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정화 , 탁구선수 출신 김석만과
결혼하기까지 11년간 풀 스토리
“완강하게 반대하던 현정화 어머니를
모시고 살겠다고 설득”

녹색테이블의 여왕 현정화(29)가 시집을 간단다. 오뚝 솟은 코가 매력적이어서 ‘피노키오’라는 별명을 지닌 현정화는 화장품 모델을 했을 정도로 깜찍하고 준수한 외모를 지니고 있다. 그를 보면서 가슴을 설렌 숱한 총각을 제치고 현정화르르 사로잡은 신랑감은 누구인지 사뭇 궁금하다.
글·이승선 기자 /사진·조영철 기자
날카로운 눈매와 높은 콧대에서 풍겨나오는 현정화의 이미지는 단연 이지적이면서 도전적이다. 낮은 코트 저편 녹색 테이블에서 쏘듯이 서브를 넣던 그의 날카로움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그가 선택한 신랑감에 대해 무척 궁금해 한다. “말수가 적고… 그리고 남의 말 잘 안하고, 주변 사람들한테 깔끔하게 예의를 지키는 그런 사람이에요. 평범한 샐러리맨이지요.” 4월 말이나 5월 초쯤 결혼하기로 한 현정화의 신랑감 김석만씨(28). 현재 대우증권 법인부 사원으로 재직 중인 평범한 회사원이다. IMF한파로 한국경제를 걱정해야 하고, 때로는 감봉과 감원을 우려하면서 밤 늦도록 근무하는 요즘 샐러리맨들의 속사정을 지닌 보통사람이란 얘기다. 굳이 다른 점을 찾아내자면 그도 탁구선수 출신이라는 것. 둘의 공통점이랄 수도 있다.
‘나를 편안하게 해주는 사람’
전북 익산 여산 태생의 김석만씨는 여산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탁구를 했다. 탁구 명문인 한일중학교에 입학한 유망주였고 신진공고 시절에는 청소년대표로 발탁될 정도로 활약했다. 실업팀인 대우증권 입단 후 93년 은퇴했다.
현정화의 탁구인생은 널리 알려진 대로 화려하다. 18세 계성여고 시절부터 세계 정상을 밟기 시작해 한국 탁구사상 최초로 세계선수권 전종목 석권이라는 그랜드 슬램의 금자탑을 세웠으니. 이에리사에서 양영자, 그리고 현정화로 이어진 한국 여자탁구계의 자존심이었던 셈이다. 이런 화려한 경력이 현정화를 결코 보통사람으로만 여기지 않게 했던 터다.
“배우자가 뛰어난 사람이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저 나를 편안하게 해주고, 만났을 때 부담이 없는 사람, 그리고 묵묵히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석만씨는 이런 조건을 갖추고 저에게 아주 자연스럽게 다가왔어요.”
둘의 만남은 지금부터 11년 전인 8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김석만씨는 신진공고 3학년 이고 현정화는 계성여고 3학년에 재학중이었다. 훈련원에서 만난 두 사람의 첫인상은 내용이 어찌됐든 강렬했다.
“정화씨요? 이름을 들어 익히 알고 있었어요. 실제 봤을 땐 뭐랄까… 아주 쌀쌀맞게 느껴졌어요.”
냉철한 이미지, 김석만씨 눈에 들어온 현정화의 첫 인상이었다.
“함께 훈련할 때, 눈에 들어왔어요.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고등학생 신분으로 만났던 당시는 둘 다 그저 눈에 띄는 친구에 불과했다. 이들의 만남은 아주 서서히 진행됐다. 친한 탁구선수들끼리 어울려 다니면서 함께 밥도 먹고, 커피도 마시면서. 김택수(대우증권) 선수 등 몇몇 친구와 함께 몰려 다니면서 탁구 얘기도 하고, 시시콜콜한 잡담도 나누는 정도가 다였다. 그러면서 아주 자연스럽게 특별한 관계로 발전했다.
“특별한 일이요? 계기? 기억이 안 나요. 없었던 것 같아요. 오랫동안 만나면서 정이 들고, 서로를 이해하게 된 것 아닐까요. 그러다 보니 결혼도 생각하고….”
입을 맞춘 듯 이구동성이다. 돌이켜보건대 강물 흐르듯 천천히 둘 사이가 발전했다. 90년대 초반 시작된 둘의 만남은 93년 김석만씨의 은퇴 이후 본격적으로 달라진다. 운동선수로서 현정화씨 혼자서 감당해야 했던 외로움이 둘 사이를 더욱 가깝게 했는지도 모른다. 선수촌 합숙생활이라는 게 사생활의 폭을 좁히게 마련이고 그러다 보니 누군가에게 속내를 터놓고 싶은 건 당연한 일.
“스포츠 가운데서도 탁구는 그야말로 혼자만의 싸움이에요. 그래선지 어려서부터 모든 일을 혼자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이런 상황에서 누군가에게 아무런 부담없이 얘기할 수 있다는 건 큰 힘이 됩니다. 내가 부상 중일 때, 성적이 부진할 때 석만씨는 큰 힘이 돼 주었어요. 무엇보다 탁구 세계를 잘 알기 때문에 그랬던 겁니다.”
김석만씨가 은퇴한 이듬해 현정화도 16년 간 함께해온 라켓을 내려놓으면서 두 사람은 모처럼 여유로운 데이트를 할 수 있었다. 영화도 보고, 날 좋은 날 거리를 걷기도 하면서 말이다.
현정화의 동생 지숙씨와 함께 사는 압구정동 집 근처에서 주로 데이트를 즐겼다. 만나면 밥 먹고 차 마시는 게 대부분이었지만 주변 사람들 시선을 의식하지 않은 채 서서히 관계를 발전시켜온 것이다. 그러다가 95년에 결혼에 대한 마음의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예상했던 대로 두텁고 높은 벽이 나타났다. 현정화의 어머니 김말순씨였다. 아버지가 초등학교 때부터 폐질환을 앓았던 탓에 어머니 김말순씨가 가계를 꾸려야 했다. 조리사 자격증을 가진 어머니는 새벽부터 인근 기업체 연수원에 나가 일을 하면서 아버지 병원비와 지금은 결혼한 언니, 그리고 둘째인 현정화, 동생 지숙씨 학비까지 모조리 감당했다.
50년대에 지방 명문이었던 경남여고를 졸업했고, 오랫동안 바깥일을 했음에도 현정화의 어머니는 보수적이고 엄격하게 세 딸을 길렀다. 짧은 치마와 소매 없는 상의조차 허용치 않았다. 밥 먹을 때면 젓가락으로 끼적거리는 것을 용납치 않았고, 밤에는 절대로 손톱을 깎아서는 안되며, 문지방을 밟아서는 안된다고 끊임없이 주의를 주는 그런 분이었다. 그런 어머니였던 터라 결혼을 반대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했다.
“왜 결혼을 반대하는지 두 가지 이유를 말씀하시더군요. 하나는 탁구라는 테두리 안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거였죠. 제가 탁구만 하고 살았기 때문에 배우자만큼은 다른 영역에서 살아온 사람이어야 한다는 거예요. 똑같이 탁구를 했으니 폭이 좁을 수밖에 없지 않겠냐며 저를 설득했어요. 또 다른 이유는 아무리 사회가 변했더라도 남자가 여자보다는 나은 상대여야 한다는 것이었어요. 유교적인 사고를 지닌 엄마였으니 당연했지요.”
실상, 딸을 가진 부모라면 누구나 이런 심정이지 않은가. 둘 다 예상을 하고 있었던 터라 어머니가 허락을 내릴 때까지 기다리기로 작정했다.
“우리가 엄마를 모시고 살게요”
하지만 어머니 김말순씨의 반대는 완강했다. ‘절대 허락할 수 없다’로 초지일관이었다.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났건만 난공불락이었으니 차츰 회의가 들 법도 한 일이다. 이도저도 아니라면 일부터 저지르고 나중에 허락받는 일도 세상사에선 비일비재하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용기도 부족했고, 또 고생해서 세 딸을 키운 어머니에 대한 도리가 아니었다.
“해가 바뀌어도 어머니의 반대가 누그러지지 않으니, 어쩌면 결혼을 못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석만씨와 결혼하지 못한다면 혼자 살 생각이었어요. 엄마한테 그런 얘기도 했지요. 석만씨 아니면 혼자 살겠다고. 그런데도 끄떡하지 않으셨어요. 차라리 혼자 살라고 하시더군요.”
현정화의 어머니를 만나고 나면 둘 다 말이 없었다. 어떤 때는 둘 다 한마디도 안하고 차만 마신 적도 있었다. ‘허락을 받을 때까지 끝까지 기다리겠다’는 원칙에만 암묵적으로 동의할 따름이었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지 않은가.’ 서로 위로하며 맹목적으로 기다리는 것 외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을 때였다.
그러던 지난해 어머니 김말순씨의 마음을 열 수 있는 기회가 왔다. 현정화의 끊임없는 설득과 노력 덕이었다.
“엄마, 우린 딸만 셋이잖아요. 언니는 시집갔으니 엄마를 모시고 살 수도 없고, 지숙이는 아직 어려요. 석만씨는 형제중 막내예요. 석만씨가 엄마를 모시고 살고 싶다고 했어요. 나도 엄마와 함께 살고 싶어요.”
이 말 때문이었을까. 서서히 엄마의 마음이 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주위 분들의 열렬한 성원이 있었다. 대우증권 감독인 김병승씨는 둘의 사랑이 결실을 맺기까지 산파역할을 했다. 그렇게 하여 드디어 엄마의 허락을 받아낸 것이다.
지난 1월에는 김석만씨의 고향인 전북 익산으로 함께 내려가 인사도 했다. 설 이전에 양가 부모의 상견례도 했으니 지난한 세월은 끝이 난 셈이다. 예정대로라면 4월25일에 식을 올릴 생각이지만 예식장 잡기가 워낙 힘들어 5월 초쯤으로 미뤄질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결혼을 앞둔 신랑신부로서 준비해야 할 일도 많을 터인데, 요즘은 둘이 마주앉아 얼굴 보기도 힘든 형편이라고 한다.
마사회 코치 겸 청소년 여자대표단 코치인 현정화는 요즘 경북 구미에 위치한 제일모직 구미공장내 상비군 전용 훈련원에서 후배 선수들을 지도하느라 눈코뜰 새가 없다. 지난 2월12일부터 17일까지는 일본 야마구치현에서 열리는 서일본 탁구대회를 치르느라 출국해 있었고, 귀국하자마자 구미로 다시 내려갔다. 예비신부가 데이트할 새도 없이 바삐 다니는데도 김석만씨는 태평하다.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으로 살기를 바래요. 지금은 후배 선수들을 지도하는 입장이니, 선수들이 좋은 성적을 내는 게 가장 중요한 일이겠지요. 결혼해서도 정화씨가 하는 일만큼은 적극적으로 지원할 생각이에요. 단지 체력이 약해서 걱정일 따름입니다.”
일에 대한 부분은 서로가 되도록 관여하지 않고 존중해주기로 했다는 게 현정화의 얘기이기도 하다. 코치 생활이란 게 현역선수 시절과 크게 다르지 않으니, 합숙 훈련을 하거나 시합이라도 있게 되면 집에 들어오지 못하는 일도 비일비재한 탓이다. 탁구선수 출신이라 일에 대한 이해는 그만큼 크다고 한다.
여느 신랑신부처럼 이들도 결혼을 앞두고 설렘을 감추지 못했다. 중학교 때부터 객지 생활을 한 김석만씨는 결혼하면서 갖게 될 보금자리에 대한 기대가 남다르다. 객지생활을 오래 한 덕에 요리솜씨도 꽤 수준급이다. 웬만한 반찬이나 찌개는 자신이 있다며 자랑한다. 한식을 즐기는 그이지만 신부가 좋아하는 양식도 가끔은 만들어볼 생각이란다. 어차피 서로가 일을 갖고 있으니 집안 일은 함께 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고 솜씨 좋은 김석만씨는 적극적으로 그 일을 해낼 것 같다.
얼핏 무뚝뚝하게 느껴지지만 의외로 잔정이 많다면서 신랑 칭찬을 아끼지 않는 신부는 결혼하면 되도록 아이를 빨리 낳을 생각이다. 구체적으로 계획을 세우지는 않았지만 나이도 웬만큼 찼으니 차라리 빨리 낳아 기르는 게 좋을 것 같아서란다.
‘녹색 테이블’에서 화려한 전력을 세운 ‘핑퐁 여왕’이 이제 후배 탁구선수를 양성하는 지도자로서, 또 보통사람의 아내로서의 삶을 준비하는 모습이 봄날 오후처럼 넉넉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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