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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창조주가 선물한 세상 원문보기 글쓴이: 박종태목사
미성숙의 병/히 5:11-14
성경본문 히브리서 5:11-14
○ 믿음의 진보에 대한 호소
11. 멜기세덱에 관하여는 우리가 할 말이 많으나 너희의 듣는 것이 둔하므로 해석하기 어려우니라
12. 때가 오래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될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가 무엇인지 누구에게 가르침을 받아야 할 것이니 젖이나 먹고 단단한 식물을 못 먹을 자가 되었도다
13. 대저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 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14. 단단한 식물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저희는 지각을 사용하므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변하는 자들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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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 처| 박정근목사
얼마 전 미국 ABC 방송국에서 특이한 병을 충격으로 소개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프로제리아(Progeria)'- 길포드 증후군(Gilfordn Syndrome) - 라는 병이었어요. 아마 사람 이름을 딴 병명 같습니다. 이 병은 아이들에게만 생기는 병이었어요. 성장을 멈추는 병이지요. 그러나 신기한 것은 성장이 멈추는 것에 반해 세포조직은 빨리 늙어버리는 겁니다.
그 당시 TV에서 이 병에 걸린 아이들과 부모들을 생생하게 보여주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 참담했어요. 한 아이를 집중하여 조명하였고, 초등학교 6학년이었던 아이의 몸집이 유치원생인 6살 정도 되어 보였어요. 그러나 얼굴은 40대였어요. 이 아이들은, 성장은 멈추지만 급속도로 세포조직이 빨리 늙어가서 대부분 20세를 넘기지 못하고 죽는다고 합니다. 그러다 20세 정도가 되면, 몸집은 초등학교 2학년 정도이나 얼굴은 환갑을 넘긴 어른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아이 부모의 모습을 한번 상상해 보세요. 몸집은 자라지 않고, 모든 기능은 빨리 늙어서 자신들보다 먼저 죽어 가는 아이를 둔 부모, 그것을 바라보아야 하는 부모의 심정! 그 날 방송에 나온 부모들은 한결같이 흐느껴 울었어요. 저도 안타까운 심정으로 같이 울었어요. "세상에 저런 병도 있구나, 정말 처참한 병이구나!"
만약 그 병에 여러분의 자녀가 걸렸다고 생각해 보세요. 저는 생각해 보았어요. 우리 아이가 18세가 다 되어 가는데 몸집은 초등학교 2학년만 하고 얼굴은 저보다 더 늙었어요. 이제 2년밖에 살지 못합니다. 그렇게 무덤을 향해 달려간다고 하면 여러분의 심정이 어떨까요?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우리의 육체에만 이런 병이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영혼에도 이와 비슷한 병이 걸릴 수 있다고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그 병은 바로 '미성숙의 병'입니다. 제가 히브리서를 중심으로 우리 영혼의 성장을 방해하는 다섯 가지 질병을 다루고 있는데, 구원을 등한히 여기는 병과 마음을 강퍅케 하는 병은 이미 살폈어요. 오늘은 미성숙의 병을 다룰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본문을 잘 파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5장 11절에서 14절까지만 읽었지만, 사실은 6장 마지막 절까지 계속됩니다.
히브리서에는 다섯 가지 경고가 등장합니다.
그 중에서 가장 엄중한 경고문이 저와 여러분이 읽은 오늘 본문 가운데 있습니다. 5장 11절부터 6장 마지막 절까지 괄호를 묶어야 합니다.
5장 10-11절을 보세요.
'하나님께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은 대제사장이라 칭하심을 받았느니라 멜기세덱에 관하여는 우리가 할 말이 많으나 너희의 듣는 것이 둔하므로 해석하기 어려우니라'
지금 히브리기자는 멜기세덱의 얘기를 하다 말고 갑자기 6장 마지막 절까지 멜기세덱의 얘기를 하지 않습니다.
다른 얘기를 합니다.
그리고 7장 1절에서 '이 멜기세덱은 살렘 왕이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라...' 라고 연결됩니다.
우리가 히브리서를 정상적으로 이해하며 읽기 위해서는 5장 10절에서 7장 1절로 건너뛰어 읽어야 합니다. 이것이 5장 11절부터 6장 마지막 절까지 괄호를 묶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멜기세덱의 얘기를 하다 말고 히브리 수신자들에게 이 괄호의 내용으로 강력한 경고를 발하는 것입니다.
이 경고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다름 아닌 미성숙의 병을 조심하라는 겁니다. '프로제리아(Progeria)' 라는 병에 걸리면 너무나 처참합니다. 마찬가지로 미성숙의 병에 걸리게 되면 우리 영혼이 너무나 암담한 결과를 맞게 된다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바라보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이 무너지기 때문에 이 병을 조심하라는 경고를 발하시는 겁니다.
우리의 영혼이 이 질병 - 미성숙의 병 - 에 걸리게 되면 두 가지 심각한 증세가 나타난다고 말씀합니다.
첫 번째는 믿은 후에 세월이 오래 지나도 우리의 영혼이 성장하지 않습니다.
믿음이 자라나지 않아요. 교회 안에 나도 모르게 이런 질병에 걸린 사람이 많습니다. 교회에 다님으로 직분을 받고 성가대와 교사 등 여러 봉사를 합니다. 그런데 막상 그 영혼은 성장을 멈추어 버렸습니다. 자라나지 않아요. 믿음이 성장하지 않아요.
두 번째는 영이 쇠약해져서 메말라 버립니다.
오늘 소개해 드린 병과 같이, 우리의 영혼이 어느 날 메말라 버린다고 말씀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이 병에 걸리게 되면 본인뿐만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목자와 영적 부모이신 하나님의 마음을 가장 아프게 하는 무서운 질병이라고 본문은 말씀합니다.
때가 오래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될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가 무엇인지 누구에게 가르침을 받아야 할 것이니 젖이나 먹고 단단한 식물을 못 먹을 자가 되었도다(12절)
여기서의 문제는 젖을 먹는 것입니다. 갓난아이가 어머니 품안에서 젖을 먹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고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중요한 것은 '때가 오래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될 터인데'입니다. 지금 갓난아이가 젖을 먹는 것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예배 후에 식당에 가서 모두 국수를 먹는데, 40세가 넘은 한 사람이 국수를 안 먹고 도시락 안에 우윳병을 싸와서 빨아먹는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이 모습을 얘기한 겁니다. 한번 상상해 보십시오. 얼굴은 수염이 나고, 머리는 다 빠져 가는 40세 후반의 중년입니다. 그런데 그 몸은 갓난아이입니다. 기저귀를 차고 있어요. 이것이 이 수신자들의 문제였던 미성숙의 병이라고 소개해 주십니다. 수염이 난 어린이!
이 병에 걸리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그 결과를 몇 가지 소개해 주는데 12절에 나타나 있습니다.
■결 과
1. 단단한 식물을 못 먹게 된다
~ 젖이나 먹고 단단한 식물을 못 먹을 자가 되었도다(12절)
이 말은 영적으로 하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깊은 것, 성경의 깊은 교리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겁니다. 우리는 세상 얘기를 하면 참으로 좋아합니다. 그러나 성경의 깊은 얘기를 하면 좋아하지 않습니다. 제가 상식과 윤리와 재미있는 예화를 하면 얼굴이 피어나는 분들이 있습니다. 농담을 하면 더 좋아합니다. 그러나 조금만 십자가의 교리, 성경의 깊은 교리를 말하려고 하면 마음이 닫혀 버립니다. 미성숙의 병에 걸려든 것입니다. 여러분 스스로를 진단해 보십시오.
또한 이 말은 어린아이의 특징인 이기적인 것과 같습니다. 저는 기독교 교육학을 공부했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의 특징을 잘 압니다. 한 번은 어느 집을 방문했어요. 그런데 두 살 난 아이를 막 때려요. 이유는 이웃집 아이와 장난감을 같이 갖고 놀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 부모가 어릴 때부터 죄의 뿌리를 뽑아야 된다면서 애를 잡더라고요. 여러분, 잘못입니다. 이것은 본능입니다. 아이들의 특징은 절대로 남을 생각하지 못합니다. 이기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자기가 생존해야 하니까요. 하나님이 우리를 그렇게 창조하신 겁니다. 그것을 이상하게 여기지 마십시오.
문제는 교회 안에 영적으로 단단한 식물을 못 먹는 자들이 많다는 겁니다. 자기에게 유익이 되는 것은 너무나 좋아합니다. 왜 교회에 나오고 헌금하는가? 내 유익 때문입니다. 내 건강과 사업을 위해 날마다 기도하고, 내가 잘 되기를 바라고, 내 가정과 내 자식만 생각하는 신자들이 오늘날 교회 안에 많습니다. 이것이 바로 단단한 식물을 먹지 못하는 겁니다.
이런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 하나님 앞에 내 자신을 희생하는 기쁨이 무엇인지 모릅니다. 내 시간을 바치고, 내 자존심을 꺾어버리고, 관계에 있어서 내가 양보하는 기쁨이 무엇인지 모릅니다. 내가 지는 것이 무엇인지 모릅니다. 하나님 앞에 헌금도 제대로 드려본 적이 없습니다. 내 재산의 얼마를 뚝 잘라서 불쌍한 사람을 위해 내어본 적이 없습니다. 다만 형식적으로 바칠 뿐입니다. 영적인 미성숙의 병에 걸린 자들의 특징입니다. 그 결과 더 심각한 일이 일어납니다.
2.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다
13절을 읽어보겠습니다.
“대저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여기서 '경험'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의로운 말씀들을 체험하지 못하는 겁니다. 체험이 없는 신앙은 죽은 신앙입니다.
예수님께서 요한계시록에 일곱 교회를 언급하시며 진단해 주십니다.
'라오디게아'라는 교회가 있었는데 굉장히 화려하였습니다.
이 교회는 사람, 특히 부자도 많아 그 세력이 대단했던가 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을 향해 "너희가 차든지 덥든지 하라. 너희가 미지근하기 때문에 내가 너희를 내칠 수밖에 없다."라고 하십니다. 교회는 나오나 하나님과의 만남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내 삶을 변화시킨 체험도 없습니다. 그저 교회만 왔다갔다합니다. 이것이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미지근한 자의 모습입니다. 계속해서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말하기를 '나는 부요하다. 나는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제발 눈을 떠서 너의 벌거벗은 모습을 보게 하라.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너의 수치스러운 모습을 발견하게 하라!"
이것이 오늘날 교회의 문제입니다.
세월은 지나가고 연수는 높아갑니다. 교회에서 직분은 높아지고 상식은 많아지는데, 그 영혼이 성장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체험이 없습니다. 말씀 앞에 울어본 적도 없고, 말씀을 붙잡고 기뻐해 본 적도 없고, 말씀을 너무너무 신뢰하기에 밤잠을 설쳐본 경험이 한 번도 없는 겁니다.
3. 십자가를 욕보인다
이 무서운 병! 겉만 화려하고, 경력만 쌓이고, 직분만 높아진 산 체험이 없는 신앙! 그 마지막 결과를 본문에서 이렇게 설명합니다. 6장 4절에서 8절까지입니다.
“한번 비췸을 얻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예한 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나니 이는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현저히 욕을 보임이라”(4-6절)
말씀도 알아요! 복음도 알아요! 찬송도 알아요! 다 압니다. 그런데 그 말씀을 체험하지 못하고, 적용하지 못하고, 말씀 안에서 자라나지 못하면 이렇게 되는 겁니다. 회개케 할 수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 그리스도를 현저히 욕보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땅이 그 위에 자주 내리는 비를 흡수하여 밭 가는 자들의 쓰기에 합당한 채소를 내면 하나님께 복을 받고 만일 가시와 엉겅퀴를 내면 버림을 당하고 저주함에 가까와 그 마지막은 불사름이 되리라”(7-8절)
여러분, 예배에 와 있는 자체가 중요하지 않다 말씀하십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와 앉아 있으면서도 그 마지막에 불사름이 될 수 있다는 겁니다. 주일을 지키고 설교를 듣는가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문제는 이 말씀을 들을 때 내가 어떻게 반응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어떤 열매를 맺는가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설교를 듣고도 엉겅퀴를 내는 자들이 많습니다. 교회에서 성가대, 주일학교 교사를 합니다. 그러나 집에 가서는 엉겅퀴로 자녀들의 마음을 할큅니다. 아내와 남편의 마음에 상처를 줍니다. 직장과 이웃에게 해를 끼칩니다. 엉겅퀴를 내는 자들입니다.
저는 목사로서 가장 가슴 아프고 목회에 짐이 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초신자들이 아닙니다. 교회에 가장 해악을 끼치는 사람들이 누구입니까? 초신자들은 아무 것도 모르니 배우려고 마음을 열고 앉아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교회에 상처를 내는 사람들을 잘 관찰해 보십시오. 하나같이 교회에 나온 지 오래되었어요. 직분은 올라가고 지식은 많아요.
그러나 그 영혼이 성장하지 않는 자들에 의해 교회가 시끄러운 것입니다. 이런 자들이 가장 목회에 짐이 됩니다.
여러분, 우리 모두가 이 미성숙의 병에 걸릴 수 있습니다. 오늘 이 말씀을 들으면서 자신을 한번 돌아보시지 않겠습니까? 당신은 어떻습니까? 나는 괜찮은 줄 알았는데 어느새 미성숙의 병에 걸려든 것은 아닙니까? 영혼이 자라나지 않고 습관적으로 교회를 다니며, 남을 비판하고 정죄하며, 부정적인 말을 하며, 예배와 가정생활이 완전히 분리되어 따로따로 놀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내 삶에서 엉겅퀴만 내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성령 하나님의 도움을 얻어 우리 마음을 조명해 보는 귀한 시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이 병은 이렇게 무서운 병입니다. 그러면 이 병에 걸리는 원인은 무엇입니까?
■원 인
1. 듣는 것이 둔할 때
오늘 말씀에서 하나님은 망설이지 않으시고 이 병의 원인을 이렇게 설명해 주십니다. 11절을 보세요.
“멜기세덱에 관하여는 우리가 할 말이 많으나 너희의 듣는 것이 둔하므로 해석하기 어려우니라”
'듣는 것이 둔하므로' 이것이 바로 영적 미성숙에 걸릴 수 있는 원인이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에서 '둔하다'는 말을 잘 이해하셔야 합니다. 'IQ가 나쁘다''대학을 못 나왔다' 이런 말이 아닙니다. 오늘 이 '둔하다'는 말은 헬라어로 '노드로스'입니다. 두 단어로 합성된 단어인데, 영어로 'No Push'이며, 우리말로 '태만하다'는 뜻입니다.
같은 단어를 6장 12절에서는 '게으르지 아니하고'라고 했어요. 즉 게으른 것, 영적으로 게으른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일에 게으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하는데 태만하고 열정이 없는 겁니다. 내 영혼을 성장시키기 위해 무언가 받아야겠다는 생각이 없고, 내 영혼을 성숙시키는 일에 등한합니다. 게으르고 태만한 것, 이것을 가리켜 '듣는 것이 둔하다'고 말씀합니다. 이렇게 하나님 말씀에 대한 열정이 마음에서 식어질 때 우리 영혼은 미성숙의 병에 걸린다고 말씀합니다.
베드로전서 2장 2절을 봅시다.
"갓난아이들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이 말씀과 오늘 본문의 말씀을 오해하기 쉽습니다. 본문에서는 갓난아이가 된 것을 야단치고 있는데, 여기에서는 갓난아이가 되라 했다고 해석하며 질문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여기서 '같이'라는 말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갓난아이가 되라는 것이 아니라 갓난아이들같이 되라고 합니다. 갓난아이의 태도를 가지라는 겁니다. 갓난아이의 태도를 가지고 하나님 말씀을 사모하라는 겁니다. 이것은 곧 우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할 것입니다.
갓난아이가 태어나면 기쁩니다. 저도 첫아이를 안고 오면서 아버지가 된 것이 얼마나 뿌듯했던 지요. 그런데 뿌듯한 건 며칠 안 가더군요. 그때가 전도사 시절이었습니다. 새벽기도는 나가야 하는데, 새벽마다 아이가 깨어나 울어 얼마나 신경질이 나던지 딴 방에서 잤어요. 그런데 마음이 아파요. 아이와 같이 잡니다. 또 화가 나면 딴 방에 갑니다. 그러면서 전도사가 이 정도밖에 안 되나 싶은 생각도 했어요. 제 친구 전도사는 같은 상황에서 "야! 갖다버려!" 그랬답니다. 지금은 훌륭한 목사가 되어 우리 교회에 와서 설교도 했습니다.
밤에 아이가 울 때 "내일 아침에 곱빼기로 줄게. 오늘은 그냥 자자."하면 그냥 잡니까? 아이는 젖 먹을 때까지 웁니다. 독일 나치군이 유태인을 대상으로 실험을 많이 했습니다.
갓난아이를 가지고 실험을 하는데 젖을 주지 않았어요. 그랬더니 아이가 배가 고파 영양분이 부족해서 죽는 것이 아니라 울다가 지쳐서 죽더라는 겁니다. 이것이 갓난아이의 특징입니다.
2. 하나님 말씀 앞에 반응하지 않을 때
우리의 영혼이 어떻게 미성숙의 병에 걸리지 않고 자라날 수 있을까요? 듣는 것이 둔할 때 그 병에 걸리게 됩니다. 이 병에서 탈출하는 길은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는 것입니다.
듣는 것에 둔하지 않고 영적인 열정을 가진 사람들은 특징이 있어요. 자리를 앞으로 자꾸 옮깁니다. 그리고 설교를 들을 때 눈이 튀어나올 듯이 듣습니다. 반면에 듣는 것이 둔한 사람들은 자주 들은 소리니까 웃지도 울지도 않습니다. 어떤 교회는 장로님석이 따로 있는데 근엄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들의 표정은 "음~ 박 목사가 어제 설교 준비 좀 했네~" "오늘 들어보니까 어제 농땡이 쳤어~" "음~ 그것 참 괜찮은 소리지~"하고 감동이 없어요. 목사가 이 병에 걸리기 가장 쉽습니다. 왜냐하면 날마다 말씀을 접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영혼이 듣는 것에 둔해질 때, 하나님의 말씀 앞에 반응하지 않을 때 무서운 질병인 미성숙의 병에 걸릴 수 있다고 말씀합니다. 마지막으로 이 병에 걸렸을 때 고칠 수 있는 처방을 몇 가지 소개하고 있습니다.
■처 방
1. 옳은 음식을 먹어야 한다
나이에 맞는 음식을 먹으라는 겁니다. 갓난아이 때는 우유를 먹어야 합니다. 그러나 연수가 오래되면 이제 우유와 밥만으로 되지 않습니다. 때로 스테이크, 과일, 채소도 먹어야 합니다. 특별히 중요한 것이 어릴 때는 어머니가 떠 먹여 주지만, 나이가 들면 자기가 먹고 싶은 것을 스스로 찾아 먹어야 합니다. 이것이 성인의 특징입니다. 한국 교회의 질병이 여기에 있습니다. 한국 교회에 영적인 미성숙아들이 많은 이유는 설교와 예배가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한국 신자들은 설교 듣는 것에 너무 익숙해져 있습니다. 설교를 얼마나 듣는지 주일 오전 ·오후예배, 찬양예배, 새벽예배, 철야예배... 심방가면 또 설교를 듣습니다. 일주일에 열댓 편 정도 듣고 나면 무엇을 들었는지 하나도 모릅니다.
여러분, 그것은 올바른 신앙이 아닙니다. 영적인 미성숙아에서 헤어나기 위해서는 스스로 하나님의 말씀을 공급받을 수 있어야 된다고 말씀합니다. 내가 집에서 하나님 말씀을 읽고 은혜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혼자 기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독도에 데려다 놓아도 나 혼자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어야 합니다. 홀로 서기를 해야 합니다. 이것이 영적 미성숙을 벗어나는 길입니다.
2. 올바른 연습을 해야 한다
“대저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13절)
'경험'이란 말을 이미 말씀 드렸습니다. 이 말은 하나님의 말씀을 생활에 적용하는 겁니다. 말씀을 읽다가 성령님이 내 마음에 찔러 주시는 것을 내가 고치려고 애쓰는 겁니다. 어느 날 말씀을 듣다보니 하나님께서 내 말의 습관을 찔러 주십니다. 그때 그 말씀을 생활에 적용하기 위해 애쓰는 겁니다. 연습하는 겁니다.
스포츠를 해 보세요. 제가 테니스를 배우기 위해 책 한 권 읽고 나가면 될 것 같아 먼저 테니스 교본을 읽습니다. 그러나 안 됩니다. 연습이란 똑같은 것을 반복해야 합니다. 몇 달 레슨 받으면 지겹습니다. 그러나 안 됩니다. 1년, 2년, 수년간 연습할 때 비로소 동작 하나를 제대로 칠 수 있는 겁니다. 이것이 연습입니다.
여러분, 신앙생활은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다 아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왜 우리 영혼이 미성숙에서 벗어나지 못하는가? 머리로는 많이 아는데 생활이 없는 겁니다. 적용하지 않는 겁니다. 문제는 우리의 듣는 것 중에 너무 많은 것이 머리에만 남아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먹기만 하고 운동을 하지 않으면 배가 남산만큼 됩니다. 계속해서 운동을 하지 않으면 휠체어 신세를 지게 되고 질병에 걸릴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오늘부터 하나님의 마음을 연습합시다! 한 말씀 들으면 그것을 실천하기 위해 애써야 합니다. 한 번으로 안 되면 두 번, 세 번, 열 번, 백 번, 1년, 2년, 계속해서 연습할 때에 우리 영혼은 어느 날 하나님이 보시기에 아름다운 모습으로 자라있을 줄 믿습니다.
3. 올바른 분별력을 가져야 한다
“단단한 식물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저희는 지각을 사용하므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변하는 자들이니라”(14절)
우리가 예배 드리러 나오는 목적은 선악을 분별하기 위함입니다. 성경을 읽는 것도 선악을 분변(分辨)하기 위함입니다. 교회에서 이 말을 하는 것이 선한가, 악한가? 해가 되는가, 덕이 되는가? 가정과 직장에서 이렇게 행동하는 것이 해가 되는가, 덕이 되는가? 선과 악을 분별하는 것입니다.
목회를 하다 보면 가끔 안타까운 사람이 있습니다. 교회 나온 지 오래 되어서 성경 말씀은 좔좔 외웁니다. 주기도문, 사도신경, 찬송가 100곡쯤은 가사를 다 외웁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가기만 하면 상처가 생깁니다. 무엇이 선이며, 악인지 모르는 사람입니다. 좌충우돌함으로 사람들의 마음에 상처만 입히며 돌아다니는 염소 같은 사람! 우리 교회에는 이러한 자들이 한 사람도 없기를 바랍니다. 선악을 분별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 선악을 분별하는 것은 저절로 되지 않는다고 말씀합니다. 14절 마지막에 '연단을 받아'라고 했어요. 예배는 잘 드리고 갔는데 믿음 없는 남편이 긁습니다. 조금 봐 주다가 그대로 두어서는 안 되겠다 싶어 "오냐, 너 죽고 나 죽자!"하며 멱살잡고 뒹굴었어요. 이렇게 하면 예배드린 것이 다 무효가 됩니다. 그러나 남편이 나에게 악하고 잘못된 짓을 할 때 기도하면서 그것을 내 마음에 품습니다. 내 마음이 찢어질 것 같아요. 어떤 성도가 나를 모함하고 해가 되는 말을 할 때 마음이 찢어집니다. 그것을 가지고 전화로 싸우고 교회를 시끄럽게 하기보다 그 상처를 내 마음에 부여잡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함으로 삭힙니다. 그것이 연단을 받는 겁니다.
그렇게 내 마음이 연단을 받고 나면 다음에 내가 다른 사람에게 상처 입히는 소리를 못합니다. "아, 저 말은 악이 되겠구나!" "저럴 때 화를 내면 사람 마음에 상처를 입히겠구나!" 사업이 안 된다고 집에 와서 숟가락 팽개치면 "아, 집안 식구들이 상처받는구나! 나는 저러지 말아야지!"라는 분별력이 생길 줄 믿습니다. 하나님 말씀은 듣는다고 되지 않습니다. 내 삶 속에서 상처들을 부여 안아야 됩니다. 연단 받으셔야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너무너무 아름답게 자라나기를 원하십니다.
오늘 이 강력한 경고를 주시는 목적도 우리를 정죄하기 위함이 아니요, 우리를 판단하기 위함이 아니요, 저와 여러분을 하나님 앞에서 아름답고 성숙한 자로 세우기 위함인 줄 믿습니다. 우리 모두 이 말씀 앞에 마음을 열고, 내 영혼을 돌아보아 하나님 앞에 계속해서 성장을 이루어 가는 주의 축복된 사람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