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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youtube.com/live/ZAtotLefoAc?si=h90DhMIwf6sI-5WP
불경건함과 하나님의 진노 [로마서 1장 18~25절]
18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나타나나니
19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그들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그들에게 보이셨느니라
20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21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22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어
23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 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24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버려 두사 그들의 몸을 서로 욕되게 하게 하셨으니
25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주는 곧 영원히 찬송할 이시로다 아멘
불의와 하나님의 진노 [로마서 1장 26~32절]
26 이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부끄러운 욕심에 내버려 두셨으니 곧 그들의 여자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27 그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자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 일듯 하매
남자가 남자와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그들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들 자신이 받았느니라
28 또한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29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30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31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32 그들이 이 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한다고 하나님께서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런 일을 행하는 자들을 옳다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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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요약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에게 나타납니다.
이는 하나님이 그분을 알 만한 것을 보이셨으나 그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우상으로 바꾸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진리를 거짓으로 바꾸어 조물주보다 피조물을 섬기는 그들을 더러움에 내버려 두십니다.
하나님은 악인들을 내버려 두어 그들이 자신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받게 하십니다.
그들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해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합니다.
모든 불의, 탐욕, 악의, 비방, 교만 등의 죄가
사형에 해당함을 알고도 자기들뿐 아니라 그렇게 행하는 자들을 옳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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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경건함과 하나님의 진노 [로마서 1장 18~25절]
하나님은 공의로우신 분입니다. 악과 타협하지 않으시고, 악을 못 본 척하지도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진노는 분별력을 잃은 감정적인 보복이 아닙니다. 악에 대한 거룩한 심판입니다. 사람들이 복음을 거부하는 것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는 죄인임을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을 거부하고 우상을 섬기는 죄를 불경건함이라고 규정합니다. 인간의 불경건함과 불의함에는 하나님의 진노가 임합니다. 사람들은 피조물 속에서 창조주 하나님을 보지 못하고, 마치 피조물을 하나님처럼 경배합니다. 피조물을 하나님 자리에 두는 것은 하나님께 미움받는 일입니다. 하나님을 창조주로 고백하며 섬기는 것이 믿음의 시작입니다. 하나님만이 홀로 영원히 찬송 받으실 분입니다.
☎ 사람들의 불경건함과 불의함에 대해 하나님은 어떻게 보응하시나요?
내가 창조주 하나님께만 영광 돌려야 하는 일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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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의와 하나님의 진노 [로마서 1장 26~32절]
영적 타락은 윤리적 타락으로 이어집니다. 그중 가장 두드러지는 것이 성적 타락입니다. 남자와 여자가 부부가 되어 한 몸을 이루고 사는 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런데 타락한 인간은 창조주가 정하신 바른 관계를 저버리고 성적 타락과 방종에 빠져 살아갑니다. 바울은 인간이 저지르는 스물한 가지 죄악을 열거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무시하고 죄에 빠지는 것은 양심이 무뎌졌기 때문입니다. 양심이 무뎌진 사람은 불의를 행하는 이들을 옳다고 두둔하며 죄짓게 만듭니다. 이는 심판 날에 받을 진노를 스스로 쌓는 것입니다(2:5). 성도는 공의의 심판 날이 다가옴을 기억하고, 모든 죄악을 멀리해야 합니다.
☎ 육신의 욕심을 따르는 죄를 하나님이 내버려 두시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성적 타락을 부추기는 세상에서 나는 어떤 기준으로 살아야 하나요?
우상 숭배의 결과
하나님과의 구분을 깨고 스스로 하나님이 되고자 한 것이 아담과 하와의 죄입니다. 우리도 스스로 하나님이 되고자 할 때, 도덕적 왜곡과 혼란으로 죄짓는 생활을 지속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처럼 도덕적 자율성을 주장하려는 인간의 자세는 삶의 모든 국면에서 자신을 신으로 높이는 우상 숭배로 이어집니다. 우상 숭배에 빠지면 죄를 쉽게 분별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교회를 열심히 다니더라도 우상 숭배에 빠지면, 선포되는 말씀 앞에 바르게 반응할 수 없습니다. 자연히 마음이 강퍅해집니다. 그런 사람이 말씀을 받아들이는 기준은 '선과 악을 선명하게 분별해서 하나님을 온전히 따르게 하느냐'가 아니라, '나에게 감동을 주는가'입니다. 여기서의 감동이란,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을 의미 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존귀와 위엄과 능력과 아름다움의 실체를 깨닫고 경험함으로써 받는 감동이 아닙니다. 자기 연민에 빠진 자가 듣고 싶어 하는 위로의 말에서 받는 감동입니다. ‘나'라는 우상이 무너지기 전에는 결코 영적 성장을 할 수 없습니다. 반복해서 죄짓고, 자신이 죄 가운데 있다는 사실조차 파악하지 못합니다. 그 상태에서는 참된 회개도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우상을 내려놓지 않는다면 아무리 오랜 세월 교회를 다닌다 해도 신앙의 진보를 경험할 수 없습니다.
생명의말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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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절묵상:로마서 1장 20절
성경은 가장 완벽한 하나님의 계시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성경이 없던 세대를 위해 만물에 자신을 계시하셨습니다. 우주 만물을 보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그것을 운행하시는 창조주 하나님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시 19:1~4). 이런 이유로 성경은 ‘하나님이 없다고 말하는 자’를 어리석은 자라고 규정합니다(시 14:1). 창조의 경이로움을 가볍게 여기고 인간이 하나님을 부인하는 것은 무지와 오만의 소치입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에게 그분 자신을 드러내십니다.
심판받을 근본적인 죄는 마음속에 주님이 계시지 않는 것이요, 그분 아닌 다른 것을 추구하는 것이다. - A. W. 토저
생명의 삶 9월 3일 기도
하나님, ‘합리’와 ‘상식’이라는 미명 아래 자신을 믿으라고 종용하는 세상에서 저도 자기중심의 삶을 추구했음을 회개합니다. 진리를 거짓으로 바꾸고, 창조주가 아닌 피조물을 숭배하는 시대에 말씀을 기준 삼고 따르길 원합니다. 오늘 하루도 저를 통해 하나님 홀로 영광 받으소서.
로마서1:18-32절
지난 본문은 하나님의 의에 대해 말씀했는데
오늘 본문은 하나님의 진노에 대해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진노는 18절에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입니다
불의로 진리를 막는 다는 말은 하나님을 알만한 것이 그들 가운데 있음에도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지 않는 것입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진리를 가로막는 것입니다
여기 19절과 20절에 하나님을 알만한 것이 그들 가운데 있다는 말씀은
일반계시 즉 자연, 세상을 말합니다
자연과 세상을 보면 자연과 세상을 만든 디자이너가 있음을 알수가 있습니다
예를들어 미술작품이 있습니다 그러면 그림을 그린 디자이너가 있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자연과 세상의 디자이너이신 하나님이 계신 것입니다 우연히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미술작품이 그냥 있을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이렇게 진리를 알만한 대도 진리를 알지 않고 진리 반대 편에 서는 자에게 하나님은 진노하신다고 말씀합니다
어떻게 보면 하나님의 진리가 아닌 진리의 반대편에 있기에 스스로 진노가 있다는 말이 됩니다
바울은 이것을 내버려두사로 표현합니다
본문은 3번 나옵니다
첫째, 하나님이 내버려 두시면 24절에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 가운데 삽니다
하나님의 진리가 아닌 인간의 욕망을 위해 사는 것을 말합니다
예가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며 사는 것입니다
즉 우상숭배하는 근본이유는 욕망을 해결하기 위해서라는 것을 알수가 있습니다
둘째, 하나님이 내버려두시면 26절에 부끄러운 욕심 가운데 삽니다
구체적으로 여자는 여자와 남자는 남자와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합니다
사실은 남자와 여자와 살도록 창조하셨습니다
그렇게 사는 것이 아름다운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없으니까 부끄러움을 모르고 사는 것입니다
마지막 셋째 하나님이 내버려두시면 28절에 상실한 마음대로 살도록 내버려 두십니다
상실한 마음이란 같은 절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는 마음을 말합니다
하나님을 마음에 두면 진리 가운데 살수 있는데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 싫어하니까 불의 가운데 사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들은 32절에 사형에 해당한다고 말합니다
바울은 지난 시간엔 하나님의 의를이번 시간에 하나님의 진노를
하나님이 진노하시는 이유는 하나님을 버리기 때문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떠나면 인간은 비참한 가운데 살수 밖에 없는지를 말씀합니다
이것을 보면서 하나님을 모시고 사는 것이 하나님의 큰 은혜임을 깨닫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 의지하는 삶을 삶의 현장에
흘려보내며 사는 우리 모두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
복음은 믿는 자에게는 구원의 좋은 소식이지만, 믿지 않는 자에게는 심판의 나쁜 소식입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나타나나니"(롬1:18)
여기서 "불의"는 헬라어로 "ἀσέβεια"(아세베이아)로 문맥상 불경건, 불신앙의 뜻을 가집니다 그런데 심판 받을 불경건과 불신앙에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이 없다는 무신론자들입니다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는도다"(시14:1)
그러나 하나님은 부인할 수 없고, 몰랐다고 핑계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그들 속에 보임이라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롬1:19~20)
둘째는 하나님을 알고도 입으로만 시인하고 마음으로는 부인하는 종교인들입니다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 하며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나 그들의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나니"(사29:13)
이들은 하나님을 알면서도 진심으로 감사하거나 영광을 돌리지 않고, 그 생각이 세상을 사랑하여 허망하여지며, 그 마음이 육신의 정욕을 따라 어두워져서,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정욕과 탐심의 우상으로 바꾼 자들입니다(롬1:21~23)
그러므로 하나님은 불경건의 종교인과 불신앙의 무신론자, 곧 하나님이 없다며 찾지도 않은 자들과 하나님이 계심을 알고도 따르지 않은 자들을 멸절하실 것입니다 "여호와를 배반하고 따르지 아니한 자들과 여호와를 찾지도 아니하며 구하지도 아니한 자들을 멸절하리라"(습1:6)
그러나 세상 끝날에만 아니라, 이러한 자들은 이미 심판을 받았습니다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요3:18~21)
즉, 하나님께서 그들을 유기하사, 그들의 정욕대로 그 더러움에 내버려 두셔서 스스로 지혜로운 척 하지만 실상은 짐승처럼 미련하게 되어서, 자기 삶을 욕되게 하고, 불의를 행하면서도 깨닫지 못하여 자기들만 행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불의를 행하는 모든 자들을 옳다고 하여 악의 블랙홀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롬1:24~32)
그러므로 우리는 입술로만 아니라 참 마음으로, 참 마음으로만 아니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원합니다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히10:22)
그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는 것을 받는 은혜를 누리기 원합니다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서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요일3:22)
오늘의 말씀해설
진노로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1:18~23)
하나님에 대한 진리를 막고 복음을 거부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은 맹렬한 진노로 임하십니다.
하나님은 창조 세계를 통해 아무도 핑계하지 못할 만큼 분명하게 자신의 능력과 신성을
모든 사람에게 알려 주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배반하고 그분의 거룩한 뜻을 무시하며
온갖 불경건함과 불의를 드러내는 사람들을 향해 하나님의 사랑은 진노로 나타납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이심을 여러 가지를 통해 알려 주셨는데도,
하나님을 창조자와 주인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은 죄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진리를 아는 사람은
그 진리대로 살아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성도는 하나님을 창조자와 삶의 주인으로 인정하는 것을 가로막는
모든 생각과 마음,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 마땅한 영광과 감사를 돌려야 합니다.
- 묵상 질문: 하나님의 맹렬한 진노를 일으킨 자들의 죄악은 무엇인가요?
- 적용 질문: 하나님을 창조자와 주인으로 온전히 인정하기 위해
버려야 할 생각과 마음, 행동에는 무엇이 있나요?
죄악의 뿌리, 마음(1:24~25)
하나님은 우리 마음의 변화를 요구하십니다. 바울은 반복적으로 ‘마음’과 관련된 표현을 사용합니다.
실패와 죄악의 뿌리는 ‘마음’에 있습니다. 하나님을 깨닫지 못하고,
마음이 하나님을 향하지 않기 때문에 실패하고 죄를 범하게 되는 것입니다. 마음에 변화가 없는 신앙은
피상적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자신만을 만족시키려는 삶의 태도에서 벗어나
하나님을 더 깊이 알아 가고 성령이 이끄시는 대로 따라갈 때(8:13~14 참조) 신앙을 삶으로 실천하게 됩니다. 그리스도의 마음(빌 2:5)을 품으십시오. 성도는 하나님만을 경배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겸손하고 자비롭고 남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으로 충만해져야 합니다.
- 묵상 질문: 바울이 말하는 우리 삶의 핵심 문제는 무엇인가요?
- 적용 질문: 주님을 믿고 난 후, 내 마음은 어떻게 바뀌어 가고 있나요?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살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오늘의 말씀해설
내버려 두심은 가장 무서운 심판입니다. 이 세상이 타락하고 죄악이 넘치는 것은
하나님이 계시지 않기 때문이 아닙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은 모든 것을 보고 계시지만,
악인들이 그렇게 하도록 내버려 두십니다.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 싫어하는 죄에 빠진 인간은
자기 자신을 망치고 모든 인간관계를 무너뜨립니다. 하나님이 중심이 되지 않은 마음은 부끄러운 욕심과
추악한 욕망으로 채워져 버려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세상 사람들이 뭐라 해도 성도는 하나님을 마음과 삶의 참된 주인으로 꼭 붙들고 살아가야 합니다.
- 묵상 질문: 하나님이 내버려 두신 이 세상은 어떠한 모습인가요?
- 적용 질문: 내 삶을 간섭하시고 내 죄악을 징계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나의 태도는 어떠한가요?
오늘의 기도
정욕에 사로잡힌 채, 피조물을 우상화했던 죄를 용서하소서.
불의한 길로 갈 때 질책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합니다.
허망하고 미련한 생각을 떨쳐 버리고, 찬양받기 합당하신 창조주 하나님만 예배하게 하소서.
바울은 구원의 필요성을 알리기 위해 죄의 내용을 설명하는데 1:18~32는
이방인의 죄입니다.
하나님의 계시
사람들의 불경건과 불의, 즉 불신앙과 불순종에 하나님의 진노가 나타납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하나님의 존재와 뜻을 몰라서 믿지 않고 불순종한 것일까요?
바울은 그들이 하나님을 충분히 안다고 단언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알 수
있는 길이 그들 가운데 드러나 있기 때문입니다. 작품을 통해 작가를 알 수 있듯이,
하나님은 자연 피조물들을 통해 당신의 영원한 능력과 신성을 알 수 있습니다.
알면서도 부인한 불순종
하나님을 알만한 것이 자연 가운데 있어서 그들은 하나님을 알았으면서도
그분을 찬양하거나 감사하지 않았습니다. 반대로 자기들의 생각에 현혹되어
스스로 지혜롭다고 주장했으며 자신이 창조주 자리를 차지함으로 도리어
어리석게 되고 말았습니다. 또한 한걸음 더 나아가 불멸의 하나님의 영광을
사람과 새와 짐승과 파충류의 우상과 맞바꾼 것입니다.
버려두신 인생
하나님은 자기 마음대로 살아가는 인간들을 그들 마음의 정욕에 넘겨주셨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더러워지고 그들의 몸은 수치스러워졌습니다. 바울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 대신 자신들의 욕심을 선택하고 하나님이 버려두심에 따른 첫 번째
재앙의 결과는 성적 타락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들은 진리를 거짓과 맞바꾸고
창조주 대신 피조물을 섬겼는데 사람들이 만든 우상을 숭배하는 데 빠지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하지 않고 감사하지도 않고 오히려 생각이 허망해졌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내버려두신다면 심각한 상태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 안에 있으면 실패도 성공이지만 하나님을 떠나서는 성공도 실패가 됩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섬기고 썩어질 것보다 영원한 것에 더 관심을 갖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악인들을 자기들의 마음대로 하도록 버려두셨음을 설명합니다.
부끄러운 욕심
하나님을 떠난 인간들이 말씀에 불순종하고 자기 고집대로 행하자 하나님은
내버려두시는 심판을 하십니다. 먼저는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버려두셨는데
두 번째는 부끄러운 욕심에 내버려두셨습니다. 그결과 가장 먼저 일어나는 것이
성적 타락으로 남자나 여자가 순리대로 사는 것을 버리고 역리적 성관계인
동성애에 빠져 부끄러운 일을 행하였으며 에이즈 같은 질병으로 타락에 상당한
보응을 받게 되었습니다.
상실한 마음
하나님이 악인들을 내버려두신 심판의 세번째 방법은 상실한 마음이었습니다.
상실한 마음의 원래 의미는 부적절한 생각이나 판단으로, 그들은 하나님을 인정하고
따를지, 아니면 자기들이 하나님 자리에 앉아 자신의 욕심을 추구할지 검토하다
후자를 선택하는 잘못된 판단을 했는데 사람들이 그렇게 하도록 하나님이 내버려
두셨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그들은 합당하지 못한 일들 속에 더 깊이 빠져들었습니다.
버려진 사람들의 특징
하나님이 내버려두신 사람들은 자기들의 욕심과 생각에 따라 살기 때문에 하나님과
사람들 보기에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됩니다. 본문에는 불의, 추악, 탐욕, 시기, 살인,
분쟁, 교만, 무정, 무자비, 하나님을 미워하는 자 등 21가지 악의 목록을 열거하는데
사형에 해당한다고 하나님이 정하신 것입니다. 이런 것들은 하나님을 떠나 타락한
사람들의 삶에 맺히는 죄의 열매들입니다.
죄라는 한자, 罪를 파자(破字)하면 네(四)가지 잘못된 것(非)이 되는데 하나님과의 관계,
자신과의 관계, 이웃과의 관계, 자연과의 관계가 잘못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관계의 근원인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르게 되어야 다른 관계도 잘 유지될 수 있습니다.
마치 첫 단추를 제대로 끼워야 나머지 단추들도 바르게 끼울 수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타락한 마음대로 내버려두셨다’고 말씀합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강제로 멀리 떠나신 것이 아니라, 인간이 고집스럽게 죄를 택할 때 그 선택에 맡겨두시는 무서운 심판입니다. 그 결과는 불의, 탐욕, 시기, 살인, 분쟁, 교만, 부모 거역 등 모든 죄악의 폭발로 나타납니다. 이는 하나님을 떠난 인간이 맞이할 수밖에 없는 심판의 모습입니다. 더 두려운 것은 이 죄들을 행할 뿐 아니라, 그것을 옳다 여기며 다른 이들에게도 조장하는 모습입니다.
바울이 서신을 보냈던 당시와 같이, 오늘날 교회 안에서도 이러한 모습이 나타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 없는 예배, 진리 대신 인간의 욕심을 따르는 결정들, 겉모습은 신앙 같지만 실상은 세속적 가치관이 지배하는 모습들. 이러한 상황 앞에서 우리는 쉽게 절망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남을 정죄하기보다 먼저 나 자신을 돌아보라고 권면합니다.
이 말씀을 묵상하며, 나 또한 하나님의 자리를 내 욕심으로 채우고 있지 않은지, 나도 모르게 죄를 합리화하며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오직 성령께서 다스리실 때 새 마음과 새 삶이 가능함을 고백합니다. 우리 힘으로 교회를 바꿀 수는 없지만, 성령께서 역사하시면 새롭게 하실 것입니다. 그러함을 소망하며, 애통하는 마음으로 무릎 꿇고 기도하는 자가 되길 원합니다.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
날은 날에게 말하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전하니
언어도 없고 말씀도 없으며 들리는 소리도 없으나
그의 소리가 온 땅에 통하고 그의 말씀이 세상 끝까지 이르도다 하나님이 해를 위하여 하늘에 장막을 베푸셨도다.(시 19:1~4)
감사함으로 그의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의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의 이름을 송축할지어다
여호와는 선하시니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고 그의 성실하심이 대대에 이르리로다.(시 100:4~5)
주께서 내 내장을 지으시며 나의 모태에서 나를 만드셨나이다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심히 기묘하심이라 주께서 하시는 일이 기이함을 내 영혼이 잘 아나이다.(시 139:13~14)
예수께서 한 말 못하게 하는 귀신을 쫓아내시니 귀신이 나가매 말 못하는 사람이 말하는지라 무리들이 놀랍게 여겼으나
그 중에 더러는 말하기를 그가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 하고
또 더러는 예수를 시험하여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구하니
예수께서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이르시되 스스로 분쟁하는 나라마다 황폐하여지며 스스로 분쟁하는 집은 무너지느니라.(눅 11:14~17)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받았느니라.(고전 6:11)
또 우리 형제들이 어린 양의 피와 자기들이 증언하는 말씀으로써 그를 이겼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들의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계 12:11)
하나님, 교회 안에서조차 하나님 없는 모습들이 드러남을 보며 제 마음이 무겁습니다.
그러나 남을 정죄하기 전에 먼저 제 안에 하나님을 모시지 않고 살아가는 부분은 없는지 돌아보게 하옵소서.
스스로 의롭다 여기며 죄를 합리화했던 제 완악함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세상이 ‘합리’와 ‘상식’이라는 이름으로 자기 자신을 의지하라 속일 때, 저도 그 길을 따랐음을 고백합니다.
진리를 거짓으로 바꾸고 창조주보다 피조물을 높이는 시대 속에서 말씀을 기준으로 살아가길 원합니다.
오늘날 우리의 교회를 불쌍히 여겨주시고, 타락의 길로 내버려두지 마시며 성령으로 새롭게 하옵소서.
주님의 임재와 말씀 앞에 겸손히 무릎 꿇는 공동체 되게 하옵소서,
오늘 하루도 제 삶을 통해 하나님 홀로 영광 받으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