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자리와 묏자리
오랜만에 솔뫼 성지를 찾았다. 현직에 있을 때는 자주 드나들던 곳이다. 교황 방문을 앞두고 순례객들의 동선을 살피고 편의시설을 마련하느라 분주했던 날들이 문득 떠올랐다. 그때는 성지의 새로운 모습을 갖추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세월이 흘러 다시 찾은 성지에서 나는 길이나 건물보다 그곳에 깃든 시간과 사람들의 삶을 먼저 바라보고 있었다.
지인과 함께 도착한 성지에는 이른 시간부터 순례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었다. 수많은 이들 사이로 가을 햇살이 고요히 내려앉는다. 누군가는 두 손 모아 기도하고, 누군가는 말없이 십자가를 바라본다. 그 풍경을 바라보다 기억의 저편에서 내포 땅의 오랜 역사가 피어났다.
내포는 천주교 신앙의 못자리다. 양반과 상민의 신분이 사람의 운명을 가르던 시절, 하느님 앞에서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는 가르침은 낯설고도 새로운 세상의 약속이었다. 신분의 벽에 갇혀 살아야 했던 민초들에게 그 믿음은 다른 삶을 꿈꾸게 했다. 작은 못자리에서 어린 모가 자라듯, 평등에 대한 믿음도 이 땅의 민중 속에서 조금씩 뿌리를 내렸다.
솔뫼 성지는 우리나라 최초의 사제인 김대건 신부가 태어난 곳이다. 한 생명이 처음 울음을 터뜨린 자리에서 한 시대의 믿음도 싹텄다. 솔뫼라는 이름을 가만히 되뇌어본다. 소나무가 뿌리를 내리고 자라듯, 이 땅에서 움튼 믿음도 박해의 세월을 견디며 뿌리를 내렸으리다. 생명이 태어난 자리와 믿음이 자란 자리가 겹쳐 보였다.
못자리와 묏자리. 하나는 생명을 길러내는 자리이고, 다른 하나는 생명이 돌아가 안기는 자리다. 못자리의 어린 모가 논으로 옮겨져 모진 비바람을 맞으며 알곡을 맺듯, 이 땅에서 움튼 믿음도 박해의 시간을 견디며 자라났다. 그 믿음을 지키려 목숨을 내놓은 이들은 이제 묏자리의 고요 속에 잠들어 있다. 그러나 그들의 삶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목숨으로 지켜낸 믿음은 후대의 삶 속에서 새로운 싹을 틔웠다. 그렇다면 오늘의 나는 그 묏자리 앞에서 무엇을 배우고 무엇을 이어가야 할지.
성지의 고요 속에서 새삼 서학이라는 천주 교리와 동학이라는 동학농민혁명의 함성이 마음속에서 교차한다. 구한말, 권력을 둘러싼 다툼과 관리들의 수탈 속에서 백성들의 삶은 날로 피폐해졌다. 소작과 세금에 시달리던 농민들의 원망은 쌓여갔고, 마침내 억눌린 삶을 바꾸려는 외침이 들불처럼 번졌다.
서학과 동학은 서로 다른 길을 걸었다. 하나는 신앙으로, 다른 하나는 민중의 저항으로 세상을 향해 목소리를 냈다. 그러나 그 밑바닥에는 사람답게 살고 싶다는 간절함이 흐르고 있었다. 신분과 차별의 굴레에서 벗어나 인간의 존엄을 지키고자 했던 마음이다. 서로 다른 시대적 조건과 사상 속에서도 사람을 사람답게 대하는 세상을 바랐다는 점에서 두 역사는 우리에게 나란히 질문을 건넨다.
오늘 누리는 자유와 민주주의도 저절로 주어진 것이 아니다. 이름 없이 스러져간 수많은 이들의 희생과 땀이 켜켜이 쌓여 이룬 결실이다. 그러나 그 가치는 제도와 구호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서로의 삶을 귀하게 여기고 누구나 존중받으며 살아갈 수 있을 때 비로소 그 뜻이 온전히 실현된다. 역사를 기억한다는 것은 지나간 사건을 되풀이해 말하는 일이 아니라, 그들이 지키려 했던 가치를 오늘의 삶 속에서 되살리는 일이다.
요즘 천주교 성지나 동학농민혁명 관련 기념관을 찾는 이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오늘 이곳에 오게 된 것도 지인이 가자고 해서다. 사람들은 무엇을 찾아 그곳으로 향하는 것일까. 어쩌면 오래된 역사의 현장에서 잊고 지낸 자신을 돌아보고, 지금 우리가 누리는 것들의 뿌리를 더듬어보려는 것은 아닐까.
그는 김대건 신부 역사관을 둘러보다가 뜬금없이 한마디 툭 던진다.
“나라에서 농지를 빼앗아 갈 수 있나요?”
부모님이 조상 대대로 지어오던 너른 땅을 농사짓기 힘에 부치어 묵히고 있다며 걱정이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요사이 정부에서 농지 조사한다는 소식 하나가 뇌리를 스쳤다. ‘경자유전’…. 농부의 손길이 끊긴 땅, 자식이 도시나 외국으로 떠나 더는 농사를 짓지 못하는 땅에도 한때는 씨앗이 뿌려지고 생명이 자랐다. 땅은 단순한 소유물이 아니라 누군가의 땀과 세월이 깃든 삶의 터전이다. 농지를 어떻게 보전하고 활용할 것인지를 결정할 때도 제도의 효율성만이 아니라 그 땅을 일구어온 사람들의 삶과 권리를 함께 헤아려야 하지 않을까. 생명을 길러내는 땅을 어떻게 대하느냐는 결국 생명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역사는 거창한 구호보다 민초의 고단한 하루에서 먼저 시작한다. 평범한 사람들의 아픔을 외면한 권력은 오래 버티기 어려웠고, 그들의 간절한 소망을 담아내지 못한 제도는 백성의 저항에 부딪혔다. 서학과 동학의 역사가 오늘의 우리에게 건네는 물음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과연 서로의 삶을 얼마나 귀하게 여기며 살아가고 있는지 묻고 있다.
솔뫼 성지를 돌아 나오며 다시 못자리와 묏자리를 생각한다. 생명을 길러내는 자리와 생명이 돌아가는 자리, 그 사이에 우리의 삶이 있고 역사가 있다. 못자리에서는 희망이 자라고 묏자리에서는 희생의 의미가 되살아난다. 그들이 목숨으로 지키려 했던 것은, 어쩌면 누구나 ‘사람답게 사는 세상’이었을 것이다. 성지를 떠나는 발걸음이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오래된 묏자리의 침묵이 오늘을 사는 내게 아직 끝나지 않은 질문을 건네고 있다.
첫댓글 유병덕 수필 <못자리와 묏자리>질 읽었습니다.
잘 읽었어요.
수고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