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히말라야를 보고 . .
이 영화는 8,000m 이상의 히말라야 고봉 14좌를 아세아 최초로 세계 8번 째 등산 한 산 사람인 엄홍길 대장의 이야기 일뿐만 아니라 히말라야 등반 중 생을 마감한 동료의 시신을 찾기 위해 기록도, 명예도, 보상도 없는 목숨을 건 여정을 떠나는 엄홍길 대장과 휴먼원정대의 감동 실화 영화다. . 또한 사람과 사람들 사이에 어떻게 인간관계를 맺어야 하는 가를 보여주는 함축한 인간의 내면의 이야기다. . 인간의 역사가 있는 한 어느 곳에선들 人間愛에 대한 진한 이야기는 살아 있게 마련이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위대하게 돋보이는 것은 생사를 넘나드는 극한의 상황인 눈 속에서 인간애가 어떻게 발아(發芽)되어 살아 움직이고 있는 가를 한 땀 한 땀 엮어 낸 조탁(彫琢)한 영상의 극치이기 때문이다. . 사람은 내가 누구이고 어떻게 살아 갈 가를 인식한 순간부터 인간으로 성숙 해 가고 익어가는 순간이라고 한다. . 그런 면에서 이 영화는 인간의 내면을 맛 갈 나게 표현 했으며 잘 만들어 진 수작이다. . 나는 항상 왜 많은 산악인들이 그 험한 히말라야를 오르며 목숨을 잃어야만 하는지 궁금했다. . 8,000m이상의 히말라야 정상에 오르는 일이 목숨과 바꿀만한 가치가 있고 위대하단 말인가. 산을 모르기 때문에 그런 말을 하는지는 모르겠으나 목숨을 잃는 것을 보면 너무 안타까운 생각이 들곤 한다. . 이 영화는 전 화면이 신의 영역인 히말라야의 야생의 이야기다, 세차게 휘몰아치는 바람, 휘날리는 눈보라, 크레파스, 비바크, 언제 어디에서 일어날지도 모르는 상상을 초월한 눈사태 그야말로 고봉이 안고 있는 극한 상황을 모두 담고 있다. . 그래서 전 화면은 음울한 습기와 흰색 뿐 이다. 간간히 휴먼 원정대의 행렬과 발자국이 이곳에 왔음을 입증할 뿐이다. . 산 사나이들은 산을 정복 했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신의 영역인 히말라야의 어느 한 정상에 오르는 것은 신이 허락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 이 영화는 인간의 도전의 한계와 산 사나이들의 우정을 질기고 끈끈하게 말해주고 있다. . 모든 산악인들은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산을 오르면서 결코 목숨을 버려도 좋다고 느끼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 다만 그것은 결과적으로 나타났을 뿐이라고 어리석은 질문이지만 보통 사람들은 왜 목숨을 건 그렇게 위험한 등산을 하느냐고 물으면 산 사람들은 산이 거기 있기 때문이라고 알 것도 같고 모를 것도 같은 대답을 한다. . 영화에서도 그렇게 말하고 있다. 가끔가다 설산의 텐트 속에서 나오는 현실적인 이야기가 그들의 마음을 담아내고 있다. . 우리가 정상을 오르고 내려와서 2002년 월드컵을 볼 수 있을까. 산 사나이들은 소주잔을 들면서 인도, 네팔의 나마스떼 라는 인사말을 즐겨 쓴다. . 나마스떼의 뜻은 내안의 빛이 당신 안의 빛을 압니다. 라는 다분히 철학적인 의미가 내포된 인사법 이며 산 사람들의 마음인 것 같다. . 간혹 가다 잔주름같이 일어나는 따듯한 일상사, 남녀 간의 사랑의 이야기가 그나마도 신의영역에 도전하는 산 사나이의 마음을 녹여 줄 뿐이다. . 역시 히말라야는 위대하다. 이 영화를 보면서 감히 꿈도 꾸지 못 할 일이지만 마음속에서나마 히말라야의 한 정상에 오르는 대리 만족의 기분을 느낄 수 있다. . 아직도 산은 거기 있기에 세계의 많은 산악인들은 어제 산악인들의 목숨을 앗아간 그 산을 오늘도 또 오른다. . 이제 세상은 쉴 사이 없이 변하고 있다. 오늘이 어제가 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 어제를 싫어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어제에 발목 잡혀 오늘을 살아야 하는 것이 우리들의 운명이다. . 그래도 오늘은 중요하다. 더 중요한 것은 오늘의 나다. . 오늘도 산악인들은 또 히말라야의 어는 고봉에 도전 할 것이며 나는 내가 가야 할 길을 가는 것이 오늘의 내가 할 일이다. 모처럼 영화다운 따듯한 영화를 보았다. . 극 중에서 엄홍길 대장에게 가장 아름다운 등반이란 무엇이냐는 질문이 있었다. . 이에 엄홍길 대장은 내가 생각하는 가장 아름다운 등반은 박정복 대원에 등반이라 답하였습니다. . 저 또한 이 말에 크게 공감합니다. 끝으로 고인이 된 박무택, 박정복, 산악인의 명복을 빕니다.
2015년 12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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