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말 개최한 김치 페스티벌에서 이창우 회장(왼쪽 첫번째)이 현지인들에 김치를 전달하고 있다. 사진출처 : 키르기즈공화국 한인회
(비슈케크=최승현 기자)
키르기스스탄 수도 비슈케크 중심가로 향하는 대로변 한쪽에 한국과 키르기스스탄 간 우호친선 관계를 상징하는 우정 공원이 조성돼 있다. 한-키 수교 30주년을 기념해 올해 6월 (구)구미공원이 새단장을 마치고 준공했다. 토요일 아침이면 공관에서는 김광재 대사, 태경곤 영사가, 키르기스공화국 한인회에서는 이창우 회장이 손수 빗자루와 쓰레기 봉투를 들고 공원 내부를 청소한다. 산책에 나선 현지인들은 외국인이 공원을 청소하는 모습이 낯설면서도 흐뭇하다는 표정이다.
“이 공원은 한국과 키르기스스탄의 우정을 상징하는 장소입니다. 한-키르기 간 관계가 더욱 돈독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에 쓸고 닦습니다. 앞으로 한국을 알리는 다양한 행사가 이곳에서 열리기를 희망하고 있어요.”
제 8대 한인회 이창우 회장은 호텔리어 출신이다. 지인의 권유로 휴가 차 키르기스스탄을 처음 방문했다. 그리고 한국식 웨딩 사업의 가능성을 엿봤다. 그리고 유년 시절의 풍경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오시(키르기스스탄 제2수도)에 자리를 잡았다.
한국의 웨딩 문화는 전통적인 요소와 현대적 트랜드가 조화를 이뤄 화려하면서도 세련된 스타일이 돋보이지만 키르기스스탄 웨딩 문화는 그렇지 못했다. ‘우아미와 세련미를 현지화 해보자’는 복안이었다. 하지만 현지 사정에 어두웠고 결과는 실패였다.
“키르기스스탄에서는 결혼식이 축제처럼 밤새 친구들과 어울리는 문화더군요. 웨딩드레스 800벌을 가져왔는데 한 벌도 못 팔았어요.”
고진감래((苦盡甘來). 우연찮게 교육 사업에 눈을 돌렸다. 한류 열풍에 힘입어 국가마다 세종학당이 설치돼 위탁 운영되고 있지만, 당시만 해도 키르기스스탄의 경우 한국어 교육 기관이 전무한 때였다. 2007년 한국어학당 ‘창무’를 개설했다. 한류 열풍이 불면서 한국어를 배우고자 하는 현지인이 증가했다. 특히 2004년 도입된 외국인 고용허가제가 불씨를 당겼다. 900~1,000명이 넘는 학생들이 이곳에서 수학한 이후 한국에 취업했다.
“초급부터 고급까지 체계적인 커리큘럼으로 학당을 운영했어요. 한국어뿐만 아니라 한국 문화와 예술까지 가르치는 교육의 장으로 자리를 잡아갔지요. 오시가 키르기스스탄 내 한국어 교육의 중심지가 되었어요.”
일정 수준의 어학 실력을 갖춘 학생들은 한국에서 일할 기회를 갖게 됐고, 돌아온 현지인들의 입소문을 타자 ‘창무’는 북새통을 이뤘다. 귀국한 학생들은 한국에서 일한 경험을 원생들과 공유했다. 이 인적 자산은 한-키르기 교류에 주춧돌이 될 게 틀림없었다. 이 회장이 민간 외교관으로서의 역할에 첫발을 디딘 시점이다.
이후 2009년에는 아산시와 오시 간 자매 결연을 맺고 민간 교류를 활성화하는 등 지자체 간 관계 강화에 앞장섰다. 2010년 오시 지역에서 발생한 민족 분쟁 당시, 대사관과 협력해 전세기를 띄우는 등 자국민 지원 활동을 펼치면서 키르기스스탄 거주 교민의 안전과 권익 보호의 중요성을 깨닫게 됐다. 그가 2023년 한인회 회장에 출마한 이유다.
그는 무엇보다 한인회가 키르기스스탄 교민들의 구심점이 돼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친해지듯, 한인들도 서로 인사를 나누고 동질감을 느끼려면 특정한(?) 무대가 필요했다. 추석 전후 한마음 체육대회와 정기 바자회를 열고 있는 이유다.
“한인사회 네트워크 구축이라는 게 말은 어렵게 느껴지지만 처음에는 자주 만나는 데서부터 출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남녀가 자꾸 만나야 사랑이 싹트듯, 교민 개개인도 서로 얼굴보고 인사해야 정들지 않겠어요?”
그는 교민 간 친목도모를 통해 한인들이 교류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하는 한편, 대외적인 활동을 통해 키르기스공화국 한인회의 위상 강화, 러시아 및 CIS 국가 한인회와의 연대및 교류도 강화할 방침이다.
“지난 달(10월)엔 1,000여명의 현지인이 참석한 가운데 김치 페스티벌이 성황리에 열렸습니다. 김치를 직접 담그고 나누며, 한국 문화를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었어요. 지원금은 1,500달러가 전부였지만, 원만히 행사를 진행하면서 쌓은 경험을 러시아, 조지아(그루지야) 등 인근 CIS 국가 한인회 회장단들과 공유하고 있어요. 이런 데이터가 바로 우리의 자산이며, 이를 통해 한인회의 위상을 서로 강화할 것입니다.”
이 회장이 고심하고 있는 한인회의 중요한 역할 가운데 하나는, 고려인 네트워크와의 협력 및 단합이다. 교육 사업에 관심이 많은 이 회장은 고려인 장례지도사 육성에도 눈을 돌렸다.
“고려인 이주 역사가 160년이 됐습니다. 코리아에 뿌리를 둔 이들은 우리의 전통 상제(喪制)에 관심이 많아요. 이를 가르치거나 전수해줄 사람이 지금까지 없었어요. 전통과 문화에 맞는 장례 절차를 통해 고려인들이 우리의 민족이라는 동질감으로 공동체 결속을 다질 수 있도록 고려인 장례지도사를 육성해 나갈 계획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