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득음을 꾀하는가?
불란서사람들은 중산층 기준의 하나로 ‘스스로 악기 하나 다룰 줄 아는 것’을 든다 한다.
문화를 사랑하는 나라라니 그럴 만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벌써 30년도 더 지나갔지만
88 서울 올림픽 때 외국인들을 홈스테이(Home Stay) 시키면서
우리네 중산층 가정생활 모습을 보여줄 요량으로
악기 연주에 관심을 갖게 되었는데,
피아노를... 기타를... 젓대를... 그러다가 느지막이
국악기인 젓대(大笒)를 잡게 되었다.
신라 제31대 신문왕 때 선왕을 위해 지은 감은사에
대나무가 있는 섬이 떠밀려왔다 한다.
점괘(占卦)에 따라 그 대나무로 피리를 만들어 불었더니
침공해 오던 적군이 물러나고
가뭄에 비가 내리는가 하면 바람이 그치고 파도가 잠잠해져
이를 만파식적(萬波息笛)이라 칭하고 국보로 삼았다는 것이다.(삼국유사)
그 이후 이를 젓대, 저, 대금이라 부르게 되었다는데,
칠십 센티미터쯤 길이의 대나무에
하나의 취구, 천공, 칠성공과 여섯 개의 지공을 내고
손가락으로 지공을 차례로 덮거나 열며
취구에 김을 불어넣어 소리를 내게 된다.
천공엔 갈대 속청을 붙이게 된다.
취구에 김을 불어 넣으면 그 속청이 떨리면서
가냘프거나 힘찬, 때론 폐부를 찌르는 듯
천년의 신비한 소리를 내게 된다.
불어넣는 숨을 밀고 닫고 맺고 푸는 기교에 따라
흥은 저절로 일고 맺혔던 한도 스르르 풀리게 되니
그런 맛으로 조선시대 궁중음악에서 정악으로, 서민들 간엔 산조로 전해지면서
오늘에 이르도록 사랑을 받고 있는 것 같은데
그중 대금산조는 무형문화재 제45호로 등록되어있기도 하다.
우리나라 최고의 사서인 부도지(符都誌, 신라 내물왕 때 박제상)를 보면
천지창조의 주인공은 신(神)이 아닌 율려(律呂) 즉 소리였다 한다.
남성성의 소리 율(律)과 여성성의 소리 여(呂)가 차례로 부활해
우주공간에 별이 생겼을 뿐 아니라
다시 율려가 부활해 인류 시조인 마고(麻姑)로부터
궁희, 소희, 황궁, 청궁, 백소, 흑소가 차례로 탄생해
인류를 구성해 나갔다는 것이요,
우리 민족의 기원도 황궁, 유인, 환인, 환웅, 단군으로 이어갔다는 것이다.
율(律)이 상승파장의 남성성 소리라면 여(呂)는 하강파장의 여성성 소리일 텐데
결국 율려의 부활에 의해 우주만물 모두가 생성 소멸하는 것이라 한다면
동양권에 널리 퍼진 음양오행의 상생 소멸사상과도 맥을 같이 하는 게 아닌가 싶다.
미국의 천문과학자 아르노 팬지아스와 로버트 윌슨은
우주로부터 전해오는 마이크로웨이브배경복사를 발견해
1978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그들이 발견한 건 137억 년 전 빅뱅에 의해 형성된 초기우주가 실재했다는 것이요
그로부터 발생된 배경복사가 시간과 우주공간을 타고
지구에 파장되어 울려오고 있다는 것이니
그것은 바로 부도지에서 말하는 율과 여의 소리에 해당한다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현대물리학 이론에 의하면 우주공간에서 눈에 보이는 실체는 4%에 불과하고
나머지 96%는 암흑물질이거나 암흑에너지라 한다.
그렇다면 거대한 우주공간의 주인공은 4%에 지나지 않는 실체가 아니라
그보다 더 크게 존재하는 96% 마이크로웨이브의
장엄한 우주교향곡, 즉 율려의 소리라 해야 온당하지 않을까?
소리로 조화를 이뤄나가는 지혜가 무엇보다 소중하다는 소이가 여기에 있으니
지구촌 곳곳마다 마찰음 없이 고른 소리와 음악으로
함께 어울려나가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시국은 여전히 혼란스럽기만 하다.
배달된 신문을 펼쳐 들면 어지러운 기사에 어깨가 처지고
라디오를 틀면 뉴스에 양미간이 찌푸려진다.
그렇다고 세상을 향해 소리 지를 형편도 못되니
아침저녁 젓대를 매만지며 김을 불어넣을 뿐이지만
달라질 건 없어도 가슴이 트이면 이웃에 엷은 미소는 지어줄 수 있어 아니 좋을 수 없다.
생명의 시원(始原) 빅뱅(Big Bang)
백수십억 년 전 빛이요 파장이요 소리니
내 비록 근원이 보잘것없다 하나
소리야 못 내랴
왕산악 우륵 신기(神技) 이어받아
붙들어 매고 줄 당겨
안고 뜯고 튕기고 문질러 조화 부리더라만
굴러온 대(竹)일망정
막히고 더뎅이 진 구멍 후비고 파내
물고 불고 쓰다듬어 내 노랠 부른다
만파식적(萬波息笛) 오간데 없을망정
천년사직 빌던 율(律)이여 여(呂)여 소리여!
훈훈한 입김만은 끊지 않으리라. / 졸 시 ‘젓대’ 전문
* 만파식적(萬波息笛) : 신라 신문왕 때 나라에 평안을 주었다던 젓대
* 율려(律呂) : 부도지(符都誌)에 근거한 남성소리와 여성소리
(지난날의 수상 중에서)
이것도 욕심이라면 손을 놓아야 하는지 모르겠다.
얼마 전 탈장 수술 마치고 담당의사로부터 주의사항을 들었는데
배에 힘이 들어가는 일은 하지 않는 게 좋다는 것이었다.
흔히 하는 말로 목에 힘주면 머리가 터지고
배에 힘을 주면 복창 터진다 한다.
그뿐 아니라 허리에 힘주면 복상사 한다는 우스갯소리도 있지 아니한가.
무엇이든 너무 힘을 주다 보면 사달이 일어남을 경계하라는 뜻이기도 할 게다.
이젠 힘쓸 일도 없거니와 힘쓸 힘도 없기에
사부작사부작 걷다가 쉼터에 앉아
젓대에 입김을 불어넣는 게 유일한 재미 중 하나인데
그것도 배에 힘이 들어가야 맛 나는 소리가 나는 법이지만
하고 싶은 소리 다 내며 살 수도 없는 노릇이니
그동안의 삶에 일차 경고장을 이미 받은 셈이라고나 할까 보다.
목에 힘주다 머리가 터지는 일은 안방극장의 단골 메뉴다.
재벌가의 노회 한 오너가 마음에 내키지 않는 일을 당하면
목에 힘을 주거나 버럭 큰소리를 내지르다가 쓰러져
급기야는 병원으로 실려 가는 경우가 그것이다.
이와 달리 배에 힘을 주다 탈 나는 일은
혈기 왕성한 세대에서 일어나는 현상의 하나다.
힘에 부칠망정 한번 사는 인생이라며
배짱 좋게 판을 크게 벌이거나 배팅했다가 배 터지는 경우가 그것인데
그렇더라도 탈장수술로 수습이 된다면야 얼마나 좋으랴.
이렇게 적다 보니 내가 남의 이야기만 늘어놓는 꼴이 되고 만 것 같다.
이젠 젓대에 입김을 불어넣더라도 쉬운 곡으로 하고
뱃심부리더라도 각오한다거나 꼭이란 말 대신
주변 상황에 순응할 일이요
걷더라도 만 보를 고집하지 말아야겠다.
먹더라도 현재의 배변량과 체중을 넘지 않도록 하고
책을 보더라도 두껍거나 깨알 같은 활자는 피해야겠다.
다산 정약용은 귀향지에서 돌아와
여유당(與猶堂)이란 당호를 짓고 근신하며 살았다는데
모름지기 시류가 혼탁해 판이 갈리더라도
시비에 휘말려 열을 내는 일도 조심해야겠다.
김포인 님은 득음을 향해 이럴까 저럴까 한다지만
나는 이것도 욕심이라면 안 되기에
대금 옆에 단소를 놓아두고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하는 실정이라고나 할까 보다.
첫댓글 석촌님
글을 읽으며 우주 공간의 실체가 4%에 지나지 않는다는 놀라운 사실을 새삼스레 깨닫고 갑니다. ^^~
네에, 그렇답니다.
그러니 우주의 본체는 허공인 셈이죠.
득음은 저리 가라고 하고
걍, 자기 실력대로 부르면 됩니다. 이 나이에 음치라고 망신살이 뻗치면
뭐 어떻습니까?
장가갈 것도 아니고, 새로운 애인을 만날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그렇게 대못 박을건 없잖아요?
나나 그대는 그렇다 하더라도.~
실없이 쓴 글인데..
이리 거국적(?)으로 답해 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박밍돌 작가 님 말씀 중에..
"새로운 애인을 만날 것도 아니고" 란 대목이 마음에 걸립니다. ^^
노래 잘 하는 사람에게 매력을 많이 느낀다는 여인이 많다던데..
이래 저래 전 틀린 것 같긴 해도..
쉬엄 쉬엄 부르다 보면 좋아 지리라 믿어 봅니다.
실없이 쓴 글이라니요?
삶의 이야기가 그런 건데요 뭐.
쉬엄쉬엄 부르노라면 좋아지겠지요.
저는 취주 악기 소리 내기가 그렇게 어렵더라고요.
애들 가르치느라 리코더와 단소는 잘 불어야 하는데
리코더는 곧잘 불지만 고학년에서 가르치는 단소는 처음 소리 내기가 아주 힘들었더랬어요.
대금을 연주하시는 석촌님 모습에서
시대를 뛰어넘는 사대부의 고아한 풍류를 봅니다. ^^
그냥 심심하니까 이것저것 만지작거리네요.ㅎ
네 잘 읽어요
네에, 고마워요.
나의 신체로 내는 소리에 흥미가 생겨서 피아노 학원을 찾았지요
일년 넘게 배웠는데 진도가 나가야지요 찬송가 몇개 겨우 치고
덕분에 음계는 조금 이해 했지요 소리에 미친다는 사람과 그림에 미친다 는
사람들 저는 소리와 그림과 글에 미치고픈데 욕심이 과해서 이 중 하나도 제대로
못하고 마나 봅니다
그랬군요. 잘했네요.
그럼 언제 만나면 석촌호 호반에 있는 피아노 옆에 앉고 서서 운선님 피아노반주에 석촌 노래
한번 연주해볼까요?
미솔도미솔
파라라
솔시레파미레도~
깊은 산 속 옹달샘인데요
이렇게 상상만해도 재미있네요.ㅎ
@석촌 ㅋ~ 아고 상상만 해도 웃음이 기본기도 까먹었어요
@운선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