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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년 다해 10월10일 연중 제27주간 목요일
[청주] 합당한 마음으로 청하라. -
청주 교구 감곡 매괴 성모 성당 반 영억 라파엘 신부
† 제1독서 : 말라 3, 13 - 20ㄴ
† 복음 : 루카 11, 5 - 13
★ 사람들은 거만하고 악을 저지르는 자들이 번성하는 모습을 보며
하느님을 섬기는 것이 헛된 일이라고 여긴다. 그러나 말라키 예언자는
주님께서는 당신을 섬기는 이들을 잊지 않고 계신다는 사실을
선포한다(제1독서).
★ 어떤 사람이 밤중에 찾아온 손님을 접대하고자 이미 잠자리에 든
벗을 찾아가 빵을 달라고 줄곧 졸라 댄다. 그러면 싫은 내색을 하던
벗일망정 마침내 그의 부탁을 들어주지 않을 수가 없다. 예수님께서는
이 비유를 통하여 기도의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지 알려 주신다(복음).
◈ 오늘의 묵상
미국 뉴욕의 한 신체장애자 회관에는 이런 글귀가 새겨져 있다고
합니다.
“나는 하느님께 나를 강하게 만들어 주십사고 부탁했다, 내가 원하는
모든 걸 이룰 수 있도록.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나를 약하게 만드셨다,
겸손해지는 법을 배우도록.
나는 하느님께 건강을 부탁했다, 더 큰 일을 할 수 있도록.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내게 허약함을 주셨다, 더 의미 있는 일을 하도록.
나는 부자가 되게 해 주십사고 부탁했다, 행복할 수 있도록. 그러나
난 가난을 선물받았다, 지혜로운 사람이 되도록.
나는 재능을 주십사고 부탁했다, 사람들의 찬사를 받을 수 있도록.
그러나 난 열등감을 선물받았다, 하느님의 필요성을 느끼도록.
나는 하느님께 모든 것을 부탁했다, 삶을 누릴 수 있도록.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나에게 삶을 선물하셨다, 모든 것을 누릴 수 있도록.
나는 내가 부탁한 것을 하나도 받지 못했지만 내게 필요한 모든
것을 선물받았다. 나는 작은 존재임에도 하느님께서는 내 무언의
기도를 다 들어주셨다. 모든 사람 가운데에서 나는 가장 축복받은
이다.”
오늘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 그런데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예리코에서 눈먼 이를
고쳐 주시기 전에 하신 다음의 물음과 함께 생각해야 합니다.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느냐?”(마르 10,51) 그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아시면서도 이렇게 물으신 데에는 그가 청하는 것이
생선이 아니라 뱀이, 달걀이 아니라 전갈이 아닌지 스스로 먼저
살펴보라는 뜻이 담겨 있을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기도에 언제나 응답해 주십니다. 그러나 그
기도의 지향이 우리의 구원에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니라면, 그분의
응답은 우리의 생각과는 다른 방식으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 매일 미사 -
◈ [청주] 합당한 마음으로 청하라 /
반영억라파엘 감곡매괴 성모성당 신부님
2013년 다해 10월10일 연중 제27주간 목요일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 루카 11,5-13
합당한 마음으로 청하라.
“우는 아이에게 젖을 준다”는 옛말이 있습니다. 무슨 일이나 원하는
사람이 구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간절히 원하면 반드시 얻을 수
있습니다. 기억 하실 것입니다. 월드컵 축구시합 응원에서 “꿈은
이루어진다”는 희망을 표현했고 그 희망이 기쁨을 주었습니다. 야고보
사도는 말합니다. “여러분이 얻지 못하는 까닭은 하느님께 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야고2,4). 그러므로 구하십시오! 주님께서 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할 것은 구한다 해서 내가 원하는 때에 원하는
방법으로 주시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내가 필요합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 누구든지 청하는
이는 받고, 찾는 이는 얻고, 문을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다”
(루카11,9-10) 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하느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꼭 들어주신다는 보증입니다. 그러므로 기도할 때 “결코 의심하는 일
없이 믿음을 가지고 청해야 합니다. 의심을 하는 사람은 바람에 밀려
출렁이는 바다물결 같습니다. 그러한 사람은 주님에게서 아무것도
받을 생각을 말아야 합니다”(야고1,6-7). 사실 “우리가 그분에 대하여
가지는 확신은 이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이든지 그분의 뜻에 따라 청하면
그분께서 우리의 청을 들어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청하든지
그분께서 들어주신다는 것을 알면, 우리가 그분께 청한 것을 받는다는
것도 압니다”(1요한5,14-15). 청하는 것은 우리의 몫이고 주시는 것은
그분의 몫입니다.
그러나 청해도 응답 받지 못하는 기도가 있습니다. 시편66장 18절을
보면 “나 나쁜 뜻을 품었더라면 주께서는 아니 들어주셨으리라” 적고
있습니다. 잠언에도 “나는 대답하지 아니하리라. 또, 나를 애써 찾겠지만
만나지 못할 것이다. 야훼를 두려워하여 섬길 줄 모르고 지식을 멀리한
탓이다. 내 충고를 다르지 않고 온갖 훈계를 없니 여긴 탓이다”(11,27-30)
하였습니다. 완고한 자의 기도는 응답 받지 못합니다. “귀를 막고 하느님의
법을 듣지 아니하면 그의 기도마저 역겨워 하리라”(잠언28,9). 그리고
“구해도 얻지 못한다면 그것은 욕정을 채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입니다”
(야고4,3). 더더욱 악행을 저지른 자의 기도는 외면하십니다. “두 손 모아
아무리 빌어 보아라. 빌고 또 빌어 보아라. 내가 듣지 아니하리라. 너희의
손은 피투성이, 몸을 씻어 정결케 하여라”(이사1,15-16).
기도를 했는데 들어주시지 않는 이유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첫째는
마음 없이 청했기 때문입니다. 믿음으로 청해야 합니다. 양다리 걸치기는
없어야 합니다. 또한 끈질기게 기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인디안들이
가뭄에 기도하면 반드시 비가 온다고 합니다. 그들은 비가 올 때까지
기도를 한답니다. 한편 내가 겸손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바리사이와
세리의 기도를 생각해 보십시오. 나의 기도는 어느 쪽에 가까운지를!
또 다른 이유는 들어주면 오히려 피해를 주기 때문입니다. 과일을 까고
있는데 어린아이가 칼을 달라고 졸라대며 칭얼거린다고 칼을 줄 수는
없는 법입니다. 허락하면 교만해 지고 피해가 간다면 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청하되 합당한 마음으로 청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언제나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도하고 간구하며 믿음으로 소원을 하느님께 말씀
드리기 바랍니다. ‘믿고 바라고, 믿고 감사하고, 믿고 기뻐하며, 믿고
사랑하라!’ 하느님의 손길을 분명히 느끼게 됩니다. 사랑합니다.
- 청주 교구 감곡 매괴 성모 성당 반 영억 라파엘 신부 -
◈ [기타] 아버지 마음
소나무 신부와 함께 하는 마음의 산책
'자신에게 가장 좋은 것이 무엇인지 물어보는 것이 기도입니다.'
2013년10월10일 연중 제 27주간 목요일 복음묵상
“누구든지 청하는 이는 받고, 찾는 이는 얻고, 문을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다.” (루카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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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라면 다 알고 있는 성서구절이다.
이 말씀에 우리는 희망을 갖기도 하고 실망을 하기도 한다.
청할 것이나 찾을 것이 있을 때, 원하는 길이 열리기를 바랄 때,
예수님의 이 말씀은 희망이 된다.
반면, 온갖 정성을 드리며 기도를 했는데, 원하던 일이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 우리는 실망을 한다.
정말 우리가 간절히 청하면 다 들어주시는 것일까?
그리고 그렇게 다 들어주시는 것이 우리가 믿는 하느님다운 모습이고
옳은 일일까?
식별이 요구된다.
이 말씀은 분명 간절히 청하는 마음, 즉 기도의 필요성에 대해서
강조하시는 말씀이시다.
그런데 이 말씀에는 전제가 되는 것이 있다.
그것은 무엇을 청하고, 무엇을 찾으려 하고, 어떤 길로 들어가려고
하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 결정적 열쇠가 된다는 말이다.
곧바로 이어지는 구절에 귀를 기울여보자.
“너희 가운데 어느 아버지가 아들이 생선을 청하는데, 생선 대신에
뱀을 주겠느냐? 달걀을 청하는데 전갈을 주겠느냐?”(루카11,11-12)
라고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신다.
이 말은 무슨 뜻인가?
달리 말하면, 독사와 전갈을 달라고 청하는 기도를 절대로 허락하실
하느님이 아니시라는 말씀이다.
그렇다. 생선과 달걀을 청해야 한다.
그분께서는 우리가 우리에게 있어 가장 좋은 길을 걸어가기를 원하신다.
그것이 올바른 아버지의 마음이다.
그런데 우리의 요구가, 우리의 청이 우리를 파멸로 이끄는 것이라면
아버지의 마음이 어떠하겠는가?
파멸로 가는 길임을 모르면서 기어이 가고자 하려는 자식들을 보아야
하는 아버지의 마음을 생각하자.
우리가 무엇을 청하기 전에, 청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신중해야
한다. 선인가 악인가, 아니면 약인가 독인가? 아니면 살리는 일인가
죽이는 일인가를 항상 생각해야 한다.
우리의 청이 선이고, 약이고, 살리는 일이라면 반드시 받을 것이고,
얻을 것이고, 그 길이 열릴 것이다. 우리의 청이 악이고, 독이고, 죽이는
일이라면 절대로 허락하실 하느님이 아니시다.
아버지께서는 우리가 정말 잘 되기를 우리보다도 원하신다.
- 사이타마 교구 오타(太田)본당 주임
김 대열 프란치스코 사베리오 신부 -
https://www.facebook.com/WithfatherPinetree
소나무 신부와 함께 하는 마음의 산책
◈ [서울] 연중 제27주간 목요일
2013년 다해 10월10일
요즘 몇 가지 부탁을 받았습니다. 제가 거절을 잘 못하는 성격이고,
저 또한 부탁을 드린 경험이 있기 때문에 가능하면 도와 드리려고
합니다. 캐나다에 사시는 교우 분께서 한국에 몇 주일 오시는데
‘꾸르실료’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하셨습니다. 본당에
있을 때는 추천서를 써 드린 적이 있지만 교구청에 있기 때문에
꾸르실료 사무국에 문의를 하려고 합니다. 등촌동 성당 성소후원회에서
하루 피정을 부탁했습니다. 제가 성소국장이기에 함께 하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제가 담당하고 있는 복음화 학교에서 내년도에 봉사자
영성교육을 해 줄 수 있는지 부탁을 하셨습니다. 제가 담당하는 단체이고,
한 달 피정 지도를 했었기 때문에 그리고 내년의 일이기에 하겠다고
하였습니다. 평화신문 기자가 방문하였습니다. 1년 동안 복음묵상
원고를 써 줄 수 있는지 부탁하려고 왔습니다. 많은 신부님들이
부담스러워 하신다고 합니다. 제게도 무척 부담스러운 부탁이었습니다.
하지만 누군가는 원고를 써야 할 것이고, 신학교에서 설교학 강의를
하기 때문에 거절하기도 어려워서 일단은 하겠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제게 큰 축복을 주셨습니다. 어떤 일이 결정되기까지는
고민을 하지만 일단 결정된 일에 대해서는 후회하거나, 낙담하지 않는
성격을 주셨습니다. 큰 능력과 실력은 없지만 일단 주어진 일은 성실하게
준비할 수 있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아직까지는 제게 맡겨진 일을 할 수
있는 건강을 주셨습니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이것들 또한 다 지나 갈
것이라 믿습니다. 본당에 있을 때는 5년 동안 매일 복음 묵상을 본당
홈페이지에 올렸습니다. 처음에는 힘들 것 같았는데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본당을 떠날 때까지 할 수 있었습니다. 제게 주어진 일들, 하느님 보시기에
합당한 것들이라면 하느님께서 도와주시리라 믿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문을 두드리십시오. 열릴
것입니다. 구하십시오. 주실 것입니다. 찾으십시오. 얻을 것입니다.’ 제가
아이였을 때 부모님께서는 제가 원하는 것들을 채워 주셨습니다. 사랑을
주셨고, 먹을 것을 주셨고, 입을 것을 주셨고, 가르침을 주셨고, 하느님을
믿는 신앙을 주셨습니다. 제가 해드린 것이 아무것도 없었는데
부모님께서는 그렇게 해 주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느님의 마음이고,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이 원하는 것을 남들에게
해 주십시오.’ 이것이 하느님의 뜻입니다. 사랑받고 싶으시면 먼저
사랑하십시오. 용서 받고 싶다면 먼저 용서하십시오. 받고 싶은 것이
있다면 먼저 선물하십시오.
- 서울 대 교구 성소 국장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
◈ [수원] 요셉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하느님께 사랑을 증명할 기회를 주라.
2013년 다해 10월10일 연중 제27주간 목요일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루카 11,5-13
하느님께 사랑을 증명할 기회를 주라.
해마다 초봄이 되면 우리나라 동해와 남해, 일부 강 하구에서 볼 수
있는 큰가시고기. 큰가시고기는 지구상의 어떤 생물보다도 부성애가
강한 물고기랍니다.
큰가시고기는 봄이 되면 암수가 무리지어 하천으로 올라옵니다. 산란을
위해서입니다. 수컷은 물풀이 무성한 곳을 찾아 둥지부터 짓는데 둥지가
완성되면 암컷을 정중히 맞아들입니다. 그러나 알을 낳은 어미는 곧장
미련 없이 둥지를 떠나 버립니다. 자식과 남편을 버린 비정한 어미인
셈입니다.
그 때부터 큰 가시고기의 눈물겨운 희생이 시작됩니다. 큰 가시고기는
알의 부화에 필요한 산소를 공급하느라 먹지도 않고 자지도 않고 앞
지느러미로 쉼 없이 부채질을 하는 것입니다. 마지막 한 마리까지
새끼들을 부화시킨 큰 가시고기의 주둥이는 다 헐고 몸은 만신창이가
됩니다. 마침내 부화한 자식들이 모두 떠나간 둥지 앞에서 큰 가시고기는
조용히 숨을 거둡니다.
며칠 후 둥지를 떠났던 새끼들이 죽은 아버지의 몸 주위로 모여듭니다.
새끼들은 자신들을 위해 죽기까지 희생한 아버지의 살을 파먹기 위해
돌아온 것입니다.
이런 물고기를 창조하신 하느님의 사랑이 이 물고기보다 덜하다고 누구도
상상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가끔 당신 모든 것을 줄 준비가
되어있는 하느님 사랑 앞에서 ‘감히 이런 것을 청해도 되나?’ 하며 고민할
때가 있습니다. 당신 자비와 사랑을 의심하고 두려워하는 모습이 당신
눈에는 죄를 짓는 사람들보다 더 안타깝게 보일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라고 하십니다. 다시
말하면, 청하지 않으면 줄 수 없고, 찾지 않으면 얻을 수 없고, 두드리지
않으면 열리지 않으니, 제발 다 해 줄 테니 청하고, 찾고, 두드리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 사랑을 깨닫고 기뻐하라는 것입니다. 다른
복음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청하여라. 받을 것이다. 그리하여 너희 기쁨이 충만해질 것이다.”
(요한 16,24)
제가 신학교 들어오기 전에 주일학교 교사를 하고 있었는데, 한 학사님과
술내기가 벌어졌습니다. 이미 둬 병씩 마신 상태에서 누가 시작도 안
했는데 자연스럽기 똑같이 한 잔씩 완샷 하는 시합이 시작된 것입니다.
저는 하느님께 기도를 하였습니다.
‘이 내기를 반드시 이기게 해 주세요.’
저는 소주 한 병 마시고 길에서 잔적도 있습니다. 그런데 제 기억이 맞는다면
그날 각자 소주 여섯 병씩을 더 마신 것 같습니다. 그 학사님은 세병 정도
마시더니 휴지로 입을 닦는 시늉을 하면서 연신 휴지에 소주를 뱉어 냈습니다.
저는 그대로 다 마셨습니다. 나중엔 그 학사님 앞에 젖은 휴지가 산더미처럼
쌓였고 그러고도 그 학사님은 K.O. 당하였습니다. 저는 다른 날보다도
멀쩡하여 그 학사님을 업어 바래다주었습니다.
저는 이 일로 한 가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온 우주를 관리하시기도 바쁘고,
온 세상의 평화와 구원, 또 각자의 어려움들을 돌보시기도 바쁘신
하느님이시지만, 결코 이와 같은 하찮은 청원도 그냥 흘려버리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은 우리에 대한 사랑을 어떻게든 드러내고 싶은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사실 매우 절실한 것에 대한 기도를 들어주신 것보다,
이런 하찮은 것을 들어주셨을 때 하느님의 사랑을 더 느끼기도 합니다.
그 이후로 여자와 사이가 안 좋아졌을 때도 화가 풀릴 수 있도록 기도하고,
주일학교 학생에게 야단쳤는데 그냥 집에 가버렸을 때 미사 전에 돌아오게
해 달라고 기도하기도 하고, 시험 잘 보게 기도하기도 했습니다. 만약
사람에게라면 어떻게 그런 하찮은 것들까지 청해서 하느님을 귀찮게 해
드리느냐고 야단을 맞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이런 작은 청들까지도
하느님께서 다 들어주시는 것을 보고는 믿음도 많이 커졌고 하느님께
대한 사랑도 더 커졌습니다. 하느님은 아주 작은 것들까지도 소홀히 하지
않고 도와주시면서 우리에 대한 당신 사랑을 보여주고 싶으신 것입니다.
그러니 ‘이런 것까지 청해도 될까?’라고 생각하지 말고 무엇이든 청하십시오.
두드리십시오. 찾으십시오. 하느님은 지금도 당신 사랑을 증명하고 싶으셔서
우리에게 무엇을 해 줄 수 있을지를 고민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무엇이든
청해야만 그분 사랑이 드러날 수 있도록 기회를 드리는 것입니다.
금요일은 장례미사가 있어서 복음묵상이 없겠습니다~ ^ ^
오산 성당 홈페이지: http://cafe.daum.net/ca-osan
- 수원 교구 오산 성당 전 삼용 요셉 신부 -
◈ [서울] 믿음의 뿌리는 불변한 곳에 매어야
2013년 다해 10월10일 연중 제27주간 목요일
믿음의 뿌리는 불변한 곳에 매어야
믿음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기란 쉽지 않지만 신념과 통하는 것 맞습니다.
줄 걸로 믿고 청하고 얻을 걸로 믿고 찾고 열릴 걸로 믿고 두드리는 것.
좋아 믿고 재물 믿고 권력 믿고 하는, 세상 것을 믿는 게 아닙니다.
변화무쌍한 세상 어느 하나 성실 진실하여 올곧게 변치 않는 것 없습니다.
믿음직한 사람 되기 위한 사회의 교육은 없고 법과 벌만 있을 뿐입니다.
믿음은 자신이 길러야하며 믿음의 뿌리는 불변한 곳에 매어야 할 겁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 (루카 11,9)”
- 이기정 사도 요한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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