고발하여 군사재판에서 유죄를 받도록 했다. 전형적인 ‘공은 나에게, 책임은 부하에게’를 보여 준 지휘관이었던 그는 부 박사의 저서에 군인답지 못한 인물로 묘사된 데 대해 격분했던 모양이다.
부 박사에 대한 수사는 일파만파로 확산되는 중에도 막상 천공의 관저 방문 의혹은 경호처의 방해로 지연됐다. 경호처는 올 2월, 작년 인수위 시절에 육군 총장 관저에 CCTV 영상이 있다는 사실을 은폐하였다가 경찰의 거듭되는 요구에 관저의 창고를 개방했다. 여기서 경찰이 CCTV 영상이 저장된 하드 디스크를 찾아내자 경호처는 “보안 검토를 하겠다”며 경찰이 영상을 열람하지 못하도록 막았다. 영상을 제출받지 못한 경찰은 3월이 되어서야 경호처가 이미 검토한 영상을 제출받아 검토에 착수하였지만 경호처의 요구로 극도로 제한된 인원만 영상에 접근하도록 차단되어 분석에 애를 먹었다.
정국의 뇌관, 은폐된 CCTV 공개하라
도대체 그 영상이 무엇이기에 경호처는 이토록 민감한가. 그 이유를 짐작하기란 어렵지 않다. 공무원이나 군인이 관저를 출입하는 건 정상적인 업무라고 보아야 한다. 그러나 그 정상적인 업무가 아닌 비정상성이 바로 보안의 목표다. 자신에게 불리한 수사는 고의로 지연시키면서 자신이 정치 보복을 하고자 하는 데는 군 수사기관을 동원하여 무리한 수사를 강행하도록 하는 행태는 경호처장의 군 생활 당시 행태와 크게 다르지 않다.
온갖 추문을 몰고 다니는 용산과 한남동에는 어떤 비밀이 숨어 있을까. 경찰은 오직 작년 인수위 시절의 육군 총장 관저에 대한 수사만 진행했고, 정작 필자와 부 박사가 제기한 주술 세력이 국방부 부지 안에 위치한 육군 총장 서울 사무소를 방문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는 “고발 내용이 아니”라는 이유로 수사하지 않았다. 게다가 육군 총장 관저에 대한 영상 검토도 작년 3월에만 한정된 것이고, 정작 많은 인원이 방문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작년 4월은 수사 대상도 아니다.
정작 부 박사와 필자는 용산 이전 자체를 비판한 당사자로서 이런 중요한 국가의 대사에 어떤 주술 세력이 개입했는지, 그 전모를 밝혀야 한다는 입장이다. 만일 인수위 전체 기간 중에 한남동과 용산에서 누구에 의해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를 조사하면 현 권력의 실상을 밝히는 데 결정적 기여를 할 것이다. 윤 대통령은 후보 시절에 손바닥에 임금 왕(王)자를 쓰고 다녔고, 김건희 여사는 그 학위 논문이 <아바타를 이용한 운세 콘텐츠 개발 연구 : ‘애니타’ 개발과 시장적용을 중심으로>이고, 한 학술 논문이 <애니타를 이용한 Wibro용 콘텐츠 개발에 관한 연구–관상·궁합 아바타 개발을 중심으로>이다. 점치는 걸로 학위를 받은 당사자로서 자신을 아예 무속인으로 여기고 있는 건 아닌지 궁금하다. 이런 의혹을 규명하는 첫 걸음은 당연히 경찰에 보관되어 있는 CCTV 영상의 공개다. 권력 주변에는 천공, 건진, 문정, 백재권 교수가 전부인가. 이에 대한 답을 구하기 위해서라도 CCTV는 국민에게 공개돼야 한다.
용산으로 대통령 집무실이 이전되고 나서 벌어진 일들을 보라. 작년 수해가 났을 때 대통령은 강남의 숙소에 갇혀 버렸다. 작년 12월에 북한의 무인기가 용산에 들어왔을 때 경호처는 그 사실조차 파악하지 못했다. 반면 경호처의 견마 로봇 사업은 대통령의 고액 후원자에게 수의계약으로 낙찰되었다. 경호처에 배속된 경찰은 작년에 실탄을 6발이나 분실했는데, 그 진상은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았다. 이런 경호 실패의 무능력이 계속 이어지는 동안 경호처는 단 한 번도 문책되지 않았고 그 영향력을 확대해 왔다. 경호처에 배속된 군 병력을 직접 지휘하겠다는 시행령 개정은 또 뭔가. 공적 기능이 훼손되고 사유화된 권력의 폭주를 국민들은 언제까지 감내해야 할까. 인내의 시간이 끝나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