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구를 사랑하고 싶은 지구인이다. 어떻게보면 지구에 살고 있으니 지구를 사랑하는건 당연하다. 그렇다고 해서 엄청난 환경운동가는 아니지만 내가 실천할 수 있는 선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려고 노력한다. 나 하나 즈음 한다고 해서 세상에 바뀌겠나 싶을 때도 있지만 나 하나라도 해야 한다는 생각이 앞선다.
에어컨도 그 중 하나이다. 에어컨은 지구온난화의 주범이라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전기요금뿐만 아니란 냉매가 오존층파괴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결혼 전에는 에어컨이 없었고, 결혼 후에는 어쩌다보니 독일에 5년여를 살게 되면서, 우리 부부에게는 에어컨이 없다.
문제는 사상 초유의 무더위를 조우하고 있는 올 여름에 발생했다. 우리 집은 서향이라 사실 에어컨이 없어도(내가 더위를 심하게 안 타서 그럴지도 모르겠으나) 바람이 꽤 부는 편이고 더운 집은 아니다. 선풍기로도 충분히 견딜 수 있다고 생각했으나, 반려남은 그렇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는 추우면 추운게 싫고 더우면 더운게 싫은 보통 사람이다. 또한 이 무더위를 도무지 참을 수가 없는 열이 많은 남자다. 7월 말까지 버티고 버텼건만, 가장 늦었을 때가 가장 빠른거라며 하루가 멀다하고 에어커을 사줘며 나를 졸랐다. 우리집은 소비와 관련한 모든 경제권은 내가 쥐고 있는 독재주의 국가이기 때문에ㅋㅋ 거의 아이가 부모에게 조르는 형국이 되어 버렸다.
처음에는 역대급으로 뜨거운 현재의 기온과 파리기후협약까지 들먹이며 논리적으로 접근하다 도무지 설득이 안 되자 나 역시 막말을 퍼붓기 시작했다. 바깥기온과 실내 기온이 차이가 많이 나면 건강에도 안 좋을 뿐더러 안이 시원하면 저 바깥은 얼마나 더운지 아느냐, 지구가 끓다못해 앓고 있다, 이제 한달만 참으면 된다, 여름이 가면 반드시 가울이 온다, 너 시원하자고 지구를 힘들게 하냐, , 독일에서 그 사람들 에너지 절약하는 모습 보고 배운게 없냐, 이기주의자다, 환경파괴자다 온갖 말을 다 해댔지만 그 역시 지지않겠다는 등 ‘에어컨’만 노래를 해댔다.
마음이 산란스러워지자 명상을 시작했다. 사실 여태껏 자애명상이 잘 와닿지 않았다. 타인을 안타깝게 여기며 연민을 가지고 바라보는 것, 정작 나와 가까운 사람에게는 적용하지 못한 채 지구 반대 너머 기아에 허덕이는 아이들이나 독거노인, 사회소외 계층에게만 적용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부가 살아가는데에도 규칙이 필요하다. 암묵적으로 내 위주의 규칙을 우리집에 다 세워놓고 그에게 동의를 구하기보다 강요했던 것은 아닐까... 되뇌어 보았다.
그를 위한 명상은 단 한 번도 해본적이 없더라.
관세음보살의 마음만큼은 아니더라도 명상을 통해 가장 가까운 타인을 헤아려본다.
어떻게 보면 약간은 유난스러운 나 때문에 좋아하는 고기도 잘 못먹고 본인 나름으로 내게 맞춰주며 사느라 애쓰고 있는건지도. 따지고보면 에어컨 없는 집이 한국엔 거의 없는데 이걸로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 것 자체가 그에게는 곤혹일 수도 있었다.
나의 신념과 그의 불편함을 두고 갈등하다 결국 불쌍한 중생을 위해 그의 방에만 벽걸이 에어컨을 달기로 중간책을 제시했다. 스텐드 에어컨과 벽걸이 에어컨은 에너지 소모에 있어서 거의 3배 이상 차이가 났다. 벽걸이 에어컨은 나의 죄책감을 그나마 줄이고 그의 욕구를 충족할 수 있는 방책이었다. 에어컨을 설치하던 날 그는 아주 입이 귀에 걸렸다. 에어컨이 뭐라고... 짠하기도 하고... 연신 고맙다며 설거지며 밥이며 다 바치는 반려남을 보며 그래, 사주길 잘했다 싶었다. 물론 한편으론 그 한 달을 못참냐.... 라는 생각이 든 것도 사실이다. 태풍이 북상하고 있다고 하는데....마음에도 다시 태풍이…
거듭 마음을 모으고 자애 명상을 하자.
불쌍한 내 옆의 중생을 위하여...
지구를 사랑하는 일은 쉽지 않다.
이 남자를 사랑하는 일은 더더욱 쉽지 않다.😂
첫댓글 카이님, 바쁜 일상에서 시간을 내고, 명상지도자 과정을 찾아주고,
*****그리고, 늘 함께 따뜻한 마음을 나눌 수 있었던 점에 고마움을 표합니다.
틈틈이 자기 발전을 위해 정진하는 아름다운 마음에서, 자신과 다른 이를 좀 더 가까이 소통할 수 있는
명상지도자로써, 늘 건강하게, 그리고 작은 곳에서도 행복을 나눌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그간 수고 했습니다.
***그리고 간끔 좋은 글 나눔하기를 바랍니다.
교수님 저 역시 명상의 길을 따뜻한 마음으로 이끌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귀한 인연 소중히 여기며 정진하겠습니다.
카이님, 저와 어떻게 이렇게 같은 생각이신지 깜짝 놀랐습니다. 5년 전쯤 새로운 회사로 이직을 하였습니다. 그 회사는 이가 떨릴만큼 에어콘을 켰습니다. 건물 실외기를 지나며 저는 숨을 쉬지 못하였습니다. 속은로 많이 비판이 일었습니다. 캐리어를 원망했습니다. 우린 그저 부채와 선풍기로도 충분했습니다. 에어콘의 실외기는 지구를 더 뜨겁게 만들 것이고, 2024년은 올해보다 더울 것입니다. 불교에서는 인과응보, 생태게에서는 vicious circule일까요? 마냥 운동가라도 된듯 외치고 다녔습니다. 제발 에어콘을 적게 사용하세요.
10년전 '냉장고들어가살고 싶어'라는 펭귄의 이편한세상 광고를 보고 배꼽을 잡고 웃었습니다.
올 여름 전 냉장고에 들어가 살고 싶었습니다.
비슷한 생각을 하신 도반이 있음에 반갑습니다. 나날이 더 더워질거라고 하는데 정말 큰일입니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해 과연 우린 무엇을 생각하며 무엇을 향해 나아가는지 상념에 빠지게 됩니다.
삶의 죽음과 삶에 있어서만큼은 자애명상으로 해결되지 않는것이 있다고 믿습니다. 자애명상을 빗대어 미국에서 출판된 MBTR을 아시지요. mindfulness based therapy retrospect. 그것이 누구에 의해 만들어진 것인지 아시지요. 미국의 자본우월주의가 최소한의 인권을 호소하는 이들을 우아한 방식으로 통제하기 위해 추천한 명상법입니다. 내 마음의 소용돌이는 외부의 불공평이 아닌 내면을 통제하지 못한 개개인에게 책임을 떠밀고 있습니다. 한때 동양철학을 하대시하던 서양권은, 그럴싸한 수단으로 민심을 얻을 수 있는 좋은 빌미로 사용, 동양의 명상법을 왜곡하여 주입시킵니다.
저는 카이님의 ]voice를 내어야 하는 issue에는 반드시 voice를 내어야 하'는 의지에 한표를 얹습니다.
기득권들은 명상수련을 권하며 자신들에게 불리한 voice를 잠재우고 기득권을 유지하려 합니다. 동양에서 지향하는 진정한 의미의 자애명상이 이와는 절대적으로 다름을, 동국대 명상과정을 통해 다시한번 절실히 느끼고 있습니다.
나마스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