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휴가를 나온다면✨
-정채봉-
하늘나라에 가 계시는
엄마가
하루 휴가를 얻어 오신다면
아니 아니 아니 아니
반나절 반시간도 안 된다면
단 5분
그래, 5분만 온대도 나는
원이 없겠다.
얼른 엄마 품속에 들어가
엄마와 눈맞춤을 하고
젖가슴을 만지고
그리고 한 번만이라도
엄마!
하고 소리내어 불러보고
숨겨놓은 세상사 중
딱 한가지 억울했던 그 일을 일러바치고 엉엉 울겠다.
-시집『너를 생각하는 것이 나의 일생이었지』(현대문학북스,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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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에 자신을 낳고 20세에 세상을 떠난 정채봉 작가의 엄마를 기리는 슬픈 시다. 두 살 때 엄마를 여의고 할머니 밑에 자란 작가의 이 시집에는 사모곡들로 빼곡하다. '엄마'라는 말보다 더 사무치는 언어가 또 있을까. 우리의 가슴에 영원히 살아 그리움과 간절함으로 남아있는 어머니. 기쁠 때나 슬플 때, 화가 나고 억울한 그 모든 순간에 ‘엄마’ 만큼 위안이 되는 단어가 세상 어디에 또 존재할까. 어린 시절 처음으로 엄마 곁을 떠난 2박3일 수학여행에서 설렘과 신기함으로 일정을 보내고서 첫날이나 이튿날 밤, 잠을 청할 때쯤이면 절로 엄마가 생각나고 보고 싶어져서 말똥말똥한 눈에서 눈물을 짜내었던 기억이 있다.
나만이 아니라 내 옆에 누운 동무도 그랬다. 요즘 같으면 폰으로 엄마 목소리를 듣고 얼굴도 볼 수 있겠지만 밤하늘 공간에서 이어지는 막연한 텔레파시만 느낄 뿐이었다. 만약에 천둥벼락이라도 내려친다면 엄마를 떠나온 것을 후회하면서 얼마나 끔찍해할지. 그런 엄마이거늘 정채봉 작가는 얼굴도 기억 못하고 말도 배우기 전에 가셨기에 ‘엄마’라는 말을 한 번도 불러보지 못했다고 하지 않는가. 그렇게 평생 엄마를 그리워하다 휴가 오시지 않은 엄마를 면회하고자 십여 년 전 서둘러 이승을 떠났다. 그곳에서는 어렴풋한 젖 냄새로만 기억하고 있던 엄마 젖가슴을 원 없이 실컷 만져보고 한 없이 눈물을 펑펑 쏟아내었을까.
오래 전 ‘샘터’에서 엮어낸 <사랑하는 나의 엄마에게>라는 책이 있다. 탤런트 최불암은 “‘방송 일은 다 끝나셨습니까? 식사는 하셨어요?’ 병상에 누우신 어머님의 가녀린 인사말에 퉁명스럽게 ‘무슨 말투가 그러슈?’ 쏘아붙이고는 병실을 나왔지만, 시린 담배연기 아래로 한없이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돌아가시기 사나흘 전이었지요.”라고 어머니를 회상했다. 이청준 작가는 “그냥 앉거라. 늙은 에미하고 같이 흰머리인 자식 절
받기 숭 없다. 나이와 함께 세어가는 자식의 흰머리에 행여
그 아들에게 당신의 노년이 짐이
되실까, 절을 받으시기도 저어하시던 어머니- 어찌하여 이제는 두 자리 겹절에도 말림의 말씀이 없으십니까.”라며 회고했다.
그리움도 윤회하는지 부친의 뒤를 이어 동화작가가 된 정작가의 딸은 아버지의 작품과 부녀가 주고받은 편지 등을 모아 펴낸 추모집 <엄마 품으로 돌아간 동심>에서 아버지와 똑 같이 "아버지가 단 하루 만이라도 휴가를 나온다면… 품에 안겨서 펑펑 울 것만 같다"고 적었다. 얼마나 억울하고 보고 싶었으면 '오세암'의 떠돌이 고아 길손이처럼 '엄마가 휴가를 나온다면' 단 5분간이라도 주어진다면 엉엉 울겠다고 했을까. 2년 전 나도 어머니를 병상에 누여놓고 ‘엄마! 엄마! 엄마!’ 수없이 구원을 향해 낮은 절규를 했던가. 평상시 같으면 어림없을 무방비의 젖가슴을 마음대로 만지면서 전해오는 온기에 감사의 기도를 올리기도 했다.
이제 그 온기를 어디에서 다시 느낄 수 있으랴. 엄마 얼굴도 기억 못하는 정채봉 작가와는 사정이 달라 ‘5분’가지고는 어림없고 한 열흘 쯤 휴가를 받아오시면 좋겠다. 엄마와 나만의 버킷 리스트를 만들어 실행에 옮김으로써 생전의 불효를 조금이라도 탕감 받고 싶다. 정 작가가 운주사 와불 옆에서 쓴 시가 있다. “꽃은 피었다 말없이 지는데/ 솔바람은 불었다가 간간이 끊어지는데/ 맨발로 살며시 운주사 산등성이에 누워 계시는/ 와불님의 팔을 베고 겨드랑이에 누워/ 푸른 하늘을 바라본다/ 엄마….” 엄마를 부르는 그의 목소리는 엄마 없이 어버이날을 맞는 많은 이들의 가슴 속에서 끝없이 메아리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