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비는 작아도 강남간다.
글 德田 이응철(수필가)
며칠 전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조은누리 사건을 아시나요?
범죄 흔적 없이 실종 열흘 만에 심심산골 바위아래에서 잠만 잤다는 구조 기사는 그 어느 기사보다 처참ㅁ하지 않았다. 해피앤드로 건강히 구조한 것은 군견(軍犬) 달관이었다. 험한 지형을 헤치고 발견해 더 큰 화제가 되어 국회에서까지 달관이 처우개선을 논했다고 한다.
열 명의 군인들이 구조에 장애물 또한 많았다. 벌에 쏘이고 뱀에 물리며 험한 산을 수색하는데 오죽 힘들었을까? 여학생은 어떻게 산속으로 들어갔을까? CCTV도 큰 도움이 없었단다. 길도 없는 거친 녹음방초(綠陰芳草)에서 살아난 여학생 구조는, 악몽으로 상처가 아물어 가던 우리 가족의 뇌관을 다시 건드려 가슴 조이며 본 기사였다.
8년 전, 어쩜 우리 가족이 겪은 사건과 판박이었을까?
1남 2녀의 막내딸은 출산부터 남다르게 우량아로 태어났다. 성장하면서 비만이 늘 발목을 잡았다.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을 구할 무렵이었다. 면접에 만전을 기하기 위해 무엇보다 외모가 중하다. K랜드에 일찍 입사해 자리매김한 큰 딸이 발 벗고 나섰다. 비만 동생에게 소위 다이어트 살빼기 전략이 화근이 될 줄이야!
언니가 근무하는 고한에 가서 몇 달 그야말로 다이어트 훈련에 돌입했다. 운동을 체계적으로 하면서 식사조절 등 부모가 모를 그 무엇까지 목적을 위해 강훈련을 하며 몸을 만들 무렵이었다.
어느 날 여름이었다.
갑자기 집으로 막내 핸드폰이 울린다. 언니네 뒷산에 혼자 올라갔다가 하산하는데 초행이라 길을 잃었다는 다급한 목소리다. 그 때만 해도 걱정 없이 잘 살펴 내려오라고 했는데 아뿔싸 어둠이 내린 저녁 늦게까지 헤맨다고 울음 섞인 목소리에 자지러져, 119에 신고를 부탁하고 아들과 울며불며 춘천을 출발했다.
산은 핸드폰의 힘을 약화시킨다. 조난을 당한 딸은 모든 정보마저 끊겼다. 큰일이다. 그날 저녁은 소나기가 간간이 내려 얼마나 미끄러울까? 아무도 없는 청산에 혼자라는 사실에 방정맞은 죽음의 그림자가 앞서기까지 했다.
아들이 비상벨을 번쩍이며 혼비백산해 찾아간 고한은 자정이 다 되었지만 아직 구조를 못했다고 전한다.
산 아래는 경찰과 의용소방대장 그리고 지역민들이 구조소식에 초조한 모습이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의용소방대 젊은이가 자정이 넘어 탈진한 녀석을 엎고 내려오면서 막을 내렸다. 휴--.핸드폰 음성을 분석해 바위가 있고 앞에 강이 보인다는 곳을 찾아 올라간 것이 적중이었다. 고장을 이 잡 듯 알고 있는 의용소방대 덕분이었다.
의용소방대원이 막내딸을 등에 업고 하산하자 둘러선 사람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막내는 핸드폰이 산에서 일찍 약이 닳아 정신일도하여 빗물을 마시며 바위 아래서 구조를 기다리고 있었다고 후에 전한다.
의용소방대-.소방서장이 관장하는 소방업무를 보조하기 위해 각 행정단위에 설치된 소방 조직이다. 의용소방대는 그 지역을 완전 다 파악하고 있어 막내의 거처를 짐작한 것이 적중이었다.
사경을 헤매던 그 무렵 졸면 죽는다는 일념에 빗물을 마시며 얼굴을 추기고 감은 눈에 자극을 주었다고 한다. 그 때 만일 비는 내리고 사방은 어두워 구조를 못하고 하루를 넘겼다면 어찌되었을까?
내 생애 또 하나의 비만이 나를 짓밟아 지금 존재 무일지도 모른다.
산은 봉쇄자다. 그러나 산은 생각한다. 감싸준 산에 감사한다. 그 후로 나는 고한만 가면 의용소방대를 들려 진정 감사한다. 그 이후로 우리 부부는 단 한 번도 비만을 입 밖에 내지 않았다. 산은 말이 없다. 허나 산의 노여움을 느꼈다. 하늘이 내려주어 고고지성인 몸을 인위적으로 수정하려는 인간들에게 일침을 놓은 것이 분명했다. 딸도 많은 교훈을 안고 사회 첫발을 시작하였다. 천명(天命)이다. 하늘이 이 세상에 그런 몸피를 빚어 놓았으니 그 뜻을 잘 받들어야 한다.
그 후 막내 방에 “제비는 작아도 강남 간다” 라는 시화를 방에 걸어주었다.
작다고, 뚱뚱하다고 슬퍼마라! 개그맨 이 00는 출렁이는 복부로 그 인가가 하늘을 찌른다.
취업시즌이 파도쳐 온다. 당당하자. 자신감으로 승부를 내자라는 아빠의 글이다.
엊그제 수필회원을 만나 연꽃을 감상하였다. 그 회원과 동행한 딸 역시 비만이었다. 얼마나 비만으로 많은 장애물을 뛰어 넘으며 오늘에 이르렀을까? 가녀린 어머니의 자식사랑이 스친다. 비만의 굴레에서 탈출하려고 얼마나 곁에서 고생을 했을까? 순박한 딸의 언어를 들었다. 비만으로 꿈조차 꺾이지 않아 천만 다행이었다.
좁은 논둑을 걸어오지 못하게 어머니가 경계할 정도의 비만이다. 산에서 길을 잃은 막내딸과 비만 정도가 엇비슷하다. 실망하지 말고 새벽이슬처럼 털어주듯 외모에서 오는 열등감을 털어주어야 한다.
천편일률적으로 현재 우리 사회는 기상예보를 하는 날씬한 여자들만 유행처럼 펄럭인다.
이웃 장터에서 의용소방대 복장을 한 여자 소방대원이 삼삼오오 다닌다. 다른 친구들은 보는 순간 전시효과라고 한마디씩 비아냥거린다. 그럴 때마다 나는 의용소방대원의 책임과 의무가 지대해 희망을 찾아준다고 강변한다. 평시 생업에 종사하면서도 특별한 화재나 재난이 있을 때 달려오는 분들-. 어느새 의용소방대 홍보인이 되어있다.(끝)
<약력>
- 김유정문학공모 최우수(‘95)
- 강원일보 신춘문예 동화(‘96)입상
- 수필과 비평지 신인상(‘97)
- 강원수필문학상(‘14.11)
- 제 9회 백교문학상 수상
- 강원수필문학회장 역임, 현 강원수필문학고문
- 수필집-어머니의 빈손(2008) 바다는 강을 거부하지 않는다.
- (2011) 달을 낚고 구름밭을 갈다(수필화집)(2014)
- 감로개화송(甘露開花頌) 수필화집 발간(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