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록잎이 점점이 짙어지는 계절입니다
일일문학회 국내문학기행 안내를 아래와 같이 공지합니다
함께 동행하고 싶습니다
회장 박 신 헌
-아 래-
일 시 2016년 4월 30일(토) 오전 8시
집 결 지 법원주차장 앞
기 행 지 고창 일원
회 비 3만원 (일문회비통장 111-0484 대구은행)
참가인원 선착순37명 (카페준회원 및 문인 어느 누구나 참석가능)
법원 앞 출발 (8 : 00) ---> 강천산휴게소 (9 : 30) --->
고창 선운사 도착 (11 : 00) --->점심 ( 12 : 30 ~ )
---> 미당서정주 생가, 미당문학관 (14 : 00~15 : 00) --->
보리밭--->무장읍성 (15 : 00~16 : 00) --->대구로 출발 (16 : 00)
---> 대구도착 (19 : 00) --->저녁 식사 및 해산
천년 고찰 선운사
문학관에 들어서면 서정주 시인의 흉상이 있고, 생애를 연표로 정리 하였으며
그의 대표 시집과 친필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우리말 시인 가운데 가장 큰 시인」이란 문구가 방문객을 맞고, 미당이 노년에
치매 예방을 위해 암기한 세계 유수의 산 이미지와 선생의 삶과 시인으로서의 족
적을 담고 있다.
〈국화 옆에서〉,〈귀촉도〉, 〈자화상〉, 〈동천〉,〈선운사 동구〉, 〈푸르른
날 〉등 주옥 같은 시편들이 아로 새겨져 있다.
육필 원고와 그가 사용했던 만연필, 고무신과 안경, 파이프와 지팡이도 놓여
있는데, 맨 꼭대기 5층 전망대에는 미당이 나고 자란 마을과 질마재, 서해바다를
한눈에 조망하도록 해놨다.
미당의 생가
무장읍성
이 읍성은 태종 17년(1417)에 무송현(茂松縣)과 장사현(長沙縣)이 통합하면서 그 중간지점에 무장진(茂長鎭)이 생겼고, 남북으로 뻗은 타두봉(蛇頭峰)을 가운데에 두고 口자형으로 성을 쌓았다. 이 성은 해안 가까운 지역의 군세강화 목적으로 병마사 김저래(金著來)가 이만 여명의 백성을 동원하여 넉 달 동안 공사를 벌인 끝에 축성하였다. 원래 성에는 옹성(甕城)을 갖춘 남문과 동문이 있었다고 하나 600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은 처음의 모습을 찾을 수 없고 그 흔적만 남아 있을 뿐이다. 성내에는 객사, 동헌, 진무루(남문)등 옛 건물이 그대로 남아있고 건물 주변에는 여러 가지 유구들이 산재해 있다. 그동안 흙으로만 축조된 토성으로 알려져 왔으나 성벽 동쪽 끝부분의 단면이 드러나면서 성곽일부가 흙과 돌을 섞어서 축조된 것임이 밝혀졌다. 남문 위에는 진무루(鎭茂樓)라는 현판이 걸려 있고, 울퉁불퉁한 바닥을 그대로 두고 주춧돌 위에 길고 짧은 기둥을 세워 자연미를 그대로 보여준다. 남문 안에 들어서면 눈앞에 펼쳐지는 풍경에 잠시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자유롭게 뻗친 고목과 어린나무들이 기묘한 자태로 넓은 뜰을 채웠고, 객사의 모습은 지나간 시간과 세월 속에 한 폭의 동양화를 보여주니 감탄사가 절로 난다.
고창 무장현 관아와 읍성(高敞 茂長縣 官衙와 邑城)는 전북 고창군 무장면에 있는 조선시대의 성이다.
1991년 2월 26일 대한민국의 사적 제346호로 지정되었다.
홀로 오랜 세월을 견디며 서 있는 노목, 넓다란 성의 둘레는 막힌 가슴을 열어준다
좋은 사람들과,
좋은 봄날,
따뜻한 정 함께 나누었으면 합니다
출처: 대구문인협회 원문보기 글쓴이: 윤경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