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방[6235]台溪태계河溍하진-淸夜吟(청야음)
淸夜吟(청야음)
河 溍
태계(台溪) 하진(河溍, 1597~1658), 물이름 진=(溍)
1614년 영창대군의 처형을 반대하여 죽게 된 동계정온을 구하려다가 회양에 유배,
1623년 인조반정으로 풀린 뒤로는 여러 관직을 역임,
月白虛堂樹影高(월백허당수영고)
달이 빈 집에 밝으니 나무 그림자 높은데
長歌一曲和琴操(장가일곡화금조)
길게 한 곡 노래하여 거문고 가락에 맞추네. 操 : 조종하다.
幽人意思無人會(유인의사무인회)
幽人의 생각 아는 이 없지만 會:깨닫다
仍自吟詩興自挑(잉자음시흥자도)
시 읊음에 흥이 절로 나네. 挑 : 돋우다. 의욕을 돋우다.
원문=台溪先生文集卷之三 / 詩
淸夜吟
月白虛堂樹影高。長歌一曲和琴操。
幽人意思無人會。仍自吟詩興自挑。
물 흐를 원(湲)/강이름 남(湳)/검은빛 치(淄)/물이름 진(溍)/근원 원(源)
河溍〈하진:1597(선조 30)-1658(효종 9)〉
《台溪集》3권에도 같은 제목의 시가 보인다.
이각(李殼)의 문인이다. 어렸을 때 덕천서원(德川書院)에서 학문의 기초를 닦았다. 1624년(인조 2) 생원·진사의 양시에 합격하고, 1633년 증광문과에 갑과로 급제하였다.
사재감직장(司宰監直長)에 임명되었으나 부모봉양을 이유로 취임하지 않고,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의병장에 추대되어 상주에 이르렀다가 아버지의 상으로 집으로 돌아갔다. 상을 마친 뒤 병조낭관·헌납·지평을 역임하다가 신병과 어머니의 봉양을 이유로 사임하였다.
1649년(효종 즉위년) 다시 지평으로 부름을 받고 나아가 사은한 다음 김자점(金自點)의 전횡을 탄핵하고 즉시 사임, 귀향하였다. 그 뒤 여러 번 장령·사간·집의로 부름을 받았으나 모두 병을 이유로 취임하지 않았다.
효성이 지극하였고 관후한 성품으로 직언을 잘하였다. 진주의 종천서원(宗川書院)에 배향되었고, 저서로 『태계문집』 4책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