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오후에 빨간 실을 단 고추 잠자리가 날아 다니고 어디 한적하고 평화로운 곳에 휴대용 포터블 카세트를 갖고 간다면 나는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란 하루끼의 소설을 함께 가지고 가고 싶다.
CF를 보는 듯한 문장과 담백하고 적절한 언어구사,절제를 강조한 나머지 여백의 미마저 느껴지는 행간과 행간사이의 아름다움은 소설이라기보다는 에스프리를 읽는 듯한 느낌을 선사한다.
하루끼의 문학적 재능이 소박하게 그려진 작품으로써 그의 작품전체에 일상적으로 나타나는 상실의 감정이 부드럽게,여름날의 한바탕 뿌리는 소나기처럼 진솔하게 나타나 있어 이렇게 글을 쓸수도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게 했다.
사랑보다는 젊은날의 방황,막연한 그리움 인생에 대해 나름대로 진지하게 고민하고 탐색하는 과정이 가벼운 농담과 따뜻한 시선속에 적절하게 섞어 놓아 묘한 설득력을 가지게 되어 작가에게 첫 수상의 기쁨을 가져다 준 데뷰작으로써
어딘가 일본 소설의 전통인 탐미주의 경향도 보이나,내면을 자유롭게 ON/OFF시키면서 유머와 패러독스속에 모르는 척 시치미를 떼곤하여 실소를 금치 못하게도 하는 작품.
미국문화에 해박한 작가의 농간으로 바닷가에 위치한 고적하고 한가로운 도시를 라디오 방송,자동차,쥐라 불리우는 친구와J,S BAR와 손가락이 잘린 말이 없는 중국인 주인 그리고 숱한 경구와 팝송으로 포장하여 편안한 호흡으로 읽을 수 있게 도와주는 재치가 단연 돋보인다.
가장 맘에 드는 구절은 한가로이 청춘을 소일하는 지은이의 연약하고 심약한 감수성을 위로하듯 흐르는 밥 딜런의 "DON;T THINK TWICE IT,S ALLRIGHT"이란 노래이다.
두번 생각하지마..이미 끝난 일이잖아...괜찮아질거야..라니..이 얼마나 근사한 말인지...전화기잡고 방황하는 와타나베나 바닷가에 앉아서 슬쓸히 우는 누구보다 훨씬 로맨틱하고 아름답지 않은가..
언제나 상실의 아픔을 잡고 씨름하는 하루끼가 보다 젊었을때 건강하고 COOL하게 써내려갔던 작품으로 트랜디 드라마혹은 깔끔한 청춘소설의 전형을 보는 듯한 여운을 준다.
젊음에 국적이 있을수는 없지만 어딘가 일본의 감이랄까...
하는 느낌이 못내 아쉽다.
그러나 젊음이 언제나 뜨거울 수 만은 없지 않은가...
가끔은 쿨하게...냉장고의 서리가 되지 않을 만큼만...
쿨하게 살 수있다면..그것도 나쁘지 않을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