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더슨 비행장, 나잡 비행장, 베시오 비행장 이렇게 세권의 태평양 전쟁사 시리즈를 쓴 권주혁씨는 전문 전사 연구가는 아니지만 오랜기간 해당분야를 연구해온 개인 연구가로 책 내용이 의외로 알찹니다.
중부 태평양 일대에서 벌어진 일련의 전역에서 천조국의 쇼미더머니에 일본군이 개관광 당하면서 그 잘난 절대 국방권이 붕괴하고 이때 점령당한 각 섬에서 뜬 폭격기들에게 일본 본토가 지글지글 지져진사실이야 유명한 일이지만, 그런 사실이야 어느정도 전사를 파다보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일이고... 권주혁씨의 책들은 일단 장점이 그 당시의 각 전역을 정말 말 그대로 한국인의 시점에서 조망하고 있다는데 가치가 있죠.
저자 본인이 해당지역에서 30년 넘게 근무하며 장기간 자료조사를 해 책의 내용이 아주 충실해요.
게다가 해당지역에서 살아보지 않았으면 알 수 없는 뒷 얘기나 생활상에 대한 소개가 대단히 자세합니다.
현장감이 충실하죠.
일본이나 구미에서 출판된 전사관련 서적에선 이런 부분이 없죠.
다들 그냥 어느지역에서 어느 부대가 어떻게 이동하고 전황이 이렇게 저렇게 변했고 어느부대가 어떤 피해를 봤고 격파하거나 격파됐고 뭐 이런 얘기만 있으니까.
일단 권주혁씨 책의 장점은 당시 양측 일선부대 장병이나 장교들의 신상기록이나 상황같은걸 비교적 상세하게 추적하고 있는점이 있죠.
그리고 무엇보다 해당지역에서 전몰한 한국인들 역시 추적하고 있다는 점에 있습니다.
당시 일본군 주요 주둔지마다 있었던 위안소와 그 운영실태, 그곳에 끌려왔던 위안부 여성들의 이야기를 당시 그곳에 있었던 분들을 수소문해서 직접 취재해 소개하기도 했고 각 섬의 비행장 공사에 끌려왔다 전투가 벌어서 전몰한 조선인 노무자들에 대한 추적 조사도 충실합니다.
재미있는건 우리가 막연하게 일제시대엔 조선인들은 그냥 노예처럼 학대만 받다가 끝났다 뭐 이런 식으로 생각하는데 이 책에선 구체적으로 각 섬의 상황이나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뭐 그런 모습이 자세하게 나오죠.
가령 위안부 여성들의 경우 공장근로자 모집에 응했더니 도착하고 보니 위안소더라 뭐 그래서 감시받으며 강제로 일을 했어야 했는데 일본군도 사람마다 다 달라서 악한 사람도 있었고 선한 사람도 있었고 어떤 장교는 금반지를 주기도 했고 어떤 하사관은 잃어버린 지갑을 찾아 돌려줬더니 안에 있던 돈을 털어주더라 그렇게 해서 모은 돈과 귀금속을 비누곽에 숨겨 갖고 있다가 연합군 공습이 심해져 짐을 챙겨 수송선을 타고 철수하게 됐는데 그 수송선이 폭격에 침몰하는 바람에 모았던것 다 잃고 섬으로 다시 돌아가 위안소 생활을 했다. 뭐 이런 내용이 있고, 징용된 조선인 노무자들의 경우 어떤 곳에선 노무자들이 반란을 계획했다가 탄로나 전부 학살당한 경우도 있지만 트럭섬 같은 대규모 주둔지의 경우 조선인도 상당히 많았기 때문에 그냥 일본인들과 조선인들이 서로 간섭하지 않고 농사지으면서 알아서 먹고 살았는데 전쟁 말기에 먹을게 부족해서 간혹 일본인들이 조선인 거주지에 몰래 숨어들어와서 먹을걸 훔치다 걸리면 잡아다 훔씬 두들겨 패주고 뭐 그랬다는 내용이 있죠. (물론 이런분들은 살아 돌아왔으니 이런 체험담을 남깁니다. 당시 상황은 살아 돌아온것 자체가 운이 아주 좋았던 예로 이분들은 그렇게 일한 임금을 거의 받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산호해 해전으로 상륙작전이 좌절된 일본군이 오웬 스텐리 산맥을 걸어서 넘어가려 했던 뉴기니 전투가 있습니다.
당초엔 아주 낙관적인 작전이었는데 과달카날에서 일본군이 미군의 소모전에 제대로 말려들어가면서 뉴기니로 갈 지원까지 다 빨아먹는 바람에 덩달아 뉴기니전역까지 망했어요 상태가 되죠.
이 전투에 투입된 일본군은 과달카날에서보다 더욱 참혹한 꼴을 당했는데 여기 투입된 일본군 부대중에 당시 조선에서 창설된 부대가 있어 조선출신 병사들이 상당히 많았더군요. 당초 일본군은 이 조선출신 병사들을 경계해 각 소대에 한두명씩 흩뿌려 배치했고 소대장 중대장들이 예의 주시했다고 하는데 (뉴기니에 투입된 일본군에 조선인 병사가 많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았는지 투항을 종용하는 이승만 명의로 된 한글 삐라가 정글에 대대적으로 살포되었다고.) 전역이 장기화 하면서 일본군 보급이 두절되 기아상태에 빠져들자 일본군 장교들이 이 조선출신 병사들을 자기 당번병으로 삼았다는 내용이 있더군요.
이 조선출신 병사들이 대개 농촌 출신이라 굉장히 강인했고 굶주림에 일본 병사들보다 잘 견뎌 비교적 체력이 우수해 지휘관들이 자기 짐을 조선인 병사에게 지워 데리고 다녔다나... 그리고 여기서 제가 주목한게 이 조선출신 병사들은 이질에도 잘 걸리지 않았다고 합니다. 일본 병사들은 툭하면 이질에 걸려서 설사를 하다가 픽픽 쓰러져 죽었는데 조선인들은 배고픈것도 잘 견디고 이질도 안걸리고해서 일본 병사가 죽으면 병사라고 했고 조선병사가 죽으면 전사라고 했다는데 확실히 한국인이 어떤 특정 질병에 저항력이 강한 경향이 있는건 사실인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제가 알기로 한국인이 다른건 몰라도 특정 계통에 작용하는 질병에 대단히 저항력이 강한걸로 알고 있는데, 대표적인 예가 유행성 출혈열이죠. 이건 바이러스 자체가 한국 토종 바이러스라 한국인 사이에선 치사율이 2프로 정도 거든요. 간혹 말년 병장들이 베게갖고 산에 올라가 뒹굴다가 걸려서 죽었다고 사고사례전파에나 나오는, 보통은 걸려도 피똥이나 좀 싸다가 낫는 병이지 죽는병은 아니라서 재수없는 놈이나 걸려죽는 병이라는 인식인데 이게 백인에게는 치사율이 100프롭니다. 걸리면 반드시 죽죠.
그외에 한국에서만 사망자가 전혀 안나온 사스라든가 일본에선 사망자가 속출한게 o-157균 인데 한국에선 사망자가 전무 라든가. 해서 (대신 한국인이 간질환에는 약한것으로 알고 있는데 카페 의느님들은 보충설명을 좀...) 모든 인종들이 저마다 어떤 질병에 대해 취약하기도 하고 저항력이 강하기도 한 경향들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알고 있었는데 권주혁씨 책에서 뉴기니 정글 속에서 조난당한 일본군 이야기에 조선인은 잘 안걸리는데 일본인은 이질에 잘걸리더란 대목에서 그 얘기가 새삼스럽게 새겨지더군요.
...그래서 조선병사들이 많이 살아돌아왔으면 좋겠지만 이 뉴기니 밀림이 밀림중의 밀림이라 이속에 들어간 일본군 자체가 씨몰살을 한 수준으로 당해서 그렇게 강인하고 저항력이 강했던 조선인 병사들조차 살아 돌아온 사람은 전체 조선인 병사의 5퍼센트 정도라고 하죠.
생존율이 높은 조선인이 이정도 였다고 함. -_-;
미드 퍼시픽에 보면 이 뉴기니 작전부분이 있는데 정말로 밀림이 지옥같다는 생각이 절로 들죠.
아무튼 이 책 세권은 전사에 취미가 있다면 반드시 읽어볼 가치가 있는 책들 이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하고 있는데, 사실 첫 출간작인 헨더슨 비행장은 읽다보면 저자의 종교적 신념이 너무 강하게 드러나 비 종교인이 읽다보면 '이뭐병' 스러운 대목이 군데군데 있는건 사실입니다. 그것때문에 밀덕들 사이에선 꽤 비판도 받긴 했는데 그 이후 출간작에서는 종교편향적인 서술이 사라지고 기독교적인 내용은 기독교 신자인 당시 연합군 장병이나 지휘관들의 개인사에 대한 내용으로만 한정되더군요.
그런 면을 감안하고 보더라도 중부 태평양 일대에서 벌어진 격전을 이해하는데는 아주 큰 도움이 됩니다.
짤방은 2차대전 아트.
첫댓글 음... 한번 질러봐야겠습니다.
괜찮은 책 같네요.
똑같은 환경에서 상황에 따라 특정 민족만 더 잘 견디는걸 보면 종특이란게 이런게 종특인가 싶더군요.
토탈앙은 밀덕밀덕해. 현대판 테베 신성대 ㅎㅎㅎㅎㅎㅎㅎㅎㅎ
뉴타잎님이 쓰셨듯이 이분 책은 종교적인 색채가 너무 드러나는 게 단점입니다. 잘되면 하느님의 뜻이고 그사람이 선하고 독실한 기독교인이라. 그런 생각이 기본으로 깔려 있더라고요.
이분이 쓰신 책 중 '여기가 남태평양이다'라고 있는데 그것도 그렇습니다. 바운티 호의 반란 서술하면서도 반란 일으킨 선원들은 개객기고 블라이 선장은 독실한 기독교도라 기도의 힘으로 기적적으로 살아남았다라는 식으로 쓰죠. 10년전 당시로서는 드물게 남태평양의 인문지리를 서술한 좋은 책이었는데 이런 시각이 좀 그렇습니다.
학교 도서관 서가에 꽂혀있던 걸 자주 봤었고 비행장 이름이 인상적이라 기억하고 있던 책인데, 저런 책이었군요!
문제는 정말 종교색이죠. 좋은 과일에 약간의 독이 들어 있어서 먹기가 꺼려지는 그런 책들입니다.
나중에 도서관에서 함 찾아 볼까나....
음........ 그 전부터 알고는 있던 책이지만 인터넷에만 있는 리플때문에 구입을 망설였던 책입니다. 그런 차에 뉴타입님의 리뷰가 꽤 도움되는군요.
좋은 책 소개 감사합니다. 이런 분이 계신 줄은 미처 몰랐었네요. 베시오 비행장을 제외한 두권은 구해서 읽고 있는데, 베시오 비행장 책은 시중에 없어, 구하려고 출판사에 전화했더니 이런 종류의 책은 잘 안팔려서 더 찍을 계획도 없다더군요. 최소 200부 이상은 되어야 다시 찍을 수 있다고... 토탈워에서 공동구매 하면 가능할지도! 보고싶으면 도서관 가라고 하더군요.