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과학]
뱀을 모방한 기술
뱀 본뜬 로봇으로 우주 탐사, 뱀독으론 고혈압 치료제 만들죠
뱀을 모방한 기술
이종현 조선비즈 기자 윤상진 기자 입력 2025.01.21. 00:39 조선일보
2025년은 을사년(乙巳年)입니다. 을(乙) 자는 색깔 중에 청색을 의미한다고 해요. 을사년을 푸른 뱀의 해라고 부르는 이유랍니다. 푸른 뱀이라고 하니 멋있어 보이기도 하지만, 뱀을 떠올리면 막연하게 징그럽다는 생각을 하는 분도 많을 거예요.
뱀은 원시시대부터 인간을 포함한 영장류에게 치명적인 위협이 됐던 존재예요. 맹독으로 치명상을 입히니까요. 이런 이유로 인간이 무의식적으로 뱀에 대한 두려움을 갖도록 진화했다는 연구 결과가 있어요. 한 실험에서 뱀을 한 번도 본 적 없는 생후 8~14개월 아기조차 뱀 사진을 보면 공포심을 느끼고 피했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뱀의 어떤 모습을 보고 무서움을 느낄까요? 일본 나고야대 인지심리과학과 가와이 노부유키 교수는 원숭이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영장류가 뱀의 비늘을 볼 때 무서움을 느낀다는 것을 알아냈어요. 연구팀은 뱀과 도롱뇽 사진을 준비하고 이를 원숭이에게 보여줬습니다. 도롱뇽 사진을 본 원숭이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지만, 뱀을 본 원숭이는 공포심을 느꼈죠.
둘의 결정적인 차이는 비늘의 유무였습니다. 심지어 뱀의 비늘을 합성한 도롱뇽 사진을 본 원숭이는 뱀 사진을 볼 때처럼 반응했죠. 이를 바탕으로 연구팀은 영장류가 뱀의 비늘을 감지하도록 시각과 뇌가 진화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우리는 뱀의 비늘을 보면 ‘위험’을 감지하고 공포심을 느끼게 되는 것이지요.
뱀 모양 본떠 로봇 만들죠
공학자들은 우리에게 공포를 주는 ‘뱀 비늘’의 독특한 구조와 기능에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기도 합니다. 뱀의 비늘은 단단하면서도 접힐 수 있어서 외부의 충격을 효과적으로 막아줍니다. 비늘 아래엔 근육과 뼈를 유연하게 연결하는 관절이 있어서 뱀이 신축적으로 움직일 수 있게 도와주죠.
그래픽=진봉기
한국기계연구원은 2021년 뱀의 비늘 구조를 모방해 부드럽게 휘고, 늘어나기도 하는 배터리를 만들었어요. 웨어러블 기기에 부착하는 배터리랍니다. 기존의 웨어러블 기기는 제품 본체와 배터리가 단단하게 결합하는 방식이었는데요. 튼튼하긴 했지만 신축성이나 유연함은 떨어졌죠.
이 배터리는 여러 개의 작고 단단한 배터리를 마치 뱀의 비늘처럼 연결해서 유연하게 움직일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이 배터리를 적용한 웨어러블 기기는 주먹이나 팔의 움직임에 따라 형태가 바뀌어요. 연구팀은 몸이 불편한 노약자를 보조할 수 있는 재활 의료 기기 등에 활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래픽=진봉기
우주탐사에는 ‘뱀 모양 로봇’이 쓰입니다. 미 항공우주국(NASA)은 토성의 위성인 엔켈라두스(Enceladus) 탐사를 앞두고 있는데요. 이곳에 뱀을 닮은 로봇을 보낼 예정이래요. 뱀을 닮은 머리에 몸통 역할을 하는 액추에이터(구동기) 10개를 이어붙인 형태예요. 길이는 4m, 무게는 100㎏에 달한대요. 몸통에 달린 나선형 톱니를 이용해 얼음과 눈밭, 모래 등 다양한 지형을 기어갈 수 있습니다. 뱀처럼 몸통을 굴리거나 ‘S’자를 그리며 이동할 수도 있지요. 로봇 머리엔 입체 카메라를 설치해 각종 정보를 수집해요. 이 로봇은 자율 주행차에 쓰이는 라이다(LiDAR) 센서도 달고 있는데요. 엔켈라두스는 지구에서 12억㎞나 떨어져 있기 때문에 무선조종 신호를 보내는 데만 2시간이 걸립니다. 따라서 자율 운행이 더 효과적이라고 판단한 것이죠.
재난 현장에 사용할 뱀 로봇도 개발되고 있습니다. 디지스트와 한국로봇융합연구원은 지난 2021년 뱀을 닮은 구조 로봇을 만들었어요. 뱀처럼 길고 가늘어서 좁은 공간에도 들어갈 수 있어요. 머리 끝에는 물통과 약물을 주사할 수 있는 바늘을 달아서 부상자에게 응급조치도 할 수 있대요.
스위스 취리히연방공대(ETH) 연구팀도 뱀을 모방한 재난 로봇을 만들어 작년 11월 공개했어요. 20m 길이 ‘로보아’인데요, 좁은 통로를 손쉽게 통과할 수 있어 인명 구조는 물론 하수도 점검에도 사용될 수 있다고 합니다.
뱀독 이용해 고혈압 치료제 개발
사람들이 뱀을 무서워하는 또 다른 이유는 ‘독(毒)’입니다. 뱀독 때문에 지금도 매년 6만명 이상이 목숨을 잃고 있어요. 하지만 뱀독이 늘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현대 의학은 뱀독을 사람 목숨을 살리는 약으로 바꾸기도 했거든요.
그래픽=진봉기
뱀독은 효소와 단백질, 펩타이드(아미노산 사슬)가 합쳐져 신체의 여러 시스템에 치명적으로 작용해요. 타깃을 빠르고 정확하게 공격하는 특성도 가지고 있어요. 과학자들은 이런 특성을 이용해 약을 만들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고혈압 치료제 ‘캡토프릴’입니다. 캡토프릴의 주성분은 브라질 살무사의 독에서 추출했어요. 이 살무사에게 물리면 혈관이 이완되고 혈압이 급격하게 떨어지는 증상이 나타납니다. 이것을 본 약리학자들은 뱀독이 혈관을 수축시키고 혈압을 높이는 ‘안지오텐신 전환 효소’의 작용을 막는 고혈압 치료제가 될 수 있다고 보고 ‘캡토프릴’을 개발한 거죠. 캡토프릴은 현재 심부전과 고혈압 치료에 사용돼 많은 생명을 구하고 있답니다.
이 밖에도 뱀독으로 만든 약물은 다양합니다. 심근경색증 치료제 ‘엡티피바타이드’는 미국 피그미 방울뱀의 독에서 나온 약이에요. 피그미 방울뱀의 독은 혈액응고를 방해해 많은 출혈을 일으키는데, 과학자들은 이 성분을 활용해 동맥에 혈전이 생기는 걸 예방하는 약을 만들었습니다. 반대로 중남미 지역에 사는 독사 보트롭스의 독에는 혈액을 응고시키는 성분이 들었대요. 이 물질을 이용해 만든 신속 지혈제는 의료 현장에서 널리 쓰이고 있어요.
최근엔 뱀독으로 항암 치료제를 개발하는 연구도 진행되고 있답니다. 일부 뱀독의 성분이 암세포가 자라는 것을 막거나 암세포를 직접 파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뱀독은 심혈관 질환이나 신경계 질환을 치료하는 데 활용할 수 있는 효과적인 물질로 평가받고 있지요.
윤상진 기자 사회정책부
사회정책부 근무. '신문은 선생님' 코너를 기획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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