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1월 24일 온고을교회 수요예배 설교 – 황의찬 목사
사도행전
행 1:1~5
<사도행전을 시작하면서>
오늘부터 수요예배에서 사도행전을 본문으로 설교하고자 합니다.
“우리가 예수 믿고 사는 것은 어떻게 사는 것인가?”
저는 ‘이야기’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이야기를 만들어갑니다.
“오늘 하루 어떻게 살았느냐?”
생각하고 정리합니다.
어떤 분은 일기를 씁니다.
일기를 쓰는 것, 결국은 이야기를 엮어나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생각했습니다.
“예수 믿고 사는 것은, 예수님 이야기 속에 내가 들어가는 것이다!”
예수님 이야기가 곧 성경책입니다.
성경책이 그래서 중요합니다.
성경책 속에서도 예수님의 이야기가 잘 드러나는 책이 사도행전입니다.
“사도행전을 설교하면서 예수님의 이야기를 알자!”
“그 이야기 속으로 우리가 들어가자!”
예수님의 이야기와 나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어우러질 때 우리는 진정한 성도가 됩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려면 먼저 예수님의 이야기를 잘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예수님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이야기를 잘 풀어낸 책이 「사도행전」입니다.
그래서 오늘부터 매주 수요일에는 사도행전으로 설교하겠습니다.
<저자 누가>
사도행전을 기록한 사람은 누구일까요?
누가복음을 기록한 ‘누가’입니다.
누가는 이스라엘 북쪽 시리아에 있는 안디옥 출신으로서 의사입니다.
누가는 사도바울의 제자로서 사도바울의 전도여행을 수행합니다.
누가는 ‘이방인으로서 기독교인’이라는 큰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오시기까지 여호와 하나님은 유대민족만의 하나님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일단 유대민족에게 계시함으로써 전 세계적으로 드러내고자 하셨습니다.
그래서 유대 민족을 ‘선택받은 민족’이라고 부릅니다.
하나님은 아담 하와가 선악과를 따 먹고 사탄의 종이 된 이후 노심초사하십니다.
마치 부모를 거역하고 집을 나간 아들을 기다리는 부모의 심정이 되었습니다.
집 나간 아들의 후손이 세계 각지에 퍼졌습니다.
하나님은 그들 중에서 어느 하나에게 먼저 계시하고자 하십니다.
그래서 선택된 민족이 유대민족 즉, 이스라엘입니다.
하나님이 2천년 전에 독생자 예수를 이 땅에 보내심으로써 하나님이 계시하십니다.
계시가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이 자기 모습을 드러내셨다” 바로 이 뜻입니다.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쓴 누가는 하나님의 이러한 섭리에 감동받은 자입니다.
예수님이 아니었다면, 누가는 평생 창조주 하나님을 알지 못했을 겁니다.
감격해서 하나님께 평생 헌신합니다.
〓 예화
오늘 제가 어떤 목사님에게 「너알전_강홍모 행전」 제본을 전해드렸습니다.
오후 3시에 만나서 건네드렸습니다.
네시쯤 오자를 발견하여 사진을 찍어 보내주셨습니다. 깜짝 놀랐습니다.
a-4 130쪽 짜리인데 27페이지에서 오자를 발견하고 사진을 찍어보냈어요!
아까 6시쯤 전화가 왔습니다. 다 읽었대요!
속독을 하시는 분인가 봅니다.
말씀하시는 것을 들어보니 대충 읽은 것이 아닙니다.
그 분이 내린 결론은 이것이었습니다. “목사가 죽어야 교회가 산다”
저도 놀랐지만, 책을 내고나면 이러한 반응을 접하게 됩니다.
우리도 이방인입니다.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께 예배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아셔야 합니다.
제가 책 쓰는 행복도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을 주인공으로 책을 씁니다.
「누가」도 이런 기쁨으로 바울을 수행하고 누가복음, 사도행전을 썼을 것입니다.
그러나 누가를 사도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신약성경 27권 중에서 2권이나 썼지만, 예수님의 직접제자가 아니라서 사도가 아닙니다.
반면에 야고보를 쓴 야고보와 유다서를 쓴 유다는 사도입니다. 예수님의 친동생들입니다.
황의찬 목사가 아무리 책을 많이 써도 사도가 될 수는 없습니다.
예수님의 제자입니다. 제자와 사도를 구분할 줄 아셔야 합니다.
<사도의 뜻>
사도행전(使徒行傳, Acts of the Apostles)
‘사도행전’ ‘사도’는 무엇이냐, ‘행전’은 무엇이냐, 이것부터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도는 예수님의 제자를 뜻하는 말입니다.
사실, 예수 믿는 우리는 모두 예수님의 제자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사도’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 ‘사도행전’이 있습니다.
사도행전에 나오는 사도만 사도라 할 것이냐, 그 이후까지 확장하느냐?
이 문제가 있습니다.
정통적인 해석은 사도행전에 나오는 제자들을 ‘사도’라 부르자! 이렇게 했습니다.
사도행전에 나오는 사도는,
예수님으로부터 직접 가르침을 받은 제자입니다.
예수님의 열 두 제자가 있습니다.
여기에 예수님의 친 동생으로 야고보서를 쓴 야고보, 유다서를 쓴 유다가 포함됩니다.
그러면 14명입니다.
여기에 특별한 사도 한 명이 추가됩니다.
바울입니다.
바울은 예수님으로부터 직접 가르침을 받지 않았습니다.
예수님 당시에는 오히려 예수님의 제자들을 핍박하는 바리새인이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사도행전에서 매우 중요한 주연으로 등장합니다.
사도행전에서 매우 중요한 등장인물, 주연입니다. 이를 사도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바울을 특별히 예외적인 사도로 인정하십니다.
그래서 사도는 모두 15명입니다.
예수님의 열두 제자, 여기에 야고보, 유다, 플러스 알파 사도 바울!
잘 기억하셔야합니다. 할렐루야~
<행전의 뜻>
‘행전’의 뜻도 중요합니다.
행전(行傳)은 한자로 갈 행, 전할 전 자를 씁니다.
사도행전은 사도들이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 기록한 책입니다.
그래서 행전입니다.
설교 준비하면서 ‘행전’을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니 안 나와요!
인터넷에서도 안 나와요!
행전은 여행할 때 장단지를 감싸는 천을 행전이라고 하는데, 그것만 나와요!
그러니 사도행전에서 ‘행전’은 독특한 조어입니다. 만들어낸 단어라는 뜻입니다.
저도 ‘행전’을 이번에 쓰는 책에서 제목으로 사용했습니다.
「너 알아 전주대학교_설립자 강홍모 행전」 멋지지요?
누가, 사도, 행전에 대한 의미를 새겼습니다.
이제 사도행전 이야기를 시작하고 들을 수 있습니다.
행 1:1 “데오빌로여 내가 먼저 쓴 글에는 무릇 예수께서 행하시며 가르치시기를 시작하심부터”
‘데오빌로’
이 사람이 누구인지 정확하지는 않습니다.
당시는 로마제국이 번성하던 시대였습니다.
누가가 이방인이니까 누가는 로마의 고위 관리에게 보내는 글로써 작성을 했습니다.
누가가 사도행전 이전에 쓴 누가복음을 볼 필요가 있습니다.
눅 1:1~3 “우리 중에 이루어진 사실에 대하여 2 처음부터 목격자와 말씀의 일꾼 된 자들이 전하여 준 그대로 내력을 저술하려고 붓을 든 사람이 많은지라 3 그 모든 일을 근원부터 자세히 미루어 살핀 나도 데오빌로 각하에게 차례대로 써 보내는 것이 좋은 줄 알았노니 4 이는 각하가 알고 있는 바를 더 확실하게 하려 함이로라”
데오빌로 각하에게 차례대로 써 보내는 것이 좋은 줄 알았노니
여기서는 ‘각하’라고 했습니다.
누가는 지금 하나님 이야기를 전하고싶어요!
자기가 만난 하나님을 퍼뜨리고 싶어요!
왜요?
기쁘니까!
기쁜 소식은 나눌수록 커집니다.
누가는 틀림없이 이야기꾼이었을 겁니다.
뭔가를 전하려면 이야기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이야기가 중요합니다.
<이야기가 중요하다>
어린시절 할아버지 할머니로부터 듣는 ‘호랑이 담배먹던 이야기’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의 믿음생활은 이야기로 드러나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게 된 것도 이야기를 통해서입니다.
예수님 이야기를 듣고 ‘나 예수 믿겠다’ 결정하는 겁니다.
이야기를 표현하는 말이 몇 가지 있습니다.
‘서사’ ‘네러티브’ ‘줄거리’ ‘기승전결’ 등이 있습니다.
예수 믿음을 이야기 없이 하면 위태롭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이야기로 전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증언해야 합니다.
사도행전 이야기로 복을 누리기를 기도합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