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의 여인들
인보길은 '안보길의 우남이야기'를 통하여 그의 어머니에 대하여, 첫 번째 부인 박승선과의 이혼, 이승만에게 도움을 준 여인들, 58세에 결혼한 프란체스카에 대하여 시대적인 배경과 함께 잘 설명하고 있다.
양 극단에 치우치지 않고 '대한민국 건국의 숲'에서 잘 설명하고 있다. 나라의 정체성 회복과 평화통일(복음)을
위하고 다음 세대를 위한 우리의 눈은 극단적인 시각보다는 통전적 혜안이 필요하다고 본다.
[인보길의 우남이야기] 4화 - 이승만과 여인들(1)
https://www.youtube.com/watch?v=EBlr1PBjE7A
어머니 김해김씨
이승만은 양녕대군의 16대 손으로 왕족 출신이었으나 그의 삶은 파란만장한 삶이었으며 가시 밭길 인생이었다.
이승만은 1875년 양력 3월 26일 황해도 평산군 마산면에서 아버지 이경선(李敬善 1837~1912) 어머니 김해 김씨(1833~1896) 사이에 3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난다. 위에 두 형은 죽고 결국 6대 독자로 자란다. 아버지는 전국을
유랑하는 풍류객이었고 가정의 생계는 어머니가 감당해야 했다. 어머니는 훈장의 딸로서 아들에게 『천자문』과
『동몽선습』을 손수 가르치며 시작(詩作)을 지도할 정도로 학식이 높았다. 후에 이승만이 출중한 학자, 언론인,
정치가로 대성할 수 있었던 것은 어머니의 극진한 사랑과 정성에 힘 입었다.
첫 결혼과 이혼
https://www.youtube.com/watch?v=AOtA9gYHNdU
[인보길의 우남이야기] 5화 - 이승만과 여인들(2) (수정)
1890년 16세에 부모가 간택한 박씨와 결혼하게 되는데 후에는 남편의 '승(承)', 시아버의 '선(善)' 자를 따서
'박승선'이라 하게 된다. 박승선은 남편이 투옥된 후 아들 태산(봉수)을 낳게 된다. 아들 봉수는 1905년 이승만의
옥중결의 동생인 박용만에 의하여 미국으로 가게 되고 이승만은 아들을 기독교선교사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프랭클린학교에 입학시키게 된다. 그리고 1906년 2월 25일 필라델피아에 위치한 '서부아동보육원'에서
디프테리아에 걸려 사망하게 된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왜 봉수는 미국으로 가게 되었을까? 이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 부분이기도 하다. 미국생활에서 아버지가 양육할 수 있는 형편도 아닌데, 우남이 아들을 오게 한 것일까?
아니면 아내 박승선이가 보낸 것일까?
미국에서 한국으로 돌아온 후 1912년 아내 박승선과 이혼하게 된다. 이혼에 대한 주장은 여러 견해가 있다. 아내의 입장에서 또는 이승만의 입장에서 각기 다른 주장이 있을 수 있다.
안타까운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부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하겠으나 당시 역사적인 상황을 보면
더이상 부부관계가 유지하기 어려운 상황에 이르게 되고 결국 이혼을 하게 된 것으로 본다. "이혼 할 때 이승만은
재력이 있는 고종사촌형으로부터 얻어낸 200원 중 100원으로 창신동에 있는 복숭아 밭을 사주었다."고 한다.
첫번째 부인 박승선과의 이혼에 대해서는 당시의 역사적 배경에서 이해를 해야 할 것이다.
김노디와 임영신
https://www.youtube.com/watch?v=J2mF4q0ygDw
[인보길의 우남이야기] 6화 - 이승만과 여인들(3)
그리고 이승만은 다시금 당시 일본이 꾸며낸 105인 사건과 관련하여 감리교단의 도움으로 두 번째 미국으로
망명 길을 가야 했다.
그 이후 이승만은 가는 곳 마다 존경받는 자이므로 많은 여성들에게 도움을 받지만 지도자로서의 비난 받을 일은
없었던 것으로 본다. 여러 여인들의 도움을 받으므로 그의 외교를 통한 독립운동은 열매를 맺고 또한 대한민국을
건국하게 된다. 이승만은 보통사람들이 갖지 못한 혜안 즉 외교를 통한 독립운동, 미국인들도 보지 못한 반공주의는 당시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하였고 결국 이승만은 고독한 싸움을 싸우면서 자유대한민국을 건국하고 지켜야 했다.
그래서 적이 많았으며 가는 곳마다 도움울 주는 자들도 많았다.
프란체스카 여사
https://www.youtube.com/watch?v=LpWJZIpiBLw
[인보길의 우남이야기] 7화 - 이승만과 여인들(4)
1933년 58세 때, 예상치 못했던 프란체스카 첫 만남이 제네바의 레만호반에 있던 호텔 '드 라 뤼씨'의 식당에서
이루어졌고 1934년 10월 8일 미국 뉴욕의 몽클래어 호텔에서 윤병구 목사와 헤인스 목사의 합동 주례로 결혼하게 된다.
프란체스카 여사는 결혼하게 된 과정과 아내로서 남편을 존경하며 함께 살아 왔던 삶, 그리고 아내가 보는 남편
이승만에 대하여 감동의 글을 《『이승만 대통령의 건강』, 프란체스카 도너 리 지음, 이주영 감수, 조혜자 옮김》
에서 소개하고 있다.
이 글을 읽는 동안 프란체스카 여사는 하나님께서 건국대통령 이승만을 돕는 배필로 선택하여 주셨음을 그리고
이승만이 얼마나 나라를 사랑한 대통령인가? 얼마나 근검 절약하는 자인가를 알 수 있다.
그런데 이승만을 부정하는 자들은 이승만을 중혼자로 정죄하고 여인들과의 관계를 왜곡되게 전하면서 비난 하는
자들이 있다. 이에 대하여 인보길은 '이승만의 여인들'이라는 주제로 이승만의 모친에 대하여, 첫 번째 부인
박승선에 대하여, 그리고 이승만에게 도움을 준 여인들, 그리고 58세 만난 프란체스카여사에 대하여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이승만의 90평생의 삶은 가시 밭에 던져진 파란만장한 삶이었으나 호렙산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하나님을 만난 모세처럼 한성감옥에서 하나님을 만나 건국비전을 품게 되고 하나님이 함께 하시므로 대한민국의 진정한 자유를
위하여 투쟁한 혁명가이며 나라를 건국한 국부로서 존경을 받아야 할 분임에 틀림이 없다.
누가 건국 대통령 이승만을 정죄할 수 있을까? 가족사로 보면 그는 실패자다. 6대 독자로서 7대 독자인 봉수를
통하여 가계를 이어가야 할 것인데 가계를 계승하지 못하였다. 첫 번째 부인과의 이혼 역시 큰 아픔이었다.
그러나 그는 대한민국의 국부가 된 것이다. 당시 시대적 상황을 생각하지 못하고 "이혼하였다." 또는 "중혼하였다.",
"여성편력이 있다."고 한다면 이는 편견된 관점이라고 본다.
박승선의 삶 역시도 불행한 삶이었다. 결혼을 하였지만 남편의 투옥과 망명, 아들의 죽음과 이혼 얼마나 모질고 힘든 세월을 보내게 되었는가? 나라의 주권을 잃어 버리므로, 전쟁의 혼란 속에 국민들이 당한 고통을 당한 것이다.
누가 박승선을 정죄 할 수 있을까? 정죄하고 비난하기보다는 이들이 당한 아픔을 볼 수 있어야 한다.
한성감옥에서 죽음을 목전에 두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가운데 성령의 임재와 하나님과의 만남은 시내산에서 모세를 부르신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대한민국을 위하여 이승만을 부르신 것이며 일평생 하나님의 부르심에 따라, 외교를
통한 대한민국독립운동, 해방후에는 공산당을 반대하는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 건국과 농지개혁, 교육입국,
건국 이후에는 공산당의 침략에 맞서서 대한민국을 지키고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하므로 오늘의 대한민국의
기초를 마련하였다.
애국자들의 삶을 살펴보면 가족들까지도 제대로 돌아보지 못하므로 가족들도 함께 고통을 당하는 경우들이 많이
있다. 만일 이승만 역시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가족을 지키고 살아 갈 수 있었을 터인데 한성감옥에서 미국의
망명길에서 아들의 죽음과 아내와의 이혼 그리고 그의 삶은 결코 평탄한 길이 아니었다. 우리가 가져야 할 자세는
여기에 대하여 정죄하거나 비판하는 것은 삼가해야 할 것이다.
국부를 존경하지 아니한 나라가 없다. 국부를 존경하는 것을 우상화라고 비난하는 자들이 있는데 존경과 우상화는 다르다. 우상은 신격화 하는 것이며 존경은 그의 삶을 존경하며 그의 건국정신을 함양하며 계승하는 것이다. 북한의 3대 세습정권은 우상종교가 되었다. 그러나 건국대통령 이승만을 존경하는 이유는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회복하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대한민국을 건국한 건국대통령의 건국정신을 회복해야 할 때이다. 그의 건국정신은 기독교국가,
자유민주공화제, 반공주의 국가, 평등사회 실현, 교육과 상공업을 통한 부국건설, 외교를 통한 독립과 부국강병이다. 이 건국정신은 오늘의 대한민국에 너무도 중요한 정체성이다. 이러한 정체성을 근본으로 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나라를 사랑하며 복음통일, 선교한국을 이루어가도록 해야 한다.
우리가 판단해야 할 것은 단편적인 시각보다는 통합적인 시각을 가지고 보아야 할 것이다. 산에 있는 나무 한 그루를 보고 살피는 것도 중요하지만 숲을 보는 시각도 중요하다고 본다. 통합적인 시각은 '건국대통령 이승만'이다.
그에 대한 많은 자료들은 한결같이 진정한 지도자임을 증명하고 있다.
류승남 목사는 제주출신으로서 제주기독교교단협의회장 및 대한예수교장로회 노회장을 역임하였으며 무너져가는 한국교회와 대한민국의 정체성 회복을 위하여 2022년 12월 31일 대한예수교장로회 제주노회 신촌교회 위임목사를 은퇴하여 현재는 '이승만건국대통령기념사업회' 제주지회장, '한국교회정체성회복과교회수호연대' 대표회장으로,
'나정연복음신문' 발행인, '나라와제주를위한기도모임' 공동대표로 충성을 다하고 있습니다.
나정연복음신문은 개인에게는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며, '가정' , '교회', '국가'인 공동체는 에덴동산을 이루어가게하는 자비량 인터넷 신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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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리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옮겨온 글 편집
첫댓글 좋은 글 잘 읽었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