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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제 백두대간 종주에 성공하고 환희에 차 마지막 마무리 점프를 하려던 순간, 세워둔 삼각대가 지리산의 바람에 쓰러지며 핸드폰 액정이 나가는 바람에 액정을 교환하려 전주로 바로 들어왔고, 일기예보를 통해 미리 알고 있었듯 어제는 하루종일 비가 억수같이 내렸다.
비가 좀 내릴때가 되긴 했다. 올 가을 가뭄이 최악이라고 하였고, 10월은 강수량이 최저였다고 하니, 강원도에서 산불조심 깃발을 달고 빨간 모자를 쓰고 산불을 예방하기 위해 자주 보이시던 할아버지들의 예방활동이 긴장감의 발로였다는 것이 느껴진다.
저수지의 물도 말라가고 있었으니 여행을 다니는 길손의 입장에서는 하루를 소비하게 되는 것이라 탐탁치 않으나 내가 보아온 아름다운 자연을 유지하기 위한 하늘의 뜻이니 스트레스 받을 일은 아닌 것이라 생각한다.
덕분에 하루종일 모텔방에서 뒹굴거리며 지난 여행을 정리하고 글을 쓰고 휴식을 취할 수 있었으며, 쉬는 날은 개인정비의 날이지 않은가. 바이크를 정비하기로 한다.
지난 낙동정맥 투어때 산길에서 전도진 바이크를 홀로 세울때 핸들바가 힘을 받으며 움직여버렸다. 이후 과속방지턱을 넘어가며 몸쪽으로 핸들바를 움켜당기면 핸들이 조금씩 움직여서 다시 힘주어 밀어 제자리로 옮겨 놓기를 몇차례 했었다. 아마도 한번 움직이면서 핸들바를 잡아주는 라이저 클램프쪽이 좀 헐거워진 모양이다.
내가 타고 있는 로드킹은 핸들바 라이저가 키박스 캡 안에 보이지 않게 설치되어 있어 라이저 클램프를 조이려면 헤드라이트를 들어내고 말머리라고 불리는 헤드라이트 커버 위의 부속을 들어낸 후 키박스를 제거해야 한다.
할리를 타면서 항상 인치 공구와 별랜치 등 기본이 되는 공구를 가지고 다니는데, 비오는 날 모텔 주차장에서 까발시기(부산에서는, 최소한 내가 몸담고 있는 클럽에서는 자가정비를 이런 속어로 부르며 깻다마후라라고 전설적인 까발시기 달인이 한 분 있다)를 시전한다.
마침 헤드라이트 높이가 높아 하향등에서도 상향등으로 보이는지 컴플레인 하는 차량 운전자들이 있어 헤드라이트 조사각도 약간 수정한다.
비오는 하루, 나름 알차게 보냈고, 몸도 좀 쉬면서 개인정비의 날로 보람있게 보내고, 오늘 다시 여정을 시작한다.
어제 비가 오고 난 이후 날이 갤 것이라 예상했는데 아침 7시가 되었는데도 창밖이 어두컴컴하다.
다행히 비는 오지 않지만 곧 비라도 뿌릴 것 같이 공기가 무겁고 하늘도 무거운듯 구름이 낮게 드리웠다.
7:30분 즈음 전주를 출발해 호남정맥 4번째 포인트인 당재터널로 향한다.
호남정맥은 경유지 포함 105개의 포인트로 이루어져있다. 백두대간이 96개 포인트였던 것에 비해 거리는 짧으나 구비구비 볼 것이 많다는 뜻일게다. 게다가 먼저 다녀오신 많은 분들의 칭찬이 자자했던 코스라 기대를 많이 하고 떠난 호남정맥 1일차이다.
전주를 떠나 당재터널까지 1시간을 넘게 달렸는데 스타트 포즈를 취할 만한 풍경을 찾지 못했다. 지난번 백두대간 종주때 산안개와 운해를 보았던 비온 후의 청량하던 안개와는 달리 오늘 안개낀 공기는 끈끈하고 차갑고 무겁고 어두운 상태이다. 백두대간에 비해 더 많이 남쪽으로 내려왔고 평지를 달리고 있는데 이 기분나쁜 안개의 차가운 손끝이 옷의 틈새를 파고들어 마치 바늘을 꽂아 온기를 빼앗아가듯 체온을 앗아가 하루 쉬면서 회복한 충전한 활력을 쪽쪽 빨아간다.
마치 감기 몸살이 왔을때 한기가 들어 옷을 덧입고 두꺼운 이불을 덮고 전기장판을 켜 놓고 누워 있는데 전기장판 열기로 닿은 곳은 뜨거운데 몸은 한기를 이겨내지 못하고 으슬으슬 추운 것 같은 느낌이다. 온열장비를 꽤 높였는데 열선이 있는 등쪽과 다리 앞쪽은 후끈거리는데, 몸의 다른 부분은 습습한 안개가 파고들어 체온을 올리지 못한다.
당재터널에 닿아 호남정맥 1일차 스타트 포즈 발사. 터널 벽면에 그려진 벽화가 좋은데 보수를 안해서인지 많이 퇴색되어 있다.
바로 옆에 있는 뜬봉샘으로 간다. 뜬봉샘은 주차장에서 한참 올라가야 하는 곳이라 인증샷을 찍고 얼마 떨어지지 않은 수분재로 이동한다. 바이크로 1,2분도 안되는 거리에 3개의 포인트가 있다.
말치고개를 오르는 길은 평범한 오르막 고개이다. 표지판이나 호남정맥임을 알리는 표지석 등이 없어 고개의 정점에서 인증샷을 남긴다. 말치고개를 넘어서면 말치공원이라는 주차장이 딸린 전망이 좋은 공원이 있으며 아래로 마을이 보이는 광경을 보여준다. 마치 안보여줄래 라고 하다가 뒤늦게 그래 그럼 보고가 라고 하는 듯하다.
비행기고개로 가는 길은 도로 유실로 인해 네비게이션이 안내를 할 수 없다며 꺼져버린다. 백두대간 때도 같은 이유로 네비게이션이 꺼져버리는 현상이 있었는데 똑같은 상황이다. 비행기고개 입구, 아니나 다를까 진입금지 시설을 설치하고 차량의 진입을 막고 있어 다음 경로를 고민하고 있을 때 마을 주민 한분이 차량통제 시설의 터진 틈으로 슬금슬금 들어가시며 내게 무슨 일이냐 물으셔서 사정을 설명하니 공사하는 곳 까지는 아마 올라갈 수 있을거라 이야기 하시며 따라오라 하신다.
고개 중턱 마을의 어느 집으로 들어가시면서 조금 더 올라가면 공사구간인데 거기서 돌아나오면 될거라 하시기에 감사를 표하고 고개를 조금 더 올라가니 비행기 착륙때 창 밖으로 마을이 보이는 것과 같이 마을이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광경이 보인다. 멋진 풍경을 사진에 담고 길을 돌아 내려온다.
다음 목적지인 자고개는 비행기고개를 넘어서 산 중턱을 타고 가 있는 곳인데, 고개를 넘을수 없으니 지나왔떤 말치고개, 수분재를 한바퀴 돌아 가야 하는 길이다. 지난번 백두대간에서 길을 몇번 돌았을 때 순리에 따라 차분하게 가야 한다는 지햬를 얻었기에 좀 짜증은 났지만 왔던 길을 돌아 자고개로 간다.
호남정맥은 백두대간에 비해 찾는 이가 적어서 그런지 상업화가 덜 되어 그런지 고개 표지석이 전혀 없다. 자고개 또한 표지석은 없어 고개 정상에서 인증샷을 남기고 논개 활공장으로 향한다. 아직 기분나쁜 안개가 자욱하다.
논개 활공장으로 오르는 갈림길을 놓쳐 잠시 헤매다 신덕산 표지석이 있는 골목으로 들어선다. 포장된 도로이긴 하나 그리 친절한 상태는 아니고, 마지막 급경사지가 2종 소형 면허 딸 때 협로 주행처럼 좁은 포장도로에 급경사라 자칫 잘못해 한번에 오르지 못하면 낭패를 보기 십상인 상태이다. 게다가 어제 큰 비로 젖은 낙엽들이 빗물에 쓸려 나가다 군데군데 뭉쳐있어 지뢰밭을 연상케 하는 상황이다. 바퀴가 잘못 미끌어져 급경사지에서 슬립이라도 하면 정말 큰 일이 일어나는 형국이다. 조심해서 마지막 경사를 오른다.
안개... 한치 눈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안개... 가만히 있어도 내 안경에 분무기로 물을 뿌린 것 마냥 송글송글 물 입자가 맺히는 안개가 뿌옇고 자욱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여기 풍경이 그리 좋다는데... 어렵게 올라왔는데... 아쉬움이 무거운 안개보다 더 무겁게 밀려온다.
하지만 경험하지 않았던가, 이런 실망스런 상황을 헤쳐나가면 긍정적인 결말을 보여주던 희망을 말이다.
머리로는 부정 끝에 긍정이 찾아온다는 것을 안다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안좋다.
호남정맥은 달리기 좋고 풍경이 아름답다며 극찬을 하였던 곳인데, 10여개의 포인트를 도는 동안 감탄사가 나올만한 풍경은 보이지 않는다.
짙은 안개와 낮게 드리운 구름과 습습하게 체온을 앗아가는 무거운 공기와 햇살하나 비추지 않는 회색빛 풍경은 온 도화지를 의미 없는 무채색으로 칠해놓아 작가의 의도를 가늠하기도 어려운 그림을 보는 것 같다.
가로수도 벚나무나 활엽수를 많이 심어두어 낙엽떨어진 가로수는 앙상한 가지만 드리우고 있어 색깔이라곤 찾아낼수가 없었다.
호남정맥은 나에게 자신의 아름다움을 보여주지 않으려나보다. 마음이 포기하려 한다. 호남정맥은 다음에 봄이나 여름 즈음에 다시 오라는 계시인 것 같다.
좋아하는 과목의 새롭고 호기심 충만한 학습을 기대하지만 그저 무섭고 엄한 선생님이 내 준 하기 싫은 숙제를 하는 기분이다. 호남정맥도 완주라리라 마음먹고 떠난 길, 풍경이라곤 볼 게 없어, 아니 볼 수 없어 묵묵히 길을 달린다.
어짜피 해야 하는 숙제라면 숙제를 다 해서 제출한다는 생각으로 나 스스로 의미를 삼고 기분이라도 좋게 달려보자 생각하고 섬진강 발원지 데미섬에 닿았다.
송림치는 평범한 고개였으나 평범함 뒤에는 또 기대하지 못한 풍경을 만날수 있다는 여행의 참 진리를 배운다. 멀리 마이산의 쫑긋 솟은 말의 귀처럼 보이는 봉우리가 모습을 드러낸다.
사양재는 아주 가까이서 마이산을 볼 수 있는 조망 포인트이다. 멋진 산과 멋진 호수를 배경으로 엄지척 포즈를 날려본다.
습습한 안개에 체온을 올릴수가 없다. 특히 점퍼의 지퍼선을 통해 스믈스믈 들어오는 한기섞인 공기에 배가 차가워지는 느낌이 들어 이러다간 아프겠다 싶어 실로 오랜만에 국밥으로 점심식사를 해 속을 데운다.
가죽재는 다행히 표지판이 있다. 이제 메타세콰이어길로 가는 길이다. 호남정맥에는 2군데 메타세콰이어길이 포함되어 있는데 첫번째라 기대가 된다.
메타세콰이어가 사철 푸른 나무인가? 아닌가? 혼자서 헛갈려하며 기대반 우려반으로 목적지에 도달한다.
하아... 봄여름에 와야 하나 보다. 낙엽진 메타세콰이어길은 봄여름의 아름다운 풍경을 상상으로 덧입혀 추억해 볼 뿐 아쉬운 풍경이다.
평범한 모래재 터널을 넘으면 모래재 드리이브 코스가 나온다. 모처럼 만에 만나는 헤어핀 도로가 나름 재미있다.
상관저수지를 지나 슬치재로 향한다. 성벽처럼 쌓아진 슬치재 생태이동로가 처음 보는 광경이다.
범재, 피재재, 불재로 넘어선다. 숙제다. 기분좋게 하자.
불재 정상에서 조금 더 올라가면 경각산 활공장이 있다. 방금 지나온 논개 활공장의 앞도 안보이는 안개가 문득 떠오른다. 불재 정상에서 동네와 강을 조망할 수 있는 곳이 있어 기쁘게 사진을 찍는다.
경각산 활공장으로 오르는 길은 토지주와의 마찰로 오르는 길을 아예 막아버렸다. 협로에서 어렵게 바이크를 돌려 내려온다.
평범한 영암고개를 넘는다. 이제 오후 3시 30분인데 벌써 24개 포인트를 넘어섰다.
멋진 풍경을 사진에 담고 기억에 넣느라 하루 10여개의 포인트만 갈 수 있었던 이제까지의 여정에 비해 2배가 넘는 속도이다. 물론, 포인트가 조밀하게 붙어있는 곳이 많긴 했지만 평소의 내 스타일에 비하면 아주 빠른 속도의 진행이다.
국사봉전망대와 붕어섬 조망포인트에 닿았다. 오랜만에 보는 기분좋은 풍경에 핼멧을 벗고 사진찍기에 열중한다. 멀리 멋진 장관의 산 능선과 호수 한 복판에 자리한 섬의 풍경이 멋지다. 오늘 본 풍경 중에 제일 좋은 풍경이다.
옥정호 생태터널을 넘어 구절재로 향한다. 날이 흐려 해가 더 빨리지는 듯 하여 마무리 점프를 남긴다.
개운치를 마지막으로 오늘의 일정을 정리한다. 숙제 끝~
무채색의 침울하고 어두운 풍경을 보며 호남정맥은 다음 기회에 푸른 신록이 가득한 계절에 다시 돌아야겠다는 마음이 다시 한번 든다. 내일 내장산 단풍고개를 지나보고도 아쉬움이 많다면 이 또한 더 나은 시기에 더 나은 풍경을 구경하라는 뜻으로 알고 호남정맥은 정리하고 통영 거제 바닷길로 향하려 한다.
오늘의 여정 : 호남정맥 4. 당재터널 ~ 29. 개운치
첫댓글 기온이 많이 떨어졌는데 감기 조심하시고 안라 하세요~~
야신님 반갑습니다. 기온은 단련이 되어가는데 추워지니 좀 집이 그립긴 합니다. 호남정맥도 잘 마무리하고 복귀하겠습니다. 많은 응원 감사드립니다.
노면이 많이 미끄럽습니다
안전운전 하세요
노면이 다행히 얼음이 얼지는 않았는데 조금 더 늦어지면 아마 좀 무섭지 싶네요. 다행히 북쪽에서 남쪽으로 내려와서 그나마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응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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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천한 글입니다만 읽어주셨다니 감사합니다. 호남정맥이 첫날 예쁜 모습을 안보여줘서 좀 아쉬웠습니다만 2일차가 또 예술었습니다.
자유로움이
부럽습니다.
안전운전하십시요
그러게요. 자유롭게 돌아다니는게 구속되지 않아 좋더라구요. 마음도 구속되지 않는게 제일 좋습니다. 호남정맥도 완주하도록 안전운전 하겠습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응원 감사합니다. 즐겁고 행복한 라이딩이라 잊지 못할 추억입니다. 안전하게 호남정맥도 완주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표정이 하나같이 밝아보이십니다~ ㅋㅋㅋ
처음 시작하는 길에 날이 안좋아 약간 우울했는데 어찌 매일 맑은 날만 있을까요? 기분 좋게 다니려고 웃으려 노력했어요. 어짜피 제게 주어진 시간인데 웃어야죠.
대단하십니다
라이딩에.사진에..정비에.후기까지~~^^
형제님들 중에 저보다 대단한 분들도 많으시잖아요. 저야 그냥 사부작 사부작 건드려보는 정도라. 할리는 그래도 이렇게 건드려볼 수 있어 재미있는 것 같습니다.
히야~정말 대단하십니다.
순수한 마음이 참좋네요.
아름다운 님의 열정과
청춘에 박수를..
순수하지는 않습니다만 자연 앞에 겸손해지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자연의 일부이고 작은 존재라는 것도 느껴지고 인간이 아무리 이기려해도 이겨내지 못하는 날씨와 계절의 변화에 순응하는 법도 배우는 듯 합니다.
일요일 지리산을 넘어왔는데요 뵐수있었을텐데요 ,,,
무복을 축하드립니다 ~~~
좀 전에 지리산 운해 사진 봤습니다. 제게는 보여주지 않았던 모습이라
부럽기도 하고 이렇게나마 또 볼 수 있어 고맙기도 하네요. 토요일에 김해 집으로 와서 모사도 다녀오고 와이프 생일도 챙기느라 일요일엔 도로에 있지 않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