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08월 21일 (수)
제목 : 소년 예수
오늘의 말씀 : 누가복음 2:41-52 찬송가: 137장
41 그의 부모가 해마다 유월절이 되면 예루살렘으로 가더니
42 예수께서 열두 살 되었을 때에 그들이 이 절기의 관례를 따라 올라갔다가
43 그 날들을 마치고 돌아갈 때에 아이 예수는 예루살렘에 머무셨더라 그 부모는 이를 알지 못하고
44 동행 중에 있는 줄로 생각하고 하룻길을 간 후 친족과 아는 자 중에서 찾되
45 만나지 못하매 찾으면서 예루살렘에 돌아갔더니
46 사흘 후에 성전에서 만난즉 그가 선생들 중에 앉으사 그들에게 듣기도 하시며 묻기도 하시니
47 듣는 자가 다 그 지혜와 대답을 놀랍게 여기더라
48 그의 부모가 보고 놀라며 그의 어머니는 이르되 아이야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하였느냐 보라 네 아버지와 내가 근심하여 너를 찾았노라
49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 하시니
50 그 부모가 그가 하신 말씀을 깨닫지 못하더라
51 예수께서 함께 내려가사 나사렛에 이르러 순종하여 받드시더라 그 어머니는 이 모든 말을 마음에 두니라
52 예수는 지혜와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스러워 가시더라
중심 단어: 예수, 열두 살,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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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 예수의 성숙
42-43절: 12살이 되어 혼자 예루살렘에 머물 정도로 신체가 성숙하심
46절: 선생들 중에 앉아 교제할 정도로 관계가 성숙하심
47절: 지혜가 성숙하심
49절: 하나님과의 관계가 성숙하심
51절: 부모와의 관계가 성숙하심
도움말
1. 유월절(41절): 출애굽 직전 죽음의 사자가 이스라엘 백성의 집을 넘어가 생명을 건지고 애굽에서 해방된 것을 기념하는 절기다. 아빕월(정월) 14일 저녁에 지켜졌다.
2. 성전(46절): 주로 성전 건물이나 마당, 뜰 등 성전의 외적(外的) 요소를 가리킨다.
3. 아이(48절): 갓난아이부터 어린이, 소년 등 청년기 전의 모든 남녀 아이를 지칭하는 매우 광범위한 표현이다.
말씀묵상
지혜의 성숙
예수님은 아기에서 소년으로 자라 가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모든 것을 스스로 책임질 나이인 12살이 되신 예수님은 절기의 관례를 따라 부모와 함께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습니다(42절).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혼자 머물 정도로 키가 자라셨고(43절), 예루살렘의 율법교사들과 토론하고 그들이 놀랄 정도로 지혜가 뛰어나셨습니다(46-47절). 예수님의 보호자였던 요셉과 마리아가 “아이야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하였느냐 보라 네 아버지와 내가 근심하여 너를 찾았노라”(48절)고 말하며 염려했지만, 예수님은 그 염려가 무색하게 지혜와 신체가 성숙해 가셨습니다.
관계의 성숙
예수님은 사회 안에서도 사회적인 관습에 대해 책임질 수 있을 만큼 성숙하셨습니다. 우선 성인으로서 유월절 의식을 치를 만큼 사회 속에서 인간관계가 성숙하셨습니다(42절). 그리고 예루살렘의 율법교사들과 자연스럽게 관계를 맺고 그들 사이에 앉아 토론할 정도로 성숙하셨습니다(46절). 또한 예수님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도 매우 성숙하셨습니다.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49절)라는 예수님의 말씀에서 이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미 하나님과의 관계를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로 설정해 놓고 계셨습니다. 모든 면에서 성숙해 가시는 예수님의 모습에서, 우리는 하나님과 사람에게 점점 더 사랑스러워 가시는 예수님을 볼 수 있습니다(52절).
도움질문
본문 관찰
1. 본문에서 소년 예수의 성숙에 대한 내용을 살펴보십시오(주제별 목록 작성 참조).
2. 성전의 율법교사들은 12살의 예수님의 지혜와 대답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47절)?
3. 본문의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깊은 묵상
1. 최근 여러분은 신체, 지혜, 하나님과의 관계가 성숙해 가고 있는 것을 느낍니까? 그중 가장 성숙이 필요한 부분은 무엇입니까?
2. 여러분이 성숙해 가는 것을 방해하는 것이 있다면, 말씀을 통해 균형 잡힌 성숙을 이뤄 가도록 노력해 보십시오.
3. 오늘 여러분에게 주시는 특별한 말씀(깨달은 점, 느낀 점, 적용점 등)은 무엇입니까?
제공:프리셉트
<오늘의 묵상>
눅1:2 처음부터 목격자와 말씀의 일꾼 된 자들이 전하여 준 그대로 내력을 저술하려고 붓을 든 사람이 많은지라
예수님의 유년 시절을 기록한 복음서들이 남아 있긴 하지만 모두 정경으로 인정받지 못해 전승으로만 전해 내려오고 있다.
아마도 정경으로 채택되지 못했던 이유는 사실적인 기록이라기 보다는 기적을 행하셨던 전설적인 이야기들을 기록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라는 생각을 해 보게 된다.
진흙으로 참새를 만들고 “날아가라!”라고 명령하자 참새들이 살아서 날아갔다는 이야기. 함께 놀던 아이가 죽자 예수님이 살려낸 이야기...
어쩌면 가나의 혼인잔치 때 왜 마리아가 예수님께 아직 때가 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저들에게 포도주가 없다’라고 했는지 짐작하게 된다.
하지만 누가는 오늘 그런 기적을 행하신 사건이 아니라 예수님의 성장 과정에서 얼마나 지혜롭고 사랑받으신 분인지를 기록하고 있다. 또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그리스도이시면서도 마리아와 요셉에게 순종하는 소중한 아들이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오래전 신약을 읽다가 요셉의 생사가 궁금했던 적이 있었다.
십자가 상에서 예수님은 사랑하는 제자 요한에게 어머니 마리아를 부탁한다.
‘요19:26 예수께서 자기의 어머니와 사랑하시는 제자가 곁에 서 있는 것을 보시고 자기 어머니께 말씀하시되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하시고 27 또 그 제자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어머니라 하신대 그 때부터 그 제자가 자기 집에 모시니라’
하지만 그 자리에 요셉을 찾을 수가 없었다. 요셉의 생사를 마지막으로 확인할 수 있는 곳은 바로 눅2장 50절이다. ‘그 부모가 그가 하신 말씀을 깨닫지 못하더라’
전승에 따르면 요셉은 예수님이 20대 중반이었을 때 사망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내 생각에는 예수님이 ‘아버지’라고 부르실 때는 언제나 ‘하나님’을 지칭했었다. 그렇기 때문에 공생애를 시작하기 전에 요셉을 데려가신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해 보게 된다.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 마리아와 요셉은 예수님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올라오게 된다. 마치고 돌아갈 때 예수님은 성전에 머물렀고 가족들은 그 사실을 모른 채 나사렛으로 향해 하룻 길을 가게 된다.
일행 중에 예수님이 없다는 것을 알고 마리아와 요셉이 다시 예루살렘으로 향한다.
사흘 후에 성전에서 만나기까지 부모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아들을 잃어버렸다!’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선생들 중에 앉아서 그들에게 듣기도 하시며 묻기도 한다. 이 모습을 본 부모의 모습은 얼마나 기가 찼을까? 괘씸하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하다. 그런데 아이가 선생들과 대화하는 것을 듣고 그 지혜와 대답에 놀라는 모습을 보고 부모는 더 놀라게 된다.
“아이야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하였느냐 보라 네 아버지와 내가 근심하여 너를 찾았노라”
그러나 예수님은 이해할 수 없는 말을 마리아와 요셉에게 한다.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
마리아와 요셉은 예수님이 더 이상 어린 아이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을 것이다.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
마리아와 요셉에게 예수님의 성장과 성숙이 기쁜 일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예수께서 함께 내려가사 나사렛에 이르러 순종하여 받드시더라 그 어머니는 이 모든 말을 마음에 두니라 예수는 지혜와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스러워 가시더라’
예수님은 이제 성인이 되어가고 있다. 이런 예수님을 지켜보는 마리아와 요셉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아들이면서도 아들이 아닌 관계? 마리아의 아내요 예수의 아버지로 살아갔던 요셉의 인생이 궁금해 진다. 순간 순간 예수님이 아들이 아니라 메시아라는 것을 인식하게 되는 순간 요셉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예수님은 그런 부모에게 순종했다고 누가는 기록하고 있다. 요셉은 그렇게 예수님의 사랑을 받았던 아버지였다.
사랑의 주님. ‘아버지’ ‘부모’라는 단어 앞에 많은 생각을 하게 하심에 감사드립니다. 사랑의 경계는 없지만 역할의 경계가 있음을 깨닫게 하심에 감사드립니다.
자녀들이 성장해가면서 점점 부모의 역할이 어려워집니다. 하지만 그 경계를 뛰어넘어 찾아오시는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 되심에 감사합니다.
자녀들이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게 하시고 그 아버지의 사랑을 받으며 더욱더 성장하고 성숙한 자녀들이 되게 하옵소서.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받고 자녀들도 부모의 역할을 잘 감당할 줄 아는 지혜롭고 사랑할 줄 아는 부모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