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패(馬牌) 이야기 하나
이성계에 의해 조선이 건국되자 많은 저항도 있었지만
새 시대를 맞는 여러 종류의 개혁정책도 펼쳤다.
그러나 지방 곳곳에서 중앙정부에 대한 저항 또는 비협조가 있었기에
민심을 살피고 관리들의 행태를 사정하는 제도가 있어야 했을 게다.
특히 면종복배, 즉 앞에선 순응하는 척하면서
뒤에서 배신하는 걸 살피려면
은밀한 사찰이 있어야 했을 테요
그게 암행어사와 마패의 등장이었던 것이다.
천구백칠십 년대 초에 부산 용두산 아래 숙소에 들어
며칠 묵은 일이 있었다.
저녁이면 숙소 아래 전통찻집에 들려 주인과 환담하곤 했는데
그곳은 일제 강점기에 일본인들이 많이 살던 곳이라 했다.
광복이 되자 그곳 적산가옥을 불하받아 철거하고
새로 건물을 신축했는데
철거공사 중 많은 유물이 나왔다 했다.
아마도 일본인이 가지고 있다가 버리고 간 것들일 것이라 했다.
주인인 노인장으로부터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다가
마패(馬牌) 하나 얻었는데
주인장은 메달 정도로 알고 있었지만
내 눈엔 번쩍하는 물건이었다.
마패 전면에 尙瑞院이라 쓰여 있다.
상서원은 조선시대 왕명을 받들던 기관이다.
다음으로 地字覽三馬牌라 쓰여 있다.
말 세 필을 지칭하는 것이다.
다음으로 天啓 四年 三月 日이라 쓰여 있다.
천계는 중국 명나라의 연호로
천계 4년이면 1624년을 말하며
조선조 광해군 다음의 인조 1년이다.
뒷면을 보면 말 세 필이 돋을새김으로 표현되어 있다.
나는 이걸 들여다보면서
암행어사들이 민심을 제대로 살폈는지
임금에게 곡직(曲直)을 제대로 전했는지
가는 곳마다 민폐나 끼치지 않았는지 생각하며
오늘날의 현실을 그에 얹어보곤 한다.
어느 암행어사가 얼굴이 훤칠한 종자(從者) 천서방을 데리고
달천강을 건너는데 장맛비로 물살이 세어
“이크” 하는 사이에 마패를 물속에 빠뜨렸겠다.
이제 공무를 수행할 수 없는지라
낭패를 당한 어사가 종자에게 이르기를
“천서방, 물고기 네 마리만 잡아 오너라”
“나으리, 그건 어디에 쓰려하옵니까?”
“너는 알 것 없느니라”
어사가 물고기 네 마리(魚四)를 칡넝쿨에 엮어 너덜너덜 들고 가는데
아리따운 아낙이 어사를 보고 뒤를 졸졸 따라오는지라
“천서방, 저 아낙이 우리를 알아본 모양인데 그 사연을 듣고 오너라 “
“예, 나으리.”
종자가 한참 뒤로 물러나 아낙을 만나고 와서 어사에게 말하길
“나으리, 저 아낙이 신을 빼앗겼답니다요.”
“그래? 그럼 그 신이 집신이라 더냐 짚신이라 더냐?”
“나으리, 그건 잘 모르겠사옵니다요.”
“어허, 그럼 네가 가서 잘 어르고 오너라.”
“예, 알겠습니다요.”
어사의 명을 받고 아낙의 집에 갔다가 한참 만에 돌아온 종자가 이르기를
“나으리, 제가 잘 어르고 왔습니다요 헤헤...”
“잘했구나, 그런데 그 신이 집신이었더냐 짚신이었더냐?”
“그게 짚신이 아니고 집신이었사옵니다.”
여기서 짚신은 발에 신는 신이요
집신은 집안에 모시는 어른 즉 남편을 이름인데
“어허, 그럼 어찌 어르고 왔느냐?”
“제가 살짝 접신만 하고 왔습지요 헤헤...”
“그래, 아낙이 좋아하더냐?”
“아주 좋아했습죠.”
“그러면 됐다. 관원이 삽신까지 하면 원성을 사느니라.”
“예, 나으리. 앞으로도 삽신까지는 안 하렵니다요.”
그렇게 한 백성의 원성을 다스리고 그들은 다음 임지로 갔는데
남의 아녀자에게 삽신은 말도 안 될 일이지만
접신도 잘못하면 성추행으로 몰리게 되니 각별 조심할 일이요
더더구나 사람과 달리 짐승의 경우는 교미를 접신이라 하니
요즘의 상황으로는 상상도 못 할 일인 것이다.
한참 걸어가려니 밤이 되었는데
어느 민가에서 불빛이 새어 나오는지라
종자가 다가가 기웃거려 봤더니
"어머니, 잡수실 거 없으면 똥이나 먹으세요."
" 그래 아들아, 먹을 거 없으니 똥이나 먹으련다."
그러더라나~
이 대화를 엿들은 종자가 어사에게 달려가 아뢰니 어사가 말하길
"빈부격차가 심하다더니 먹을 게 없어 제 어미에게 똥을 먹이는구나." 하면서
관가에 가서 금 일봉을 받아와 그 모자에게 갖다 주라 했는데
종자가 금 일봉을 가지고 당도하니
모자는 고스톱 판을 정리하고 있는지라
금 일봉을 꼭 쥐고 오던 길로 다시 돌아갔다니 얼마나 신통한가.
중앙에서 정책을 잘 입안했더라도
현장에 있는 관리들이 잘 집행되는지를 살펴봐야 할 대목이니
고급관리와 하급관리의 차별이 없는 것이다.
첫댓글 네 오늘도 역사 배웁니다.
네에 고마워요.
마패에 얽힌 아주 재밌는 고사 잘봤습니다
그때 얻으신 마패는 계속 가지고 계시면
귀한 보물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그 노인장에겐 좀 미안하데요.
그런데 차는 많이 팔아줬죠.ㅎ
마패의 어원과 거기에 얽힌 이야기들 역시 고담과 재담 야담 ㅎㅎ
비오는 날 막걸리에 파전 미나리 전 안주로 추적거리는 빗소리 들으며
주거니 받거니 하는 맛이지요 어사 박문수의 일화를 적은 책을
소녀적 밤새워 읽은 적도 있지요
당시 암행어사도 수난이 많았어요.
지방토호들이 어사를 관내에 들어오지 못하게도 했지요.
낭만적 이야기는 사례가 적기에 오래 회자되지요.
암행어사 출두요~~~
춘향전 그 대목에서의 시원함이란! 최고였지요. ^^
모르긴 해도 암행어사들 중에도 본분에 충실했던 분들도 있고
탐관오리들과 결탁한 분들도 있었겠지요.
현직에 있을 때 경기도 교육청 암행 감사반이 다닌다고 연락이 오면
근태를 조심하며 학교 전체가 긴장하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건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고
보면 맞을겁니다.
사람 사는 세상이 그런거지요.
마패 이야기, 잘 듣고 갑니다.
석촌 형님!
네에, 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