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에 들다
나는 강변도로를 달리고 있습니다. 강물에 부서지는 햇살을 바라보다가 온 몸에 가시가 난 여인을 생각합니다. 탓을 하고 싶은 겝니다. 몸에 가시를 세우는 이유는. 세상을 향해 섬뜩한 시선으로 투정을 부리고 날을 세워도 베어지는 것은 하나도 없는데, 스스로 가시덤불이 되어 위안의 손길을 막아 외로워질 뿐입니다. 몸을 뒤틀 때마다 제가 세운 가시에 찔리겠지요. 찢기고 구멍난 상처에서 화염처럼 붉은 피가 흐르는 여인의 몸이 보입니다. 가슴이 답답해져와 창문을 열어 강바람을 맞습니다. 밤섬을 지날 때쯤 어디선가 첨벙, 묵직한 것이 강물로 곤두박질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나는 그 소리가 가시 화염에 휩싸인 여인이 강물로 뛰어드는 소리라 생각합니다.
강폭이 넓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강 가운데 듬성듬성 모래섬이 보입니다. 아직 길을 떠나지 못한 철새들이 모래섬에서 해바라기를 하거나 강물로 뛰어들어 자맥질을 하고 있습니다. 나는 차를 세워 새의 부리와 털빛을 살펴보고 싶습니다. 그러나 차를 세울 수는 없습니다. 강둑에는 어김없이 철조망이 쳐져 있고, 철조망 가운데에는 '사진촬영금지, 주차금지'라는 팻말이 위협하듯 써 있습니다. 차를 세울 만한 터도 없습니다. 차들은 철조망이 끝날 때까지 모두 앞만 보며 나아갑니다. 군데군데 자리잡은 초소들은 감시의 눈을 부라리며 지나가는 이들은 주눅들게 만들고 있습니다. 이 땅은 언제부터 가시를 세우기 시작한 걸까요. 철조망에 휘감겨 신음해야 하는 땅의 상처도 강물이 치유할 수 있을지. 여기저기서 강물로 몸을 던지는 소리가 첨벙첨벙 들려옵니다.
김포를 지나 강화 땅이 보입니다. 섬이 얼마나 가까운지 육지와 경계를 가른 물은 바다라기보다는 강 같습니다. 북녘 땅인 연백평야를 거쳐 남으로 흘러내리는 예성강과 남녘땅을 휘돌아나온 한강이 만나는 곳. 거기서 새롭게 뻗어나온 좁은 바다가 바로 강화를 육지로부터 떨어뜨린 염하(鹽河)입니다. 그러고 보니 만나고 헤어지는 것은 한 지점에서 시작되는가 봅니다.
다리를 건너 강화 땅에 발을 디뎠습니다. 다리를 건너자마자 닿은 곳이 갑곶입니다. 강화 여행의 시작이며 끝인 곳이지요. 갑곶 한복판에는 강화의 상처가 고스란히 전시되어 있는 역사박물관이 있습니다. 그것은 비단 강화의 상처만이 아닙니다. 몽고의 침략에서부터 한일합방에 이르는 이 땅의 질긴 역사입니다. 상처는 드러내야 치유되는 법이라고 하지만 박물관을 돌아보는 마음은 하염없이 무거워집니다.
눈을 질끈 감고 돌아서려다 탱자나무를 보았습니다. 새도 짐승도 오기 저어하는 쓸쓸한 가시나무. 오래 전 이 섬을 방어하기 위해 철조망을 치듯 탱자나무를 심었다고 합니다. 잎 하나 달리지 않은 메마른 탱자나무 가시를 보면서 온몸이 가시인 여인 생각이 났습니다. 그녀의 가시는 지금쯤 얼마만큼 마모되었을까 궁금하기도 합니다. 바람이 불 때마다 나무는 제 가지에 찔리지 않도록 몸을 둥글게 말았을 것입니다. 그러다 탱자나무 가시에 맺힌 작은 물방울이 눈에 띄었습니다. 물방울은 가시 끝에 둥글게 매달려 있습니다. 날카로운 가시를 숨긴 방울이 얼마나 둥글고 곱던지, 저절로 가시 끝으로 손이 나가고 말았습니다. 물방울이 내 손가락을 타고 흘러내립니다. 내 손가락으로 이동해 온 물을 바라보며, 가시를 둥글게 감싼 물 한 방울의 힘을 생각합니다.
갑곶을 뒤로하고 해안순환도로를 따라 갑니다. 덕진진을 지나 초지진으로 이어지는 해안도로를 달리면서
나는 아우성을 듣습니다. 멀리 프랑스 함선이 미국의 군함이 운양호가 몰려들어 포를 쏘아댑니다. 깃발을 빼앗기고 재물을 약탈당하고 여인네들이 살해당하는 참담한 비명 소리가 바람을 타고 전해집니다. 해안도로에는 철조망과 돈대가 어김없이 들어서 있습니다.
"돌아다녀 보면 조선팔도, 모든 명당은 초소"라는 황지우의 시를 떠올립니다. "가다 보면 길이 거품이 되는 여기 내가 내린 닻, 내 닻이었구나(황지우 시 「길」 중에서)." 저 뻘에 상처받은 이가 닻을 내릴 곳도 있을까요? 시커멓게 타 뻘이 되어버린 가슴도 받아줄런지요.
갯벌에 눕다
한없이 펼쳐진 갯벌이 지평선을 이룹니다. 바다는 보이지 않습니다. 갯벌 위에 배가 누워 있습니다. 몸을 깊숙이 박은 커다란 닻들은 항해를 추억하는 비석 같습니다. 갯벌에 서면 무덤 생각이 납니다. 분명 저 속에는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생명들이 꿈틀거리고 있을 텐데 말입니다. 그것은 갯벌 위에 꼼짝 않고 누운 배들 때문일 겁니다. 일렁이는 파도도 없고, 파도가 끊어온 해초들도 없는, 고요함 때문입니다. 갯벌 위에 햇살이 번집니다. 어느새 검은 갯벌은 은빛으로 부서집니다.
나는 선뜻 갯벌 속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가장자리만 서성이고 있습니다. 새의 발자국이 갯벌 위에 어지럽게 찍혀 있습니다. 마치 바다로 이끄는 화살표 같습니다. 화살표 주변에는 빈 조개껍데기도 있습니다. 나는 화살표를 따라 갯벌로 들어갑니다. 갯벌은 내딛는 무게만큼 발을 잡아당깁니다. 갯벌에 너무 깊이 빠지지 않도록 조심하며 걷습니다. 갯벌에 몸을 주기에는 나는 너무 가볍습니다. 쭈그리고 앉아 갯벌 위에 난 작은 구멍들을 들여다봅니다. 반가운 소식이 담긴 편지함을 들여다보듯 어둔 구멍을 향해 손을 넣어봅니다. 물컹하고 차가운 뻘의 느낌이 전해져옵니다. 구멍 속에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나는 여기저기 다른 구멍들을 살펴봅니다. 누군가 버리고 간 집을 구경하듯 구멍들을 들여다봅니다. 그들은 어쩌면 저기 멀리서부터 내 발자국 소리를 듣고 깊은 곳으로 숨어버렸는지 모릅니다. 나는 그들이 속을 때까지 발소리를 죽이고 구멍을 들여다볼 인내심이 없습니다. 갯벌은 묵묵히 기다릴 줄 아는 사람들에게만 생명들을 보여줍니다. 멀리 조개를 캐는 아낙들의 모습이 정물처럼 보이는 것도 다 그 때문인가 봅니다. 나는 괜히 빈 구멍만 뒤적거리다가 갯벌을 나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