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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94] [연재] 삼류무사-46 첨부파일 :
아무리 정당화하려 해도 불가능한 것이 있다.
불로소득!
월봉을 받으면서 기쁘긴커녕 주위 사람들이 보내는 따가운 눈초리에 온몸에
침이라도 논 기분이었으나 얼굴만은 태연한 장추삼이었다.
"기록이야. 밥만 축낸 것 외엔 아무 것도 하지 않았으면서 은자 열냥을
미안한 기색도 없이 꿀꺽 하는건 저 사람 아니고는 절대로 하지 못 할
일일거야."
요따위 싹아지 없는 말은 단사민이 했고,
"얼마나 좋니? 장공자가 온 이후로 유실된 물건 하나 없다는 건 그가
행운의 사나이라는 증거일테니 앞으로 우리 실회조는 각자의 일만 하다가
주는 돈만 받으면 될 거 같아."
라고 노처녀가 말하자,
"이러다 십삼조 패쇄령 나오는 거 아냐? 그나저나 다음달도 요모양이면
피같은 은자 두 냥이 눈 먼 친구에게 가게 생겼으니... 쩝쩝. "
이라는 쫌생이같은 발언을 털난 능구렁이가 했다.
'젠장, 누구는 일하기 싫어서 안했나? 일이 없는걸 나보고 어쩌라는거야?'
멋적기도 하고 열받기도 해서 총관실에서 나가려는데 하운과 시시덕거리고
있는 지청완이 눈에 띄었다.
가입한지 열흘이 안됐기 때문에 돈을 탄게 없으니 출장수당까지 받은
하운을 꼬셔서 술 한 잔 얻어먹을 심산일 게 뻔했다.
이럴때는 그의 눈에 안걸리는게 상책이라 생각하고 살살 고양이처럼 걸음을
옮기는데 매정한 부름이 있었으니.
"장형! 이리 좀 와 보시오. 지 노선배께서 정말 재미있는 말씀을 하시는
중이오."
'크윽!'
고개가 푹 떨궈졌다.
'난 안돼! 저 거머리 노인의 손에서 난 영원히 벗어날 수 없을거야.'
사흘은 앓아누웠다 일어난 사람처럼 비실비실 장추삼이 그들에게 다가갔다.
지청완의 큰 몸집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는데 이제보니 북궁단야도 함께
있었다.
'묘하네, 이 삼인조? 언제 봤다고 이렇게 붙어다니는거야?'
"어서 앉으시오. 말씀이 아주 재미나다오."
'그게 다 형씨 호주머니 긁어내려는 수작이라네.'
지청완은 열심히 얘기를 주어삼키고 있었는데 들으나마나 무림 얘기일
것이다. 묘한건 하운 이었는데 평소와는 기분이 아주 좋아보였고, 그래서
엄한 장추삼도 끌어들인 것 같았다.
장추삼은 다시한번 지청완을 인정해야만 했다.
'자신이 노린 사람은 반드시 함락시키는 저 이빨! 가공하다! 경이롭다!
경천동지의 위력이란 바로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이구나!'
"정말로 화산의 무공은 파훼당하지 않았다는 겁니까?"
"글쎄 그렇다니까. 근데 자네는 화산의 일원도 아니면서 너무 좋아하는
경향이 있구먼."
하운과 지청완의 말 중에 북궁단야가 불쑥 끼어들었다.
"노선배의 말씀대로라면 파천이서 중 무서의 존재는 확인된 셈이니 혈서의
존재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말이겠군요."
이들의 말을 종합해보면 파천무서가 분명 존재하기는 하는데 각 파의
비전절예가 모조리 꺾인 것은 사실이나 무림사대검파 중 하나라는 화산의
검식은 파훼가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정확히 말해 파훼당한 걸 보기좋게 만회했다고 보는 게 옳을 것이다.
하운은 자신의 기초를 닦아준 분이 유명한 화산의 속가제자라 그쪽 일이
남같지 않다고 겸연쩍게 웃었는데 얼굴에 나타난 자부심의 빛깔은 장문인
수준의 것이었다.
"그거야 나도 모르지. 혈서가 있는지 없는지... 내가 무슨 신인가?
그런걸알게. 어쨌든 화산삼로란 세 양반이 대단하긴 대단해! 팔파일방에선
찍소리도 못했다고 하는데 딱 열흘만에 단점을 장점으로 보안해낸 걸 보면
말야."
지청완은 의도적으로 화산의 얘기를 집중적으로 부각시켰고 효과는 하운의
얼굴에 바로바로
기록되었다.
'일각도 못 버티겠군.'
이때 아득한 방향이 콧구멍을 희롱하며 나직한 목소리가 세 사람을
일깨웠다.
"유명한 실회조의 사인조께서 여기들 모여 계셨군요?"
쿠구궁!
"그, 그게 무슨 벼락맞을 소리요? 사인조라니요!"
"어마? 정말 몰라서 묻는 거예요? 복룡표국 사람들은 모두 아는데...
항상 붙어다니는 실회조의 신입사인조에 관해 말이에요."
장추삼의 놀람에 당소소가 어이없어 했다.
실회조의 신입사인조, 두 명의 절세미남 고수와 측정불가능의 노인, 그리고
별볼일 없는 삼류 한 명으로 구성됐다는 실회조의 또다른 명물집단.
복룡표국 내의 모든 여성들 - 그들이 표사든 일꾼이든 간에 - 의 시선을
한 몸에 받고 있는 북궁단야와 하운은 한 번의 회수로출장으로 실력을
검증받은 상태였고 느닷없이 나타난 노인 지청완은 지닌바 온화한 기품과
사람보는데 일가견 있다는 집법당주 철무웅도 읽어낼 수 없는 기도를 가진
신비의 인물이었다.
여기에 아귀가 안맞는 조합으로 장추삼이 끼어드니,
평범한 얼굴에 삼류의 무공... 도무지 어울리지 않았으나 이들 네 명은
늘상 뭐그리 할 말이 많은지 붙어다닌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 신입사인조,
줄여서 그냥 사인조라고도 부른다고 한다.
당소소의 긴 설명이 끝나자 모두는 '아, 그래?' 하는 정도의 반응
이었지만 장추삼의 얼굴은 묵은 변을 며칠동안 해소하지 못한 여인네처럼
얼굴이 찌그러졌다.
"좋아! 사인조를 위해 제가 오늘은 한턱 쓰겠습니다."
하운이 호기롭게 말하자 당소소가 예쁘게 웃었다.
"나도 얘기를 옮긴 공로가 있으니 한몫 껴도 되겠죠?"
"암, 걱정말라고!"
대답은 지청완이 했다. 마치 자신이 내는 것처럼.
"나는 싫은..."
장추삼은 빠지려 했다. 이 자리를 낀다고 함은 영락없이 사인조에 편입을
인정하는 것과 같으니까.
"싫소?"
하운이 인상을 구겼다. 그가 실회조로 온 후에 처음 보이는 광경이리라.
그러나 북궁단야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는 항상 오른쪽 얼굴을
덮고 있던 긴머리를 손으로 치우고 지그시 장추삼을 바라보았는데 말
몇마디, 인상한번 쓰는 것보다 훨씬 효과적인 동작이었다.
"가죠, 뭐."
북적대는 청빈로를 걷는 다섯의 실회조원들은 눈에 확 띄는 광경이었다.
따지고 들자면 그들 중 세 명에게 집중되는 시선이지만.
걸음을 옮기는 여인네들은 하운과 북궁단야를 보고 얼어붙은 듯 제자리에서
움직일 줄 몰랐고 물건을 고르다가도 고개를 돌려 환상적인 얼굴을
바라보는데 여념이 없었다.
"호호, 복룡표국 최고 미남들은 청빈로에서도 여전하군요."
그렇게 말하는 당소소도 형편은 마찬가지였다. 열 살 이상의 남자들은
그녀의 화사한 자태와 탄력있게 움직이는 가슴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한편
입가에 마구 샘솟는 침을 삼키는데 주력했다.
주목받지 못하는 지청완과 장추삼은 동지적인 감정이라도 들 법 한데
서로는 태연을 가장하기 위해서 무진 애를 썼다.
민망함과 열받음에...
봉황루에 갈 것이오?
"그럴 예정이오만?"
북궁단야가 대열을 이탈하여 시장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먼저들 가 계시오. 난 살 것이 있어서... 곧 뒤따라 가리다."
"빨리 오시오."
하운은 북궁단야를 보내고 웃음끼 가시지 않은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앗!"
"어?"
"오! 혜란이가 여긴 왠일이냐? 장보러 나왔니?"
그들 앞엔 정혜란이 바구니를 들고 서 있었다.
'크크큭!'
본래 인내력이 강하다고 자부했던 하운이지만 이 순간 만큼은 웃음을 참기
위해 혀를 깨물어야 했다.
폭풍검 정혜란이 펑퍼짐한 치마에 바구니라니!
하운은 저도모르게 나란히 서있던 장추삼의 소매를 쥐어 뜯었다. 혓바닥
가지고는 참을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큭, 푸후훗!'
"오랜만에 하공자를 뵈옵니다."
정혜란은 다소곳이 인사했다. 행동과는 달리 그녀의 눈에서 줄기줄기
뻗어나오는 원독의 기세에 하운은 뜨끔하여 웃음이 쑥 들어갔다.
"그, 그래. 너도 잘 지낸다고 들었다."
두 사형제간은 어떻게든 빨리 이 자리를 모면하고 싶었다. 정혜란은 너무
창피해서 몸둘 바를 몰랐고 하운으로는 들어갔던 웃음보가 치밀어 올라올까
두려웠던 것이다.
"정소저, 오늘은 장 볼 필요없어. 집에서 저녁먹을 사람이 아무도 없거든."
"두분은 그렇다고 치더라도 대인께서는..."
"아버지도 이숙…, 아니지, 표국주님과 한 잔 하신다고 했었어. 그러니
신경쓰지 않아도 돼."
정혜란이 고개를 끄덕이고 급히 몸을 돌렸다.
"알겠습니다. 그럼 저는 이만..."
'그래, 빨리 가라. 빨리가!'
이번엔 하운의 입장에서 매정한 부름이 있었다.
"아, 정소저! 잠깐 기다려!"
정혜란의 발이 우뚝 멈췄다. 걸음을 옮기긴 해야겠는데 주인집 아들 말을
무시하기도 어려운 일이다.
"우리끼리만 외식하는건 마음에 켕기네. 안그래요?"
"듣고보니 그렇군. 혜란아! 이리오너라. 오랜만에 맛있는 음식을 먹어
보자꾸나."
"아니, 전..."
"어허! 그렇게 어른 말을 무시하면 안되지. 안그런가, 당소저?"
당소소는 여전히 예쁘게 웃었다.
"그래요. 부담갖지 말고 우리와 식사해요."
장추삼이 말했다면 어떻게든 거절해 보려 했다. 그렇지만 지청완에겐 왠지
주눅이 드는 그녀였는지라 어기적어기적 몸을 돌려 걸어올 밖에.
"장바구니는 이리 줘."
세심한 장추삼의 배려도 그녀의 마음을 편케하진 못했다.
아까보다 한결 기분이 괜찮아진 장추삼과 원래 기분이 좋았던 지청완과
당소소, 그리고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어깨를 늘어뜨린 정혜란을
뒤에서 보며 하운은 오늘 꼭 술 한잔은 해야겠다고 결심했지만 일행이
착석을 하고 일각도 지나지 않아 가장 신난 사람이 있었으니... [10707] [연재] 삼류무사-47 첨부파일 :
"어머! 언니가 정말로 만화선녀라는 당소소 언니 맞아요? 어머! 어머!"
그녀의 최고 우상은 우내오존 중 이강이라는 만승검존도, 적미천존도 아니
었다.
사문에서 가장 윗배분이자 우내오존중 하나인 치무환검존 백무량도 아니었
다.
가문에서 전승되는 불합리한 계율을 통렬히 비판하고 단신으로 강호행에
나서서 단 한번의 패배도 겪지 않은 불패의 여고수.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보란듯이 큰소리 치며 무림을 종횡하는 당문출신의
여걸, 당소소였다.
"저의 미래를 언제나 누구에게 맞추었는 줄 아세요? 바로 언니라구요. 이건
꿈일거야! 어쩌면 좋아!"
세 명의 남성은 뚱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모두의 생각은 이게 아닌데 였으나 엎어진 물을 도로 퍼 담는건 불가능한
일이다.
황당하긴 당소소도 마찬가지라 무인도 아닌 일개 시비가 자신의 미래라는
둥 언니 어쩌구하는 것에 정신을 차리기 어려웠다.
"으응, 내가 그렇게 유명했었다니 기쁘네."
그녀는 어찌된 일이냐는 시선으로 장추삼을 쳐다보았지만 그의 표정도 자신
과 별로 다를게없었다.
'칠년이란 공백이 이렇게 클 줄이야!'
누구도 모르게 한숨을 삼키고 있는건 하운이었다.
기분이 이쯤 고조된 정혜란을 말릴 사람은 아무도 없다.
술병이 나오자 냉큼 낚아채서 지청완에게 한 잔 올리고는 당소소에게 따르
고 나서 자신의 잔에도 죽 붓는 폼이 제 위치를 망각한 게 틀림없었다.
"향이 좋네요! 건배해요, 우리."
'이녀석아, 넌 지금 시비라구, 알아? 화산의 폭풍검 정혜란이 아니란 말이
다.'
전음을 보내기도 어려운 것이 그의 옆에는 지청완이 깨작깨작 젓가락을 놀
리고 있었다.
말려봤자 듣지도 않겠지만 주인격인 장추삼도 그녀를 제지할 어떠한 움직임
도 보이질 않았다.
떨떠름한 표정이 숨김없이 얼굴에 드러나 있었으나 그렇다고 크게 노여운
기색까지는없는 걸로 보아 기분이 상한 것 같지는 않았고 어이가 없는 듯
했다.
여기서 하운이 나서는 것도 모양새가 우습기 때문에 관망하는 게 최선이란
걸 알고는 있지만 불안한 마음은 주체하기 어렵다.
'운명에 맡길 수 밖에...'
하운은 그저 정혜란이 큰 실수만 하지 않기를 빌고 또 빌었다.
* * *
휘이이잉.
해가 서산 너머로 사라질 무렵의 노을은 어디서 보아도 장관이겠으나 그곳
이 깊은 산의 봉우리라면 더욱 깊은 맛을 음미하게 된다.
칼날같은 찬바람은 감수해야 하지만.
오대산의 이름모를 봉우리.
온몸을 청색으로 감싸고 복면까지 청색인 인물하나가 뒷짐을 지고 오연히
발밑을 굽어보고 있었다.
강맹한 신바람이 그의 몸을 난타하고 있었지만 청의인에게 그 정도의
압력은 살랑거리는 미풍과도 같은듯 복면을 하지 않은 미간과 눈빛에서
어떠한 변화도 읽혀지지 않았다.
그것은 청의인의 뒤에 육인 이열로 도열해 있는 열두 명의 인물도
마찬가지인듯 했다.
묘하게 도 그들 역시 청의 일색으로 이들을 멀리서 본다면 쪽 열세개가
험한 산중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것 같으리라.
해가 떨어지고 어스름히 적막한 고요가 대지를 뒤덮었다.
평지보다 일찍 찾아온 산의 밤은 귀기로운 색채만큼이나 춥고도 을씨년스런
것이었다.
그런데 십삼인의 청의인들은 밤과 어둠을 무척이나 사랑하는 듯 같은
자리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고 말없이 봉우리 밑의 계곡만을
주시하고 있었는데 세 시진이 넘는 긴 시간이었음에도 단 한마디의 말을
주고 받지 않았다 함은 이들이 얼마만큼 지독한 정력을 가지고 있다라는
반증이 될 것이다.
산수구경을 나왔다면 한군데에서 이렇게 오랫동안 같은 곳만 보고 있지는
않을 터, 이들은 대체 무엇때문에 이렇게 서 있는걸까?
휘이잉-휘잉.
밤바람은 서서히 숨겨두었던 발톱을 꺼내어 이들의 얼굴을 잔인하게 할퀴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 선두의 청미인에게 변화가 보였다.
그의 눈썹이 역팔자로 비스듬히서며 침침하게 가라앉았던 눈에서 횃불과도
같은 안광이 폭사되었다.
변화는 물결이 퍼져나가듯 뒤쪽의 얼굴에게로 전달되었다.
따각따각.
어디선가 들려오는 말발굽 소리.
아련한 여운처럼 멀리서 시작되었던 메아리같은 소리는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가까이 들리며 그 실체를 찾아갔다.
한 두필의 말 가지고는 이런 정도의 소음을 내지 못한다.
간간히 사람소리가 섞여들리는 걸로 보아 일단의 행렬일 것이다.
선두의 청의인, 청뢰가 열 두명의 수하들을 돌아보았다.
그들의 눈에서 줄기줄기 뻗어나오는 안광으로 오대산의 이름모를 봉우리는
귀차정(밤에 등불이 돌연 푸른 빛으로 변하거나 아래쪽은 거지고 위쪽만
타오르는 현상)이 만발한 유령의 화원과도 같았다.
복룡표국의 열 명밖에 없는 표두들 중에서 가장 연륜이 깊은 군자소는 올해
로 표행길만 이십사년째의 노련한 표사였다.
일반표사로 출발하여 표사들의 조장격에 해당하는 표건을 칠년만에 썼고,
평소 친분있던 무당의 고수 한명에게서 육합검의 계략적 요체를 얻어듣는
행운을 얻은 후에 침식을 잊고 그것 하나만 파고들었더니 십일년 만에
복룡표국 일반 표사들중에서 그의 검을 받아낼 사람이 없었다.
십이년째엔 꿈에도 그리던 표두가 되었고 자신의 청춘과 땀이 베인
복룡표국에서 표두로 또 십이년을 지내고 나니 머리는 어느새 반백이 되
었고 얼굴엔 하나, 둘 주름살이 생겨났다.
삼년전, 큰 딸의 결혼식은 표국주 이효를 비롯하여 아홉의 표두들과 마흔명
이 넘는 표사들이 직접 와서 축하해 주었었다.
군자소는 이때야말로 젊음을 모두 보상받는 것 같아 이효의 손을 잡고
마음껏 울었었다.
세월은 유수라던가?
보름 후면 둘째 딸애가 시집을 간다.
사위복은 있는지 첫째가 공동의 속가제자로 귀주에서 작지 않은 차잎을
재배하는 농가로 시집을 갔고 이번의 사윗감은 급제를 노린다는 유림의
거인(진사정도의 지위)이다.
그렇다고 마냥 즐거운 상상에 자신의 일을 소홀히 할 군자소가 아니었다.
이번 표행은 특별한 위험이 없었지만 표사들에게 산이란건 경계와 두려움의
대상이라 오대산만 넘으면 따위의 느슨한 생각을 하는 표사들과
쟁자수에게 지속적인 주의를 당부했다.
표행의 끝은 수취인의 손에 물건을 건네는 그 순간까지다!
잠시라도 긴장을 풀지마라!
예고된 위험은 더이상 위협적이지 않은 법, 미지의 위험을 늘상경계하라!
오십을 넘긴 나이지만 힘이 실린 음성에 여덟명의 표사와 열 명의 쟁자수들
은 풀어지는 마음을 다잡으며 걸음을 재촉했다.
호랑이나 늑대 따위의 산짐승들은 일장으로 뼈와 살을 분리할만큼 용맹한
표사들과 하찮고 별볼일 없는 일이지만 최선을 다해 자신의 직분에 충실하
는 쟁자수들.
'군자소야, 군자소야! 너는 복도 많구나!'
절로 흥이 난 군자소가 시조라도 한곡조 뽑으려고 눈을 지그시 감을 무렵
눈앞에 청색의 빛이 보였다.
자연적으로 생겨난 빛갈 중에 청색으로 이루어진 것은 기사에 가까운 일.
그것도 한 밤의 산중이라면!
"대오 정지! 표사들은 사주를 경계하라! 쟁자수들은 표물 곁에서 한치도 벗
어나지마라!"
기병술보다 육신으로 벌이는 싸움에 능하기에 군자소도 말에서 내렸다.
처처척!
과연 호북제일표국이라는 복룡표국의 표사들답게 순식간에 전투대열로 사방
을 노리는 여덟
의 표사들은 공수의 요지를 선점했다.
"누구냐? 사람이면 썩 나설 것이다!"
왼쪽 허리춤에 걸려있던 장검을 빼어들며 군자소가 공력을 실어 일갈했다.
일갑자까진 미치지 못하더라도 족히 사십년 이상은 수련해야 얻을 내력으로
그의 마지막 말은 메아리가 되어 여기저기서 서로 부르고 화답했다.
스으윽.
멀리서 보이던 청색의 점은 점점 확대되었다.
슥.
그들은 청색옷을 입은 일곱명의 사람이었다.
거리를 축약하듯 소리도 없이 다가온 신법으로 볼 때 예삿 고수들이 아닌듯
했다.
"만만한 자들이 아니다! 이들이 악의를 품는다면 길보다 흉이 많겠구나!"
무엇보다 얼굴을 가린 파란색의 복면이 눈에 거슬린다.
"허험, 본인은 호북 양양성의 복룡표국에서 물건을 수송 중인 제삼표두 군
자소라 하오. 여러분들께서는 우리에게 무슨 용무라도 있으시오?"
군자소는 양양성의 복룡표국을 유달리 힘주어 발음했다.
일반 도적 무리들은 양양성의 복룡표국이란 말이 나오면 괜히 신소리 몇
번하고 물러난다.
[10710] [연재] 삼류무사-48 첨부파일 :
"양양성의 복룡표국이라 했소? "
선두에 뇌전문양이 그려진 두건을 쓴 청의인이 물었다. 똑같은 청의인데 이
자의 두건에만 수가 놓여있는 걸로 보아 우두머리임에 틀림없었다.
"분명하오."
군자소가 반백의 머리를 휘날리며 짧게 대답했다.
이들도 복룡표국에 관한 얘기를 들었음에 틀림없다.
"안됐군."
뇌전의 청의인, 청뢰가 짧게 화답했다.
그리고 그의 손이 올라갔다.
신속히, 고통없이!
파파팟!
육인은 튕겨지듯 전면으로 쏘아져 나갔다.
"이게 무슨 짓이냐? 네놈들은 복룡표국을 졸로 아느냐?"
여기저기서 비명소리와 말울음 소리가 난무했다.
슬프게도 표사들은 청의인의 상대가 못 되었다.
한 합 이상을 버티지 못하고 가슴에서 피를 뿌리며 쓰러지는건 모두
복룡표국 사람들이었다.
"이놈들!"
호랑이가 포효하듯 소리지르며 군자소가 살육의 현장으로 달려가려 하였으
나 그것 조차 불가능했다.
유령처럼 그의 앞을 막아선 자가 있었으니.
"청뢰라 하오."
"이름따윈 중요하지 않다! 썩 비켜라!"
튕겨져 나가려는 군자소를 청뢰가 오른손을 들어 제지했다.
"수장은 수장이 상대하는게 예의인 법, 나를 밟아야 할 것이오."
"이익!"
소란은 거의 그쳐가고 있었다.
"좋다, 날 원망마라!"
군자소가 고리를 지르며 육합검법 중 가장 위력적인 육두통양을 전력으로
펼쳤다.
시정잡배가 약 팔 때 볼거리로 제공한다는 육합검법이 군자소의 손을 빌려
펼쳐지자 그 위력은 어떠한 명가의 검식보다 훌륭한 것이 되었다.
그러나...
슥-.
한발 옆으로 물러난 청뢰는 일수를 들어 군자소의 칼이 부른 여섯 개의 변
화를 장난처럼 해소시켰다.
"이럴수가!"
그들이 일수를 교환했을 때 장내는 완전히 정리되어 있었다.
스르륵.
여섯 명의 청의인은 청뢰 옆으로 시립했다.
"당신만 남았소. 전력을 기울이는게 좋을거요."
청뢰의 말은 분명히 조롱하는 투가 아니었지만 수하를 모두 잃은 군자소에
게는 어떤 희롱보다도 자존심 상하는 것이었고 그의 두 눈은 충혈되어
금새라도 혈관이 터져 버릴 것 같았다.
"네 놈만은 저승길에 데려가겠다!"
너무도 쉽게 그의 절초를 와해시킨 뇌전문야의 청의인이 자신보다 뛰어난
무공을 가지고 있음을 알고는 있었지만 무릎 꿇고 버러지처럼 한 목숨
비굴하게 구걸할 군자소가 아니었다.
짧게는 오개월, 길게는 팔년 가까이 동거동락하던 수하들도 모두 저승길
의 고혼이 되었다.
"차아압!"
달려 나가며 군자소는 육모관홍이라는 절초를 펼치면서 전 공력을 검끝에
실었다.
기본적으로 어떠한 무공을 펼칠 때도 내공을 상체와 하체에 분산시키는 것
이 대전을 임하는 무인들의 기본이다.
하체, 즉 발에 삼할의 무공을 남겨두는 것은 수비와 변화를 위한 보험과
도 같은 이유에서이다.
만약 검을 쓰는 무인이 지닌 바 공력을 전부 다 상체에 싣는다는 것은
오직 한 가지 경우뿐, 동귀어진의 수법일 때다.
슈가앙!
수비도, 그 뒤의 변화도 배재한 공세는 사십년 공력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무시무시한 위력으로 청뢰의 사방에서 짓쳐들었다.
'검기?'
인간은 한계상황에서 본신의 힘을 초월한다고 했다.
놀랍게도 군자소의 육모관홍의 초식엔 검기의 기세가 담겨있었다.
사십년 공력가지고는 꿈도 꿀 수 없다는 검기가!
피하는 것만으로는 당해낼 성질의 검공이 아니었다.
"흡!"
청뢰는 불근 쥔 두 주먹에서 검지와 중지만을 쭉 편 후 양손을 기이한 각도
로 움직였다.
그의 눈앞에까지 이르렀던 육모관홍의 기세는 검지와 중지에 맺혀있는
사이한 기운과 맹렬히 충돌했다.
쾅!
입가에서 피를 토하며 군자소가 허공을 한바퀴 돌았으나 청뢰는 제자리에서
꿈쩍도 하지 않았다.
"차앗!"
다시한번 군자소가 청뢰에게 쇄도했다.
막무가내처럼 한 점만을 바라보고 달려드는 무모한 공세는 눈에 띄게 힘을
잃었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는다면 군자소는 입에칼을 물고 자결했을
것이다.
스르륵.
유령같은 보법이 펼쳐지며 청뢰는 군자소의 공격권에서 종이 한 장 차이로
비껴났다.
군자소가 그것을 알아챘을 때 청뢰의 오른손은 그의 팔을 제압하고 검을 바
닥으로 떨구어냈다.
승부는 끝났다 비통하고 비통하지만 군자소의 능력으로는 흉수의 옷깃하나
베어낼 수 없었다.
그러나...
무표정한 눈빛으로 자신의 완맥을 제압하고 있는 청뢰를 바라보며 군자소가
발악처럼 킬킬 거렸다.
"좋다. 나만 죽이면 표물은 너희들 차지다. 흐흐, 그러나 너무 좋아하지
는 말아라. 며칠 후부터 네놈들은 살아도 산 것 같지 않고 죽어도 편히
죽지 못하리라. 네놈들이 어디에 숨건, 무엇을 하건 그들은 찾아낼 것이다.
그들은 우리의 핏값을 충분히 돌려 받아줄 것이다. 그들은 너희놈들을
방문할 것이다. 크흐흐..."
푹.
"잘 가시오."
사혈이 짚힌 군자소가 썩은 나무토막처럼 털썩 나동그라졌다.
간간히 불던바람도 순식간에 벌어진 참극을 애도하는듯 숨을 죽여 오대산의
이름모를 계곡은 열세개의 쪽빛 물체만 무성한 귀기로운 정적에 파묻혀
있었다.
세 명의 청의인이 마차에 실려있던 표물을 어깨에 짊어졌다.
"됐습니다."
"음!"
스르륵.
그들은 나타날 때처럼 귀신같이 사라졌다.
열세명의 인물마저 사라진 계곡은 그야말로 공동묘지와 같았다.
사람의 목숨이란 정말 가치있는 것일까?
방금 전까지만 해도 살아 숨쉬며 웃고 떠들던 열 일곱개의 생명이 일다경도
채 되기전에 혼과 백이 빠져나간 시체가 되어버린 것이다.
어떠한 경우라도 사람에게 혐오스러운 것이다.
그것이 비록 사람이었고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지만 한 번 죽은 것은
절대로 되살아날 수 없다.
꿈틀.
쓰러져 있던 군자소의 손가락이 움직였다.
달빛에 의한 착각은 절대로 아니었으니 죽은 자가 되살아 났다는 말인가?
그의 고개가 힘겹게 치켜들어졌다.
"크으으, 너희들은 이 군자소를 너무 얕보았다. 호북제일복룡표국의 제삼
표두 군자소는 그렇게 만만하지 않단 말이다!"
땅바닥을 힘겹게 기며 군자소가 으르렁 거렸다.
이빨도 발톱도 다 빠진 신세였지만 그의 자부심만은 아직 죽지 않았다.
달빛이 인도하는대로 그는 느릿느릿 바닥을 기었다.
마차까지의 거리는 겨우 두 장 거리였지만 군자소와 마차와의 간격은
좀체로 좁혀지지 않았다.
바닥에 쓸린 의복들이 갈갈이 찢겨져 나가고 맨살에 자갈 따위가 부딛쳐 쓰
리고 아파왔지만 그는 기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피곤했다.
팔꿈치와 허벅지 안쪽은 갈라 터졌고 손톱 끝엔 핏물이 줄줄 흘렀으나
무엇보다 피곤했다.
'군자소야, 넌 최선을 다했다. 너의 몫은 이것으로 충분했으니 이젠 쉬어도
된다. 눈을 감고 팔과 다리에 힘을 풀거라. 영원한 휴식이 너를 기다리고
있다. 쉬어라. 쉬어도 된다...'
"아ㆍ 니ㆍ 야ㆍ 난, 나에겐, 할일이ㆍ있ㆍ다."
마음 속에서 들려오는 유혹을 뿌리치기 위해 군자소가 허공에 대고 힘없이
외쳤다.
한순간 열 여섯의 얼굴이 그를 내려본다는 생각이 들었다.
먼저 간 수하들의 얼굴이...
남정호는 팔년째 그와 손발을 맞춘 유능한 표사였다.
그의 아들도 올 해 복룡표국의 표사가 되었다.
"남 표사, 힘을 주게..."
오윤태는 커다란 덩치만큼이나 인심이 좋아 거지 아이들을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었다.
"오 표사, 나를 보고 있나...??"
정윤모는 갓 돌이 지난 둘째를 보는 낙으로 산다고 했다.
"정 표사..."
힘들 때마다 한명한명 떠나간 이의 얼굴을 그리며 옛 추억을 더듬었다.
턱!
마침내 목표했던 마차의 바퀴를 잡게 되었다.
전신은 만신창이였고 피와 땀으로 뒤범벅이되어 흉악살신같은 몰골이었지만
군자소의 얼굴은 더할나위 없이 근엄했다.
상체를 겨우 일으킨 군자소가 마차의 오른쪽 모서리를 떼어냈다.
푸드덕.
작은 새장이 하나 숨겨져 있었다.
새장 속의 비둘기를 꺼내 발목에 감겨있는 통에서 양피지를 빼서 핏물로
몇 자 쓰고는 다시 비둘기를 넣어주고 힘이 빠진 군자소는 털썩 그 자리에
드러누웠다.
파라락.
비둘기는 멀리 날아갔다.
이제야 할 일을 다했다는듯 군자소의 표정도 평온해졌다.
'내 몫은 여기까지다!'
열 여섯의 수하들도 같은 생각이었을 것이다.
그들이라면...
그들이라면 자신들의 혈채를 갚아 주리라고 생각하며 생의 마지막 순간에
작은 위안을 삼았으리라.
오직 하나 눈에 걸린다면 보름 후로 닥친 둘째 딸의 결혼식에 참석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아용아, 애비는 자랑스런 복룡표국의 표두답게 떳떳이 죽는단다. 결혼식
참석은 못하게 되었지만 원망하진 않겠지? 만약 부처님의 도움이 있어
보름간 혼백이 이승에 머문다면 꼭 그 자리에 가도록 하마. 내 죽음을 너무
슬퍼하지 마라. 그들이라면 나의 원한을 갚아줄테니... 아용아, 행복하
거라.'
군자소의 몸은 차갑게 식어갔다.
이장에 걸쳐 형성된 기이한 땅의 패임은 곳곳에 여울진 핏자국으로 한
장년인의 의기를 보여주었고 의기의 주인공은 저승길을 가면서 입가에서
미소를 놓지 않았다.
-그들이라면!
[10722] [연재] 삼류무사-49 첨부파일 :
* * *
"어머, 어머! 그래서 어떻게 하셨어요? 그놈을 그냥 놔뒀단 말이에요?
나같으면 그냥..."
"냅두긴! 정동생은 본녀의 성격을 너무 모르는군! 잠깐, 술 한잔 마시고..."
꿀꺽.
독하디 독한 여아홍을 한번에 비우고 당소소가 짤랑짤랑 웃었다.
"본녀가 그딴 인간말종들을 그냥 둬? 오호호, 어림없는 소리. 비록 섬서에서
무서운 것 없다는 환영이괴라지만 그 정도 이름 갖고 감히 본녀를 핍박하려
드는 건 웃기는 일이지. 그래서..."
내 이제 뺨 한대 씩으로 너희의 악업을 징취하리니, 어쩌구 하는 당소소
특유의 무용담에 정혜란은 아주 넋을 놓고 팔짝팔짝 뛰었다. 당소소도 처음에
느꼈던 당혹감에서 완연히 벗어나 신이 나서 이얘기 저얘기를 주워 삼키는데
평소의 그녀보다 많이 고무된 표정이라 장추삼으로는 그녀의 또다른 일면을
엿보는 계기가 되었다.
"당소저께서도 많이 힘드셨나봐요?"
장추삼의 귀엣말에 지청완도 낮은 소리로 대답했다.
"사내놈들만 득실거리는 가운데서 이년을 넘게 지냈으니 적적하기도 했겠지.
많이 외로웠을게야."
하운은 조바심에 가슴이 두근반 세근반 뛰었지만 달리 어떠한 행동도 취할
도리가 없는지라 들고 있는 젓가락을 부숴져라 움켜쥐고만 있었다. 그러다보니
남자들 측은 말없이 술과 요리만 홀짝이는 편이었고 여자들은 장소도, 주위의
사람들도 잊고 그들만의 세계로 빠져들어 있었다.
술주전자는 차곡차곡 비워졌다. 절반은 당소소와 정혜란이 비웠으니 그녀들이
목구멍으로 넘긴 술은 무시못할 양이었다. 거기에 당소소의 강호행담은
정혜란의 웅심을 뒤흔들었다.
'누구는 호호탕탕 사마외도를 작살내며 무림삼화 중 수좌에 이름을 올렸건만
누구는 남의 집에서 식순이 생활에 찌들어가고 있다니! 세상은 이리도
불공평한 것인가!'
얼굴은 웃지만 마음은 슬프다. 목젖을 타고 흐르는 술은 더더욱 쓰다. 이렇게
기분이 더러운 날이면 아무도 없는 공터에서 정신을 잃을 때까지 칼을
휘두르곤 했다.
단 한줌의 힘도 남아있지 않으면 전신을 적시는 땀과함께 마음 속의 갈등도
분출된 것 같아서 목욕 한번 시원하게 하고 정신을 가다듬을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힘이 넘친다. 환영이괴를 눈앞에 갖다놨으면 좋을텐데...
반짝.
애써 성질을 누르고 있는 그녀의 눈에 괜찮은 먹잇감이 포착되었다. 각 지방을
떠도는 장돌뱅이 무리들인 것 같은데 힘께나 쓸 것 같은 장정 다섯이 당소소를
연신 훔쳐보며 음탕한 괴소를 흘리고 있었다.
'쾌다!'
벌떡.
정혜란이 돌연 자리에서 일어날 때까지만 해도 장추삼들은 일보러 가는가보다
싶어서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녀가 한번도 본 적 없는 장정 다섯의 탁자 앞에
이르렀을 때 까지도.
기막힌 몸매의 여인을 안주삼아 술잔을 기울이던 장돌뱅이들은 갑자기 시야를
가로막는 무엇에 놀랐다.
"뭐야?"
그 중 매부리코의 장한이 신경질적으로 투덜거렸다. 그들을 막은건 같은
탁자에 앉아있던 남루한 옷차림의 여인었는데 가까이서 보니까 꽤나 이뻤다.
"오! 소저께서는 우리 장안오걸에게 무슨 용무라도 있으시오?"
이 고정 저 고장을 떠돌아 다니는 장돌뱅이들은 두 가지 부류가 있다. 가진 바
무공이 미천하여 동네 깡패들을 겁내던 이들이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어서 전국
각 처에서 모여 보부상련이라는 단일 연맹체를 만들었으니 그 소속원들이
첫번째 부류고 나라에서 금하는 물건이거나 큰 차익을 남기는 향신료나 보석
따위를 취급하는 무인 출신의 장돌뱅이들이 두번째이다.
두번째의 인물들은 번거롭게 보부상련 따위 조직에 적을 두지 않는다.
지닌 힘이 있기에 들 필요도 없고 사람을 많이 알아봤자 기밀유지상 좋을 것이
하나도 없는 탓이다. 기왕 무인의 명예보다는 돈을 택한 그들이기에 꼭 필요한
싸움이 아니라면 피하는 것이 상례이건만 당소소는 예뻐도 너무 예뻤다.
불타는 듯한 홍의 아래로 감추어진 육감적인 몸매와 흔들릴 때마다 미묘한
곡선을 그리며 출렁이는 가슴이 그들의 눈을 멀게 했고 그윽한 눈매와
선정적으로 빛나는 붉은 입술에 그들의 정신이 다 달아난 상태였다.
그런 판국에 당소소보다 요염하진 않지만 나름대로 매력이 넘치는 늘씬한
미인이 제발로 걸어왔으니 어찌 수작을 걸지 않겠는가.
"자, 자. 앉으시라구. 할 말도 좋지만 목은 축이고 말해야 할 것 아니오?"
정혜란이 빙긋 웃었다.
"앉으라?"
웃음 뒤에는 불이 있었다. 이것도 모르는 장돌뱅이들은 한 건 올렸다 싶었는지
신이 나서 마구 주절거렸다.
"그럼, 그럼. 사양할 것 없소. 소저처럼 아름다운 여인이 앉으신다면 내
일생의 영광이리라. 야! 안주 바꿔. 소저께서 앉으시려는데 먹던 걸 내서야
쓰겠나!"
매부리코는 제법 호기롭게 외쳤다, 정혜란에게는 웃기는 일이었지만.
"안주 바꿀 것 없어."
"아니오! 본인이 오늘 전낭을 터는 한이 있더라도..."
"전낭을 털 것도 없고."
"괜찮..."
그제서야 다섯의 장돌뱅이들은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감을 잡은 것 같았다.
정혜란의 얼음장같은 대꾸가 세 번이나 반복 되고서야 상황을 대충 짐작하는
걸로 보아 이들은 머리가 나쁜게 틀림없었다.
다섯의 얼굴은 약속이나 한 듯 일그러졌다.
"이봐, 소저. 얼굴 좀 이쁘다고 그런 고자세로 나가면 우리도 기분 나쁘지."
"자! 앉으라구!"
황의를 입은 대한이 매부리코의 심정을 대변하듯 정혜란의 손을 움켜잡으려
했다.
"흥!"
그녀는 단지 한번만 손을 뒤집었을 뿐인데도 황의인은 팔꿈치 관절을 내주고
말았다.
주욱.
"크아악."
정혜란은 엄지와 중지로 잡은 관절에 지그시 힘을 주었고 황의인은 돼지멱따는
소리를 내며 비명을 질러댔다.
"놔라, 이년!"
"네 년이 도대체 무슨 이유로 우리에게 행패를 부리는거냐?"
장돌뱅이들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황의인이 방심했다고는 하지만
창졸간에 팔꿈치를 제압한 금나수법은 예사것이 아님을 그들도 알아본 것이다.
비명을 지르는 황의인을 놔준 정혜란이 싸늘하게 웃었다. 마냥 달콤하게만
보이던 미소였는데 이제보니 마귀의 요소가 아닌가.
"네놈들이 감히 더러운 눈빛으로 당언니를 힐끔거렸으니 그 눈을 파내야
기분이 풀리겠지만 오늘은 특별히 따귀 다섯대로 징취를 대신하려 한다. 각자
알아서 시행하도록."
"이거... 미친년 아냐? 그래, 사람 좀 쳐다본 게 무슨 큰 죄가 된다는거냐?"
"억지를 부리는 걸로 보아 애당초에 시비 걸려고 온 것이 틀림없습니다. 이런
계집에겐 말이 필요없다구요!"
맞는 말이다. 정혜란은 괜시리 기분이 나빠져서 시비를 걸고 싶었고 적당한
상대를 발견해서 억지를 부리는 중이었다. 그런 점에서 장돌뱅이들은 대단히
재수없는 날이었다.
'기어코...'
하운은 머리를 감싸쥐었다. 시비붙은 놈들이야 한수레를 가지고 와도 걱정
없었지만 그렇게 되면 정혜란의 무공이 다 드러난다.
어쩐 일인지 좌중의 일행들은 말릴 생각이 전혀 없는듯 묵묵히 벌어지는
사태를 바라만 보고 있었다.
"뭐하시오, 장형! 어서 말려야 할 것 아니오? 이러다 큰 일 나겠소."
"큰 일? 큰 일 날것도 많소이다. 큰 일 안나요."
"당소저, 여자 혼자서 장정 다섯과 시비가 붙었어요. 좋은 말로 타일러야 될
것 같은데..."
"자신이 있으니까 시비를 붙였겠지."
지청완이 대신 답했다.
이들은 혹시 정혜란의 정체를 아는걸까, 의문을 가질 시간은 없었다.
하운이 막 나서려고 하는데 그가 가로막았다.
"남자 다섯이 여자 하나와 시비가 붙은건 이유야 어떻든 간에 보기 안 좋소.
형장들이 넓은 마음으로 이해하시오."
장돌뱅이들은 느닷없이 끼어든 긴머리 청년의 말에 크게 반발하려 했다.
"너는 뭐..야."
번쩍.
청년의 눈에서 대기를 얼려 버릴듯한 냉기가 쏟아졌다.
'고, 고수다!'
떠돌이 장돌뱅이 생활 이십년, 장안오걸이라 스스로 칭한 이들 다섯이 수많은
난관을 헤치고 여태껏 밀무역을 해먹을 수 있었던건 무공이 높아서가 아니다.
상대와 자신들의 능력을 정확히 견주어 본다는 것... 쉽게말해 눈치!
그들은 폭사되는 청년의 안광을 감히 받아내지 못하고 주섬주섬 자리에서
일어났다.
"네 이년, 자리가 자리인만큼 오늘은 이만 참으마!"
"다음에 걸리면 용서하지 않는다."
원독의 눈초리를 보내며 황의인이 오른 팔목을 부여잡고 마지막으로 사라지자
정혜란은 발끈하여 따져 물었다.
"이봐요, 긴머리! 당신이 뭔데..."
머리가 긴 청년이 빙글 돌아섰다.
그제서야 정혜란은 자신보다 머리통 하나가 더 크면서도 흠잡을 데 없는 몸을
가진 남자가 있음을 처음 알았다.
청년은 정혜란을 지그시 바라보며 한마디 했다.
"당신도 검의 길 정도는 본 사람 같은데 심심풀이로 남에게 주먹을 들이대는건
무슨 법도인가?"
"뭐욧! 난..."
"검이 운다. 당신같은 인물들 때문에..."
장추삼의 큰 소리가 둘의 사이를 가로막았다.
"어이! 북궁형. 여기요, 여기!"
정혜란은 꿀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일행이 웃고 떠들어도, 당소소가 말을
붙여도 그저 건성으로 대답할 뿐 내내 혓바닥을 잘근잘근 씹고만 있었다.
'북궁단야라... 두고보자! 네 놈이 얼마나 잘났는지...'
뿌드득!
관심을 보인 최초의 이성은 그녀로 하여금 이빨을 갈게 해 주었다.
그녀는 이빨을 가는데 온 정신을 쏟았기 때문에 하운의 귀계로운 표정을 보지
못했다.
[10726] [연재] 삼류무사-50 첨부파일 :
비사 I.
십팔년 전.
강호무림을 진동시키는 사건이 터졌으니...
한 사내.
그가 어디에서 왔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누구에게 무공을 사사받았는 지도...
당시 청성의 장문인이자 무림에서 검을 가장 잘 쓴다는 다섯명, 즉 검정오
존 중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쇄심검자 유배운은 한 장의 첩지를 받고
후들거리는 다리를 진정시킬 수 없었다.
손바닥 크기만한 종이에는 일정한 형식을 갖춘듯 보이는 빨간색의 선이 그
려져 있었고 그것에 겹쳐진 파란색의 선은 빨간선과 부조화스럽게 엉켜져
있었다.
보통 사람이 봐서는 어린아이가 두가지 색실로 장난친 것 같은데.
"아니야, 이건 말도 안돼! 아닐거야... 그 자, 이 종이를 건네준 자를 데려
오라!"
잠시후 내원의 문이 열리고 한 사내가 모습을 보였다.
삼십대 후반 정도의 사내는 별 특징 없는 외모에 평범한 체구를 움직이며
걸어왔다.
그러나 쇄심검자의 눈에는 아무 생각없이 걷는 듯 보이는 사내의 보보에서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현기를 느꼈다.
사내는 태연한 표정으로 수백의 청성문인들을 뒤로 하고 쇄심검자에게 포권
을 했다.
"일모가 청성의 장문을 뵈오이다."
"유배운이라 하오. 일대협이라 하셨소?"
"그렇소이다. 보낸 첩지는 잘 받으셨는지?"
육십년을 검과 생활하여 나름대로 굳건한 정력이 있다고 생각했던 쇄심검자
였지만 사내가 던진 한마디에 일그러지는 표정을 감추기가 어려웠다.
"무, 물론이오. 그러잖아도 빈도는 그것때문에 일대협을 급히 뵙자고 했소.
실례가 안된다면 그것에 관해서 빈도와 몇마디 나눌 수 있겠소?"
"좋도록 하시지요. 본인은 시간이 아주 많습니다."
사내의 느긋한 표정과 달리 쇄심검자의 행동은 조급하고 부자연스러웠다.
"어, 어찌 귀인과 서서 대화를 나누겠소이까? 방장실로 속히 드시지요."
더듬거리는 말투와 주위를 쉴사이 없이 살피는 불안정한 눈망울.
유배운은 언제나 자신감 있고 넉넉한 웃음의 쇄심검자가 아니었다.
그러나 그의 이러한 변화를 눈치 챈 이는 기껏해야 일대제자 몇몇과
청성사쾌라 불리우는 쇄심검자의 사제들 정도였고 대다수의 청성문인들은
마흔살 가량의 평범한 중년인이 대단한 위치의 인물이겠거니 하는 막연한
추측을 할 뿐이었다.
"무림맹 소속의 고수인가 본데? 장문방장실로 인도될 정도라면 말이야."
"그저 고수라면 현임장문께서 여지껏 다섯 번밖에 공개하지 않은 방장실로
처음보는 외부인을 들이시겠나. 최소한 맹의 집행위에 소속된 자일거야."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장문인께서 스무살 이상은 차이가 날 법한 중년인
에게 너무 예의를 갖추시는 것 같아서 나는 기분이 썩 좋지 않은걸."
일반제자들이 삼삼오오 귓속말로 수근거리는걸 무시하고 쇄심검자는 사내를
내원 깊숙한 장문 방장실로 데리고 들어갔다.
언제나 그림자처럼 그를 따르는 청성사쾌도 들어오지 못하게 엄명을
내리고서.
청성사쾌는 내원의 한쪽까지만 출입이 허용되었다.
"오늘 장문사형의 표정이 너무 이상하지 않습니까? 무엇에 쫓기는 사람처럼
조급하신 기색이, 아침 나절까지도 별 일이 없었는데."
청성사쾌의 막내 양위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막내라고 해봐야 벌써 나이가
마흔을 흘쩍 넘은 중년도인이었다.
"무림맹에서 그와같은 자를 본 적이 없었거늘. 앞뒤가 맞지 않아. 기분이
영 찜찜한 게 무언가 좋지 않은 방문객 같다.부디 아무일도 없어야 하는데.
무량수불."
"아무튼 기다려 보세. 기다리는 것밖엔 현실적으로 별다른 방법도 없지만."
둘째 천관수의 걱정스론 도호를 첫째인 양평이 진정시켰지만 걱정스럽기는
모두가 한마음으로 같았다.
장문인으로서가 아니라 마음과 마음으로 연결된 사형제지간이 공유할 수
있는 직감에서 발현되는 까닭모를 불안감이 납덩이처럼 무겁게 그들 넷을
짓누르고 있었다.
공력으로 소리가 새나가는 것을 철저히 차단했는지 양평이 아무리 지청술을
시전해봐도 들리는 건 고작해야 바람소리였기에 궁금함은 더해만 갔다.
도대체 무슨 일이기에 이리도 신중함을 기한단 말인가?
일식경 후, 삐걱 하는 문소리가 들리며 사내와 쇄심검자유배운이 방장실에
서 나왔다.
사내의 표정은 방문시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것이었는데 유배운의 얼굴은
백짓장처럼 하얗게 질려있는 것이 귀신을 보았다 해도 나오기 힘든
낯빛이리라.
내원을 가로질러 걷던 사내가 문득 걸음을 멈추고 두발자국 정도 뒤쳐져 따
라오는 쇄심검자에게 한마디를 던졌다.
"수백의 제자 앞에서 말씀하시는 것보다는 그래도 연륜과 수양이 청성에서
손꼽히는 청성사쾌 여러분만 계실 때 하는게 더 나을듯 싶습니다만."
"무량수불, 무량수불..."
쇄심검자는 고개를 숙이고 도호만 읊조리고 있었다.
진작부터 불안한 마음에 가슴을 졸였던 청성사쾌도 무슨 말을 하는지 몰라
둘의 희한한 대치를 바라만 보았다.
장문사형의 떨리는 도호는 무언가 일이 잘못되었음을 말해주고 있지만
그렇다고 무턱대고 사내에게 달려들 수도 없는 것이 여지껏 없었으니까.
일다경 동안을 기다리던 사내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그렇게 버틴다고 해결될 일도 아닌데... 장문께서 운을 떼시기 어렵
다면 본인이 수고를 덜어드리겠소이다. 다만, 일모의 성격상 처음부터
끝까지의 일들을 하나도 남김없이 얘기할 것인즉 장문께선 그 점 유념
하시기 바라오. 그럼..."
"잠깐, 잠깐만 기다리시오! 내가 말하리다, 내가!"
급히 사내의 입을 막은 쇄심검자가 하늘을 우러르며 탄식을 했다.
"청성의 역대 조사들이여! 빈도가 불민하여 저의 대에 이르러 갑작스런 치
욕을 감내하게 되었으니 이 죄를 어떻게 감당하오리까!
무량수불, 무량수불..."
장문 사형의 애절한 절규에 청성사쾌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건 최악의 사태 중 하나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그들은 누가 뭐라고
할 것도 없이 사방으로 흩어져 사내를 에워쌌다.
여차하면 말검도 불사할 것 같은 일촉즉발의 기세.
그러나 사내는 마냥 평온했다.
유유롭게 뒷짐을 지고서 먼 곳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가 바라보고 있는 곳이 선조들의 위패를 모시고 있는 청성의 중지,
조사전임을 이들은 알고 있을까?
"물러... 나거라."
"예?"
"물러나, 어서! 너희들은 가만히 있거라. 그저 가만히..."
쇄심검자의 노안에서는 끝내 눈물이 흘러나왔다 이대로 시간을 끈다면 어떤
충돌이 야기될지 모르는 일이다.
조그마한 충돌이라도 발생한다면, 청성의 미래는 장담하지 못한다.
미래뿐 아니라 당장의 현실도...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뒤로 물러나던 청성사쾌는 장문사형의 두눈에서 떨어
지는 눈물을 보았다.
무슨 일인가? 어떤 사안이기에 구파일방중 하나이자 중원 사대검파중 하나
라는 청성의 장문인이 말없는 절규를 눈으로 토하고 있는 것인가?
"청성의 검은..."
힘겹게 입을 여는 쇄심검자였기에 목소리가 매우 작았다.
"뭐라고 하셨소? 본인은 가는 귀가 먹어서 잘 들리지 않는구료."
"청성의 검은..."
이번에 처음 두 구절은 컸지만 나중은 거의 들리지 않았다.
쇄심검자는 슬며시 사내를 바라봤지만 그는 고개를 돌리지도 않고 먼 곳을
응시하고 있었다.
무언의 압력.
"청성의 검은 태양을 감당하지 못하... 오."
" ! "
청성사쾌는 장문인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방금전 장문인의 발언은 사문지죄로 다스려도 할 말이 없을만큼의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이다.
사문의 무공을 부정한다 함은 조사의 업적자체를 뒤엎는 것과 진배없는
일이다.
청성개파 오백여년, 몇몇의 사문반도가 이런 행동을 안한건 아니었지만
현임 장문인의 입에서 이런 발언이 터져 나오다니!
"다시 한번만 말씀해 주시겠소? 본인이 그만 딴생각을 하고 있었는지라..."
핏발선 눈으로 사내를 뚫어지게 바라보던 쇄심검자가 발작적으로 외쳤다.
"청성의 검은 태양의 검을 감당하지 못한다! 이제, 이제 되었소?"
푸들푸들 떨리는 노구를 바라본 사내가 그럭저럭 괜찮았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뭐, 그 정도면 아쉬운대로 본인도 만족하오이다."
"차 잘 마시고 가오. 그럼 이만."
포권을 하고 돌아서서 걸음을 옮기는 사내를 쇄심검자가 붙잡았다.
"이보시오, 일대협! 대체 우리 청성과 무슨 원한이 있길래 이와같은 일을
벌인 것이오?"
"원한, 글쎄요? 그런건 사람이 마음먹기 나름이니. 아직도 아홉군데를 더
돌아다녀야 하기 때문에, 실례하겠소."
뒤도 돌아보지 않고 걸음을 옮기며 사내가 말했다.
장문에 대한 분노는 첩지를 바라보며 물거품처럼 사그러 들었다.
청성사쾌는 얄미운 양피지를 발기발기 찢고 싶었지만 그런다고 달라질건
아무것도 없었다.
사내는 말했다.
아홉군데를 더 돌아다녀야 한다고...
첫댓글 잘밨어요
즐감
잘 보고 갑니다. 감사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