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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광주대교구 꾸르실리스따 원문보기 글쓴이: 이선정스테파노
2026년 1월 30일 금요일
[(녹) 연중 제3주간 금요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말씀의 초대
다윗은 전쟁터에서 우리야를 가장 위험한 곳으로 보내어 죽게 만든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는 아무도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도 자라고 열매를 맺어 수확할 수 있게 된다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너는 나를 무시하고, 우리야의 아내를 데려다가 네 아내로 삼았다 (2사무 12,10 참조).>
▥ 사무엘기 하권의 말씀입니다. 11,1-4ㄱㄷ.5-10ㄱ.13-17
1 해가 바뀌어 임금들이 출전하는 때가 되자,
다윗은 요압과 자기 부하들과 온 이스라엘을 내보냈다.
그들은 암몬 자손들을 무찌르고 라빠를 포위하였다.
그때 다윗은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었다.
2 저녁때에 다윗은 잠자리에서 일어나 왕궁의 옥상을 거닐다가,
한 여인이 목욕하는 것을 옥상에서 내려다보게 되었다.
그 여인은 매우 아름다웠다.
3 다윗은 사람을 보내어 그 여인이 누구인지 알아보았는데,
어떤 이가 “그 여자는 엘리암의 딸 밧 세바로
히타이트 사람 우리야의 아내가 아닙니까?” 하였다.
4 다윗은 사람을 보내어 그 여인을 데려왔다. 그 뒤 여인은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5 그런데 그 여인이 임신하게 되었다.
그래서 다윗에게 사람을 보내어, “제가 임신하였습니다.” 하고 알렸다.
6 다윗은 요압에게 사람을 보내어 “히타이트 사람 우리야를 나에게 보내시오.” 하였다.
그래서 요압은 우리야를 다윗에게 보냈다. 7 우리야가 다윗에게 오자,
그는 요압의 안부를 묻고 이어 군사들의 안부와 전선의 상황도 물었다.
8 그러고 나서 다윗은 우리야에게,
“집으로 내려가 그대의 발을 씻어라.” 하고 분부하였다.
우리야가 왕궁에서 나오는데 임금의 선물이 그를 뒤따랐다.
9 그러나 우리야는 제 주군의 모든 부하들과 어울려 왕궁 문간에서 자고,
집으로 내려가지 않았다.
10 사람들이 다윗에게 “우리야가 자기 집으로 내려가지 않았습니다.” 하고 보고하자,
13 다윗이 그를 다시 불렀다.
우리야는 다윗 앞에서 먹고 마셨는데, 다윗이 그를 취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저녁이 되자 우리야는 밖으로 나가
제 주군의 부하들과 함께 잠자리에 들고, 자기 집으로는 내려가지 않았다.
14 다음 날 아침, 다윗은 요압에게 편지를 써서 우리야의 손에 들려 보냈다.
15 다윗은 편지에 이렇게 썼다.
“우리야를 전투가 가장 심한 곳 정면에 배치했다가,
그만 남겨 두고 후퇴하여 그가 칼에 맞아 죽게 하여라.”
16 그리하여 요압은 성읍을 포위하고 있다가,
자기가 보기에 강력한 적군이 있는 곳으로 우리야를 보냈다.
17 그러자 그 성읍 사람들이 나와 요압과 싸웠다.
군사들 가운데 다윗의 부하 몇 명이 쓰러지고, 히타이트 사람 우리야도 죽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 음
<씨를 뿌리고 자는 사이에 씨는 자라는데, 그 사람은 모른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4,26-34
그때에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26 말씀하셨다.
“하느님의 나라는 이와 같다. 어떤 사람이 땅에 씨를 뿌려 놓으면,
27 밤에 자고 낮에 일어나고 하는 사이에 씨는 싹이 터서 자라는데,
그 사람은 어떻게 그리되는지 모른다.
28 땅이 저절로 열매를 맺게 하는데,
처음에는 줄기가, 다음에는 이삭이 나오고 그다음에는 이삭에 낟알이 영근다.
29 곡식이 익으면 그 사람은 곧 낫을 댄다. 수확 때가 되었기 때문이다.”
30 예수님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하느님의 나라를 무엇에 비길까? 무슨 비유로 그것을 나타낼까?
31 하느님의 나라는 겨자씨와 같다. 땅에 뿌릴 때에는 세상의 어떤 씨앗보다도 작다.
32 그러나 땅에 뿌려지면 자라나서 어떤 풀보다도 커지고 큰 가지들을 뻗어,
하늘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수 있게 된다.”
33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로 이처럼 많은 비유로 말씀을 하셨다.
34 비유를 들지 않고는 그들에게 말씀하지 않으셨다.
그러나 당신의 제자들에게는 따로 모든 것을 풀이해 주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땅에 뿌려진 씨앗은 농부가 일할 때도, 잠든 사이에도 조용히, 그러나 멈추지 않고 자라납니다. 콩나물을 키워 본 사람은 경험하였을 것입니다. 날마다 물을 주며 묵묵히 기다리면, 일주일쯤 지나 빛을 가린 검은 천 아래에 어느덧 훌쩍 자란 콩나물을 보게 됩니다. 겉으로는 큰 변화가 없는 듯 보일 수 있지만, 생명은 조용히 자라납니다.
하느님 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때로 당장 눈에 보이는 열매가 없다는 이유로 믿음이 부족한 것은 아닌지, 기도가 부족한 것은 아닌지 불안해합니다. 그러나 콩나물시루에 성실히 물을 주면 콩나물이 자라는 것처럼, 꾸준히 인내하며 성실히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생각지도 않은 때에 하느님께서 응답을 주실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를 “세상의 어떤 씨앗보다도 작[은]”(마르 4,31) 겨자씨에 비유하십니다. 겨자씨는 작지만 싹을 틔우고 자라나면 “하늘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4,32) 만큼 큰 나무가 됩니다. 우리의 노력이 적어 보이더라도 주님의 은총으로 풍성한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게 하는 비유입니다. 우리의 믿음이나 기도가 당장은 보잘것없어 보일지라도, 하느님과 함께한다면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을 것입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조용히, 그러나 성실하게 믿음을 키워 갑시다. 성숙한 신앙은 소란스럽거나 번잡하지 않습니다. 인내와 성실 안에서 우리의 신앙은 성숙해질 것입니다.(이철구 요셉 신부)
승승장구하던 다윗이 순식간에 나락으로 떨어진 이유!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사무엘기 하권은 다윗의 승승장구와 우여곡절, 그리고 처참한 몰락과 심연의 바닥 체험을 아주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다윗왕은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성왕으로 칭송받습니다. 사실 다윗은 참으로 훌륭한 인물이었다. 그의 성품은 온화했고 성실했으며, 권위를 인정할 줄 알고 자신의 할 일에 대해서는 언제나 최선을 다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의 신앙심은 어린 시절부터 출중했습니다.
다윗이 왕이 된 후 가장 먼저 한 일은 주님의 성궤를 다윗성에 안치하는 일이었습니다. 계속되는 전투 속에, 펄럭이는 야전 막사 휘장 가운데 모신 주님의 궤가 마음에 걸리자 그는 주님을 위한 성전을 지어 드리려는 결심을 하게 됩니다.
더욱이 다윗은 은혜를 저버리는 파렴치한 사람이 아니라, 은혜를 잊지 않고 보답할 줄 아는 가슴 따뜻한 남자였습니다. 죽음의 위기에서 자신을 살려준 친구 요나단의 우정을 잊지 않았습니다. 그의 아들을 자신의 아들이자 왕자처럼 살게 해 주었습니다.
이런 다윗이었지만 그 역시 평생 씻을 수 없는 두 가지 과오를 저지르게 됩니다. 그가 저지른 죄의 심각성을 엄청난 것이었습니다. 요즘으로 치면 간음죄와 살인교사죄입니다. 요즘 같으면 아무리 정상 참작을 해준다 해도 징역 20년 감이었습니다. 율법에 따르면, 둘 중 한 가지 죄만 저질러도 사형에 처하라고 되어 있었습니다. 다윗은 죽어 마땅한 죄를 저지른 것입니다.
그토록 신앙심 깊고 충실하던 다윗이 되돌이킬 수 없는 잘못을 저지른 데에는 배경이 있습니다. 10년 이상의 세월 동안 그는 늘 승승장구했습니다. 나가는 전쟁마다 승전보를 울렸습니다. 그러다 보니 기장이 해이해진 것입니다. 이제 더 이상 다윗은 심란한 전쟁터로 나가지 않고, 후방에서 호사스런 생활을 영위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다윗은 너무 높이 올라갔습니다. 백성들이 환호하고 군사들은 충성심을 보이자 잔뜩 기고만장해졌습니다. 주님 두려운 줄 몰랐습니다. 휘하 부하들은 피비린내 나는 전선에서 죽을 고생을 하고 있는데, 그는 술과 고기, 향락에 점점 빠져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정의롭고 공의로우신 주님께서 이런 다윗을 그냥 두실 리 만무합니다. 즉각적인 조치를 취하십니다. 인생의 가장 밑바닥으로 그를 내려보내신 것입니다.
다윗 인생의 부침은 오늘 우리에게 큰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아무리 높이 올라갔다 할지라도, 오늘 우리가 아무리 강한 믿음 안에 경건하게 살아가고 있다 할지라도, 절대 방심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인생 한방이라고 잠시 자만하는 순간, 순식간에 죄의 깊은 나락으로 빠져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죄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 사건을 통해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더욱 중요한 포인트가 하나 있습니다. 주님의 크신 자비는 우리 인간의 죄를 훨씬 능가한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큰 죄라 할지라도 주님 자비를 넘어설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가 취해야 할 가장 중요한 자세는 다윗이 보여준 ‘솔직하고도 즉각적인 회개’입니다. “내가 주님께 죄를 지었소.”(2 사무 12,13)
하늘 높은 줄 모르고 기고만장했던 다윗, 더 이상 내려갈 수 없을 정도로 깊은 심연의 바닥까지 내려갔던 다윗, 주님 자비와 인간의 비참 속에서 오랜 방황을 거듭하던 다윗이 마침내 임종 직전에 도달했는데, 그가 아들 솔로몬에게 남긴 유언이 참으로 기가 막힙니다. 인생의 산전수전 다 겪은 그가 남아있는 모든 힘을 다해 남긴 유언은 오늘 우리를 향한 것이기도 합니다.
“나는 이제 세상 모든 사람이 가는 길을 간다. 너는 사나이답게 힘을 내어라. 주 네 하느님의 명령을 지켜 그분의 길을 걸으며, 또 모세 법에 기록된 대로 하느님의 규정과 계명, 법규와 증언을 지켜라. 그러면 네가 무엇을 하든지 어디로 가든지 성공할 것이다.”
내가 마음의 평화를 얻으면 수천 명의 안식처가 됩니다
전삼용 요셉 신부님
찬미 예수님.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를 저절로 자라나는 씨앗과 겨자씨에 비유하십니다. 농부가 밤낮 자고 일어나는 사이에 씨앗은 싹이 트고 자라나, 마침내 하늘의 새들이 깃들 수 있는 큰 나무가 됩니다. 우리는 흔히 하느님 나라를 죽어서 가는 천당으로만 생각하지만,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하느님 나라는 지금 여기에서 맛보는 행복입니다.
그렇다면 내가 지금 행복한지, 내 안에 하느님 나라가 자라고 있는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그 가장 확실한 증거는 내 곁에 누군가 와서 편안히 쉬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 원리를 심리학적으로 꿰뚫어 본 사람이 있습니다. 오스트리아의 저명한 심리학자 알프레드 아들러에게 한 우울증 환자가 찾아왔습니다. 환자는 독한 약을 처방해 달라고 했지만, 아들러는 아주 기이한 처방전을 내밀었습니다.
"당신이 이 처방을 따른다면 2주 안에 완치될 수 있습니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오늘 어떻게 하면 한 사람이라도 기쁘게 해 줄 수 있을까?’를 생각하고 실천하십시오." 사실 이 말이 모든 그리스도 가르침의 핵심입니다.
우울과 불행의 본질은 자기 몰입(Self-obsession)입니다. 온종일 나, 내 상처, 내 결핍, 내 기분만 생각하면 영혼은 감옥에 갇힙니다. 하지만 남을 위한 쉼터가 되려고 고민하는 순간, 시선이 나에게서 너에게로 옮겨갑니다. 그 순간 자아의 감옥 문이 열리고 해방감, 곧 행복을 맛보게 됩니다. 남을 기쁘게 하는 것은 남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그 좁은 감옥에서 꺼내기 위한 탈출구입니다.
실제로 마더 데레사 수녀님에게 자살 충동에 시달리던 한 귀부인이 찾아온 적이 있습니다. 수녀님은 그녀에게 설교하는 대신, 죽어가는 환자들을 돌보는 일을 돕게 했습니다. 한 달 동안 냄새나는 환자들을 씻기고 먹이면서 그녀의 우울증은 씻은 듯이 사라졌습니다. 나만을 위할 때 세상은 뺏고 뺏기는 정글이지만, 남을 위해 살 때 세상은 사랑이 흐르는 화원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 평화의 원리를 본능적으로 보여주는 동물이 있습니다. 바로 남미에 사는 설치류 카피바라입니다. 인터넷에서 카피바라 사진을 보신 적이 있나요? 이 동물 곁에는 항상 다른 동물들이 다닥다닥 붙어서 쉬고 있습니다. 오리, 거북이, 원숭이, 심지어 천적인 악어조차도 카피바라 옆에서는 입을 다물고 평온하게 쉽니다. 그래서 별명이 동물계의 부처 혹은 친화력 끝판왕입니다.
동물학자들은 그 이유를 카피바라 특유의 공격성 없음과 느긋함에서 찾습니다. 카피바라는 먹이를 독점하려 하지 않고, 영역을 지키려고 으르렁대지도 않습니다. 즉, 동물들에게 있는 삼구(욕심과 본능)가 제어된 상태입니다.
그 무해한 평화로움이 주변 동물들의 경계심을 무장 해제시키고 쉼을 주는 것입니다. 만약 내 곁에 사람이 없고 가족들이 나를 피한다면, 내가 너무 날카로운 욕심의 이빨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일지 모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이기적인 정글에서 건져내어 남을 위한 쉼터로 만드시려고 우리 마음에 말씀의 씨앗을 뿌리십니다. 행복의 시스템은 이렇습니다. 먼저 말씀이 떨어져야 합니다. 그런데 그 말씀이 자라려면 우리는 삼구(세속, 육신, 마귀)와 싸우는 좋은 땅이 되어야 합니다.
욕심을 버리고, 게으름을 이겨내며, 말씀 하나하나를 실천해 나가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삼구는 나의 생존을 생각하는 욕망이고, 말씀은 타인의 기쁨을 먼저 생각하라는 가르침입니다. 만약 말씀을 매일 등경 위에 행동으로 올려놓는다면, 예를 들어 미소 짓기, 참아주기, 나누기 같은 작은 행위들이 밤사이에 하느님의 손길을 거쳐 자라납니다.
오늘 복음에서 저절로(automatē) 자란다는 말은 하느님의 자동 시스템입니다. 내가 억지로 크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실천하면 영혼은 자동으로 넓어지게 설계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내 영혼이 커지면, 어느새 내 곁에 지친 이웃들이 날아와 둥지를 틉니다. 내가 나무가 되어 그들에게 그늘을 내어줄 때, 비로소 하느님 나라가 내 안에서 완성되는 것입니다. 이 쉼터가 되는 길은 꼭 거창한 돈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가르멜 수녀원의 소화 데레사는 몸이 약해 거창한 단식이나 고행을 할 수 없었습니다. 대신 그녀는 매일 아주 작은 말씀을 붙잡고 실천했습니다. 빨래터에서 옆 수녀가 더러운 물을 튀길 때 화를 내는 대신(삼구와의 싸움) 살짝 미소 지었습니다.
식당에서 가장 맛없는 음식을 불평 없이 먹었습니다. 짜증 나는 수녀님을 만날 때 가장 반갑게 인사했습니다. 그녀는 이렇게 썼습니다. "바닥에 떨어진 핀 하나를 줍더라도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줍겠습니다."
이 사소해 보이는 매일의 실천들이 쌓여, 그녀의 영혼은 거대한 쉼터가 되었습니다. 그녀가 24세에 요절했을 때, 그녀의 영적 일기는 전 세계 수많은 영혼에게 위로와 안식을 주는 가장 큰 겨자 나무가 되었습니다.
러시아 정교회의 성인 세라핌은 숲속 오두막에서 은수 생활을 했지만, 수많은 사람이 그 먼 숲길을 걸어 그를 찾아왔습니다. 단지 그의 곁에 앉아있는 것만으로도 위로를 얻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대 스스로 내면의 평화를 얻으십시오. 그러면 그대 곁에 있는 수천 명의 사람이 구원(안식)을 얻을 것입니다."
내가 말씀을 통해 삼구의 욕망과 싸워 이기면 평화를 얻고, 그러면 굳이 전교하려 애쓰지 않아도 사람들은 내 안의 평화 냄새를 맡고 모여듭니다. 카피바라 곁에 동물들이 모이듯 말입니다.
오늘 하루, 내 욕심을 조금 덜어내고 그 자리에 말씀을 채우십시오. 그래서 누군가가 "너랑 있으면 참 편안해"라고 말하며 내 곁에 머문다면, 그것이 바로 내가 행복하다는, 내 안에 하느님 나라가 자라고 있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입니다. 아멘.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구글에서 일했던 한 강사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몇 번의 변곡점을 지나왔다고 말합니다. 경상도의 작은 마을에서 물장구를 치고 다람쥐를 쫓던 어린 시절, 컴퓨터로 시작된 디지털 시대, 스마트폰이 일상이 된 모바일 시대, 그리고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인공지능의 시대입니다. 2016년,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대결 이후 구글은 인공지능의 시대를 공식적으로 선언했습니다. 인간의 노동은 점점 기계와 결합하고, 휴머노이드가 인간의 일을 대신하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말합니다. 기술은 분명히 우리 삶을 편리하게 만들어 줍니다. 그러나 편리함이 곧 행복은 아닙니다. 기술은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에 답을 줄 수 있어도, “왜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에는 답하지 못합니다.
역사는 이미 그 사실을 우리에게 보여 주었습니다. 로마 제국은 당시 세계에서 가장 넓은 영토와 가장 앞선 기술을 가진 나라였습니다. 도로와 수도 시설, 건축 기술은 오늘날까지도 감탄을 자아냅니다. 그러나 그 찬란한 제국의 크기와 기술은 로마 시민들을 근본적으로 행복하게 만들지 못했습니다. 노예가 일을 대신하자 시민들은 일자리를 잃었고, 국가는 빵을 나누어 주며 검투장과 목욕탕을 열어 주었습니다. 굶주림은 해결되었지만, 삶의 의미는 사라졌습니다. 사람들은 살아 있었지만,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는 잊어버렸습니다. 기술과 제도는 인간을 먹여 살릴 수는 있었지만, 인간의 영혼을 살려 내지는 못했습니다. 그 결과 로마는 외부의 적보다 먼저 내부에서부터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인공지능의 시대를 살아가는 오늘의 우리도 같은 질문 앞에 서 있습니다. 더 빠르고, 더 정확하고, 더 편리한 삶이 가능해질수록 우리는 더욱 깊이 물어야 합니다. “이 삶은 나를 더 인간답게 만드는가?” 인간은 단순히 소비하고 즐기기 위해 태어난 존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사랑하고 존경하는 다윗 왕의 삶도 이러한 질문과 선택의 연속이었습니다. 막내였던 다윗은 하느님의 선택을 받아 골리앗을 쓰러뜨렸고, 사울 왕에게 쫓기면서도 하느님의 뜻을 저버리지 않았습니다. 그는 왕이 되었고, 나라를 통일했습니다. 그러나 다윗 역시 권력의 정점에서 무너집니다. 바세바를 취하고, 그녀의 남편 우리야를 죽게 만든 선택은 하느님의 뜻에서 벗어난 길이었습니다. 그때 다윗이 선택한 것은 변명이 아니라 회개였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기도합니다. “제 죄악을 제가 알고 있사오며, 제 잘못이 언제나 제 앞에 있나이다.” 왕이라는 지위도, 나라의 크기도 그를 행복하게 하지 못했습니다. 다윗은 하느님의 뜻 안에 머물 때만 인간이 다시 살아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다윗의 죄보다 그의 회개를 더 깊이 보셨고, 다시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를 겨자씨에 비유하십니다. 겨자씨는 너무 작아 눈에 잘 띄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작은 씨앗이 자라 큰 나무가 되고, 많은 생명이 그 그늘에 깃듭니다. 하느님 나라는 거대한 제국이나 눈부신 기술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원망 대신 감사, 교만 대신 겸손, 시기 대신 온유를 선택하는 작고 조용한 결단에서 시작됩니다. 나라의 크기와 기술의 발전이 인간의 행복을 결정하지 않습니다. 삶의 의미를 추구하고,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 인간 행복의 디딤돌입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하느님 나라이며, 오늘 우리가 맞추어 가야 할 하느님 나라의 퍼즐입니다. 비록 길이 멀고 험해 보여도, 겨자씨 같은 선택을 포기하지 않을 때 하느님 나라는 우리 안에서 자라날 것입니다.
“주님, 기술과 힘이 아니라 당신의 뜻을 선택할 수 있는 지혜를 주소서. 작은 겨자씨 같은 삶으로 당신 나라를 자라게 하소서.”
오늘의 성인
성녀 히야친타 마리스코티 (Hyacintha Mariscotti)
활동년도 : 1585-1640년
신분 : 수녀
지역 :
같은 이름 : 마리스코티, 히야낀따, 히야친따, 히야킨따, 히야킨타
이탈리아 비테르보(Viterbo) 인근 비냐렐로(Vignarello)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난 성녀 히야친타 마리스코티(Hyacintha de Mariscottis)는 비테르보의 성 베르나르디누스 수녀원에서 교육을 받았고, 자신과 혼담이 오가던 한 후작이 그녀의 여동생과 결혼하게 된 사건으로 크게 충격을 받았다.
이를 계기로 성 베르나르디누스 수녀원에 입회한 그녀는 히야친타라는 수도명을 받았다.
그녀는 수도생활 초기 10여 년간 여전히 사치스럽고 개인적 생활로 수녀회에 나쁜 영향을 끼쳤다.
그러다가 어느 날 중병에 걸려 고해성사를 하면서 과거를 참회하고 진정한 수도자의 삶을 살게 되었다.
성녀 히야친타의 가장 큰 덕은 애덕으로 수도원이란 한계를 뛰어넘을 만큼 위대하였다.
그녀는 병자와 노인, 가난한 이들에게 헌신적인 사랑을 보였다.
비테르보 지역에 전염병이 돌았을 때 그녀는 병자 간호에 헌신하였고 두 개의 자선 단체도 설립하였다. 그러다가 1640년 1월 30일 비테르보에서 세상을 떠났다.
성녀 히야친타는 1726년 9월 1일 교황 베네딕투스 13세(Benedictus XIII)에 의해 시복되었고, 1807년 5월 24일 교황 비오 7세(Pius VII)에 의해 시성되었다. 이때 시성 선언문에 이런 말이 나온다.
“그녀의 고행은 자신의 삶 전체가 하나의 지속적인 기적임을 보여주었고, 그녀의 사랑의 사도직은 수많은 설교보다도 영혼들을 하느님께 인도하는데 유익하였다.”
성 무치아노 마리 위오(Mucian Maria Wiaux)
신분 : 수사, 교사
활동연도 : 1841-1917년
같은이름 : 마리아, 메리, 무치아누스, 무키아노, 무키아누스, 미리암
성 무키아누스 마리아 위오(Mucianus Maria Wiaux, 또는 무치아노 마리 위오)는 1841년 벨기에의 멜레(Mellet)에서 신심이 매우 깊은 대장장이와 여인숙 주인이었던 신심 깊은 부인의 여섯 자녀 중 한 명으로 태어났다. 15세인 1856년 나무르(Namur)에서 그리스도 교육 수도회에 입회하여 세례명인 루도비쿠스(Ludovicus) 대신 로마 순교자인 무키아누스라는 이름을 수도명으로 받았다. 그는 1858년 히메이(Chimay)와 브뤼셀(Brussel)에 잠시 머물다가 말론(Malonne)의 대학으로 부임하여 58년 동안 헌신적으로 학생들을 가르치며 삶의 전부를 보냈다.
그러나 성 무키아누스 마리아 위오 수사에게 이 시간은 어려움의 연속이었다. 교육 수도회에 몸담고 있었지만 자신은 재능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그는 번외 과목을 가르치고 특별한 교수 방법이 필요 없는 일들을 소임으로 맡았다. 비록 그는 책에 쓰인 지식을 전하는 데에 성공하지 못했지만 “가장 적은 재능을 그 능력의 한계까지 끌어올리는” 은총을 받았다. 각 개인에게 있어 최고의 것을 끌어내는 능력은 성 무키아누스 마리아 위오 수사가 모든 이들에게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이유였다. 그의 삶에 있어서 온화함과 성스러움은 “항상 기도하는 수사”로 인정받는 탁월한 모범이었다.
성 무키아누스 마리아 위오의 묘소를 참배하는 관습은 그의 선종 직후부터 생겼다. 벨기에에서 그는 하느님과의 중재자로 알려져 사후 20년도 지나지 않은 1936년부터 시성운동이 시작되었다. 그래서 1977년 10월 30일 동료 수사 성 미카엘 페브레스 코르데로(Michael Febres Cordero, 2월 9일)와 함께 교황 복자 바오로 6세(Paulus VI)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고, 1989년 12월 10일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시성되었다.
성 무키아누스 마리아 위오의 시성식에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그를 “벨기에의 빛, 그의 수도회의 빛”으로 선포하였다. 벨기에의 주교들은 성 무키아누스 마리아 위오에 대해 그가 어떠한 신학적, 영적 명제도 남기지 않았고, 그의 이름을 떠올릴만한 무엇도 남기지 않았지만, 일상적인 삶 안에서 그는 늘 기도하는 사람으로서 학생들 사이에서 사도였으며, 매일의 업무를 성덕으로 이행하여 누구도 아프지 않게 하며 모든 이를 용서했다고 평했다.
성녀 알데군다(Aldegundis)
활동년도 : 635-684년
신분 : 동정녀
지역 : 모뵈주(Maubeuge)
같은 이름 : 알데군디스
메로빙거 왕족인 성 발베르투스(Walbertus, 5월 11일)와 성녀 베르틸리아(Bertilia, 1월 3일)의 자녀로 태어난 성녀 알데군디스(또는 알데군다)는 벨기에의 에노(Hainaut) 태생이다.
그녀는 양친의 결혼 권유를 뿌리치고 언니인 성녀 발데투르디스(Waldetrudis, 4월 9일)의 수도원으로 가서 살았다.
그 후 그녀는 모뵈주 근교의 어느 은둔소로 들어가서 일생을 기도와 고행 속에서 보냈다.
성녀 알데군디스는 유방암을 앓았는데, 죽을 때까지 하느님께 큰 신뢰심을 보여 그녀의 성덕이 뛰어남을 보여주었다.
성녀 마르티나 (Martina)
활동년도 : +226년?
신분 : 동정 순교자
지역 : 로마(Roma)
같은 이름 : 마르띠나, 말지나
성녀 마르티나의 전기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으나, 그녀는 알렉산데르 세베루스 황제(222-235년)의 그리스도교 박해 때 참수형을 받고 순교한 것으로 알려졌다.
1634년 그녀의 유해가 폐허가 된 기념 성당에서 발견되자 교황 우르바누스 8세(Urbanus VIII)는 지하 성당을 겸비한 이 옛 성당을 복구하였다.
성녀 바틸다 (Bathildis)
활동년도 : +680년
신분 : 왕비
지역 :
같은 이름 : 바띨다, 바틸디스
잉글랜드(England) 태생의 성녀 바틸다는 641년에 해적들에게 끌려가서 프랑크의 왕 클로비스 2세(Clovis II)의 궁중 시종장의 하녀로 팔려갔다. 몇 년 후 그녀의 미모와 탁월한 능력이 눈에 띄게 되어 왕이 그녀를 아내로 삼게 되었다. 이때가 649년이다. 그녀는 세 아들을 낳았는데, 그들은 모두 왕이 되어 클로테르 3세(Clotaire III), 칠데릭 2세(Childeric II) 그리고 티에리 3세(Thierry III)가 되었다.
655년에 클로비스 왕이 사망하자 그녀는 섭정이 되어 현명하고도 자비롭게 나라를 다스려 칭송을 받았다. 그녀는 수많은 노예를 해방시켰고, 궁성에서 먼 지역 주민들을 따뜻이 보살폈으며, 생드니(Saint-Denis), 코르비(Corbie), 셸르(Chelles) 등에 수많은 수도원을 세웠다. 그 후 665년에 그녀는 수도원으로 은퇴하였다. 교황 성 니콜라우스 1세(Nicolaus I, 11월 13일)가 그녀를 시성하였다.
복자 세바스티아노 발프레 (Sebastian Valfre)
활동년도 : 1629-1710년
신분 : 신부
지역 : 토리노(Torino)
같은 이름 : 세바스띠아노, 세바스띠아누스, 세바스찬, 세바스챤, 세바스티아누스, 쎄바스띠아노, 쎄바스띠아누스
이탈리아 피에몬테(Piemonte)의 베르두노(Verduno) 태생인 세바스티아누스 발프레(Sebastianus Valfre, 또는 세바스티아노)는 매우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났으나 소년 때에 이미 사제가 될 결심을 했고, 남의 책을 베껴가면서 부모 몰래 공부하였다. 그가 토리노로 공부하러 갈 때 집에서 준 것은 조그마한 마차 1대 분의 포도주가 전부였다고 한다.
그는 1651년에 토리노의 설교자회에 입회하여 사제가 되었는데, 첫미사는 그의 부모를 위로하기 위하여 고향 성당에서 지냈다. 그의 첫 임무는 어느 작은 성당의 책임자로서 신심생활을 지도하는 일이었다. 그 후 그는 수련장으로 임명되었고, 40세 때에는 원장직을 역임하였다.
그의 명성은 영혼의 지도에서 얻어졌다. 대부분의 시간을 고해소에서 지낸 그는 자기 공동체 회원들뿐만 아니라 만인의 고해신부였다. 그는 영적인 직관력이 뛰어났고, 남의 마음을 읽었을 뿐만 아니라 불신앙과 무관심을 예리하게 파헤쳤다. 사르데냐(Sardegna)의 왕 빅토르 아마데우스 2세(Victor Amadeus II)는 그에 의하여 회개하였다. 한마디로 그의 생애는 진정한 사목자상 바로 그것이었다. 그는 자신이 예언한 날에 하느님 품에 안겼다. 그때 그의 나이는 81세였다. 그는 1834년 교황 그레고리우스 16세(Gregorius XVI)에 의해 시복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