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보면 옛 산골 소년들의 여름은 더없이 아름다웠고 바빴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책가방은 마루에 내팽개치고 소를 끌고 나가 풀을 뜯겨야 했는데,
맑은 개천 양쪽의 뚝방은 풀이 잘 자랐고 하늘엔 언제나처럼 뭉게구름이 흘러갔다.
저녁 때 소를 끌고 집에 갈 때면 소의 배가 불룩해져야 어른들께 꾸중을 듣지 않는데
소년들에게 물고기가 지천인 냇가에서 뛰놀고 싶은 유혹은 참기 어려웠다.
땡볕에 소를 끌고 나와 풀을 뜯기던 어느날, 머리 좋고 장난꾼인 내 육촌동생 찬우가
무료했는지 뚝방에 있는 땅벌집을 발견하고는 작대기로 쑤셔버렸다.
이후 상황은 설명할 필요도 없다. 땅굴에서 땅벌이 까맣게 날아올라 우리들과 소를
공격했고, 소는 날뛰었으며 우리는 혼비백산 도망가기 바빴다.
산골에서 자란 분들은 알겠지만 땅벌은 크기가 작고 맹독을 갖고 있진 않지만 숫자가
엄청나서 인해전술(봉해전술?) 로 적들을 초토화 시킨다.
도망가던 우리는 결국 깊은 개울물에 뛰어들었는데, 물속에 머리를 박았다가 고개를
드니 아뿔싸 ! 지독한 땅벌들이 물위에서 새카맣게 빙빙 돌고 있었다.
어찌 어찌 상황을 수습하고 집으로 돌아오며 내 몸을 살펴보니 엉덩이와 뒤통수에 벌
몇 방을 쏘였다. 그걸 지켜보던 사촌누나가 깔깔 웃더니 머리와 엉덩이에 된장을 발라
주었다. 그 누님은 이제 팔순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고, 순둥이에 장난꾸러기이던 그
육촌동생은 안타깝게도 몸이 많이 아파서 힘겹게 늙어간다.
지난날을 찬찬히 떠올리다 보니 전인권(들국화)이 부른 '운명' 의 가사가 떠오른다.
........... 세월이 그렇게 했다 나도 모르는새
아무도 몰래 흘린 나의 눈물위로
비내리고 바람불고 다시 햇살 비추고
목말랐던 대지위로 다시 꽃피고 ...........
2024.01.29
앵커리지
첫댓글 티없이 맑고 깨끗했던 시절입니다.
방학이면 가보던 시절의 그 짧은 기억만으로도
이제는 아릿하기까지한 추억을 떠올리게 합니다.^^
모두가 가난했기에 가난한 줄 모르고 마냥 행복했던 시간이었습니다.
늘 감사하며 삽니다 ^^
제가 햇병아리 교사일 적에 풍금을 치며 가르치던 동요 한 곡이 떠오릅니다.
저 어릴 적에도 배웠던 노래인데요, 제목은 고향 땅.
고향 땅이 여기서~~ 얼마나 되나~~ 푸른 하늘 끝 닿은~~ 저기가 거긴가~~
이런 노래인데 혹시 기억을 하시려나요.
이 노래 2절 마지막 소절이
날 저무는 논길로~~ 휘파람 불면서~~ 아이들도 지금쯤~~ 소 몰고 오겠네~~~
이렇게 끝나요.
노래 가사가 참 서정적이면서 좀 쓸쓸한데
저는 고향에서 소 몰아본 적 없어도
저 마지막 소절이 그렇게 마음에 와 닿더라고요.
아마도 도시로 이사와서 고향을 그리는 아이의 심정이었을 그 가사가 애틋하게 공감이 가서
애들 다 집에 간 뒤 빈 교실에서 혼자 풍금치며 불러보기도 하고 그랬어요.
앵커리지님이 소 풀 뜯기다 벌에 쏘인 그 추억을 떠올리시듯
저도 그 교실에서 풍금 치며 노래 부르던 제 모습을 떠올리며
돌아오지 못할 것들에 대한 그리움에 젖어봅니다. ^^
어쩜 같은 노래를 듣고 똑같은 감정을 가졌었네요.
맞아요 그 노래 2절 끝머리에 '아이들도 지금쯤 소몰고 오겠지' 부분이 늘 슬프더라구요. 사실 소를 몰고 집으로 가는 길목은 언제나 아름다웠는데...^^
교실에서 풍금치던 낭만적인 여선생님으로 기억하는 학생들도 많을 겁니다.
이런 댓글 보고 저는 그냥 못 지나갑니다.ㅎ
글을 쓴 사람은 이런 댓글이 달리면 얼마나 기쁠까요.
풍금과 피아노를 구별 못하는 아이였을 때 저도 빈 교실에서 풍금치던 여선생님을 본 적이 있지요.
까치발 딛고서 선생님의 뒷모습을 봤던가?
오래전이지만 생생한, 오후 햇살에 빛났던 병아리색 쉐타가 눈이 부셨더랬습니다.
달항아리님이 풍금치던 선생님이셨단 말에 그만 옛 추억이 번쩍 떠올랐네요.ㅎ
@유현덕 유현덕님, 글 잘 쓰시는 유현덕님ㅎㅎ
반갑고 감사합니다.
유현덕님의 글이 삶방에 올라오기를 늘 기다리는 사람입니다.
댓글 일발 장전하고 기다리고 있다가 현덕님 글 올라오면 바로 만리장성 맹키로 기나길게 쏘겠습니다ㅎㅎ
제가 재가입한지는 얼마 안 되지만 나름 오래 된 회원이라서 유현덕님의 필력을 익히 알거든요.
제가 초짜 교사일 때는 풍금으로 음악 수업을 했기에
애들 앞에서 버벅대지 않으려고 매일 방과 후에 연습을 많이 했어요.
오래된 풍금 페달이 밟을 때마다 삐그덕 거리던 소리,
늦은 오후의 햇살이 비껴 들던 교실에서 내 연주가 내 스스로 좋아 치고 또 치던..
그 시절이 문득 문득 너무도 그립지요.
각종 IT 기기들의 도입으로 초등학교 교실에서 풍금 사라진지 오래 되었어요.
그 시절 그 젊던 그 여선생은 할매가 되어 퇴직했구요. ^^
저 위의 고향 땅 동요, 풍금으로 치고 또 쳤던 터라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도 계이름이 외워지네요.
솔미 도~레 미파솔라솔~
미미솔 도라솔~
라라 솔~미 도레미라솔~
파미도 레레미도~
레~미 파미레 미도라솔~
라라시 도~시라시~
도~도솔미 라라솔~
라시도미레레도~
유현덕님! 삶방 게시글로 자주 뵈어요~~ 감사합니다. ^^
저도 어릴적 소풀뜯긴적 있지요? 여자이기에 소깔베는 아빠 주위에서요....
소가 통통하게 살찌고 자라는모습이 제눈에도 보이더라구요~~
그소 팔아서 중학교 보내주신다더니 돈이 아쉬운 부모님은 어미소 되기전에 팔고
다시 송아지를 사오셨더군요~~
새송아지엔 먼저만큼 정이 안가던기억이 납니다~~
'깔을 벤다' 고 표현하시는 걸로 봐서 푸른강님은 충청도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표준말은 '꼴'인데 우리도 깔이라고 불렀거든요. 잘 벼린 낫을 잡고 툭툭 치면 한 주먹 금방 잡히곤 했던 기억이 납니다.
시골에서 기르던 소나 개와 헤어진(?) 기억은 누구에게나 남아 있을 겁니다 ^^
@앵커리지 저는 푸른강님께서 '꼴'을 잘못쓰신줄 알았어요~ㅎ
@앵커리지 고향이 충남 아산인데 깔벤다고 기억하네요~~
은근히 지식풍부하면서 서정적인 글 잘쓰시는
앵커님 오늘글을 읽고있노라니 한폭의 아름다운 풍경화가 그려집니다
제 거제도 친구들이 이야기하는거와 비슷합니다 아침엔 토끼풀뜯어놓고 학교가고 갔다와선 소몰고 산에 가고 나무도 하러다녔다고 해요
객지에 나갔던 그친구들 하나둘씩 고향으로 돌아와서 염소 닭도 키우고 매일매일 같이 산다는 이야기 저는 참 부럽게 듣습니다
공부할 시간이 상대적으로 부족함에도 명문 마산고 마산상고 국립전문학교로 진학한 애들은 거의 천재취급을 받더군요
그렇게 살아서 다들 몸도 건강해요 앵커님처럼^^
옛 시골은 모두가 가난했고 바쁘게 살았기에 그게 고생인지도 사실 잘 모르고 살았어요.
아이들에겐 작은 지게를 만들어 주어서 풀도 베어오고 작은 나뭇가지도 주워왔지만 모두 행복하게만 기억되는 건, 모두가 비슷한 환경이었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고향으로 돌아가 사는 친구들도 있지만 이제는 고향도 옛날의 모습이 아니기에 그냥 그리면서 사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옛 시골에서는 공부를 따로 한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어요 ^^;;;
어린시절 울 오빠야 이야기 같아서
코끝이 시큰 ᆢ
울 오빠 벌집 건드려서
얼굴에 벌침쏘여
퉁퉁부어올라 눈이 안보여 ᆢ할매가 된장 발랐던가 그랬던거 같아요
앵커리지님
지금은 어디사시는지 모르겠지만
산골소년 동화같은 글
넘 좋아요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당
옛 시골 출신이라면 벌 쏘이고 뱀에 물리고 감나무에서 떨어지고 깊은 물에 빠져 허우적거린 추억 하나쯤 있을 겁니다 ^^
저는 계룡산 아래서 자랐구요.
닉을 보고 외쿡에 사는 줄 아는 분들이 있는데, 수도권 언저리에서 삽니다.
@앵커리지 산골에서 출세하셨어요 한양으로 가셨으니 ㅎ
울오빠 지금도 시골 이야기
침이 마르도록 하네요
겨울에
참새도 잡아 구워먹었다고 ㅋ
@둥근해 출세한 거 맞습니다. 맞고요...
사람 많은 곳으로 왔으니 출세 맞습니다 ㅋ
저도 참새고기, 산토끼 고기 얘기 할 거 많아요^^
저는 깡촌으로 시집갔더니
그이가 꼴베러 다닌이야기부터 많이들었어요
사춘기가 어딨노
학교가따오마 꼴베기도 바뻤다꼬~~
시집가니 마당한켠
소집이 있고
소눈망울이 엄캉 크게 느껴졌어요
벌집을 쑤시쑤시하다니
잊을수 없는 고향의 추억입니다
경상도 시골에 시집간 얘기같은데 우리 충청도 시골 옛 풍경과 똑같네요 ^^ 옛날엔 대개가 그렇게 살았습니다.
서양에서 300년 걸린 현대화를 50년만에 이루느라 많은 것들이 사라졌지요.
순진했던 추억 입니다.
네, 순수했던 옛 이야기입니다.
엉덩이와 뒷통수를 벌에 쏘였으니 얼마나 아프셨을까요
제형은 부모님 산소 함께 벌초갔다 엄청쏘인적이 있습니다
전인권 운명 처음들어보는데 가사가 참좋네요
운명 올려드립니다
https://youtu.be/lMMbz0m43ZE?si=Fpeotw8BH8gHtMRu
PLAY
땅벌은 작고 독이 약하지만 어린 나이에 많이 아팠지요. 작년엔 북한산 국녕사 근처에서 말벌에게 다리를 쏘였는데 며칠 고생했어요.
들국화의 운명 노래 참 좋습니다. '사랑한 후에' 와 함께 제가 아주 좋아하는 곡입니다.
@앵커리지 저는 사랑한 후에를 듣고 있노라면 진짜 매번 가슴이 찢어져요.ㅠㅠ
노래도 노래지만 또 그 드라마틱하고 처연한 전주와 간주라니..
그 심란한 전인권씨의 헤어스타일과 비주얼도 이 노래 들을 때만큼은 용서가 됩니다ㅋㅋ
@달항아리 크~~ 여기서 또 느끼는 동질감 ^^
전인권이 뛰이난 뮤지션이지만 퇴폐적으로 보여서 별로인데, '사랑한 후에' 와 '걱정말아요 그대' 를 부를 때면 다 용서가 돼요 ㅎㅎ
경험이 중요합니다
시골서 땡벌 한테
주사 맞은 사람은 그 아픔이 얼마나
힘든지 앱니다...ㅎㅎㅎ
그래도 어릴때는 그렇게도 재밋었습니다
나는 말벌한테 정수리를 한방 주사 맞았는데
기절했습니다
맞고 나니 눈이 안 보일정도로 탱탱하게
부었던 경험....아이고.아파라
말벌은 아픔을 넘어 위험해지지요. 땅벌은 상대적으로 작고 독이좀 약합니다.
작년에 북한산에서 말벌에게 종아리를 쏘였는데 며칠 고생했어요 ^^;;;
옛 추억을 소환하게 만드는 맛있는 글입니다.
담백하면서도 울림이 있어 잠시 빠져들어 읽었습니다.
저도 비슷한 추억을 간직한 터라 마치 제 일기장 보는 듯하네요.
나는 겁쟁이라서 지금도 벌과 뱀을 제일 무서워합니다.ㅎ
비슷한 추억을 갖고 있다면 시골 출신이신가 봅니다. 베이비부머 대부분이 농촌과 산골, 어촌에서 자랐고 비슷한 추억들을 가지고 있을 겁니다.
저는 옛날 어릴 적 경험으로 인해 지금도 뱀이나 벌이 무섭지 않습니다 ^^
벌을 잡아 일부러 침을 맞던데 한때 유행했지요 요즘엔 맨발로 걷기가 다시 유행합니다
제가 그래서 맨발로 걸으면 건강에 좋다고? 우리 어릴적 신발이 없어서 거의 맨발로 다녔고 농촌 오지 마을 가면 여자고 남자고 맨발에다 속곳도 못 입고 여자는 검은 통치마 하나로 여름나고 사내는 베잠뱅이 핫바지 덜렁이며 가을까지 견디더라 사철 발 벗은 내 아내를 노래한 곡도 있듯이 사철 맨발이고 묶고 조이던 속옷없이 살았어도 평균 수명 50~에서 60이고작 뭐 못 먹고 힘만 썼으니 그렇긴 하지만 서두 요즘 너무 건강 염려증에 눈쌀 찌푸려 지는 건 나만 그런지
구구절절 맞는 말입니다.
저는 지금 우리가 누리는 풍요로움이 아직도 어색합니다. 그리고 풍요가 지나쳐서 좋은 일자리 아니면 놀아버리고 세상 편하게 살려는 흐름이 걱정됩니다.
우리가 꼰대라 그런지 과다한 건강 염려증도 못마땅하구요.
땅벌도 없는데 세월에 쏘인 듯
오른 손 손가락 하나가 고장 나서
손가락 들고 하자니
옆에 사람 보기도 그렇고 ㅎㅎ
며칠이라도
좀 셔야겠어요
글 읽고 공감 백반라서
글 따라감서 웃었네요
세월에 쏘이셨구랴.
그건 된장을 바르면 안 되고, 남이 해주는 밥묵고 푹 쉬어야 합니다 ^^
@앵커리지
캬하하
왼쪽은 어디다 쓸랑가 하면
쫒아내야하는데
참 큰일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