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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교구 김회인 신부
“사회의 치열한 경쟁 속에 내몰린 청년들이 그저 비어 있어 편안하게 쉴 수 있고, 위로와 격려를 받으며, 용기와 힘을 얻는, 청년들에게 필요한 여러 도움을 주고받음으로써 청년세대와 기성 사회가 어우러져 따뜻한 ‘식탁’이자 ‘길’이기를 희망합니다.”
천주교 전주교구 ‘청년식탁 사잇길’(이하 사잇길) 사장 김회인 신부가 처음 세상에 소개하며 내놓은 말이다.
무료 시식회 기간을 거쳐, 지난 3월 10일 본격 영업을 시작한 사잇길(전주 덕진구)은 청년들을 위한 밥집이다. 2022년 초, 김선태 주교(전주교구장)의 제안으로 김회인 신부가 맡아 준비를 시작한 이곳은 비슷한 관련 사업과 실태 조사, 사업 제안 등의 과정을 거쳐 완성했다.
김 신부가 사잇길에서 펼치고자 한 일들은 “청년을 주 대상으로 하는 식사 나눔과 쉼 공간, 청년들과 함께하는, 사회적 약자를 위한 사업 연대 및 활동, 청년과 함께하는 생명 존중, 정의, 평화, 사회적 가치 창출을 위한 동행, 청년세대의 ‘희망 키움’과 능동적 자기 계발을 지지하는 식탁 중심 문화 콘텐츠 창출, 청년을 위한, 청년에 의한 식탁 중심 플랫폼 또는 공유 공간 역할” 등이다.
이런 계획에 따라 사잇길을 개방형 주방과 식당 그리고 안쪽에 자리 잡은 카페 겸 자유 공간 그리고 공유 부엌 등으로 구성했다.
식당 안쪽에 마련한 자유 공간과 카페, 그리고 공유 부엌으로 활용할 공간. ⓒ정현진 기자
사잇길 운영 시작을 앞두고 김선태 주교는 이례적으로 담화 형식의 글을 냈다.
“올해 우리 교구는 특히 ‘사랑의 실천’에 마음을 모으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먼저 우리를 극진히 사랑하셨던 일들을 생생하게 기억하며, 그 응답으로서 이웃 사랑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이에 우리는 가난한 이들, 특히 변두리에 내몰린 청년들을 외면할 수 없습니다. 그들의 친구가 되고, 그들에게 귀를 기울이며, 그들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곧 그들을 응원하고 그들에게 필요한 도움을 베풀어야 합니다.”
김 대주교는 “곤경에 처한 청년들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것은 우리가 그들에게 도움을 주는 것만이 아니며, 오히려 그들을 통해 우리가 받는 도움이 더 크다”며, 가난한 이들을 통해 우리 자신이 복음화되도록 힘쓰자고 당부했다.
영업 무료 시식과 정식 영업 기간이 어느덧 한 달 즈음 되던 3월 20일, 사잇길에서 만난 김회인 신부는 “준비도, 홍보도 무척 열심히 했지만 정작 찾는 이들이 없을까 봐 걱정이 많았다”면서도, 알음알음 찾아와 함께 밥을 먹고, 후원에 참여하는 이들이 있어 조금 안심이 되고 있다며 웃었다.
사잇길에는 사무국장 박대선 씨, 주방 실장 송안선 씨도 함께한다. 앞으로 해야 할 일도, 알아가야 할 것들도 많은 상황에서 실무와 밥상을 책임지는 이들은 천군만마다. 특히 송안선 씨는 3000원 밥집의 원조라는 전주 뚜벅이 식당을 운영했었다. 식당을 그만둔 뒤에도 여러 곳에서 봉사한 송 실장은 사잇길 제안을 받았을 때, “바로 내가 찾던 일”이라며 흔쾌히 합류했다.
(왼쪽부터) '청년식탁 사잇길'의 세 책임자, 김회인 신부, 송안선 주방실장, 박대선 사무국장. ⓒ정현진 기자
식당 이름이 ‘청년 식당 사잇길’이어서, 이용층 제한이 있는지, 다른 연령대 손님들이 밥을 먹으러 왔던 적이 있는지 궁금했다.
“나이 많은 어르신들이 찾기도 하고, 어린아이가 있는 가족들이 와서 밥을 먹고 가기도 해요. 하지만 그것이 이 식당의 원래 목적에 더 맞는 모습이라고 봅니다. 청년들을 위한 공간이니까 청년 외의 사람들을 배제하는 게 아니라 청년을 중심으로 다른 세대들이 함께 만나 어우러져야 하니까요. 청년을 중심으로 한 밥상 공동체, 그것이 사잇길의 정체성입니다.”
김회인 신부는 “노나놀기”라는 말이 “노나 놀자, 나눔으로 놀자는 것”이라고 설명하며, “어려운 이들을 위한 밥집이라면 흔히 그것을 제공하는 이들과 이용하는 이들을 나눠서 생각한다. 하지만 이 공간 안에서 청년들을 위하는 마음으로 3000원짜리 밥을 함께 먹으면서 세대 간 관계를 형성하는 것, 그것이 기부고 나눔”이라고 말했다.
근래에 청년들을 위한 주택, 카페, 밥집 등이 많이 생겨나고 있다. 어려운 이들이 주머니 걱정을 조금 덜 하면서 밥도 먹고 문화공간을 즐기도록 한다는 좋은 의미로 시작하는 일이다. 그러나 밥집이나 카페는 주변에 비슷한 먹거리를 파는 식당들이 있다면 고민할 일이다. 대부분 가격을 낮추기 어려운 자영업자들에게 김치찌개 몇 그릇은 그들의 절실한 생계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어려운 이들을 위한 밥집을 만든다고 할 때, 혐오나 님비 같은 이유로 갈등 빚는 건 또 다른 문제다.
김회인 신부는 이 부분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고, 그래서 최대한 주변에 식당 없는 곳을 찾아 온 곳이 여기”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사잇길은 상가 2층에 있지만 그 주변에 식당이 없었다. 김 신부는 “주변에 식당이 없는 것은 유동 인구가 그만큼 없다는 것이고 접근성도 떨어진다”면서도, “그래도 입소문을 많이 내 준 덕분에 찾아오는 이들이 있으니 다행이고, 앞으로 더 많은 이가 찾아오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청년식탁 사잇길 입구. 현판은 전주교구 원로사제 문정현 신부의 작품이다. (오른쪽) 사잇길 손님들의 따뜻한 메시지들. ⓒ정현진 기자
얼마 되지 않은 기간이지만, 식당을 운영하는 것, 배고픈 이에게 밥을 먹게 하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새롭게 깨달은 일들이 있었는지 물었다.
김 신부는 “보통 식당은 8시에 문을 닫는다면 최소한 7시 30분이면 주문을 마감한다. 하지만 사잇길에서는 그러면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손님이 뜸했던 어느 날, 일찍 문을 닫을까 생각하던 중 하루 일을 늦게 마치고 겨우 식당을 찾아온 이들이 있었다. 주방 실장도 퇴근한 때여서 어떻게 할지 고민하던 김 신부에게 봉사하던 청년이 “그래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순간 잘못 생각했다고 깨달은 김 신부는 서툴지만 준비해 둔 반찬을 내고 찌개를 끓여 밥을 차렸다. 그 뒤로 마감 시간은 계속 늦어졌고 8시 넘어서 오는 이들도 생겼지만, 그들은 아무 눈치도 보지 않고 밥을 먹고 간다.
김 신부는 “그 일을 겪으면서 우리는 그냥 식당이 아니라 그렇게 늦게서야 밥을 먹으러 올 수밖에 없는 이들을 위한 밥집이라는 것을 다시 생각했다”고 말했다.
어쩌면 밥 먹는 시간을 자유롭게 조절하고 어디서 밥 먹을까 편하게 선택할 수 있는 이들은 ‘사잇길’이 굳이 필요 없을 테다. 김 신부는 이 일을 겪고 사잇길에 오는 이들의 구체적 상황을 헤아릴 준비를 하게 됐다고 말했다.
덕분에 7시 이후 주방은 김회인 신부의 몫이다. “실장님이 준비해 놓은 육수와 재료를 라면처럼 넣고 끓이기만 한다. 아마 손맛이 많이 다를 것”이라는 김 신부는 한 사람의 배를 채우는 것, 그 한 사람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 신부는 “사잇길의 시작부터 지금까지 내가 아니라 옆에서 함께하는 이들의 능력 덕분에 이루어진 일”이라며, “어쨌든 시작되었고, 앞으로 어떻게 항해하느냐가 중요하다. 목적과 방향을 잃지 않고 본래의 길을 잘 가도록 해야겠다는 생각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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