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3월 창의포럼 연사는 연극계와 뮤지컬계의 대모라 할 수 있는 ‘대한민국 최고의 연극배우 윤석화
님’ 을 초청했다.
1956년생인
그녀는 1975년
연극 ‘꿀맛‘으로 무대인생을
시작한 이래, 주목받는 연극계
신예로서 전방위적인 활동을 벌였다. ’83년 미국유학중 잠시
귀국해 공연했던 ’신의 아그네스‘ 가 폭발적인
인기를 얻어 제20회 ’백상예술대상‘ 여자 연기상을
받기도 했던 그녀... 예순의 나이에도
젊은 여성도 부러워할 몸매와 목소리를 자랑하며 자신감에 넘친 특유의 연극적 발성으로 청중에게 인사를 했다.
< 이야기를
시작하며...
>
변변한
재주도 없는 내가 지난 40년 동안 ‘연극’이라는 한길을 걸으며 열심히
살아오다보니 이렇게
여러분들과 마주할 수 있는 귀한 축복을 받은 것 같다. 어제 저녁 히말리야를 다녀오신 엄홍길 대장님을 만나
그의 ‘기’를 듬뿍 받고 왔다. 여러분께 그에게서 받은 기운을 전해 드리고 싶다. 엄홍길 대장은 네팔에서 학교를 짓고 운영하는 좋은일도 많이 하시는데 그
학교 앞마당에 아름다운 쌍무지개 떴다고 한다. 과학이 쌍무지개가 어떻게 뜨는가 생각하는
것이라면, 쌍무지개가 왜 우리
마음을 건드리는가? 라는것을 생각하는 것이 예술이다.
여기에
계신 여러분들은 연구를 하시며 과학으로 세상을 멋지게 바꿀수 있을거라 믿으며 열심히 살아오셨을 것이다. 이쯤에서 여러분 자신을 뒤돌아 볼 필요가 있다. 어느날 술을 마시고 세상살이가 힘들고 괴로울때, 혹은 생각보다 일이 잘되어서 내 자신이 대견했을때 거울을
보며 ‘나 자신’을 되돌아 본경험이 있을 것이다. 만일 이런 기억이 없다면 그 사람은 인생을 잘 못살아온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는 스스로 ‘나’를 돌아볼 수 있는
통찰의 시간이 필요하다. 자신을 돌아볼 기회가 없다면 자기가 정말 노력하고
공들여 이룩한 일에 대해 ‘내 것’이라는 자긍심이 없다면
자기다울 수가 없는 것이다. 이러한 자긍심이 없다면 내가 한일도 내가 한것
같지가 않고, 남이 잘되면 배만 아픈 것이다. 우리가 하는일은 서로 다르지만 무엇을 서로 나눌수
있는가, 어떻게 이 세계를 아름답게 변화시키며 소통하며 살 수 있는가를 여러분과
이야기해보기 위해 이곳에 왔다.
< 연극 데뷔 >
나 윤석화는 부족함이 많은
사람이지만 나 자신을 ‘무대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 라고 생각하며 산다. 1975년 데뷔한 연극 ‘꿀맛’에서 내가 딸 역할을 맡았고, 엄마 역할에 김애경씨, 길용우 씨가 조연출을 했었다. 데뷔 이래 4년동안 여러 작품을 했고 1980년 ‘선인장의 꽃’ 이란 작품을 한 후 미국유학 길에 올랐다. ‘꿀맛’에서 ‘선인장의 꽃’까지 내가 출연한 연극은 완전
대박이었다. 연극에서 이름이 알려지자 CM송도 불렀고, KBS, TBC 방송 MC, 영화출연 제의도 들어오고, 음반 발매 등도 했지만 연극이 제일 좋았다. 힘들고 가난하지만 연극을 하면
행복할 수 있겠구나 생각이
들었다. 연극이 좋은 이유가 더 있었는데 연극은 영화배우나
대중가수처럼 유명해지지는 않지만 존경은 받을수 있을거 같았고, 연극에는 내가 좋아하는 문학과 음악이 있는
점이 좋았다. 연극이 너무 좋은데 환경이 너무 척박해서 돈을 벌 수
없었다. 어려서부터 번역을 했었다. 희곡번역을 주로 했는데 당시 번역비로 받은 돈을 극단
운영이 어려우면 다시 되돌려
주었다. 보통 한 극단에서 연간 5작품 정도를 하는데 1작품 정도가 흥행에 성공한다. 작품당 닷새에서 1주일 정도 공연하는게 고작이었으니 단원 모두 허리띠를 졸라멜 수밖에
없었다.
< 어려웠던 유학
시절 >
‘너무 좋은 연극을 이렇게 힘들게 해야만
하나’ 하는 해답을 풀기 위함과 대학을 다니지 못한 한도
있어서 뉴욕으로 유학을 가게
되었다. 35년전 힘들고 어려웠던 시절이라 말이 유학이지 정말 어렵고 힘들게
공부했다. 그당시 이민을 가게되면 남자는 야채가게, 여자는 재봉일을 하던 그런 시절이었다. 뉴욕에 가서 재봉일을 빼고는 안해본 아르바이트가
없었다. 편의점, 피자집, 베이비시터, 여행사, 치즈가게 등등 닥치는 대로 무엇이든지 했다. 아르바이트 중에 재봉일이 시간이 자유롭고 제일 수입이 많았는데 아무리
노력해도 안되어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사람에 따라 해도 안되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방학때는 한국으로갈 차비를 마련하기
위해 풀타임으로 아르바이트를 했다. 눈물과 땀과 서러움으로 얼룩진
시절이었지만 한국으로 돌아가고픈 꿈, 연극을 하고 싶었던 꿈, 좋은 작품을 소개하고 싶은
꿈을 위해 이를 악물고
참았다. 때로는 우울증도 왔는데 이럴때는 지하철을 타고 블루클린으로가서 허드슨
강변의 쓸쓸한 풍경을 보며 ‘언제나 무대에 설수 있을까’를 생각하며 하염없이 노래를 부르곤 했다.
< 신의 아그네스와의
만남 >
유학생활 3년이 지난 어느날 ‘신의 아그네스’라는 연극을 보게 되었다. 유명한 배우 크리스토팔머의 딸(그녀도 나처럼 꿀맛으로 데뷰했다) 이 ‘아그네스’역을 연기하고, ‘닥터’역에 내가 가장 좋아했던 배우 엘리자베스에슐리, 제랄드 페이진이 원장 수녀역을 맡았는데 신과 인간의 문제를 다룬
연극이었다. 이 작품을 한국에 꼭 소개하고
싶었다. 어렵게 대본을 구하고, 비행기 표값을 마련해서 방학을 이용해 한국에 왔다. 비행기에서부터 번역을 시작해 하루만에 번역을
끝내고 8월 15일부터 2주간 공연을 했다. 공연 연습을 할 장소가 없어 이곳저곳을 전전하며 때로는 시끄럽다고 쫓겨나기도
했다. 극단에서도 과연 저 작품이 될까? 하고 걱정을 했지만 인간의 꿈, 욕망, 미래 등을 보편 타당성있게 메타포를 끌어낸
작품이라 난 자신이 있었다. 이 공연의 크나큰 성공으로 난 일약 연극계의
스타가 되었다.
< 연극에서 만난 너와
나 >
신과 인간과의
문제, 나와 너의 문제, 너와 나의 문제가 어떻게 쉬울 수 있겠는가? 그게 쉽다면,,, 인생을 그렇게 쉽게 살아간다면 남는 것이
무엇이겠는가? 잠시 잠깐은 누구나 반짝하고 뜰 수 있지만 그런것은 삶이 아니고 삶의
거죽일 뿐이다. 삶은 지금 힘들고, 아무리 억울하고, 왜곡당한다 해도 사람이 살아가면서 중요한 두가지가
있다. 내가 나를 지키고 내가 지켜내야
할 Faith(믿음, 신뢰), 그리고 내가 선택한 Profession(일)이 그것이다. 진정한 내가 될 수 있으려면 너를 알아야 한다. 삶의 방향(Trend), 적극적이고 긍적적인 마인드 등도 중요하지만 Faith 라는 알맹이를 잃어버리면 나는 없는 것이다. 그렇지만 아무리 그래도 내가 먼저다. 내가 우선이지만 ‘나는 너다’ 라는 것을 깨달으면 이기적이 아니라 이타적인
사람이 된다. 연극이라는 공간 속에서 작품행간을 통해
관객과 배우가 서로
교감하고 느낌과 생각을 주고받으면서 관객이 벅찬 감동을 느낄때 배우에게 관객의 마음이 그대로 전달된다. ‘내가 없는 너, 너가 없는 나’는 의미가 없다. 여러분도 너무 성과에 연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남에게 보이기 위해 성과를 포장하거나 빠르게 하기위해 대충하지 말고
제대로 해야한다. 내가 이루지 못한다해도 내 후배나 동료가 완성할 수 있는거
아닌가?
< 공연 일화 >
귀국후에 어머니가 나를 위해
개포동에 13평 전세아파트를 얻어주었다. 귀국후 ‘85년 ‘화니’를 시작으로 매년 큰 공연이 이어졌다. 뮤지컬이 하고 싶었다. ‘87년 공연준비를 위해 전세아파트를 과감히 내놓고
뮤지컬 Song
& Dance 공연추진을 위해 다짜고짜 호암아트홀 사장님을 만났다. 사장은 나를 믿고 계약을 하고 난 번역, 기획, 제작, 주연 등 총괄지휘를 했다. 공연은 말 그대로 ’대박‘ 이었다. 이 공연으로 호암아트홀은
그당시 1억원을 벌었고 난 개런티로 4천만원을 받아 15평 아파트를 샀다. 어머어마한 액수였다. 이후 호암아트홀과 ’나이트 마더‘라는 작품을 했는데 그당시 상대역이었던 배우
김용림은 3주 공연에 3백만원 개런티를 받았고 난 2천만원의 전무후무한 개런티를 받았다. Song & Dance 공연 성공에 대한 감사의 표시였다.
< 맺음말 >
나는 나이를 먹어가는게 너무
좋다. 나이는 들어도 ‘난 왜 이렇게 이쁜거야~’ 하며 산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하지만 체력은 다르다. 오래 사는것보다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한 문제이다. 마지막으로 여러분께 3가지 선물 '3D' 를 드리려 한다. Dream(꿈), Dignity (품위, 존엄), Devotion (헌신) 이 그것이다. 꿈을 꾸며, 내가 나를 사랑할 수 있는 위엄과 품격을 가지고, 누군가를 위해 즐겁게 일하며 헌신하는 삶으로 살아 가셨으면
한다.
내가 하는
연극도 많이 봐주시기를 바라며, 그때 만나면 손을 흔들며 ‘하이~~ 3D~~!!' 라고 반갑게 인사해
주시길 바란다.
(이동주 팀장의 글에서...)
첫댓글 "3D" Dream( Dignity Devotion
누군가를 위해 즐겁게 일하며 헌신하는 삶,
너무도 멋진말이다.
성공한 사람의 여유로움,
그렇게 되기까지 그녀가 인내했던
어마어마한 시간과 노력들.
땀과 열정의 댓가로 받은 지금의 모든것들은
지극히 당연하다.
글을 읽는 내내 참으로 그녀가 존경스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