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시 한주가 지나 와이프와 두 딸이 기다리고 있는 김해 집에서 일요일을 보냈다.
며칠 전 상동고등학교를 지나면서 깨달은 바가 있어 이번 주 집으로 향하는 마음이 내내 설레였다
익숙함과 권태로움이라는 뿌연 막으로 가려졌던 내 눈이 조금 맑아졌기에 만난지 25 년이 된 와이프와 그동안 커가고 있는 소중한 시간을 따뜻한 눈으로 바라봐 주지 못한 두 딸을 보러가는 시간이 기다려졌다.
버스에서 내려 날 마중나온 와이프를 보는 순간 예전과 다름없이 아름다운 그녀의 모습을 볼 수 있었고 ‘안보는 사이에 더 예뻐졌네’라는 진심 반 섞인 말에 ‘이 남자 갑자기 왜이래?’라며 싫지 않은 미소를 지어 보이는 모습이 귀여웠다.
시험을 마쳐 모처럼 만에 한가로운 핸드폰 질에 빠져 있는 첫째에게 수고했다며 뽀뽀와 포옹을 해 주었고, 아직 철이 덜 들어 자기가 만든 3D 팬 작품을 내게 자랑하느라 바쁜 둘째에게는 많은 칭찬과 물듯 빨듯 뽀뽀를 해데었다.
이번에는 어머님 생신도 있었기에 일요일 저녁엔 가까이 사시는 사촌 큰형님네와 함께 어머니 생신을 축하 해 드렸다.
사촌 큰형님은 뒤늦게 할리의 매력에 빠지셨는데 워낙 사람을 만나고 이야기하고 함께 하는 걸 좋아하는 형님이다 보니 일요일날도 클럽 동료들이랑 경남 고성으로 짧은투어를 다녀 오는 길이라 하셨다.
나의 전국일주 이야기를 들으시고 할리를 타니까 주는거라며 바로 그 자리에서 차고있던 은팔찌를 내게 건내주신다.
오늘부터 바이크 여행을 할 때는 형님이 준 팔찌와 연애 때 와이프가 내게 사준 팔찌를 함께 착용해서 마음이라도 함께하는 라이딩이 되길 바래본다.
영주에 도착해서 다시 라이딩 준비를 하고 스타트 포즈를 취해 본다. 이미 시간은 두 시가 다 되어 길어봐야 세 시간 반 정도 여정이 가능 할 것이라 생각된다.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가다 해가 지면 멈추면 된다. 가벼운 마음으로 이틀을 잠들었던 애마의 심장에 불을 당긴다.
영주를 조금 벗어난 길 쭉 뻗은 넓고 긴 국도가 나온다. 이 도로는 전쟁 시나 비상시에 비상활주로로 사용되는 국도여서 중앙분리대도 없다고 한다.
고등학교 때 세상 곳곳을 돌아다니는 파일럿이 되는 꿈을 잠시 가졌었는데 그 당시 파일럿이 되려면 공군 사관학교를 가야 한다 들었는데 내 시력이 심한 마이너스 시력이라 공군사관학교에 지원조차 할 수 없다는 확인되지 않은 정보에 그냥 포기 하게 되었다. 하지만 지금이라도 기회가 된다면 경량 항공기 면허를 따보고 싶은 마음이다.
고향치를 건너 저수령으로 가는 길. 완만하고 멋들어진 능선이 한 폭 수묵화처럼 펼쳐져 나는 다시 삼각대를 펼쳐 꺼내든다. 마음껏 찍고 기억에 남기리라. 나중에라도 이 사진을 보면 지금의 이 자유와 사색이 떠오르겠지. 내 삶의 쉼없는 시간의 흐름 속에 책갈피처럼 남겨져 과거의 나를 추억하게 되겠지.
그래서 난 더 사진으로 남기려 한다.
저수령에 도착해 잠시 숲으로 난 숲길에 앉아 쉬어간다. 해가 지려는 듯 달릴때 바람이 차가워진다. 따뜻한 듯 하여 열선을 덧입지 않았는데 살짝 고민이 되지만 견딜만하니 참아보기로 한다.
벌재를 넘자 주변에 붉은 과실이 푸른 하늘에 대비되며 알알이 열려있는 과실수들이 보인다. 마을에는 오미자 저장 창고 등이 보이는 걸로 봐서 오미자인 듯 했는데 내려서 보니 산수유다. 이런거 확인하는거 직업병이다.
다음 목적지는 여우목고개. 길을가다 저기 산과 산 사이에 잘록하게 들어간 고개가 보인다. 딱 보면 여우 귀나 여우 얼굴처럼 생긴 고개인데 여우목고개인지 확인할수는 없지만 난 저 고개가 분명 여우목고개일거라 마음먹기로 한다.
여우목고개의 짧은듯한 헤어핀 코너를 모처럼만에 발판을 긁으며 돌아 나간다.
여행 10일차. 많은 빼어난 절경들을 봐와서인지 오늘은 눈에띄는 풍경을 만나기가 어렵네라며 실망 섞인 생각을 하고 있는 순간 저 멀리 뾰족하게 솟은 산이 노을져가는 하늘을 가리며 나타난다.
그래. 여행은 생각지도 못한 순간에 항상 멋진 풍경을 나에게 선사한다.
하늘재로 오르는 길은 좌우로 도자기를 빚는 요들이 아주 많다. 이 주변으로 좋은 흙이 많이 나오는 모양이다.
도로가에 전시된 엄청 큰 고려청자가 아주 멋지다.
하늘재 입구에는 서산으로 지는 해를 반사하며 자신의 모습을 뽐내는 석산이 있는데 생김새가 특별하다.
영주 일대에는 이런 평범치 않은 산들이 있어 심심할 수 있는 길 위의 여정에 조미료가 되어준다.
하늘재를 내려서니 저 멀리 또 다른 기이한 모습의 능선을 가진 산이 떡하니 자신을 뽐내고 있다.
소나무가 많은 우리나라는 곳곳에 송림이 있는데 소나무는 비정형 속에 질서와 조화가 있어 아름다운 듯하다.
이화령으로 가는 쭉 뻗은 도로 오른편으로 봉우리가 특이한 주흘산이 보이고 아래로 웃는 모양의 다리가 잘 어울린다.
날이 어두워지고 있어 마무리 점프 1회차를 남긴다.
오늘은 여정을 오후 늦게 시작하는 바람에 아쉬움이 많았고, 풍경 또한 심심한 편이었다. 너무 아쉽지만 이화령에서 여정을 마쳐야겠다 생각하며 이화령 정상의 굴을 통과하는 순간 입에서 탄성이 나오고 눈이 커지고 가슴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이화령의 너무나 아름다운 낙조를 보게 된 것이다.
급히 바이크를 세우고 삼각대를 펼치면서도 눈은 붉게 익은 낙조를 보느라 급하다.
낙조의 절정을 볼 수 있는 것은 길어봐야 20분. 해가 진다고 항상 낙조가 아름다운 것만도 아니니 지금 이 낙조를 볼수 있다는 것이 큰 행운이라 느껴졌다.
바로 이 시각, 이 장소, 이 구름이 완벽하게 맞아야 볼수 있는 이 절경 속에 나는 마무리 점프를 뛰고 또 뛰고 뛰었다. 숨이 차도, 주변 사람들이 이상하게 쳐다보며 자리를 피해도 난 즐거워 죽을것 같아 대여섯번 점프를 뛰었다.
이화령을 돌아나오는 길.
내가 이 낙조를 보게 된 것은 우연일까, 내 인생에 미리 정해져 있었던 복일까? 될려고 된 것일까, 운이 좋게 맞아 떨어진 것일까?
우연이었다면 운이 좋은 오늘의 절묘한 타이밍에 감사해야 할 것이고, 필연이었다면 내게 이런 절경을 선사해 주신 신께 감사해야 할 것이다.
해가 떨어져 어둠이 내린다. 추워지기 전에 숙소로 돌아온다.
오늘의 여정 ; 백두대간 45. 고향치~ 50. 이화령
첫댓글
엄지척 감사드립니다. 오늘은 아침부터 달리느라 답이 늦었습니다. 오늘 비도 만나고 전국일주 시작이래 제일 길게 달린것 같네요.
멋진 날들과 함께 안전운전을 기원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우~~~~~~와~~~~~~ 할리님 답글이네요. 반갑고 고맙습니다. 안전운전 해서 전국일주 완주하겠습니다. 진도 빼느라 열심히 달렸는데 거창에서 비에 발목이 잡히네요. 하아~
@도깨비 지심 어디~~ 요 근처 지나실때 함류해서 식사라도 한끼 해야 할텐데요~~
일정함 지켜봐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낙조를 봤다면 진짜 행운입니다.수고 하셨어요.
그렇죠? 낙조 본거 행운이죠? 진짜 아름다웠습니다. 사진으로 남길수 있었던게 너무 좋습니다. 앞으로 또 어떤 풍경응 만날지 기대됩니다.
굿~~~~^^
엄지척 감사합니다!! 열심히 달려서 진도 좀 뺐는데 비가 오네요. 내일 어째야 할지 고민입니다.
덕분에
사진으로 고향의 소식을 봅니다.
멋지십니다.^^
아하~ 고향 소식이 들어 있었다니 제가 다 뿌듯하네요. 고향 소식은 언제나 반갑고 추억 가득하지요. 칭찬 감사합니다.
꽉찬후기 좋네요
즐거운 여행 되시길바랍니다.
개인적인 소회를 기록하려던 것이 여러분들이 읽어주시고 응원해 주셔서 나름 신경써 작성하는 과제가 되었네요. 하지만 즐거운 일이고 이 글 저 개인적으로는 따로 모아서 작은 앨범이라도 만들 생각입니다.
글 잘보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많은 응원은 이번 여행의 또다른 기쁨이기도 하네요. 기대도 안했던 일인데 제가 더 감동이고 감사합니다.
오늘도 투어후기 재미있게 봤습니다 ,,,
무복하시고요 다음편 기대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