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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두 가지 비판의 지점은 같은 선상에 있지 아니하며, 동일한 정도의 위상을 지니고 있지 않다.
전자는 '믿음'에 근거하여 행동하는 사람들과 그 믿음을 공유하지 않는 사람들 사이의 충돌의 과정에서 주로 발생하며, 현대사회의 공평성의 원칙에 있어 어느 특정한 종교를 우대하거나 하는 법 없이 서로 다른 것을 믿는 많은 사람들을 똑같이 대우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하는 윤리적 목표에 따라 오늘날 모든 사람들이 지키고자 개인적으로 노력해야 하는 도의적 의무와 관련이 있다.
따라서, 믿음이 개인의 차원에서 개인의 행동을 규제하는 내재적 법칙으로 작용하는 한계를 벗어나, 공공의 영역에서 표현되는 행동방식으로서 그에 근거하여 (그 믿음을 공유하지 아니하는 사람들을 포함한) 타인의 권리를 실질적으로 침해하거나, 차별의 근거로서 작용할 때 그 종교인의 행동은 마땅히 비판의 대상이 된다. 또, 현세적 집단으로서 활동할 수 밖에 없는 종교적 단체가 같은 신앙인들 사이의 정신적 유대와 화목함을 증진하는 것 이상으로 사회 내에서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되었을 때, 그 영향력이 정치적, 경제적 분야에 있어서 불공정한 편향성을 옹호하게 되는 경우에는 그 종교집단의 행동 또한 마땅히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전자의 경우와 후자의 경우는 전혀 다르다.
현대사회의 자유와 평등은 강요와 압제에 의한 인신과 정신의 구속을 반대한다. 그것은 권위에 의해 오로지 하나의 종교를 믿어야만 했던 강제성의 시대로부터의 탈피로부터 비롯된 것이기에, 종교의 자유는 보편적으로 오늘날 인정받는 당연한 권리 중의 하나이다. 믿음의 자유는 누구에게나 보장되는 것이며, 한 사람이 무엇을 믿는가에 대해 왈가왈부할 수 있는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비판의 자유는 보다 상위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선에서만 유효하다.
풀어서 설명을 한다면, 이와 같은 경우를 들 수 있을 것이다.
무엇인가의 이유로 인종들 사이를 차별하는 이념을 믿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을 해보자. 그리고, 그는 그 믿음을 근거로 유색인종의 존재 그 자체를 비판을 하게 된다. 그렇다면, 이 사회는 그의 인종차별적 비판을 '비판의 자유'로써 인정해야 하는가?
결과적으로, 그러한 종류의 비판의 자유는 허용되지 않는다.
개인의 마음 속에서 어떠한 믿음을 갖고 있는가는 (아무리 그릇된 믿음이라고 할지라도) 본질적으로 어느 누구도 손을 댈 수 없는 반면, 현대사회의 평등의 원칙을 근본적으로 위배하는 비판적 발언은, 비판의 자유를 보장하기 이전에 타인의 존재 그 자체를 부정하는 영역까지 침범했기에 허용할 수 없다.
이러한 기본적인 원칙은 종교인들에게도 물론 적용된다. 특정한 종교에 대한 믿음을 견지하는 그 사실 자체는 누구도 비판할 수 없다. 그것은 전적으로 개인의 자유에 속하는 것이며, 하나의 신념체계로써 자신의 존재를 정의하는 중요한 정신적 기재로써 무엇을 선택하느냐에 상관할 수 있는 권리는 그 누구에게도 없다. 그러나, 그러한 종교적 믿음이 실질적으로 평등의 정신을 침해하는, 종교와 믿음에 근거한 타인에 대한 차별 및 악의의 발언으로 이어졌을 때 비로서 그것은 저지의 대상에 속하게 된다. 하지만, 이것은 그들의 믿음에 대한 저지가 아니라, 그 믿음에 근거한 행위를 저지하는 것에 속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동시에, 이 기본원칙은 종교를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적용된다. 어떠한 믿음에 근거한 행동이 실질적으로 현대사회의 중요한원칙을 위협하고 있는 행동으로 이어질 때 그것을 비판할 자유는 있어도, 그러한 행위의 책임을 그 종교 자체에 전가하여 특정 종교 및 그 종교를 믿는 행위, 그리고 그 믿음을 유지하는 사람들에 대한 비판을 할 자유는 없다. 왜냐하면, 같은 종류의 믿음을 유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행위를 보이지 않는 사람들 역시 명명백백히 존재하고 있는 상황에서, 기계적이고 단선적인 논증을 통해 '믿음' 그 자체가 자유와 평등의 원칙에 위배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어느 누구도 증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두 번 째로 경고하고 싶은 것은, 이성중심주의(logocentricism)에 대한 것이다.
이성은 절대적 가치가 아니다.
어느 시대의 어느 지역의 어느 문화권이던간에, 살아가는 인간의 가치체계 및 판단능력을 좌우하는 '이성'이라는 기준은 상대적으로 변화해간다. 이성은 개념적 사유의 능력이며, 사유의 기준이 되는 개념은 시대에 거쳐 변화하기 때문이다. '이성'을 절대적 가치기준으로 잘못 생각하는 사람들은 흔히 그것을 '미신'에 상반되는 쯤의 것으로 생각을 하는데, 애초에 '미신'이니 '종교'니 하는 종류의 것들이 세상의 근본원칙으로써 인간존재를 규정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시대에는 그 자체가 이미 '이성'이었다는 사실을 상기하기 바란다. '이치에 맞다'라는 '합리 合理' 는, 애초에 그 '이치'가 무엇에 근거를 두고 있느냐에 따라 변하기 때문이다.
흔히, '종교'에 대비되는 '이성적 사고방식'을 언급할 때 몇몇 사람들은 '비이성적인 종교적 사고방식'이 부른 재난이나 해악을 거론한다. 그러나, '이성'이 저지른 대표적인 끔찍한 죄악에 "마지막 해결책 Die Endlösung " 이 있다는 사실을 상기하기 바란다. 이게 뭔 소린지 모르겠다면 아무 검색포털에나 가서 '아우슈비츠'와 '이성중심주의', '로고스중심주의' 를 검색해서 읽어보기를 권장한다. 이성중심주의를 신봉했던 많은 철학자들을 오래도록 고뇌에 빠뜨린 유대인 대학살의 고뇌로 부터 절대적 모더니즘이 일으킨 비극을 반성하고 포스트모더니즘으로 나아가게 만든 중요한 사건이니까.
따라서, 이 사실을 먼저 인정하고 그 한계를 숙지하지 않은 상태에서 '이성'을 절대적 우위를 지닌 가치로써 '믿음'의 우위에 두는 사고방식은, 역설적으로 그 '이성'의 신봉자가 스스로 비판을 하고자 한다는 절대주의적 종교적 사고방식이자 '맹신적 믿음'의 일종이다.
오늘날, '이성적 사고방식'이 '종교적 사고방식'의 우위에 있다는 우리들의 이 '믿음'은, 우리가 신봉하는 이성의 결과로 탄생한 근대-현대 사회의 자유주의, 평등주의, 그리고 인간중심주의가 구 시대의 정치적, 사회적, (그리고 단일종교에 의한) 정신적 압제로부터 많은 사람들을 해방시킬 수 있었던 사실로부터 기인한다. 그것은 어떠한 무형적 제도나 가치체계가 실질적으로 인신과 정신을 구속하고 억누르는 것을 반대하고자 하는 마음으로부터 나온 것이며, 그러한 억압을 물리치고 만인이 동등한 가치를 지닌 인간으로써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 올바른 길이라고 사람들이 믿기 시작하면서부터 오늘날 세상의 새로운 가치판단의 기준으로 자리잡게 된 것이다.
이성 또한 근본적으로는 믿음의 체계이다. 그렇기 때문에, 특정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그 도그마에 도취되는 일이 발생할 수 있는 것처럼, 겸허한 마음으로 이성의 한계를 항상 예의주시하지 않는 한 '이성' 또한 허울 좋은 도그마의 일종으로 전락할 뿐이다.
...
따라서, 위의 두 가지 경고를 기초로 한 결론을 내리며 이 글을 마무리 짓겠다. 앞으로, 앞서 언급한 '전자'의 경우에 해당하는 글들은 허용할 것이다. 그러나, '후자'의 경우라고 생각되는 글이 있다면, 그것은 더 이상 허용하지 않겠다. 이 결정에는 타협이 있을 수 없으며, 엄격하게 집핼할 것이다.
이렇게까지 얘기했는데도 특정종교 옹호니 뭐니라고 생각을 한다면, 억울하면 짱 먹어라.
(ps)
나도 개인적으로는 개신교에 유감이 많은 사람이며 무신론자이다.
그러나, 내 무신론은, 자유와 평등이라는 믿음이 종교적 질서보다 우위에 있다는 내 개인의 믿음의 결과이며, 내가 신봉하는 자유는 '믿음의 자유' 또한 인정하고 있음을 나는 잊지 않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개인으로서는 도저히 동조할 수 없는 사고방식을 지닌 종교인이라고 할지라도, 그가 직접적으로 내 자유와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 이상은 나도 그의 존재를 용납하고 인정할 것이다. 또, 가끔 그러한 침해행위가 있을지라도(선교나 포교가 들어온다던지..) 인간에 대한 예의를 생각함에 있어서, 어찌되었던 자신의 신념에 충실하는 그들의 열의와 성의를 존중하는 마음에서 최소한 웃으면서 완곡하게 거절하는 정도의 성의를 보일만한 아량 또한 지니고 있다. 이런 것은 종교를 믿냐 안믿냐의 차원을 떠나, 사람사는 세상에서 예의라는 아주 기초적인 덕목에 속하니까.
그러나 또한, 나는 불가지론자이기도 하다. 사람이 살아가는 물리적 세상의 영역에서 종교적 신념이 객관적인 과학적 사실을 능가할 수 없다는 것을 완고하게 믿으면서도, 동시에 인지의 한계를 넘어선 차원에서 무엇인가 보다 커다란 존재가 있을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알 방법이 없다고 생각하기에 판단을 유보한다. 따라서, 내 무신론은 내가 지금 살아 숨쉬는 물리적 영역을 한계로 두고 있을 뿐이다. 나는 자연현상에 신이 개입해있다는 생각을 거부하며, 과학적 법칙에 신이 개입한다는 생각을 거부하며, 인간사에 신이 개입한다는 생각 또한 거부한다. 그리고, 잘은 모르겠지만 죽음의 너머에 내 인격이 그대로 유지된 상태로 어떤 불사의 영혼이 존재한다는 생각은 사실이 아니라고 믿는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떠나 보다 높은 차원에서부터 이 물리적 세상과 우주에 어떠한 다른 힘이 작용되었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은 남겨두고 있다.
우주가 빅뱅으로부터 창조되었음을 안다고 해서, 그것에 "왜"라는 물음을 던지지 못할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또, 나는 비이성적인 믿음에도 가치가 있다고 믿는다. 인간이 이성만으로 움직이는 존재라는 것처럼 허황된 말은 없기 때문이다. 종교는 근본적으로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영역에 대한 두려움을 떨치고, 특히 죽음이라는 공포에 직면하여 그것이 끝이 아님을 소박하게 믿음으로써 하루하루 살아나가는 희망과 위안을 제공한다. 맑스 선생은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라고 했으나, 현대 의학에서 근본적으로 마약으로 정의할 수 있는 약물들을 의료용으로 사용하는 경우는 충분히 많다.
그러한 소박한 필요조차 부정하는 것은 '이성'을 논하기 이전에 '인간에 대한 배려' 자체가 부족하다고 밖에 볼 수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물론, 이것은 사견에 불과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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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를 배제하는 게 이성적이라는 생각이야말로 비이성적인 광신입니다. 국내에 흔한 반신교도들이나 혹은 기독교만 부정하면 자기가 꽤나 이성적이 된다고 생각하는 무식쟁이들만 그걸 모를 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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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생각
멋진글이군요
좋은글이예요 ㅎㅎㅎ
싸이 블로그에 담아가겠습니다.
이글에 펼쳐진 논쟁만 봐도 왜 종교때문에 이 지구상에서 그렇게 많은 전쟁이 일어났는지 알수가있군요. 단 두분이서도 저렇게 치열하게 논쟁하시는데 국가 vs 국가 면 그 논쟁의 규모가...상상이 안되네요. 여튼 정말 종교란 무서운거같습니다.
일찌기 클라우제비츠는 이렇게 논단하였습니다. "전쟁이란 이웃짓끼리의 아주 사소한 언쟁과 외적으로나 내적으로나 완전히 동일하다." 종교때문에 전쟁을 한것이고 그래서 종교는 무서운 것이라는 분들 보면 전 소름끼치게 무섭더군요. ㅎㅎ;;
오...개념글이군요
일부 종교인들이 종교인은 물론 사람답지도 않은 처신으로 분노의 대상이 되고 있고, 특히 어떤 특정종교에서 그러한 경우를 많이 볼 수 있는건 사실입니다. 이런 것은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지요. 그러나 어떤 대상을 존재 자체에 대해 뭉개버린다면 대화 자체가 안돼 버립니다. 게임카페에서 여러 얘기가 오가는 건 좋습니다만, 어디까지나 상호존중적이어야 하죠.
개..개념글!!
종교를 믿는것은 좋은거 같은데 너무 광신적인것은...흐음....
닭잡는데 청룡도를 쓰셨네요...반말체의글들은 오만과강압의뉘앙스로 읽힐수도있어 오해의요지가있을수도있음을 생각해주셨으면 좋았겠군요,또한 마지막에 "억울하면 짱먹어라"는 논리정연한취지에글인데 옥에 큰티가 박혀있음에 아쉽습니다...
존경스럽다. 이렇게 긴 글을 쓰다니... 그래서 안읽었다.
위에 두분은 아직 총통님에대해 잘 모르시는듯 -_-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아마 철학을 전공하셨나보네요^^ 아니면 철학에 많은 관심이 있으신듯...^^ 철저한 불가지론을 가지고 계시는 군요. 그러나 불가지론 역시 믿음을 전제하는 것은 아닐지요. 종교논쟁은 정말 그만했으면 하네요.
억울하면 짱먹어라~! 압권 ~! 위 두분이 총통님을 알고 모르고를 말하기 이전에 불특정 다수에게 글을 씀에 옥에 티는 아쉬움이지요.~! 말을 하되 그 말이 진실로 듣는 이에 가슴에 수긍을 얻기 위해서는 좀더 지각있는 행동이 필요하지 않을가 싶네요. 그가 대통령이든 100살 먹은 어르신이든 해탈한 자이든~! 어쨌든 나름 껄쩍찌근한 좋은 말 잘 경청했습니다.왠지 이런말 이 생각나네요 벼는 익을수록 머리를 숙이고 지나침은 모자람만 못하다라는~!
오랜만에 왔는데 종교논쟁이 존재했던 모양이네요~~ 그냥 좀 서로를 인정하면 서로가 편할것을~~ 그리고 많은 분들이 댓글들을 달으셨는데 실상 종교문제로 전쟁이 일어난적은 없습니다! 위정자들이 종교문제로 돌리거나 명분으로 세웠을뿐 ~ 우리가 아는 세상의 많은 집단 종교분쟁의 실상은 서로의 이해대립 문제에 종교를 명분으로 끼워넣었을뿐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 아무튼 간만에 멋진글 보고 갑니다~~~ ㅎ
인간의 배려를 위해 종교가 필요하다는 말의 논리에는 배려가 필요한 인간이 따로 있다는 전제가 깔려 있습니다. 그러니 그러한 사람을 위해서는 종교가 남아 있어야 한다는 말인데 이건 병이 걸린 사람에게 진통제만 주자는 말과 같은 말입니다. 배려가 필요한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진통제가 아니고 치료제 입니다. 물론 진통제를 선택할지 치료제를 선택할지는 개인의 자유입니다만 진통제를 치료제라고 불러서는 안되겠습니다. 모든 사람에게는 치료제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진통제를 치료제라고 믿고 있다면 어서 빨리 진통제일 뿐이라고 알려줘야 하겠습니다.
울 카페는 게임 카페임에도 그 수준이 넘 높아~~~~
총통부터 저러니.... ^^;;
하여간 좋은 카페이고 이 곳 회원인게 자랑스럽습니다.
간만에 왔다가 대문 글만 세번 읽고 갑니다.
말이 너무 어려워요 그리고 무신론자 그래도 예수님은 당신을 사랑해요^^
ㄷㄷㄷ.. 대단하다
ㄴ 분위기 파악 못하시는 분 한분 추가네요 ㅇㅅㅇ;;
총통님이 하실만한 의심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거나, 이런글을 읽고 이해할수 있을정도의 사람이라면 이미 총통님의 의견을 수용할 수 있을만한 사람이라는것이 증명된것일 가능성이 큼..
종교논쟁의 정당성에 대해서 어필하기 전에, 논쟁자들의 글을 읽고 이해할수 있는 추상적 개념을 다루는 이성적 능력 자체를 키울 필요가 있음.. 그렇지 않고서야, 종교논쟁을 하는 사람들의 의식적 수준이 높아지지 않고서야 어찌 올바른 논쟁을 할 준비가 되어있을수 있겠습니까아아 총통 각하아아 , 무지한 군중들을 let it be 하옵소서. 그대만 스트레스 받으리니
전 철학을 전공한적이있어서 많은 부분에서 공감하네요 공격받을수 있는 말이지만 신권정치 시절에 대부분의 학문은 신을 증명하기위해서 존재했습니다 하급계층을 쉽게 다스리기위해서지요 무신론자들은 당연히 억압받았습니다 어떠한 객관적인 주장도 거짓으로 바뀌는 시대였지요 그시절 진리를 추구하던 철학자들은 신은 없음을 알지만 어쩔수없이 신학을 연구합니다
세상의 이치를 조금이라도 알게되면 예수님믿는것과 단군신화믿는것이나 같은거라는걸 알게됩니다. 코란과 성경도 같은겁니다 모두 근데 싸우고 있지요 좀더공격적으로 말해서 진화론을 부정하려하는자들이 21세기에 존재한다는게 그저 코믹합니다
어유 찌질이새기들 무슨 이런 병신 카페에서 종교논쟁을하고 여기다가 댓글을 달고 여기에 가입했냐 이런 병신카페에 가입한게 후회가되고 운영자 저 찌질이는 종교논쟁하는걸 병신이 무슨장문으로 찌질대냐 봐줄필요도없고 이런스레기새기들카페에 못있꼤다 꺼져라
정말 개념글..
점점 일케 쪽수 늘려서 나중에 무신론자 병진 만들수있으니.. 그게 무서움. 그래서 종교 이유 불문까야함.. 이상한논리죠 ㅋ.ㅋ하지만 이 논리는 역사가 증명해주고있음.. 방심하고 방치하다가 훅갈수가. 그리고 운영자님 하지말라고하는건 안해죠.
이또한 훗갈수가있죠.
이거 수능 언어영역 시험나오는거아님? ㅋㅋ
개념글 잘 읽고 갑니다. ^^
좋은 글 읽고 갑니다.
과거에 DC화 되었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 수 있는 댓글이 여기저기 보이는구낭...
총통각하만이 토탈워카페의 절대정신입니다.
또 예수쟁이들이 떨들고 갔나??
지옥간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