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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여행기 317-터키(에페소스)
6월15일 에페소스(에베소)에 가기전에 양가죽 판매점에 들렀습니다.
이태리의 유명제품을 납품하는 이곳은 저렴하게 가죽제품을 판매합니다.
패션쑈를하면서 판매할 옷들을 선보입니다.
사회자가 제품을 소개합니다.
가죽제품이 양면으로 입을수있고 유니크한 디자인으로 선보입니다.
모델과 함께 여행객들중 몇분을 뽑아 같이 패션쑈 모델로 하여금제품을 선보입니다. 우리일행중 김찬문 모델이 춤을 추며 등장합니다.
마지막에는 모델들이 다함께 나와 인사를 합니다.
패션쇼가 끝나자 세일즈맨이 각 사람에게 와서 상품을 소개하는데 같이 사진찍은 사람이 내 담당으로 제품을 소개합니다.
내가 제품의 1/3 가격으로 구매하고 만족해서 세일즈맨과 함께
에페소스는 성경에 나오는 에베소 입니다.
에페소스(에베소)는 라틴어로 Ephesus이고 터키어로 Efes이고 한글 번역판에는 에베소입니다.
서부 소아시아의 에게해 연안에 위치한 현재 터키의 Selcuk Efes, 고대 그리스의 아테네의 의하여 기원전 9세기의 건립된 식민도시입니다.
에페소스는 주변도시 혹은 국가 스파르타, 페르시아, 페르가몬, 로마등의 흥망성쇠에 따라 식민지화되는 역사로 얼룩지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식민지 역사에도 불구하고 에베소는 상업을 통해 부를 축적했다.
기원전 6세기에 건조된 웅대한 아르테미스 신전과 로마제국에 건조된 소아시아에서 건조된 소아시아에서 가장 큰 로로마식축물인 도미티아누스 신전(기원후1세기)으로도 유명합니다. 특히 아르테미스는 기독교가 들어오기전까지 에베소인들에게 풍요와 생명의 여신으로 숭배받던 대상이어서 루가(누가)에 따르면 사도 바울이 선교할때 은으로 만든 신전모형을 팔던 상인들과 갈등을 겪기도 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우상을 섬기지말라고 설교하여, 사람들이 신전모형을 더이상 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현재 남아있고 부서진 건물들을 보면 그당시 번성했던 것을 가름합니다. 에베소는 로마, 알렉산드리아, 안디옥과 더불어 로마제국의 4대도시중 하나였습니다. 로마제국의 지배를 받던 B.C. 1세기경 에베소 인구는 약25만명으로 추정합니다.
우리나라 서울, 경기를 제외한 대부분의 지방도시 인구(2012년 기준)가 30만명이 되지 않는다는것을 볼때 당시 에베소의 인구는 상당히 많음을 짐작할수있습니다.
이곳 에베소에는 대광장, 아르테메스(아데미)신전, 셀수스 도서관(두란노 서원), 사도 요한 기념교회, 사도요한 무덤, 누가 무덤과 사도 바울이 2, 3차 전도여행을 하였습니다. 관련 성경구절은 사도행전 18장~21장, 디모데전서 1:3, 디모데후서 1:18, 4:12, 요한계시록 1:1, 2:1의 무대였습니다.
소아시아의 중요한 고대도시로 세계 7대 불가사의(不可思議)의 하나인 아르테미스(아데미) 신전이 있고, 고대 기독교 전도의 중심지였습니다.
사도행전에는 사도바울이 에베소의 두란노 서원에서 강론을 펼친것으로 나와있어 이 셀수스 도서관이 성경상 두란노 서원이 아니냐는 추측이 있습니다.
공공연하게 사람들은 이곳이 두란노 서원이라고 단언하지만 역사상으로 이 셀수스 도서관은 사도바울이 에베소 방문시기 보다 늦게 완성되어 신빙성이 없는 추측이며, 사도바울이 셀수스 도서관 같이 도시중심에 위치한 화려한 곳이 아닌 변두리에서 두란노라는 사람의 개인서원에서 강론했을 것이라는것이 좀더 가능성 있어보입니다.
내의견으로는 셀수스 도서관 자리에 두란노 서원이 있었기에 그자리를 허물고 셀수스 도서관을 짖지 않았나 추측해 봅니다.
하지만 에베소는 이곳에 사도바울이 복음을 전했고 교회가 세워져 부흥했다는 이유만으로 많은 순례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셀수스 도서관(두란노 서원)은 서기 135년 C. Aquila에 의해 아시아지역 통치자였던 그의 아버지 셀수스 폴레마이아누스(Celsus Polemaeanus)를 기리기 위한 목적으로 지어졌습니다. 이도서관에는 3개의 문이 있는데 각각의 상단은 지혜, 운명, 지식을 상징하는 정결한 여신상들로 장식되어있었습니다.
셀수스의 무덤은 중앙적소 아래 지하에 위치해있으며 도서관 터에 남겨진 비문에 의하면 도서관을 지으라고 명한 C. Aquilar 는 이건축물이 완성하기전에 숨을 거두고 그의 후계자에 의해 건축은 계속 되었다고 합니다. Aquila 는 도서관에 비치될 도서 구입비로 2만5천 디나를 남겨두었다고 알려져있습니다.
2만권으로 당시 최대의 도서관입니다. 당시 이집트의 파피루스에다 글을 써서 보관했는데 이집트에서 파피루스를 제한하여 이곳에서 양피지를 처음으로 만들어 양피지 서적으로 보관되있었다고 합니다.
이곳은 그당시 귀족들의 화장실입니다.
이곳에 앉아서 대변을 보고 밑에는 물이 흘렀습니다.
대변을 보면서 앞에는 악사들이 공연을 하였습니다.그당시는 옷이 반치마식으로 되어 쉽게 앉아서 용변을 볼수있었습니다.
에베소는 사도 바울이 서기 53년부터 이곳에서 2년간 전도활동을 하며 강론을 펼쳤다는 사실로도 유명합니다. 사도 바울 방문이후 이곳에는 부흥하였고 이것이 성경상에 나타나있는데 바로 사조바울이 로마에 투옥돼 에베소 교회에 보낸 편지들이 "에베소서(書)"입니다.
"어떤사람들은 마음이 굳어 순종치 않고 무리앞에서 이도를 비방하거늘 바울이 그들을 떠나 제자들을 따로 세우고 두란노 서원에서 날마다 강론하여 이같이 두해동안을 하매 아시아에 사는 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주의 말씀을 듣더라"(사도행전 19:9~10)
에베소는 기독교 초기역사에서는 빼놓을수 없는 중요한 도시입니다. 사도행전에 따르면 바울이 전도와 사목을 한 교회중의 하나가 에베소 교회였습니다. 또한 요한계시록에 등장하는 소아시아의 7개 교회중의 하나가 에베소 교회일 정도로 1세기 기독교 역사에서 비중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영국 성공회의 존폭스 신부가 쓴 <순교자>에 따르면 사도 바울의 제자 디모데가 주교로 사목한 교회가 에베소교회라고 합니다.
하드리아누스 문(The temple of Hadrian)
도미티안 신전이후 두번째로 로마황제를 위해 만들어진 신전입니다. 첫번째 문위에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니케(나이키)의 얼굴이 있고 두번째 문위에는 메두사의 얼굴이 있습니다.
성 바울(St. Paul)은 라틴어로Paulus, 스페인어로 Paulo입니다. 브라질의 도시이름이 상파울로가 성자 바울입니다. 스페인어에서는 성자(St.)가 남자일 때 San이고 여자일 때는 Santa입니다. 그래서 성자 프랜시스코의 이름을 따서 San Francisco, San Marino, San Diego등이고 여자 성자일때 Santa Barbara, Santa Ana, Santa Fe, Santa Monica등 입니다.
가이드가 설명합니다.
바울은 초기 기독교의 사도로 신약성경의 주요부분을 차지하는 바울 서신을 저술한 인물로 신약성경 사도행전에 따르면 그는 예수믿는자들을 앞장서서 박해하였으나 예수음성을 들은 이후 회심하여 이후 기독교의 초기신앙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회심하기전 이름은 '사울(큰사람의 뜻)'로 불렸고, 고대 속주였던 소아시아 키리키아 지방(현재 터키)의 중심도시 타르수스(다소)출신입니다.
2015년에 디야르바크르 성벽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습니다.
성모 마리아가 승천하기전 집이 이곳에 있었다고 합니다.
에베소와 이스탄불은 실크로드의 마지막 행선지로 무역이 성하였습니다. 그당시 저 앞이 바다였다고 합니다. 큰 무역 항이라 에베소 가 큰 상권을 지니고 있었다고 합니다.
지진으로 파괴된 동상
로마시대때는 잣나무와 소나무를 접목시킨 우산소나무를 길가양쪽에 쭉 심어 로마군대들이 행진하다가 지치면 소나무 그늘에 쉬고 열매를 먹기도 했습니다.
우산소나무를 Pino 라고 합니다.
그래서 우산소나무(pino)로 만든 인형이 피노키오입니다.
승리의 신 니케(나이키)랑 같이..
Adidas 유명상표 나이키(Nike)은 1971년 포틀랜드 주립대의 그래픽 디자인 전공 대학생인 캐롤린 데이비슨은 이여신의 날개에서 영감을 받아 시간당 2달로 17시간30분 작업을 통해 총 35달러를 받고 역사적인 로고가 탄생합니다. Adidas는 all day I dream about sports의 앞글을 따서 만들었습니다.
'니케(Nike나이키)'는 그리스 신화의 정복과 승리의 신입니다. 티탄신족의 하나인 '팔라스'와 저승에 흐르는 강의 신 '스틱스' 사이에 태어난 '니케'. 질투와 경쟁심을 뜻하는 '젤로스'와 힘을 뜻하는 '크라토스', 폭력을 뜻하는 '비아'의 남매입니다. 전쟁의 신인 '아테네'와 관계가 깊고 모습도 비슷하지만 단독으로 그려질때는 날개가 달려있고 종려나무잎을 들고 있는것이 특징입니다. 파르테논 신전에서는 '아테네'가 팔에 '니케'를 올려놓은 모습을 볼수있습니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의술의 신, 아폴로의 아들이며 고대 그리스 로마시대 의학의 상징적 존재인 아스클레피오스는 기원전 800년경에 살았던 호메로스의 서사시 일리아스에도 이상적인 그리스의 의사로 언급되고 있으며 플라톤 역시 히포크라테스를 아스클레피오스의 자손이라는 의미 '아스클레피아드(Asklepiade)'라 불렀습니다.
그의 지팡이가 의학을 상징합니다.
사도요한 무덤교회. 대리석 4개가 서있는곳이 사도 요한의 무덤입니다.
95년 로마황제 도미티아누스 의 기독교 박해때 요한은 로마군병들에 붙잡혀 파트모스 섬으로 유배되었는데 그곳에서 요한계시록을 저술하였습니다. 그때 그는 너무 노쇠하여 제대로 설교할수 없어 항상 성도들의 부축을 받았다고 합니다.
요한은 항상 서로 사랑하라고 가르쳤는데, 매일 같은 말만 반복하는것에 대해 신도들이 불평하자 요한은 "사랑은 그리스도 교회의 기초요, 사랑 만 있으면 죄를 범하지 않는다."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요한은 '사랑의 사도'라고 불리게 되었습니다. AD100년경에 90살의 나이에 사도들 중 유일하게 순교하지 않고 편안하게 임종을 맞았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당시 신전의 위명이 얼마나 대단한지 성경에 언급됩니다. 사도 바울이 에베소에서 팔리던 은으로 만든 아르테미스 신전 모형을 두고 "사람이 만든건데 왜 신이라고 함?"이라고 비판한 일이 있습니다.(사도행전 19장 25~27절)
수많은 유물들을 영국 대영박물관에 전시했습니다. 지금도 터키에서는 반환요청을 하고 있습니다.
아고라(Agora)입니다 아고라는 공공 광장입니다. 공공건물이 서있고 회의. 재판. 시장이 열립니다.
여기 돌판에 익투스라고 쓰여있습니다. I(예수)는 X(그리스도)O( 하나님) Y( 아들)E(구세주)의 첫글을 따면 익투스로, 물고기를 말합니다. 초대교회 교인들은 물고기 즉 두선을 그려 기독교 상징을 나타냈습니다.
셀수스 도서관
야외 극장
여기는 공창 입구입니다.
돌판의 발모양이 있는데 발을 이곳에 얹어서 크기에 작으면 입장 불가입니다. 요즘 말하면 미성년자 입장 불가입니다. 발 옆에 네모는 그당시도 카드로 받는다는 뜻입니다. 즉 결제를 크레딧카드로 한다는 뜻입니다.
아고라
바울의 에베소의 생활은 그곳 기득권 세력의 반발로 뜻하지 않게 끝나게 됩니다. 아르테미스 여신에 대한 숭배가 전통으로 굳어져 예수복음을 전하던 바울은 이들 상인들의 공격목표가 될수밖에 없었습니다.
결국 우상사업으로 많은 이익을 남겼던 데미드리오는 에베소 사람을 선동하여 바울을 탄핵하기 이릅니다. "바울이란 유대인이 우리 에베소의 수호신 아르테미스 여신을 무시하고 있다."
데미드리오의 선동에 넘어간 에베소 시민들이 바울의 동행자였던 가이오와 아리스다고를 잡아 끌어 연극장으로 데려갑니다.
"에베소 사람의 아데미여!"를 무조건 외쳐대는 사람들로 온통 소동이 납니다. 결국 이런 소요가 계기가 되어 바울은 에베소에서의 3년 가까이 되는 선교활동을 중단한 채 마케도니아로 길을 재촉합니다.
멀리서 클레오파트라여왕의 행차가 옵니다. 옛날 것을 재현합니다.
클레오파트라는 당대의 최고의 영웅호걸들과의 사랑으로 당시 정치를 좌지우지하면서 경색지국 또는 요부로서 인식되기도 하나 그녀는 책과 지식을 사랑하고 그녀의 백성들을 위한 현명하고 어진 여왕이었다는 시각이 많습니다.
또한 그녀는 타고난 언어능력을 보유하여 그녀가 구사할수있는 언어는 에디오피아 어, 아랍어, 히브리어, 라틴어, 시리아어, 메디아어, 파르티아어 등 이루 헤아릴수 없는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의 재위기간중 탁월한 외교능력을 발휘했는데 이런 외국어실력이 바탕이 되었다고 합니다.
한편 클레오파트라여왕은 카이사르의 아이를 갖게되고 이런소문을 듣게된 로마에서는 카이사르가 이집트 요녀에 빠져 로마를 등한시한다는 얘기가 돌기시작합니다. 또한 폰투스(터키 북부지역의 흑해연안)에서 반란이 일어나 이집트에 더이상 머무를수가 없었다. 카이사르는 이집트 알 렉산드리아를 떠나 터키지역 폰투스에 가서 반란을 진압한 후 유명한 말을 남김니다.
*아마시아: 카이사르가 폰투스지역을 진압하고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타르수스: 클레오파트라가 안토니아를 만나러 간 도시. 성경에는 닷소라고 합니다.
*에베소(에페소스): 현재는 셀축이라고 하며 실크로드의 종착점인 항구도시로 고대 그리스 로마의 유적지가 많습니다. 클레오파트라여왕가 켈수스 도서관을 이용하고 쇼핑도 즐겼다고 합니다.
일정때문에 가 보지 못했지만 이곳은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 집입니다. 사도요한교회에서 자동차로 20분거리 부르 부르산 중턱에 위치해 있습니다.
예수님 돌아가시기전에 사도요한에게 어머니를 부탁하였고 사도 요한이 성모 마리아를 모시고 에베소로 와서 산위에 집을 지어드렸다고 합니다.
예수님이 요한에게 "보라 네 어머니라(요한복음 19:26,27)" 그리하여 요한은 성모 마리아와 함께 에베소로 오게 되며, 에베소 3차 종교회의록에 기록되어 있기를 '요한이 성모마리아에게 집을 한채 지어 드렸다'고 하였습니다.
성모 마리아 집에 한국어로 잘 설명되었는데 여기에 삼성로고가 있습니다.
버스 창가 넘어로 한국식당이 보입니다.
쉬린제(Sirince)마을은 유명한 에베소 유적지에 사는 그리스인들이 15세기에 이주해 형성한 마을입니다.
쉬린제라는 말은 터키어로 즐거움이란 뜻으로 현재도 그리스인들이 주로 살아 '터키 속의 그리스'라고 합니다.
이곳에 도착하자마자 포도주를 시음시키는데 이곳은 포도주로 유명합니다.
전통가옥이 남아있는 예쁜마을입니다. 원래 그리스인들이 살던곳인데 1924년 그리스에서 사는 터키인들을 인구교환으로 이주했다고 합니다.
와인으로 유명해 곳곳에 많은 와인가게가 있으며 포도주 외에도 복숭아, 딸기, 메론등 다양한 과일로 만든 과일로 만든 와인도 있습니다.
바로 이곳에서 우리 관광객 30분을 각종 과일 포도주로 시음을 시키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꽃으로 만든 비누도 판매합니다.
이 아스크림집에서 터키아이스크림을 먹었습니다.
이 쉬린제 마을을 방문한 유명인사들입니다.
여기 부르스 윌리스의 부인였던 데비무어 사진도 보입니다.
이곳의 한노인한테 올리브유와 소사무꿀을 샀습니다. 올리브유는 50리라입니다. 아이스크림이 40리라인데 반해 싸기에 구입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