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미어리그 첫 우승을 위해 갈 길이 바쁜 토트넘의 발목을 리버풀이 잡고 늘어졌다. 따지고 보면 리버풀 입장에서도 UEFA챔피언스리그 진출권을 노리고 있기에 양보할 수 없는 경기였다. 경기의 중요성이 클수록 수비적인 양상이 자주 나오기도 하지만, 이번 경기는 매우 치열하게 치받는 양상을 보였다. 양 팀 모두 자신들의 장기니 전방 압박을 펼치며 맞붙었다. 하지만 양 팀의 전술이 완벽했다고 보긴 어려웠다. 전방 압박 전술을 펼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기동력을 유지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특히 토트넘의 기동력에 문제가 있었다.
양 팀은 세밀한 부분에선 차이가 있지만 큰 틀에서 비슷한 경기 스타일을 가지고 있다. 전방에서부터 압박을 가해서 상대의 공격 예봉을 꺾는 것이다. 이러한 전방 압박에는 당연히 많은 체력 소모가 따른다. 그래서 프리미어리그를 기본으로 FA컵, 리그컵, 유럽 대항전인 유로파리그까지 많은 경기를 치러야 했던 리버풀과 토트넘 양 팀의 체력 문제는 이번 승부에 있어 매우 중요한 요소였다. 특히 A매치 주간을 지나며 국가대표팀 경기에 참여했던 선수들의 체력 문제 역시 중요했다. A매치 경기 출전으로 인한 체력 소모는 물론, 리그 경기보다 먼 이동 거리를 오가면서 받아야하는 체력 소모도 문제다.
체력이 떨어진다는 의미는 단순히 쉽게 지친다는 의미보다 더 큰 의미를 갖는다. 우선 평소처럼 빠른 움직임을 가져가는 것이 어렵다. 무엇보다 경기 후 제대로 회복되지 않은 몸은 평소와 같은 수준의 볼터치, 트래핑, 드리블 등 기술을 제대로 발휘하는 것을 어렵게 만든다.
A매치 기간 동안 상대적으로 체력 소모가 컸던 해리 케인과 크리스티안 에릭센의 체력 수준이 크게 떨어졌다. 공격 연계를 부드럽게 만들어주는 델레 알리도 최고의 컨디션은 아닌 듯 했다. 공격진에서 공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모습이 잦았고, 트래핑이 길고 드리블 역시 세밀하지 못한 모습 때문에 공격 전반이 무뎠다. 공격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면서 수비와 미드필더에 가해지는 부담이 커졌다. 공격에서 공을 지키지 못해 다시 수세에 몰리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토트넘의 실점 장면은 사실 토트넘의 최근 클래스에 어울리지 않는 무력한 모습에서 나왔다. 너무 쉽게 중앙 미드필더와 수비수 사이의 스터리지에게 투입을 허용했고 결국 쿠티뉴에게 골을 허용했다. 체력이 떨어진 팀에서 집중력을 잃었을 때 종종 나오는 실점 장면이었다.
(△ 이전보다 훨씬 나은 움직임을 보여준 손흥민. 주전 경쟁에서 희망을 보여준 경기였다. 출처:토트넘홋스퍼 홈페이지)
손흥민은 이 와중에 가장 활발한 움직임을 보여주었다. 토트넘 선수들 중 가장 활발한 움직임을 보였는데, 선발 멤버 중 리버풀 수비진의 배후 공간을 제대로 공략한 유일한 선수였다. 국가대표팀 소집에서 제외된 손흥민에게 A매치 기간은 체력을 온존함과 동시에 본인의 움직임을 돌아보고 감독 혹은 코치와 함께 팀에 녹아들 수 있도록 공부하는 시간이었던 것 같다. 이전의 수동적으로 서서 공을 받으려는 움직임 대신 침투의 움직임을 여러 차례 시도한 것이 긍정적이었다. A매치 기간을 통해 움직임의 변화를 가져가면서 토트넘 팀의 움직임에 녹아들어갈 수 있음을 증명한 경기였다. 이 경기로 주전 경쟁에서 우위를 점했다고 할 순 없지만, 앞으로 경기력이 나아질 것이란 믿음을 주는 움직임이었다. 다만 골을 결정짓는 마무리 능력이 아쉬웠다. 골을 만들 수 있는 위치로 들어갔을 때마다 조급한 듯 터치가 좋지 않아서 찬스를 번번히 흘리고 말았다.
전체적으로 부진했던 에릭센-케인 라인에서 동점골이 터지긴 했지만, 이들의 공격의 전체적인 날카로움이 크게 떨어졌다. 득점 이후 에릭센의 움직임이 다소 살아났지만, 손흥민을 대체한 샤들리의 역동성은 분명히 아쉬웠다. 점점 떨어지는 팀의 기동력 때문에 후반전에서도 많은 공격 기회를 만들지 못하게 되었다. 그래서 손흥민의 교체는 분명 아쉬웠다. 에릭센의 찬스 메이킹 능력을 기대하고 있었다면, 에릭센을 놔둔 채로 몸이 역시 무거웠던 델레 알리를 대체하는 방법도 있었다. 손흥민의 공격력 자체에 기대를 한다는 의미보다, 체력적 여유가 있는 선수를 투입함으로써 팀 전체의 기동력을 보충하는 의미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 에릭센과 케인, 알리까지 전체적으로 몸이 무거운 가운데 미드필더에서 팀 전체를 지탱했던 뎀벨레. 드리블이 긴 편이었지만 거의 공을 잃지 않는 볼 키핑 능력을 보여주었다.. 출처:토트넘홋스퍼 홈페이지)
리버풀은 경기 후반까지 괜찮은 기동력을 유지하면서 경기 주도권을 놓치지 않는 데에 성공했다. 하지만 토트넘의 요리스가 신들린 선방을 보였다. 이번 경기에서 팀의 주력 멤버들이 부진한 가운데 토트넘을 지탱한 것은 1실점으로 경기를 막아낸 골키퍼 요리스였다. 세계 최고의 선수라도 모든 경기에서 활약을 펼치는 것은 불가능하다. 천하의 메시도 무득점 경기는 있는 법이다. 그래서 강팀일수록 팀을 떠받치는 기둥이 많은 법이다. 토트넘의 경기력이 단순히 부진했다고만 평하고 싶진 않다. 리버풀이 전방에서 압박을 강하게 잘 펼쳤는데, 체력이 떨어져 부진한 경기력을 보인 가운데서도 승점 1점을 얻어낸 것은 토트넘의 저력을 보여준 것이었다.
하지만 이런 경기력으로 선두 레스터시티를 추격하는 일은 쉽지 않아 보인다. 레스터시티는 토트넘보다 승점 상에서 우위에 서있다. 또한 바디, 드링크워터, 캉테 등 최근의 활약으로 국가대표팀에 차출된 선수들이 있지만, 유럽대항전을 치르지 않은 레스터시티는 토트넘의 훨씬 나은 체력 상태를 유지하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국가대표팀에서 경기력이 나쁘지 않았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A매치는 오히려 자신감을 얻는 기회였을지도 모르겠다.
토트넘이 이미 비겨버린 경기를 되돌릴 순 없다. 하지만 남은 6경기에서 최대한 많은 승점을 따내고 레스터시티가 실수하길 바라는 수밖에 없다. 경기력의 부진에도 불구하고 승점 1점을 따낸 토트넘을 칭찬해야겠지만, 토트넘이 남은 시즌 동안 만나야 할 상대엔 맨체스터유나이티드, 스토크시티, 첼시, 사우샘프턴 등 만만치 않은 상대들이 있다. 체력 회복 즉 기동력을 되찾는 것은 전방 압박을 주요한 전술로 삼는 토트넘의 우승 도전에 있어 매우 중요한 요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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