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우석사태'라는 용어 사용은 지식인의 직무유지

[혜도짱]

• '황우석사태'라는 용어사용은 지식인의 직무유기 [16]
• 수운

• 번호 24621 | 2008.03.27
• 조회 818

어느날 제자가 공자에게 물었습니다. 정치의 요체가 무엇이냐고. 그랬더니 공자가 한 말, "사물의 이름을 정확하게 쓰는 것이다."

학식있는 지식인과 힘있는 정치가들이 검은 것을 검다고 말하고 나쁜 것을 나쁘다고 써야지 검은 것을 희다고, 나쁜 것을 좋은 것이라 규정하는 순간 인식의 혼란과 사회적 착각이 빚어진다는 공자의 '정언론'의 한 대목입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이 나라의 지식인 여러분께 묻고자 합니다. 3년 전 그 일을 '황우석 사태'라고 규정하는 것이 맞습니까?

미즈메디의 바꿔치기(섞어심기)가 사실로 밝혀지고 배반포까지의 황우석팀 기술이 진실로 밝혀진 오늘날까지도 그 때 그 일을 마치 황박사 개인이 경천동지할 대국민 사기극을 펼친 것처럼 규정하는 '황우석 사태'라는 용어가 과연 사물의 본질을 드러내는 정확한 용어선정이냐는 것입니다.

이름있는 대학교수들이 그렇게 말한다고 해서, 힘있는 방송사가 그 용어를 밀어부친다고 해서, 시간이 많이 흐른만큼 잊어버렸을것이라 해서 그런 용어 채택에 대해 못 본 척 넘어가고 침묵하고 동조하고 때로는 그 흐름에 몸을 맡긴 채 할퀴고 조져대는 게 지식인의 올바른 모습이냐는 것입니다.

     지식인의 역할은 사물의 이름을 정확하게 쓰는 것

모두가 아무렇지도 않게 '북괴'(북한 괴뢰정권)라는 용어를 쓰던 1960년대 말, 한 신문사가 이례적으로 북괴가 아닌 '북한'이라는 용어를 쓰기 시작합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그 신문사는 조선일보였고, 기자의 이름은 당시 외신부장을 하던 '리영희'라는 기자였습니다. 지난 2007년 각계 지식인 74명이 민주화 이후 우리 사회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지식인 중 한 분으로 꼽은 바로 그 리영희 선생 말입니다.

                          ▲ 사진: 오마이뉴스 '부시 재집권 이후를 생각한다' 중 남소연기자의 사진 (2004.11.3)

그는 종북주의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숱한 냉대를 무릅쓰고 '북한'이라는 용어를 고집했고 조금 있어 한국일보가, 다른 언론이 따라하고 10년 뒤 정부조차 '북한'이라는 용어를 쓰기 시작합니다.

"나는 여러 정보로, 북한이 결코 소련이나 중공의 괴뢰가 아니라고 믿을 만한 많은 증거를 갖고 있었어요. 오히려 1960년대에 중공에서 문화대혁명이 시작되자 북한과 중공 사이에 대립적인 관계가 형성되거든요. 소련이 제일 미워하는 국가도 북한이었어요." (리영희 저작집11 '대화' 한길사)

이런 그의 판단은 당시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푸에블로호 사건'(1968.1.23)을 통해 입증됩니다.

푸에블로호는 미국이 자랑하는 최첨단 정보수집함선인데 영해를 침범했다는 이유로 북한에 나포됩니다. 미국은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국 배와 선원을 구하려 합니다. 당시 미국과 밀월관계에 있던 소련을 움직여 북한에 압력을 넣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북한은 10개월 동안 꿈쩍도 하지 않았고, 결국 미국은 자신들이 북한 영해를 침범했다는 당시로서는 무척이나 굴욕적인 문서에 사인을 하고서야 36명의 선원을 돌려받습니다. 배는 돌려받지도 못했죠. 그 뒤 미국의 존슨 대통령은 대국민 보고를 통해 이런 말을 했습니다. "North Korea seems to be out of the pressure of the USSR"(북한은 소련의 압력 바깥에 있는 듯 합니다) 이런 정황증거를 외신기사를 통해 들여다본 리영희 기자는 조그마한 용어 선정 하나에 자신의 기자생명을 거는 바보같은 짓(?)을 한 것입니다.

"이와 같은 하나의 낱말을 사용하는 데 있어서도 나는 깊이 생각하고, 또 그 타당성 여부를 여러모로 검증하면서 언론인 생활을 했어. 무슨 말인가 하면, 나는 한국 언론계는 물론 지식인 전반과 국민들이 정상적인 사고와 논리적 고찰을 거치지 않은 채 '북괴'와 같은 용어를 사용한 것으로 인해, 극우·반공적 독재정권의 왜곡된 실체를 정확하게 인식하지 못하게 됐다고 생각하고 있었어." (리영희 '대화' 중)

  '태안' 기름유출입니까? 아니면 '허베이-삼성' 기름유출입니까?

태안 앞바다에 자그마치 1만2천547kl의 원유가 쏟아진 그 사건을 일컬어 '태안 기름유출사고'라 부르고 있습니다. 이는 지식인과 언론이 숭상해마지 않는 국제관행이나 사료에 비춰보더라도 잘못된 용어사용입니다.

미국의 알래스카 앞바다에서 일어난 사고에 대해 미국인들은 '엑손 발데즈호 사고'라 부르지 '알래스카 기름유출'이라 부르지 않습니다. 13년 전 여수 앞바다에서 일어난 사고도 여수 기름유출사고가 아니라 '시프린스호 사고'라 합니다. 제5금동호 사고(1993), 제1유일호 사고(1995), 호남사파이어호 사고(1995), 제3오성호 사고(1997)도 모두 피해지역 명이 아닌 가해선박명을 따서 명명되었습니다.

그런데 어찌해서 이번 사고만 가해선박인 '허베이 스피리트-삼성'사고가 아닌 '태안' 사고로 기록되어야 하는 것입니까? 그 용어가 사람들의 머리속에 박혀있는 한 삼성 등 가해자는 은폐되고 보호되고, 반면 태안 주민들과 그곳 농수산물은 죽을 때까지 '오염지역'이라는 꼬리표에 시달릴 것입니다. 

▼ 사진 한겨레21 윤운식 기자

"언론이 특정 사건을 이름 짓는 방식은 그 사건을 어떻게 이해하는 지를 보여주는 핵심적 프레임이다."

 "이번 사고가 인재(人災)인데도 대부분의 언론은 마치 지진이나 태풍이 난 것처럼 '천재'(天災)로 다룸으로써 재난을 빚은 회사에 보도의 초점이 맞춰지는 것을 피했다."

 "자원봉사는 태안을 살리고, 자원봉사 보도는 삼성만 살렸다."  - 이창현 국민대 언론정보학부 교수(한겨레 2008.2.4)

 "재난 발생지가 주요한 농수산물 생산지일 때는 자칫 지역민의 생계가 위협받을 수 있기 때문에 그 지명을 이름에 쓰지 않는 것이 상식이다."  -이승선 충남대 언론정보학부 교수(한겨레 2008.2.4) 

"이 사건은 '삼성중공업 서해 기름오염 사고' - 환경운동연합 등 환경단체(한겨레 2008.2.4)

   '황우석 사태' 입니까 '줄기세포 논문조작사건' 입니까?

먼저 다른 나라의 명명 사례를 살펴보겠습니다.

논문조작 사건의 이름은 과학자들이 속한 기관이름이나 대학이름, 혹은 대표연구자의 이름이 아니라, 조작을 실제로 능동적으로 주도한 주체의 이름을 따 사건명을 규정합니다.

하버드 의대 조작사건이 아니라 '존 다시' 사건으로, 연구책임자였던 로버트 굿 사건이 아니라 '윌리엄 서머린' 사건으로, 벨 연구소 사건이 아닌 '쇤' 사건으로 불리는 이유입니다. 조작주체에 대한 양측의 입장이 첨예하게 엇갈릴때는 두 사람의 이름을 모두 써 '헤르만-브라흐' 사건이라 칭하기도 합니다. 노벨상 수상자였던 유명공동저자의 이름을 따 '볼티모어' 사건이라 명명된 사례도 있지만, 이 사례는 부정행위로 최초판결되었다가 재심을 거쳐 '무죄'로 번복돼 미국을 여러 번 떠들썩하게 했습니다.

단독범행은 아닌게 확실한데 공범의 실체를 정확하게 가려내지 못하는 경우 사람이름이 아닌 주제명을 써서 사건규정을 내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최초의 과학사기 사건이라 하는 '필트다운인 사건'이 그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조작된 필트다운인의 화석을 보고한 찰스 도슨이라는 아마츄어 탐사가 이외에도 30여 명이 넘는 공범이 개입돼있을 것으로 유럽 학계에서는 아직도 진실게임을 벌이고 있기에 그 사건을 '찰스 도슨' 사건이 아닌 '필트다운인'사건으로 명명하는 것입니다.

           < 세계 주요 논문조작사건 명명사례 > * 과학기술부 발간 '실천연구윤리'(2007)와 뉴욕타임즈 관련기사 재정리

1912년 오랑우탄의 턱뼈를 사람 뼈로 속여 '인류조상은 영국인'이라 주장한 사건 : 필트다운인 사건

1974년 미국 슬론-케터링 연구소 로버트 굿 소장 연구팀 '색칠한 쥐' : 윌리엄 서머린(연구원) 사건

1981년 미국 하버드 의대 브론월드 교수팀 심장연구논문 조작 : 존 다시(보조연구원) 사건

1994년 영국 세인트 조지 병원 산부인과 희귀질환 논문조작 : 말콤 피어스(의사) 사건

1997년 독일 암 연구분야 최소 27편 논문 조작, 검찰 개입 : 헤르만-브라흐(공동저자) 사건

2002년 미국 벨 연구소의 나노기술 논문조작 및 박사학위조작 : 얀 헨드릭 쇤(32세 연구원) 사건

2005년 일본 동경대 RNA관련 논문 재현실험 부여끝 조작확인 : 다이라 가쓰나리(교수) 사건

그런데 왜 우리나라만 재현기회도 부여하지 않은 상태에서 바꿔치기는 밝혀내지도 않은 상태에서, 그리고 검찰조사 결과 학제간 공동연구 파트너인 미즈메디 실무책임자(김선종)의 사전공모없는 명백한 업무방해행위(바꿔치기 혹은 섞어심기)가 확인된 현재까지도 '황우석-김선종 사건'도 '줄기세포 논문조작사건'도 아닌 '황우석 사태' 라 부르는 것입니까? 여러분이 부모입장이라면 이런걸 진실이고 객관이라고 아이들에게 가르칠 수 있습니까?

                          - 2006.5.12 검찰수사결과, 

                             미즈메디 연구책임자 김선종씨의 줄기세포 11개 섞어심기와 DNA 등 검사결과 조작 확인

                             (필자분석결과, 검찰이 말한 섞어심기는 황우석측이 최초수사요청한 바꿔치기 개념과 정확히 일치)

                             김선종-황우석 사전공모 여부는 거짓말탐지기 동원 결과 '공모없음'으로 김선종 단독범행 확인

                             황우석씨는 오염사고로 세포사멸 뒤 섀튼과의 논문강행 협의후 사멸세포 사진 등 검사조작지시시인

                             (논문부풀리기는 시인하나 줄기세포 수립 후 타기관에 분양한 점 등 데이터날조 의사없음 강력주장)  

                             검찰은 1번 줄기세포 검사결과 조작지시 혐의등으로 황우석씨 사기횡령 기소. 김선종씨 범행인정.

                             그러나 황우석씨는 검찰기소가 미즈메디 김선종-박종혁의 말맞추기 진술에 의존했다며 법정공방시작.

                           - 2007.5.15 제11차 공판, 검찰측 증인인 차병원 이동률교수 등 황우석팀 배반포사진 판독후 

                              "배반포 상태만을 보았을 때 줄기세포를 수립할 수 있는 수준" 법정증언

                           -  2007.8.28 제15차 공판, 검찰측 증인으로 출석한 김선종 연구원 자신의 녹취록에 대한 법정진술

                               노성일 "서울대 조사에서 한 방에 끝내자" 윤현수 "어차피 서울대 조사위는 황을 죽이려하더라"

                           -  같은날 황우석 박사 법정진술 

                               '처녀생식맞다는 하버드논문 나오기전 NT-1 국제공동검증 제안했으나 문신용교수 비협조로 무산'

                           - 2008.1.29  제21차 공판, 검찰측 증인으로 출석한 두 명의 서울대 조사위원 법정진술

                              '조사위원 최종날인한 8쪽분량 보고서 내용 누락확인' 누락내용은 당시 황박사주장 바꿔치기 관련자료

  광기의 시대, 진실의 끈을 놓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혹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황우석 사태'가 아닌 '줄기세포 논문조작사건'이라 명하는 것은 황우석 박사의 조작행위를 물타기하려는 술책 아니냐고. 그러면 저는 이렇게 묻고 싶습니다. 황박사를 사기죄로 기소한 검찰은 왜 '줄기세포 논문조작사건'이라는 명칭을 처음부터 사용했느냐고. 법정을 가보면 물타기는 커녕 지나칠 정도로 황박사의 오류를 부각시키는 그들이 과연 물타기 집단이냐고. 미즈메디의 바꿔치기가 사실로 드러난 2006년 3월부터 공영방송 KBS의 뉴스에서 나타난 미세한 변화...MBC와는 확연히 차이나는 변화는 바로 '황우석사태'가 아닌 '줄기세포 논문조작 사건'으로 통칭하는 것이었다는 것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KBS가 황빠 방송입니까? 그래서 추적60분 만들어놓고 방영조차 하지 않았습니까?

지난 2005년 12월 말, 'MBC죽이기'로 흐르던 흐름이 반전을 거듭해 '황우석죽이기'로 넘어갈 무렵, 유서깊은 언론시민단체인 '민언련'은 이런 논평을 냈었습니다.

 "MBC죽이기에서 황우석 죽이기로 선회하는 '하이에나 저널리즘'을 경계한다." -민주언론시민연합 2005.12.25 논평

아쉽습니다. 만일 우리 지식인과 저널리즘이 이 말만 지켰더라도 오늘날까지 전개되는 소위 황빠-황까 간의 소모적인 난타전을 막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 시간에 우리는 국익과 윤리가 수평을 잡고 재도약을 하는 진정한 생산적 논의를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아쉽습니다. 참으로 아쉽습니다. 이런 논평을 냈던 시민단체조차 황우석 죽이기 대열의 선봉에 서는 자기 배반과 광기의 행렬을 잠자코 지켜보기만 했던 게 아쉽고, 그에 맞선 말과 글과 프로그램이 침묵의 대열을 돌파하지 못한 게 아쉽습니다. 죄스러울만큼.

지식인 여러분, 언론 선후배 여러분.

그 일이 발생한 지 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서울 계동의 보건복지가족부 청사앞에는, 청와대 앞에는, 국회의사당 앞에는, 서울대 앞에는, 평범하기 그지없는 이 나라 국민들의 소리없는 절규가 울려퍼지고 있습니다. 비를 맞으며 대통령에게 '이 늙은이의 이승에서 마지막 소원이니 황박사팀 연구승인 해달라'는 피켓이 오늘도 저의 눈시울을 붉게 물들입니다. 이 분들을 비웃으며 광기와 파시즘의 '연구대상'으로나 생각하는 것이 지식인의 책무가 아니며, 모르면 모른다고 하고 알기 위해 끝까지 진실의 끈을 놓지 않는 것이 진정한 지식인의 책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 2008년 3월26일 서울 계동 보건복지가족부 청사 앞, 주위는 대통령 경호인력과 사복경찰

출처 :  http://blog.hani.co.kr/nopd/10542  시골피디님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