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미술사를 살펴보면 다시 느끼게 되는 것이 있다. 풍경화, 인물화 같은 그림에 사회적 분위기만 담기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림 안에서도 여러 과정을 거치면서 새로운 미술 양식이 창조된다. 테크닉, 접근 방법 등이 사회에 인식되고 받아들이기까지 미술사도 그 안에서 순환·반복되고 다듬어진다. 익숙지 않은 것을 익숙하게 받아들이는 과도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 서양미술의 이해(오병욱) 참고
▲ 카스파 데이비드 프리드리히(Caspar David Friedrich), 산정에서 구름을 감상하는 여행자(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 , 1818년, 캔버스에 유채
[문화매거진=강다연 작가] 로코코, 신고전주의를 살펴본 데 이어 오늘은 ‘낭만주의’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낭만주의는 신고전주의와 비슷한 시기에 출발하여 30년 정도 더 지속되었다. 신고전주의와 낭만주의 모두 계몽주의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같지만 분명한 차이점도 있다. 이제부터 신고전주의와 낭만주의를 비교하면서 차근차근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다.
먼저 신고전주의는 지식, 과학적으로 무지를 타파하고자하는 계몽주의이자 정적이고, 우아한 귀족 미술 양식으로 볼 수 있다. 반면 낭만주의는 원초적인 순수함으로의 회귀를 원하는 계몽주의이자 이성의 비합리적인 면의 발견과 인간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미술 양식이었다는 점이 신고전주의와 다르다.
이러한 낭만주의 그림의 분위기는 어떤 분위기였을까? 낭만주의는 거칠고, 웅장하며, 참혹한 주제를 다룬다. 당시 18세기 후반과 19세기 전반의 유럽은 침울한 상황이었는데 그 이유는 신의 죽음으로부터 발생한 것으로 보고 있다.
같은 낭만주의 안에서도 국가 간 추구하는 미술형식은 어떠했을까. 영국의 낭만주의는 색채의 감각성을, 독일의 낭만주의는 선의 순수함을 추구하였다. 독일은 나폴레옹에게 정복당해 민족적 독창성과 국가의 독자성을 확보하고자 노력하였다. 이처럼 낭만주의에서도 국가 간 추구하는 것이 다름을 알 수 있다.
이렇게 미술사를 살펴보면 다시 느끼게 되는 것이 있다. 풍경화, 인물화 같은 그림에 사회적 분위기만 담기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림 안에서도 여러 과정을 거치면서 새로운 미술 양식이 창조된다. 테크닉, 접근 방법 등이 사회에 인식되고 받아들이기까지 미술사도 그 안에서 순환·반복되고 다듬어진다. 익숙지 않은 것을 익숙하게 받아들이는 과도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역사를 되돌아보면서 미래를 예측하고 준비할 수 있듯이 미술사를 공부해야하는 이유도 그런 맥락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단계가 있었기에 우리가 그림을 바라보는 시선이 폭넓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미술의 필수요소이자 새로운 미술사의 출발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보이는 그대로를 사진처럼 표현하는 테크닉도 중요하지만, 그 틀을 벗어나 형태가 정확하지 않더라도 그림에 메시지가 담겨있거나 어떠한 시도가 있다면 그 그림이 새로운 미술사의 발판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림을 그리다보면 사진처럼 그림을 그리려고 할 때 그 과정에서 오는 보람도 있지만, 자유롭게 그림을 그리면서 얻는 편안함과 나만의 풍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보람을 느낀다.
이 모든 것이 어느 것이 옳고 그른지 나누기보다는 둘 다 자유자재로 넘나들 수 있는, 폭 넓은 그림을 그리고 그러한 시선과 마인드를 가진 작가가 되고 싶다. 테크닉 측면에서 늘 노력하며 나의 생각을 담은 그림으로 다가가려고 오늘도 노력하고 있다.
많은 이들에게 마음으로 와 닿으며 사랑받을 수 있는 온전한 작품을 만들어 내기 위해 앞으로도 더 많이 보고 배우고 노력하는 작가가 되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